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제주현대미술관은 대중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변종필 | 미술평론가
제주현대미술관장으로 업무를 시작한 지 3년이 흘렀다.
3년 여 동안 전국은 ‘코로나의 날들’이었다. 코로나와는 무관할 것 같은 천혜 자연의 섬 제주 역시 안전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미술관은 정상적인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무의미하게 보낼 수는 없었다. 기왕에 겪는 어려움이라면, 오히려 이 시기를 미술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되돌아보고, 미흡했던 부분들을 준비하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미술관 주변 환경을 정비하고, 유휴공간이나 곶자왈을 색다른 전시공간으로 바꾸는 확장을 시도했다. 1평 미술관, 저지문화예술인마을 앱 개발, 인스타그램 활성화, 유채꽃밭 조성, 실감미디어아트영상관 기획운영 등 바쁜 시간을 보냈다. 전시기획과 소장품 전수조사도 진행했다. 그렇게 보내고 맞이한 2022년. 상황이 달라졌다. 새해에도 관광 침체의 불안감은 있었지만, 7월 이후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제주 섬이 급속도로 활력을 되찾았다. 무엇보다 미술관이 문을 연 지 15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를 맞아 제주현대미술관은 몇 가지 뚜렷한 성과를 냈다.
우선 한국박물관협회에서 주관하는 ‘제2회 올해의 박물관·미술관상(기획전시 부문)’을 수상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동시대 상황에서 ‘고립과 고독’의 여러 상황과 정서를 시적이며, 상징적인 사진과 영상 작품으로 풀어냈던 2021년 <‘空의 매혹: 고립과 고독의 연대> 전시가 좋은 결실로 돌아왔다. 어려운 시기를 함께 노력한 학예팀과 작가들, 그리고 함께한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선물이 되었다.
두 번째는 2007년 개관 이래 최다 관람객 방문기록을 세웠다. 코로나19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제주를 찾는 여행객이 많아진 데다 인스타그램을 활용한 홍보도 도움이 됐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미술관의 핵심인 전시 성과가 가장 컸다. 개관 이래 꾸준하게 주력해 온 다양하고 포용적인 콘텐츠를 반영하고, 미술관의 방향성을 유지한 전시를 기획했다. <뉴 라이징 아티스트>展과 <네트워크 교류>展이 대표적이다. 2021년부터 시작한 <뉴 라이징 아티스트>는 동시대의 작가 중 도전적 실험 정신과 열정이 가득한 작가에게 창작과 전시기회를 제공하는 기획인데, 젊은 작가들의 색다른 조형 언어를 신선하게 바라본 시선이 많았다. 그리고 제주, 서울, 독일, 중국, 뉴욕 등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 코로나 팬데믹을 관통하는 예술교류를 시도한 <지역네트워크 교류>展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여기에 중견작가 조명전으로 기획한 김보희 작가의 <the Days>展이 더해져 미술관이 관람객으로 북적이는 나날이 많아졌다. 자연과 동화되는 삶, 그 상상의 낙원 세계를 담은 그림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힐링의 순간을 선사했다. 특히 전시 연계형으로 기획한 김보희 작가의 작품세계를 몰입형 실감미디어아트로 제작한 <the Days>영상작품에 관람객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작가의 원작과 첨단기술의 융합, 대중음악 작곡가(가수 하림)의 참여로 만들어진 빼어난 영상미가 사랑을 받았다. 관람후기로 남긴 수많은 메모글귀 속에서 미술이 관객에게 줄 수 있는 긍정의 힘을 새삼 확인했다. 이 모든 것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변화한 삶의 패러다임과 무관하지 않게 느껴진다. 이를테면 코로나19로 유난히 힐링, 치유, 회복 이란 단어들이 자주 사용된 전시들에 대중의 마음이 움직인 듯 보였다.
“미술은 모든 사람의 것이다.”라는 故이경성 관장의 말씀처럼 미술관은 특정한 계층을 위한 곳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미술관은 정신적으로 힘든 국민에게 위안과 화합을 위한 정서적 함양에 큰 역할을 해왔다. 이는 실제 코로나 팬데믹을 관통하면서 우리가 경험한 결과이다. 2022년 한해 동안 미술이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은 분명하다.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으로 연일 매진 사례를 보인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전시와 변함없는 브랜드 파워를 보여준 박수근 전시(덕수궁미술관) 등에 국민적 관심이 모아진 일, 한국미술계를 뜨겁게 달군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Kiaf)’, 대구, 부산, 광주 등 지역 아트페어마다 코로나 팬데믹이 무색할 정도로 관람객의 폭발적 호응이 이어진 일이 대표적 사례이다. 실제 지금까지 미술작품이 일반 대중에게 이토록 관심을 받은 해가 있었는지 의구심이 들만큼 대단했다.
이건희컬렉션과 아트페어의 열기는 제주로도 이어졌다. 이중섭미술관에서 '이건희 컬렉션 이중섭 특별전-70년만의 서귀포 귀향'전이 매진 사례를 보였고, 제주 곳곳에서 열린 아트페어가 제주 도민의 관심을 집중시키며, 제주도 또한 미술시장으로서 핫 플레이스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처럼 2022년은 코로나 팬데믹을 관통하며 그 어느 해보다 미술이 대중 곁으로 가깝게 다가선 해였다. 미술작품이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고,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을 증명해 준 해였다고 할 만하다.
지금 제주도는 11월 16일 시작된 3회 제주비엔날레가 한창이다. 제주도립미술관주관으로 주제관인 제주도립미술관과 제주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삼성혈, 제주국제평화센터, 가파도, 미술관옆집 등 여러 장소에서 89일 동안 열린다.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을 주제로 국내 10여 개가 넘는 주요 비엔날레 중 지역 특정성을 내세운 새로운 형식의 국제행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을 이어가는 중이다. 제주미술은 변화의 길에 서 있다. 젊어지고, 신선해지고, 새로워지는 중이다.
인간과 자연, 역사와 시대정신을 오롯이 함의한 미술작품은 언제나 시선을 끈다. 미술관은 그러한 작품들이 더 많은 관람객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획, 즉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한다. 차별화된 전시와 지역 문화를 연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지속적인 브랜딩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은 미술관의 기본 역할이다. 2022년 제주현대미술관은 대중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국내의 많은 미술관 중 색다른 감동과 힐링의 미술관으로 제주현대미술관을 맨 먼저 꼽는 대중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즐겁다. 그리고 설렌다.
1차 게재 아트인컬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