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홍의 ‘유령패션’우리는 유령시대를 산다
변종필 | 미술평론가
<유령패션>연작은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사태 이후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극심한 불안과 공포,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과 소유개념,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원초적인 검은 욕망의 본질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사비나미술관 전시기획글 중-
안창홍(1953~)은 50여 년간 인간의 ‘욕망과 권력’을 비판적 시선으로 탐구해온 작가이다. 1980년대 ‘현실과 발언’의 동인으로 현실 참여적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작동하는 인간의 욕망과 권력의 이면을 꿰뚫은 미술작품을 통해 예술의 도구적 역할을 피력해왔다.
수십 년간 우리 시대를 관찰해 작품화 한 안창홍 작가가 팬데믹으로 바뀌어버린 사람과 사회를 냉철하게 관찰해 새 조형 언어로 담아낸 것이 ‘유령패션’이다. ‘한국·에콰도르 수교 60주년 기념’ 안창홍 귀국 보고전으로 열린 <안창홍-유령패션> 전은 자신만의 독자적 조형 언어를 구축해온 안창홍의 예술세계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의미있는 전시이다. 1)
유령과 패션이라는 새로운 구성과 도발적 색채로 이루어진 신작들이 품고 있는 팬데믹 시대의 함의들은 예술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도록 우리를 자극하고 고문한다. 이러한 함의들이 과거의 작품세계와 어떻게 닿아 있고 변주해 왔는지 안창홍의 예술관을 되짚어본다.
유령+패션
안창홍은 아주 오래전부터 유령의 도시를 그릴 계획을 세웠다. 1979년 ‘인간 이후’ 연작에서 등장한 몇몇 유령 이후 “언젠가 세상이 좀 더 절박해지면 유령만을 전면으로 내세우는 작업을 시작하겠다” 2) 고 밝힌 바 있다. 그로부터 42년 만에 유령을 전면에 내세운 작업이 등장했다. 2019년 세계를 강타한 팬데믹으로 현대인들이 극심한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고,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과 소비 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을 보면서 그는 유령을 내세우겠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길 때라고 여겼다. 그 시작이 ‘유령패션’이다.
‘유령패션’ 연작에서는 지금까지 안창홍이 보여준 인물(특히 얼굴) 중심의 작품에서 신체가 사라졌다. 인간의 신체-표정이 보이지 않는데도 패션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욕망이 더 부각된다. 패션은 인간의 본능과 성격을 잘 드러낸다. 패션(fashion)은 흔히 옷을 말하지만, 훨씬 넓은 의미와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패션은 사전적으로 ‘어느 특정한 감이나 스타일’을 뜻하며 유행, 방식, 관습 등의 의미를 지녔다.
예술적 감성과 취향이 반영되는 패션은 인간의 과시 욕구가 가장 직접적으로 표출되는 분야로 현대 사회에서는 다양한 측면에서 해석되고, 고려되어왔다. 현대 패션의 빈번한 변화에 관한 주장 중 다음 세 가지 요소는 안창홍의 유령패션과 관련지을 만하다. 첫째, 패션은 계급적 구별을 두고자 하는 상류계급의 욕망에서 기인한다. 둘째, 매출증가를 위한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패션의 변화를 부추긴다. 셋째, 인간의 에로티시즘을 향한 욕망이 패션의 끝없는 변화를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3)
패션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류사회의 부와 신분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이다. 이른바 상류사회에서는 자신의 사회적 신분과 부의 과시를 위해 최신 유행 패션을 향유한다. 이는 중류사회로부터 상류사회를 멀찌감치 떨어뜨리는 자연스러운 방법이며, 신분상의 허영심이 사라지지 않는 한 지속된다. 산업자본은 생산과 소비에 의해 유지되는데 핵심은 기존제품이 소비되어야 신상품을 위한 자본이 마련될 수 있다. 따라서 신상품으로 소비 욕망을 부추기는 것은 패션 시장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 행위이다. 안창홍의 유령패션은 이러한 계층 구분과 소비 욕망으로 가득한 자본주의 도시의 패션을 냉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팬데믹 시대에 황량해진 도시의 풍경을 보고 욕망으로 치닫던 도시가 유령도시처럼 변화한 것에 대한 비판이 안창홍 유령패션의 시작점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을 뿐 모두가 사라지고 없는 도시의 밤거리는 욕망의 그림자만 남아 흡사 유령 도시 같다. 안창홍은 이것이 사실상 매일 반복되는 도시의 일상임을 일깨운다.
안창홍의 유령패션은 대부분 세계 유명 패션모델이 입은 옷이 바탕이다. 모델은 사라졌지만, 화려한 옷을 입고 화보를 찍거나 패션쇼를 하는 매혹적인 이미지들을 디지털 펜화의 대상으로 삼았다. 패션에는 인간의 에로티시즘을 자극하는 요소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에로티시즘은 안창홍의 작품세계에서 빠지지 않는 요소이다. <미스터 육체미의 아르바이트>, <우리도 모델처럼>, <풀잎사랑>, <립스틱 짙게 바르고>, <입맞춤>과 <술과 혀>를 비롯한 1990년대 일련의 작품들에서 자극적으로 묘사한 에로티시즘과는 분명한 거리가 있지만, 패션이 이성을 유혹하는 선적 아름다움과 매혹적인 색으로 무장하고 있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4)
구성(구조)적 측면에서만 보면 ‘유령패션’은 안창홍의 연작 작품 중 간결한 구조와 심플한 작품에 속한다. 패션마다 디자인과 색, 장식과 디테일의 차이가 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패턴은 유사한 형식의 반복이다. 무엇보다 ‘유령패션’은 기존의 작품과 다른 제작과정이나 표현에서 한결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여러 나라의 각양각색의 옷, 개성이 뚜렷한 패션 포즈들로 인간 삶의 다양성을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작은 스마트 기기 화면에서 시작된 펜화가 디지털 판화로, 펜화는 다시 실제 사람과 비슷한 크기의 회화로 그려지고, 마지막에는 사람 크기의 입체로 표현되는 과정 전부가 다이내믹하다. 스마트 펜의 신기술의 효용성을 살린 1차 결과물(디지털 판화), 회화로 옮긴 2차, 입체로 제작된 3차 변주까지 표현의 확장성과 완결성의 추구는 안창홍 작업 스타일이 재확인되는 대목이다. 그의 작품은 연작이 주는 메시지의 힘이 강하다. 연작으로 한 작품들, 특히 <마스크>, <눈먼자들>의 거대 입체 군상이 주는 압도감은 반복과 복제의 방식을 통한 메시지 증폭으로 이어진다. 개인의 정체성 상실이 반복되는 현대사회, 그 반복은 복제처럼 군중의 정체성 상실로 확대된다. 5) 안창홍식 노림수다. 유령패션도 다르지 않다. 작품마다 패션의 디자인과 색, 장식과 디테일의 차이가 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패턴의 반복을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의 힘을 실었다. 6)
지워진 인간
안창홍의 50여 년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한 단어를 꼽는다면, ‘인간’이다. 그의 작품세계의 중심은 언제나 인간이었다. 그간의 창작과정을 살펴보면 ‘인간-익명-가족-나’로 반복 연결되며, 표현의 대상은 ‘인물-신체-두상-얼굴-눈’으로 압축된다. 특히 인간의 감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얼굴과 눈’은 그의 작품을 연결하는 시그니처이다. 얼굴은 가장 빈번한 소재이고, 다양한 표현방식이 시도되었다. <가족사진>, <부서진 얼굴>, <눈 먼 자들>, <가면들>, <이름도 없는> 등 다양한 연작에서 익명의 얼굴이 등장한다. 하지만, 정상적으로 표현된 얼굴은 찾기 어렵다. 이목구비가 지워지거나 부서진 얼굴, 흉물스럽게 녹아내린 듯한 얼굴, 상처와 고통으로 가득한 얼굴, 똑같은 표정의 무감각한 얼굴 등 하나같이 온전하지 않아 기괴한 느낌을 준다. 전쟁과 폭력, 억압과 고문, 고립과 고독, 권력의 만행을 겪은 이름도 없는 역사 속의 수많은 피해자, 시대의 희생자들, 소외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이다. ‘단지 이름만 없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역사에서 지워져 버린 사람들, 나는 그들의 참혹하고 억울한 죽음들을 불러 모아 제의라도 치러주고 싶었다’ 7) 는 고백에서 안창홍이 어떤 심정과 관점에서 사람의 얼굴을 그리는지 짐작할 수 있다.
눈의 표현 역시 마찬가지이다. 언급한 연작들에서 눈은 작가가 전달하고 싶은 함의를 담고 있다. 지워지거나 뭉개진 눈, 기계처럼 뜨고 있을 뿐 무감정한 눈, 멍한 상태의 공허한 눈, 붕대로 가려진 눈 등 다양한 표현은 각기 다른 이유로 세상을 똑바로 보지 못하거나 볼 수 없는 사람들을 상징한다. 불평등한 사회, 정의가 가려진 부당한 현실에 항거하지 못하고, 반응하지 않거나 무감각해져 버린 현대인의 가려진 눈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처럼 안창홍의 작품에서 특정 신체 부위의 변형은 작품의 핵심이며 해석의 틀을 깨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신체 일부를 없애거나 변형해서 대상을 지우는 방식은 안창홍의 회화에서 빈번하게 보이는 표현이다. 예를 들어 1980년대 <가족사진> 연작에서 흑백사진(원본) 속 인물들의 이목구비를 없애고, 유령처럼 표현하여 가족사진의 일반적인 통념을 깨뜨린 시도를 꼽을 수 있다. 한 장의 원본 사진에 담긴 어떤 장면(상황)은 그 자체로 사진 속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담고 있다. 그러나 사진 속 인물의 얼굴과 눈을 지워버리는 순간 그 인물의 과거, 현재, 미래는 사라지고 박제된 인간의 형상만 남는다. 심지어 ‘유령패션’에서는 인간의 형상마저 지웠다. 인간이 지워지자 인간 없는 껍데기와 어른거리는 그림자만 남았다. 8)
안창홍은 ‘유령패션’에서 인간 세상을 그렸을까, 아니면 껍데기-패션을 그렸을까. 희한한 건 분명 인간이 지워졌는데 오히려 그들의 사회가 더 잘 보인다는 점이다. 결국에 지워진 대상은 무엇이 실체인지, 진실의 경계가 모호해질수록 존재했던 것(원본)을 복기하게 만든다. 안창홍의 이미지 지우기, 지워진 인간에 담긴 속뜻이다.
불편한 진실
안창홍에게 미술은 그 자체로 생생한 삶이었다. 자신이 누구이며, 왜 존재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성찰하는 과정을 그림에서 찾았다. 특히 자화상을 반복적으로 그리며 자신을 발견하고, 반성하고, 다짐하는 과정으로 삼았다. <자화상>과 <이별>, <심연 속으로>, <낙서>, <토르소가 있는 정물> 등 1972년의 초기 작업처럼 자아의 정체성을 찾는 지극히 개인사적이고 자전적 작품들이 여기에 속한다. 그는 1980년대 ‘현실과 발언’의 동인으로 활동하면서도 다른 작가들의 사회 비판적, 현실 발언적 목소리와는 결이 다른 자기만의 색과 조형세계를 탐구했다. 오히려 비정치적이었다고 할 정도의 사변적인 이야기가 많았지만, 사변적인 이야기가 타인과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스스로 증명해갔다. <화실풍경>(1984), <위험한 놀이> 연작처럼 잔혹스럽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강했고, 표현형식은 가면극이나 상황극 같은 연극적 요소를 통한 형식의 완성도를 유난히 중시했다. 특정한 소재와 주제, 톡특한 표현 기법은 유령패션까지 일관되게 고집해온 안창홍식 조형 방식이다.
‘폼나고, 당당한 것들보다, 가벼운 것, 하찮은 것, 유치한 것, 천박한 것, 통속적이고 별볼일 없는 것, 은폐되고 금기시된 것들이 오히려 제작기 짙은 향기를 풍기며 나의 감각을 유혹한다’9)
-안창홍-
안창홍의 그림은 겸손이나 예의하고는 거리가 멀다. 관람자를 배려하거나 친절하지 않다. 표현도 직설적이고 무례하다. 남녀 육체의 과감한 노출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싶은 소재나 주제를 표현할 때 교양이나 품위 따위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강한 흑백대비, 강렬한 도발적 색채와 자유로운 필치로 세상에 만연한 온갖 부조리와 불합리 속에 상실해가는 인간성을 거침없이 마음껏 고발한다. 안창홍식 화법이다. <화가의 똥>(1999)과 같은 풍자적 그림으로 세상을 자신의 엉덩이 밑에 두기까지 한다. 이처럼 안창홍은 줄곧 보편적 인식을 뒤엎는 작품을 선보여 왔다. <위험한 놀이> 연작의 화제처럼 미술계의 이목을 끌만한 위험한 놀이를 망설임 없이 즐겼다. 한마디로 자신만의 독자적 길을 위한 위험을 안고 살았다. 그의 작품을 마냥 편안하게 감상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러나 그가 작품으로 표현해온 모든 불편한 진실은 결국 사람답게 살기 좋은 사회, 더 나은 인간 세상을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는 근본적으로 인간을 사랑한다.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수십 년간 인간을 주제로 그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때로는 무모할 정도의 스케일에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기도 하고, 예상을 뛰어넘는 조형 세계를 펼쳐 보이지만, 이 모두는 처절한 자기반성, 엄격한 사색의 결과이다. 2019년의 예술가의 자의식을 반영한 대작 <화가의 심장>과 <화가의 손> 연작만 해도 그렇다. 숙명처럼 살아가는 화가의 삶을 대변하는 거대한 입체작품은 그 자체로 화가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 자전적 이야기이다. <화가의 손> 연작은 과거와 지금, 그리고 죽은 후에도 붓을 놓지 못하는 화가로서 천형의 삶을, <화가의 심장>은 끝없이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야 하는 압박감이 매일같이 심장이 가시에 찔리는 고통처럼 힘들지만 이겨내야 한다는 표현으로 화가의 삶과 안창홍 자신을 대변했다.
나는 늘 그림 속엔 시대정신이 녹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먼 훗날 한 작가의 그림을 통해서 그 시대의 통증을 거울처럼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모든 그림이 시대의 반영물이라면 보다 적극적인 참여가 바람직한 화가의 자세라는 생각이다. 이 세상의 미술 중 정치성을 띠지 않은 미술이 어디 있던가! 나는 화가의 시선에 의해 기록된 저항과, 타협하지 않은 자유정신이 깃든 삶의 미술이야말로 이 시대의 화가가 남겨야 할 유산이기도 하고 화가로서의 자존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10)
-안창홍-
권력 없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사회에서 권력은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다. 그러나 권력은 인간을 지배하는 힘으로 남용될 때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괴물이 된다. 안창홍은 이 같은 권력의 양면성에 주목해왔다. 약자와 보통시민을 위한 권력이 아니라 강자를 위한 ‘권력의 배설물-불합리와 부정’으로 피폐해진 사회를 고발하는 비판자로서 자신의 예술을 펼쳤다. 그를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저항한 투철한 비판자’ 11) 로 평가하는 이유일 것이다.
실제로 안창홍은 자기표현이 분명한 작가이다. 말과 언어는 물론 행동에서 언제나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힌다. 부당하다고 여기는 일에 쉽게 타협하거나 휩쓸리지 않는다. 느낀 바대로 솔직하다. 이러한 솔직함은 일찍부터 제도권 교육 밖에서 독학으로 자기만의 조형 화법을 구축하면서 타인의 눈치나 특별한 이론을 배경삼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표현한 행동에서 기인한 것이다. SNS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여과없이 노출하며 작품제작 과정은 물론 정치·사회에 대한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러한 성격과 삶의 철학은 작업 전반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나타난다. 세상의 숨 가쁜 변화를 날카롭게 응시하는 눈, 직관적으로 작품화시키는 감각, 특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은 화풍, 새로운 재료의 탐구와 기법 연구, 시대정신을 담아야 한다는 작가정신 등 안창홍은 자신의 뜻과 생각을 작품세계와 밀접하게 연결하는 보기 드문 작가이다.
유령의 시대
아주 늦거나 아주 이른 시간 길을 가득 메우던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텅빈, 인파로 채워지지 않은 도시의 거리는 공허하다. -중략- 적막감만 강물처럼 흐르는 텅 빈 도시. 이것이 유령의 도시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안창홍- 12)
안창홍의 말처럼 현대는 유령의 시대다. ‘유령패션’은 팬데믹 시대를 모델로 삼았지만, 안창홍이 직시하고 있는 유령의 도시는 지금 우리 삶이 모여있는 이 시대를 은유한다. 바삐 움직이며 살아가지만 반복되는 일상과 시간 속에 묻혀버린 존재감은 서서히 희미해지다가 마침내 자아를 지워버린다. 오늘날 지워진 인간의 자아가 떠도는 가장 흔한 곳은 가상세계이다. 디지털시대 스마트 기기가 만들어내는 공간이 완벽해질수록 사람들이 그 속에 들어가 익명으로 부유하는 시간이 늘고 있다. 현실 세계에서 지워진 인간은 가상세계에 무수히 존재하는 이미지에 빙의하며, 심지어 자의적·타의적으로 뒤섞여 융합한 새 이미지에 기생한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문명과 최대한 물리적 거리감을 두던 안창홍이 디지털 가상세계에 들어왔다.
놀라운 것은 안창홍이 가상세계의 이미지 사이를 부유하며 마주한 ‘허상-유령’ 이미지를 대하는 태도와 방식, 그 유랑의 종착지이다. 그는 가상세계의 이미지에 흡수되지 않고 오히려 그 이미지를 수정해 캔버스나 입체물로 옮긴 후 현실세계로 끌어내었다. 즉 안창홍의 디지털 펜화는 허상의 이미지를 현실의 물질로 형상화함으로써 허상-유령의 본질을 돌아보게 한다.
안창홍의 디지털 회화 속 ‘패션’은 인간의 본체 또는 정신이 사라진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다시 말해 ‘패션’이 인간의 허영과 탐욕이 가득한 생산물임을 환기하고, 욕망이 인간의 본성임을 자각하게 만든다. 결국, 안창홍의 ‘유령패션’은 인간의 무가치한 욕망을 비판하고, 허영과 과욕의 끝에 그림자처럼 붙은 고독과 공허, 권태 역시 인간의 몫임을 부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일깨운다. 이 점은 곧 안창홍의 작품이 지속적으로 견지해온 고유성과 닿아 있다.
안창홍 작품의 고유성은 그의 본성과 본능에서 유발된 것으로 타인과 비교할 수 없는 안창홍식 예술과 욕망이 집약된 조형 언어이다. 그의 단독성 강한 조형 언어가 얼마나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는가는 다음 문제이다. 분명한 한 가지, 안창홍의 작품세계는 안주보다는 불안, 편안보다는 불편을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한 태도를 반성하게 한다. 표현방식이나 형식에 있어 어느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롭고 역설적인 은유의 통렬함은 안창홍의 작품에서만 맛볼 수 있는 ‘쾌(快)’다.
시대적 위상
‘좋은 문학’은 감정을 세척시키는 것이 아니라 읽는 자들의 정신을 자극하고 고문하는 것이라는 어느 문학평론가의 주장 13) 은 그대로 ‘좋은 미술’에도 적용된다. ‘좋은 미술’은 감상자들의 정신을 끊임없이 자극해서 잠든 의식을 깨우고, 삶과 인간의 세계를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보도록 부추긴다. 이 점에서 안창홍의 작품은 ‘좋은 미술’이다.
‘미술의 힘이 모순과 불합리로 가득한 세상을 바꾸는 절대적 힘이 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지치고 피폐한 영혼을 일깨우고 사람들이 또 다른 세상으로 나가게 하는 출구로 인도하는 역할쯤은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믿음을 실현하기 위해 앞으로도 진실된 화가로서의 길을 무소뿔처럼 뚜벅뚜벅 걸어가 볼 생각입니다.’ 14)
-안창홍-
2013년 이중섭미술상 수상소감에서 밝힌 다짐대로 무소뿔처럼 뚜벅뚜벅 걸어온 안창홍의 삶과 예술은 이제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힘을 지녔다. 50여 년 일관되게 지속해온 그의 창작 열정이 그만큼 시대적 위상을 갖게 된 것이다. 안창홍이 믿어온 미술의 힘이다.
추신> 안창홍의 전시경력을 보면 어떤 과정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1981년 첫 개인전부터 2006년까지 <안창홍 작품전>이라는 타이틀로 꾸준하게 전시를 이어왔다. 평균 1년마다 개성 뚜렷한 작품을 통해 화가 안창홍이라는 이름을 한국미술계에 각인시켰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그의 작품이 지닌 예술적 목소리가 사회문제를 향해 증폭되기 시작한 것은 2009년 부산시립미술관의 개인전 <시대의 초상>과 같은 해 제10회 이인성 미술상을 수상하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 근 30여 년간 제도권 밖에서 독자적 자기 세계를 꾸준하게 구축해온 지난한 열정과 뚜렷한 작가정신이 제도권의 공감을 끌어낸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3년 제25회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한 이후 <나르지 못한 새, 안창홍>(2015), <눈먼자들>(2017), <화가의 심장>, <안창홍:이름도 없는>(2019)으로 이어진 전시마다 강한 메시지로 자신의 예술지향점을 확실하게 드러냈다. 오랜 시간 제도권 교육 밖에서 홀로 예술세계를 탐구하며 자기정체성을 찾기 위한 고독한 외침이 결국에 안홍창식 조형언어를 만들어냈다. 자신의 삶을 ‘오기와 열정으로 달려온 세월’이라고 했던 안창홍에게 그림은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버팀목이었고, 포기하고 싶지 않은 열정과 집념의 대상이었다.
1차 게재 아트인컬처 2022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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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에콰도르 수교 60주년을 기념하여, 2020년 12월 19일부터 2021년 2월 2일 사비나미술관에서 국내 최초로 에콰도르 국민화가 오슬왈도 과야사민 특별기획전이 성황리에 개최되고, 에콰도르에서는 답방형식으로 안창홍의 특별전을 과야사민미술관 ‘인류의 예배당’에서 성대하게 개최했다. 특히 인류의 예배당에서는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 전시회’를 개최한 후 최초로 안창홍의 전시회를 유치했다. 60점의 작품(유화20, 입체17, 시멘트부조23)과 스마트 폰 디지털 펜으로 그린 디지털 펜화 80점 등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실험성 강한 작품을 함께 소개하였다. 한국·에콰도르 수교 60주년 기념 과야사민미술관 <안창홍 특별초대전> 사비나미술관, 2021, 내용 발췌.
2) 안창홍, 「유령패션에 부쳐」, 한국·에콰도르 수교 60주년 기념 과야사민미술관 <안창홍 특별초대전> 사비나미술관, 2021, 41쪽.
3) 패션에 대해서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예링(Rudolf von Jhering, 1818-1892), 에드아르트 푹스(Eduard Fuchs, 1870~?)의 견해를 들어 언급했다. 특히 벤야민은 패션에 대한 푹스의 견해에 주목했다. 위 세가지 요인은 푹스가 패션을 이해하기 위해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측면으로 제시한 것이다. 강신주,『상처받지 않을 권리』 프로네시스, 2010, 141쪽.
4) 유령패션마다 흘러내리는 물감 자국은 관점에 따라 성적 욕망의 분비물, 만족을 모르는 과욕, 노동자의 피 등으로 해석 가능하다.
5) 안창홍은 권력과 자본에 의해 자아를 상실한 채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우민화된 사람들을 <마스크>연작의 이마에 뚫린 열쇳구멍 처럼 일정한 표식으로 군중의 정체성 상실을 비판한다.
6) 사비나미술관은 디지털 펜화작품을 패션광고물처럼 투명 디스플레이 매체를 이용해 설치하고, 회화작품은 쇼윈도의 진열된 옷처럼, 입체작품은 마네킹처럼 전시하여 미술관 자체를 유령도시의 한 단면처럼 구성하여 메시지 전달을 극대화시켰다.
7) 한국·에콰도르 수교 60주년 기념 과야사민미술관 <안창홍 특별초대전> 사비나미술관, 2021, 32쪽
8) 유령패션의 배경마다 어른거리는 그림자의 실체는 모호하다. 실체가 사람인지, 옷인지, 유령인지 알 수 없다. 화려한 패션을 감싼 배경일수록 그림자를 통한 주인공(모델-인간)의 상실감과 공허함이 더 은밀하게 엄습한다.
9) 원로작가 디지털 아카이빙 자료. 2019. https://www.youtube.com/watch?v=TfE0KsxgXe8
10) 개인전 `나르지 못하는 새`(2015 아라리오갤러리)에 부쳐.
11) 이명옥, 한국·에콰도르 수교 60주년 기념 과야사민미술관 <안창홍 특별초대전> 사비나미술관, 2021, 11쪽.
12) 안창홍, 「유령패션에 부쳐」, 한국·에콰도르 수교 60주년 기념 과야사민미술관 <안창홍 특별초대전> 사비나미술관, 2021, 41쪽.
13) 김현, 『현대 한국문학의 이론/사회와 윤리』 문학과 지성사, 1991, 161쪽. 고봉준, 『유령들』 천년의 시작, 2010, 29쪽 재인용.
14) 제25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소감 중에서 2013.1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