《강명희-방문 Visit》 VS.《석난희_그림속의 자연 畫中自然》
변종필 | 미술평론가
강명희(1947~), 석난희(1939~)는 20세기 중후반 활동한 한국미술계의 1세대 여성 화가이다. 두 화가는 앙포르멜이 화단의 주류였을 때 화업을 시작하였으며, 1960~1970년대 프랑스에서 유학하며 예술적 전환기를 맞았고, 형식적으로는 추상표현, 내용적으로는 자연탐구를 추구한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유사한 조건 혹은 요인들을 갖고 있지만, 전혀 다른 화풍을 전개해 온 두 원로 화가의 작품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회고전은 그 자체로 주목할 만하다.
-방랑의 시간이 응축된 서사적 추상
강명희의 ‘방문’전은 프랑스, 몽골 고비사막, 칠레 파타고니아, 남극, 인도, 제주 등 국내외를 여행하며 방문했던 장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시는 방문한 장소에 대한 화가의 경험과 감정이 서사시처럼 이야기를 이루며 주도한다. 같은 장소 자연의 변화를 문학적으로 담아낸 작품도 눈에 띈다.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조형적 핵심 개념은 ‘시간(Time)’이다. 작품마다 시간에 따른 자연 변화를 응시하는 감정이 어떻게 축적되고 소멸되는지 보여준다. 전시장 입구에서 마주하는 대작 <북원>(2002-10)이 대표적이다. 8년에 걸쳐 완성한 이 작품은 오랜 세월 동안 작가가 정원을 가꾸며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의 변화가 겹겹이 응축된 서사적 추상이다. 함께 전시된 2000-2018년까지 지속한 ‘북원’ 드로잉은 마치 쇠라의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처럼 수많은 밑그림과 사유의 과정이 <북원>의 바탕으로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간과 감정의 쌓임은 <한라산>, <산방산>, <한림>, <안덕계곡> 등 제주 생활 18년 동안 삶과 밀착되었던 구체적 지역과 장소를 표현한 작품들에서도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오롯이 작가의 시선에 이끌려 상상하게 되는 풍광이지만, 그가 매번 느꼈을 감정을 따라가려 애쓸수록 작품의 내면에 쌓인 감정들이 궁금해진다. 그러면서, 작가가 방문했던 장소들, 그 땅의 역사뿐 아니라 바람, 날씨, 온도 등의 체감적 경험은 물론 무심한 듯 자유로운 선과 수많은 색점들 사이사이를 파고드는 빛의 순간을 공유하고 싶어진다. 커다란 캔버스를 채우면서도, 동시에 지우고, 덮고, 비워내는 과정이 수없이 반복된 화면은 동시에 어떤 소멸은 또 다른 생성으로 이어진다는 자연 이치를 담으려 한 흔적처럼 다가온다.
이처럼 강명희의 추상화는 외적 묘사가 아닌 특정 장소에서 쌓은 감정의 파동과 기억의 잔상을 자유로운 붓질과 색채로 펼친 풍경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풍경에 억압과 폭력에 의해 인간의 존엄이 파괴되는 역사를 상기시키는 시선이 공존한다는 점이 각별하다. 유신정권의 폭거를 마주하기 힘들어 유학을 선택한 때부터, 자연을 모티프로 삼은 작업으로 시선을 돌리고도, 오랜 시간 마음속 깊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저항의 감정이 몇몇 작품에서 여전히 감지되기 때문이다. 이는 작품 제작의 배경을 밝힌 설명문에서 쉽게 확인된다. 예컨데 중국 초나라 시인 굴원의 귀양 문학과 연관한 <초란도>, 시리아 출신의 저명한 시인 아도니스와 인연에 근거한 <시리아>연작 등 여러 대작은 작품의 정서적 뿌리가 어디인지 말해준다. 1)
강명희 회화에 표현된 조형 어법은 음악적이다. 감정, 역사와 기억, 장소의 서사적 내용은 문학적이지만, 희미한 대상 위로 겹겹이 쌓인 색점과 리듬감 있는 필치에 응축된 감정들이 요동치는 화면일수록 음악성이 짙다. 이러한 조형 어법은 각 그림마다 얽히고 설킨 그의 체험적 삶에 얼마만큼 다가설 수 있느냐에 따라 공감도가 달라진다.
몇 번에 걸쳐 작품을 둘러보다 눈에 띈 것은, 강명희가 제주도 고산 엉알해변에서 그린 파스텔 19점을 보고 도미니크 드 빌팽이 쓴 <중국해를 그리며 오고 간 편지>라는 시다. 그중 “나는 눈여겨 본다. 그리고 나는 본다. 당돌한 색채가 뱀처럼 퍼져서 엉키고, 깨끗한 캔버스를 온통 뒤덮는다. 그 부재 속에 담긴 풍경, 내가 바라보니 세상이 내 안에서 사라진다. 마침내 모든 것은 진동과 움직임, 그리고 조화일 뿐…”이란, 대목은 강명희의 작품 세계를 간결하면서도 본질적인 부분을 꿰뚫은 문장으로 읽힌다.
진동과 움직임을 통한 조화가 강명희 작품에서 발견되는 조형적 독자성이다. 마치 모든 음표가 율동하며 다른 소리를 내어 결국 하나의 곡으로 완성되듯 ‘조화’는 그가 방문한 장소와 자연에서 찾고자 한 미적 지향점이다. 이와 함께 ‘내가 바라보니 세상이 내 안에서 사라진다.’라는 구절은 궁극에 풍경은 사라지고 ‘존재하는 응시만이 남는 상태’로서 자연을 바라본 작가와 자연이 하나 되는 과정, 즉 자연이 내면화되는 응시의 과정을 상징한다. 이는 결국, 강명희의 자연관을 함축하는 표현이며, 그 회화적 결과물에 내재된 자연과 자아의 존재적 성찰의 의미이다. 이번 ‘방문’전은 몇몇 대작들의 한 부분에서 은은히 반사되거나 숱한 색 점 사이사이를 뚫고 새어 나오는 빛의 생기(生氣)를 발견하는 순간, 강명희가 수십 년을 응축해온 내적 의미에 한 걸음 다가선 느낌이다.
-묵직한 고집의 자연 합일 세계
석난희의 ‘그림 속의 자연_畫中自然’전은 1962년 첫 개인전 출품작 <누드>에서부터 2000년대 작품까지 한국 현대미술의 굴곡과 함께 변화해 온 작가의 궤적을 보여준다. 최근작을 볼 수 없는 아쉬움은 있지만, 적어도 올곧게 평생에 걸쳐 자연탐구를 이어온 열정 끝에 그가 추구해온 자연의 본질은 무엇인지 가늠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스승인 김환기의 권유로 선택한 프랑스 유학에서 자신이 추구해야 할 조형 세계를 체득하고, 돌아온 후 더는 특정 미술사조에 편승하지 않고 ‘자연’이라는 주제를 평생 붙들고 창조적 변주를 이어온 고집스런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초기작부터 변화되어온 조형적 탐구의 과정과 매체의 다양성과 실험적 태도는 자연에 관한 석난희의 일관된 관심을 일러준다.
자연을 응시하고 그것을 작품화한 석난희의 작품세계 역시 자연을 반복적으로 관찰한 경험이 바탕이다. 계절과 시간, 기후를 직접 몸으로 체험한 그 느낌을 조형화하는 데 노력했다. 2)
스스로 ‘자연은 살아온 동안 필요한 모든 생각과 행동의 근원이며, 옳고 그릇됨의 판단 기준’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작품세계는 자연이 유일한 표현 소재이며 대상이다. 동시에 작품을 마주한 사람들에게 특정한 완성 형태로 귀결 지을 수 없는 것이 자연임을 자각하게 만든다.
석난희 작품의 조형적 특징은 동양적 필선과 추상표현의 조화로 요약된다. 유화뿐 아니라 목판화, 석판화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루면서도 일관되게 자연의 본질을 탐구하는 어법을 유지했다. 작품의 핵심 조형 요소는 붓질과 먹 선이다. 그의 작품 형성에 영향을 준 것은 동양의 문인화라는 생각이 들 만큼 그의 작품은 동양화의 묵직하면서도 깊이와 여유가 느껴지는 조형성을 함유하고 있다. 유화 물감임에도 마치 서예나 문인화의 필치처럼 자유롭고 활달한 선묘를 과감하게 표현했다. 이러한 표현은 작품 전반에 감도는 운율과 생명력, 그리고 그 근원인 자연이 발산하는 기운을 따르려는 작가적 태도로 보인다.
그의 작품세계에서 자연과 육체적으로 가장 밀착된 관계의 작품을 꼽는다면 ‘판목화’이다.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제작된 판목화시리즈는 판화를 찍기 위해 원목에 조각하는 목판자체를 작품으로 발표한 유일성 회화이다. 판목화는 자연에 좀 더 귀착하여 자연과 일체화를 꾀한 열정적 시도의 결과물로 이번 전시작품에서도 여전히 힘의 축적을 실감케 한다. 목판화 역시 판목화와 맥락적으로 연결되어있는데, ‘판목화’와 ‘목판화’ 둘 모두 나무판에 조각하듯 그려진 느낌에서 문인화적 분위기가 감돈다. 판화라는 매체를 활용해 마치 ‘난을 치듯’ 간결한 선만 남기며 회화성을 강조한 시도가 석난희의 판목화와 목판화가 지닌 독자성이다.
한편, 2000년 이후의 작업에서는 자연순환의 생과 사의 경계가 융합된 듯한 조형 탐구가 주를 이룬다. 기법적 측면에서는 자연의 근원적 순환에 근접해 소통하는 표현으로 발묵과 선염법을 핵심기법으로 활용했다. 평면 위에 번지듯 퍼지게 하거나 마르기 전 덧칠하여 번지게 하는 효과가 끊임없이 생성 소멸하는 자연순환의 표현에 효과적이라 판단한 듯하다. 이러한 기법은 솜뭉치와 같은 두드림의 2차적 표현에 의한 깊이감과 공간감, 여기에 한층 절제된 공간 색 등이 함께 어우러져 자연 생명의 힘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게 한다. 특히 화면 바탕의 연보라빛 색조와 푸른 색조는 마치 자연이 품은 생명에 숨결을 불어넣는 대기처럼 작동한다. 자연과 인간이 공유하는 공간에서 느껴지는 생명의 체온과 색조의 조화로움이 화면을 지탱한다.
붓 대신 나이프를 사용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무의식적이거나 직관적으로 자극하는 자연의 변화를 더욱 자유롭고 빠른 속도로 화면에 구현하고자 한 선택으로 보인다.
이번 ‘그림 속의 자연_畫中自然’전은 무한한 공간 속에서 유동하는 자연의 순환적 생명의 충만함을 보여준다. 때로는 격렬하고, 또 그윽하다. 무한 자연에서 받은 영감을 오랜 여운으로 남을 수 있게 그리고, 새기고, 물들이고를 반복한 결과다.
정리하면, 석난희의 60여 년의 자연탐구는 ‘자연의 순환성과 생명력을 특유의 조형 어법으로 성찰해온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스스로 그러하다(自然而然)’는 자연의 본질처럼 자연이 포용 가능한 생명의 리듬을 다양한 매체와 실험적 기법으로 끊임없이 탐구해 왔다. 묵직한 고집으로 일관해온 이러한 태도가 석난희의 ‘그림 속 자연’이 지닌 힘이다.
1차 게재 아트인컬처 2025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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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방문’전은 전시구성에 따라 관람 후 마지막 섹션부터 역으로 관람을 추천한다. 강명희의 자화상과 1970년대 중반의 <개발도상국>시리즈 등 초기작품을 보고 나면, 그의 작품에 담긴 풍경들이 새롭게 인식된다.
2) “일단 매일 맞이하는 순간순간들이 다 자연이기 때문에 자연에 대한 받을 수 있을 만큼 받아들이려면 관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찰이란 계절에 대한 것과 시간에 대한 것이다. 어떤 때는 자연의 실루엣이 다 내 몸같이 보인다, 그 실루엣은 계절이나 순간의 기후에 따라 다르고, 굉장히 리듬적이다. 내가 관찰하고 느끼고 음미한 것들이 내 작품에 언젠가 나오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매일매일 작업한다.” 최광진, 『부드러운 욕망』, 다빈치, 2004. 미술관 제공, 안내설명문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