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삼의 「검은 심연: ‘수중월·심중월’에 담긴 자연 진리」
변종필 | 미술평론가
프롤로그
이재삼 작가(이하 이재삼)는 예술가보다는 ‘예술장인’으로 남고 싶다고 말한다. 그가 말한 ‘장인’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닌, 그가 추구하는 예술의 본질과 예술가로서의 태도를 함축하고 있다. 이재삼에게 장인이란 ‘특정 분야에서 오랜 시간 동안 숙련을 쌓아 기술적 완벽함에 도달한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에 더하여 창의적 표현과 태도가 포함된다. 학창 시절부터 장인정신 1) 을 중시했던 그는 실제 창작활동에서 장인적 태도를 견지하며 인간 2) -자연-시간-공간에 대한 미적 탐구를 지속해왔다.
이재삼은 1988년부터 매년 개인전을 개최하고 수많은 그룹전에 참여하였으며, 제3회 박수근미술상(2018)을 수상하였다. 국내 주요 국공립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평론가, 미술사가, 큐레이터들이 그의 작품세계를 다룬 글을 발표하였다. ‘한국적 정서’, ‘동양적 사유’, ‘한밤의 적요한 심미적 세계’, ‘검은 공간’, ‘달빛 풍경’, ‘수묵화적 깊이’, ‘물아일체’, ‘기운생동’, ‘단일재료(목탄)의 초월적 표현’ 등은 이재삼의 작품세계를 다룬 여러 글에서 등장하는 용어들이다. 이 용어들은 표현은 달라도 이재삼의 작품세계에 대한 일맥상통한 이미지와 느낌을 전해준다. 필자 역시 이재삼의 작품세계에 대한 기존의 논의와 해석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특히, 이재삼이 구축한 ‘검은 세계’는 작품에 쌓인 노동의 시간만큼 깊이를 지니고 있으며, 그 깊이를 품은 ‘밤의 자연-심연’으로 관람자를 끌어당긴다. 이재삼은 자신이 마주하고 탐구하며 스며들어 하나 되었던 풍경-밤의 사물과 공간 사이를 흐르는 생명의 기운 속으로 관람자를 안내하고 있다.
필자는 이번 사비나미술관이 기획한 이재삼 전시를 통해 그의 작품을 보다 면밀히 살펴보는 기회를 가졌다. 본 글에서는 이재삼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몇 가지 요소를 되짚어 봄으로써 그의 ‘검은 세계’가 지닌 조형적 특징과 내적 의미를 성찰해 보고자 한다.
1. 작품 형성의 근원
이재삼의 작품세계는 유년기, 청소년기에 강원도 영월의 나무숲에서 자라면서 몸과 마음에 자리 잡은 정서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단종의 유배지였던 영월 청령포의 솔숲 군락을 휘돌아 흐르는 강의 풍경은 어디에서도 마주할 수 없는 장면으로 이재삼의 마음에 각인되었다. 배 없이 오갈 수 없는 청령포는 한낮에도 운무와 물안개가 가득하여 묘한 신비감을 유발하는 곳으로 이재삼의 여러 작품의 근원이 되었다. 이밖에 ‘동강 줄기의 뚝방길에 밤마다 피어나는 달맞이꽃, 산중턱 화전민 농부들의 척박한 삶, 기찻길의 화력발전소로 드나들던 석탄 차 행렬, 동서남북 산으로 둘러싸인 병풍들’ 3) 은 화가 이재삼의 작품세계를 이루는 모티프이다.
이재삼과 같은 시대를 살아온 화가들이 고향에 대한 유사한 정서를 가질 수는 있어도, 모두가 자연을 작품의 소재로 삼지는 않는다. 설사, 자연을 작품 소재로 삼더라도 이를 일관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재삼의 특별함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사실 그의 작품세계는 목탄화를 그리면서부터 내용상으로 큰 변화를 보인 것은 아니다. 유사한 소재를 반복 표현하며, 기법의 정밀함을 추구했지만, 외적(작품 크기)의 변화 폭에 비하면 내적(내용)의 변화 폭은 크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작품의 제작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작품 크기의 확대와 함께 매번 목탄재료의 임계점을 극복하며 표현의 깊이를 더해갔다. 이러한 깊이는 창작 태도와 자연 탐구에 대한 진정성과 열정에서 기인한다. 화업 초기 고목을 그리기 위해 고유의 풍토와 서사를 간직한 고목을 찾아 전국을 다니며, 자신의 눈과 감성으로 고목을 파악하고 이해했다. 그렇게 마음에 담은 고목이 한 그루씩 늘어날수록, 그의 그림 속 나무도 자라나 거대한 신령의 나무로 성장하였고, 화폭의 크기도 나무가 자란 크기만큼 커갔다. 이는 단순히 자연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을 마주하며 보고, 느끼고, 교감한 모든 과정과 장면을 함축하려는 작가 의지의 반영이다. 그 의지는 그가 표현한 밤의 세계 곳곳에 스며 살아 숨 쉬듯 드러난다.
2. 왜 목탄인가?
이재삼은 '목탄 화가'로 불린다. 오랜 시간 목탄이라는 재료 하나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왔기에 붙여진 별명이다. 그렇다면, 왜 목탄인가? 다소 진부하지만, 목탄은 이재삼의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라는 점에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목탄(木炭)은 화려하지 않고 색상이 다양하지 않아 미술 재료로 제한적이다. 특히 가루가 떨어지고, 번짐과 손상이 발생하기 쉬워 작품 보존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나 이런 치명적 단점에도 불구하고 목탄은 검은색과 회색의 한정된 색상만으로도 강렬한 감각과 은은한 깊이를 만들어내는 장점이 있다. 다시 말해 단점을 해결하면 다른 재료로는 표현하기 힘든 독자성과 특성을 가진 재료이다. 특정 재료가 화가의 작품세계를 구현하는 절대적 가치를 갖는 순간부터 그 재료는 작가를 대변하게 된다. 이재삼에게 목탄이 그렇다. 목탄의 물성은 밤의 어둠을 담고, 그 속의 본질을 탐구하려는 이재삼의 작업에 완벽히 부합한다. 이재삼은 목탄을 '나무가 남긴 사리'라 부른다. "목탄은 숲을 이루던 나무가 마지막으로 남긴 흔적"이라고 한다. 이러한 표현은 목탄의 본질을 작가의 시선에서 성찰한 결과다. 목탄은 생과 사의 순환을 상징하는 물질로 볼 수 있다. 나무를 태워 얻은 숯이 목탄이기 때문에 ‘나무는 곧 목탄의 근원이고, 목탄은 나무의 변형된 형상’이다. 그리고 불에 탄 나무로 만든 목탄을 재료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는 소멸(나무의 죽음)과 재생(예술로 다시 태어남)을 함축한다. 이는 밤에 일어나는 자연 생멸의 순환과도 맞닿아 있다.
이재삼의 작품을 이미지로만 보면 강렬한 대비의 흑백사진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작품 실물을 보고, 가까이 다가설수록 사진 이미지로는 감지할 수 없는 촉각적 깊이와 물질성을 화면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화폭의 결마다 켜켜이 덧입혀진 목탄의 흔적이다. 손끝으로 촉각의 극한을 끌어내며 화면에 목탄이 단단히 안착될 때까지 수많은 시간이 축적된 노동과 치열한 몰입의 순간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이러한 고된 제작과정은 한 번이라도 그의 작업실을 방문해 본다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넓은 작업실에 펼쳐진 작품들은 작가가 사물을 응시하고, 응대하는 시선, 자연의 본질을 충실히 담아내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온 작가적 태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작업실 벽면에 세워진 거대한 작품들과 그 아래 수북이 쌓인 목탄의 분진은 오랜 시간 화면과 마주하며 창작에 몰두한 고집스러운 화가의 제작과정을 증언해준다. 거대한 벽면을 채우고도 남을 대작을 꾸준히 이어가는 그의 엄격한 제작 태도는 결과물의 무게감과 함께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작업 과정에서 수없이 반복된 호흡과 노동이 검은 화면에 목탄과 함께 스며들어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산한다. 이러한 특징은 단순히 정교한 묘사 기술이나 화려한 색감으로는 도달할 수 없다. 이는 이재삼이 목탄이라는 재료를 선택하고, 오랜 시간 치열하게 검증의 시간을 거치며, 자신만의 기법으로 독자적인 조형 세계를 구축한 덕분이다. 이처럼 목탄은 이재삼에게 그 자체로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이자 내면의 반영이다. 그의 목탄이 화면에 남긴 흔적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예술의 본질에 관한 문답이 쌓인 결과물이다.
결국, 목탄은 이재삼의 작업을 통해 단순한 표현 재료에서 예술적 깊이와 자연지성(自然知性)을 구현하는 매체로 거듭났다. 그의 고백처럼 “목탄은 달빛을 표현하는 밤의 색채이다.” 4) 이는 목탄과 이재삼이 그리는 ‘검은 세계(목탄-밤-달빛)’와 맺어온 필연적 관계로 증명되고 있다.
3. 검은 세계
밤은 세상이 또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시간이다. 밤의 어둠은 익숙한 세계를 지우고 사물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불빛 없는 시골길이나 짙은 어둠이 깔린 산길에서는 낮과는 전혀 다른 자연과 마주하게 된다. 태양 아래에서 생명감을 온전히 드러내던 나무도 형상이 흐려지고,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다 문득 달빛이 조용히 어둠을 가르며 감춰진 풍경을 드러낼 때면 두려움과 신비로움이 교차하는 찰나가 찾아온다. 이러한 순간은 어둠과 빛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경계에서 비롯되며, 새로운 시각적 경험과 사유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시작점이 된다.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던 사물과 풍경이 달빛에 드러나며 감각을 깨우고, 우리를 낯설고도 깊은 공간으로 끌어들인다.
이재삼의 달빛 풍경을 담은 작품세계가 그러하다. 그는 어둠을 단순히 빛의 부재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에 더 깊은 생명감과 은밀한 서사가 존재한다고 믿으며, 이를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표출해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밤의 어둠과 달빛이 만들어낸 검은 세계에서 가능하며, 그의 작품에서 검은색은 작품의 본질을 형성하는 절대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사실, 검은색은 그의 삶과 연결 지점이 있다. 그가 나고 자란 강원도 영월의 검은 탄광촌은 노동의 힘이 한국 근대산업 시대의 근원으로 작용하던 곳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보고 자라온 검은 석탄, 온통 검은색으로 둘러싸인 탄광촌의 어둠은 그 어떤 색보다 이재삼에게 익숙했을 것이다. 화업 초기에는 먹물과 목탄을 같이 사용했지만, 결과적으로 목탄을 선택한 것은 자신의 삶에 가장 깊숙이 잠재해있던 고향의 기억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심리적으로 검은색은 중압감과 고요함을 동시에 주는 색이다. 그 자체로 하나의 철학적 주제가 될 만큼 깊이가 있다. 예로부터 ‘검은색(玄)’은 ‘깊음, 신비, 근원적인 것’을 의미했다. 노자가 ‘현(玄)은 인간의 감관으로는 인지할 수 없는 존재’라고 할 만큼 신비롭고 깊은 이치를 지닌 색으로 여겼다. 또한 겸허함과 절제를 상징하고, 무위자연(無爲自然) 정신의 반영으로도 보았다. 검은색은 ‘심오하고 또 심오하니, 모든 신비의 문이다.(玄之又玄,衆妙之門)’ 5) 라는 말처럼 어둠이 깊은 이재삼의 검은 세계는 거대한 정적과 침묵 속에서 신묘한 자연 생명의 존재감을 품고 있다. 텁텁하면서도 묵직한 질감으로 구현된 대형 화면은 보는 이를 단숨에 압도한다. 이때 화면 속 어둠은 두려움이나 위압감 보다 영적이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발산한다. 표현 대상의 정밀한 형상 뒤에 거대한 장막처럼 펼쳐진 검은 어둠은 그 자체만으로 자연의 본질적 깊이를 탐색하게 만드는 배경이 된다. 그의 작품에서 가시적 이미지는 표현의 중심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것을 둘러싼 어둠—즉,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공간을 통해 존재의 본질과 진실을 인식하게 만든다. 결국, 이재삼의 검은 세계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를 탐색하며, 존재의 본질을 사유하도록 이끄는 공간이다.
4. 달빛과 여백
이재삼의 밤의 세계에 등장하는 주요 소재는 ‘나무’(대나무, 소나무, 동백, 매화, 백일홍), ‘물’(물안개, 폭포), ‘달(빛)’이다. 이들은 자연의 순환과 생명을 상징한다. 나무는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 생명을 지속하며, 물은 흐르며 이를 유지하는 생명수 역할을 한다. 달은 자연의 리듬과 시간을 상징하며, 밤의 고요 속에서 나무와 물을 비추며 이들의 상호작용을 돕고, 지켜주는 눈이 된다. 세 가지 소재에서 이재삼의 작품세계를 이끄는 핵심은 ‘달빛’이다. 밤의 어둠이 무한성과 침묵의 상징이라면 나무는 자연 생명의 대표적 존재이며, 달빛은 삶의 이치와 생의 순리를 이끄는 역할을 한다. 주요 작품 제목이기도 한 ‘달빛’은 그의 작품세계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요소이다. 어둠 속에 감춰진 자연의 본성을 깨우고, 감상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정서의 발원이다. 예로부터 달은 동아시아에서 문화, 철학, 종교, 예술 등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여겨졌다. 양(陽)을 상징(남성성)하는 해와 짝을 이루는 음(陰)의 상징(여성성)이었고, 농경 사회에서는 달의 주기를 따라 계절의 변화를 예측하고, 농사와 생활에 반영되었다. 무엇보다 문학이나 예술에서 상징적 의미로 투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달에 빗대어 자주 표현한 것은 유명하다. 이처럼 달은 자연과 인간의 감정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등장하고, 달빛은 구체적 형상이 아닌 추상적으로 은은히 자연을 비추어 대상을 깊이 체험할 수 있게 유도한다. 달에서 반사되어 나오는 부드럽고 은은한 달빛은 달 자체보다 분위기, 감각, 감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는 이재삼의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달을 형상화하지 않는다. 직접 그리지 않고 달빛으로 표현한다. 그의 작품에서 달빛은 밤과 어둠을 품으면서 생명감, 공간과 공간 사이의 울림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분위기는 그의 작품에서 자주 감지되는 정서다.
이재삼은 “달빛은 감각을 깨우는 마음의 빛이다.……달빛 소리, 달빛 기운, 달빛 냄새를 작품에 담고 싶다” 6) 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표현처럼 달빛은 단순히 풍경의 요소가 아니라, 어둠 속 정령들의 감각을 깨우고, 어둠 깊숙이 숨어 있던 생명의 기운들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달빛은 그 모든 것을 살며시 감추거나, 은은히 밝히는 방식으로 자연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가 정밀하게 표현한 소재들의 존재감은 달빛이 이끄는 분위기에 따라 좌우된다. 이번 전시 작품 중 150호F 24피스를 연결한 대작 〈달빛녹취록,Vol.5〉 7) 을 보면 달빛에 부여한 작가의 정신이 뚜렷이 드러난다. 이 작품에는 이번 전시작 중 유일하게 ‘달’이 등장한다. 거대한 화폭 안에 등장한 ‘달’은 전시장 전체에 펼쳐진 밤의 세계를 밝히는 상징적 존재로 기능한다. ‘달빛’이 지닌 상징적 의미를 전하고 싶은 작가 정신의 표상이다.
이재삼의 작품세계에서 소재와 더불어 늘 주목받아온 것은 작품의 크기이다. 자연의 방대함은 한 화면에 온전히 담을 수 없지만, 이재삼은 그 한계를 확장해왔다. 화면을 키우고 깊이를 더하며, 자연의 본질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증명하듯 작업을 이어왔다. 거대한 자연의 감동을 포착하려는 시도는 이번 전시 작품들에서도 확인된다. 앞서 언급한 〈달빛녹취록,Vol.5〉은 작가의 열정과 ‘예술장인으로 남고 싶다’라는 작가의 욕망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제작에 쏟은 노동의 시간과 밀도가 거대한 화면에 응축되어 내뿜는 기운으로 무한한 자연의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이 외에도 백일홍 나무를 그린 〈달빛〉(2015)(2018) 시리즈를 보면 혈관 같은 나무줄기들이 꿈틀거리며 어둠을 뚫고 생명을 이어가는 느낌이 촉각적으로 전달될 만큼 강렬하다. 검은 배경에서 살며시 얼굴을 내미는 붉은 동백꽃이 인상적인 〈달빛녹취록,Vol.2〉(2021-2022)과 매화나무를 그린 〈달빛〉(2019)은 색감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화면 전체에 은은한 긴장감과 고요한 생동감을 발산한다. 폭포 그림은 또 어떤가? 시원하게 쏟아지거나 물보라를 일으키며 신비감을 유발하는 폭포는 거대 화면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몽환적인 압도감이다. 이렇듯 이재삼의 작품세계에서 목도되는 꿈속에 있는 듯한 몰입감은 작은 화폭에서는 느끼기 힘든 감흥이다. 이러한 감흥은 그의 거대한 작품에서대면할 수 있는 독특한 여백과도 연결된다. 목탄의 쌓임, 엄밀하게 목탄 가루가 화면에 엉겨 붙어 두텁게 형성된 층위와 상대적으로 목탄이 묻지 않은 화면(천) 그 자체로 비워둔 여백(때 묻지 않은 순수의 상태)은 그의 작품에서 특별하다. ‘채움과 비움의 대비’라 할 정도로 흑백의 대비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특히 운무나 폭포수를 표현할 때 목탄 사용을 최소화하여 여백의 미를 살린 작품들이 주는 여운이 남다르다. 극사실 묘사가 치밀하게 이루어진 부분과 대비되어 긴 여운을 남기는 여백의 미 역시 화면의 크기에 비례한다. 여백으로 남긴 부분(천)으로 오히려 검은색이 더욱 검고 깊이 있게 느껴진다. 이재삼의 작품에서 여백은 단순한 공허가 아닌 검은 어둠과 상호작용하며 달빛 풍경의 울림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5. 수중월・심중월
앞서 언급한 내용은 기존의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본 이재삼의 작품세계와 관련한 글들과 맥락을 공유한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수중월(水中月)’과 ‘심중월(心中月)’을 화두로 내세운 기획에 따라 그의 작품세계를 새롭게 조명할만하다. 필자는 수중월과 심중월을 이재삼의 예술 세계를 관통하는 철학적 사유이자 심미적 태도로 보았다.
‘수중월(水中月)’은 2층의 전시구성 명(주제어)이다. 수중월은 문자 그대로 ‘물 속의 달’을 뜻한다. 그러나 수중월은 뜻 그대로 단순한 자연 현상을 넘어 상징적이고 철학적 시각의 접근이 가능하다. 물속의 달은 현실의 달이 아니다. 눈에는 보이지만 실체가 없다. 이재삼의 작품에서도 달은 보기 어렵다. 한마디로 달의 실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8)
물안개가 화면 가득 몽환적으로 피어오른 거대 규모의 〈달빛 녹취록〉 시리즈, 폭포가 쏟아지고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달빛〉 시리즈에도 달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수중월은 존재하는 달(실제)과 그것의 반영(환영)이라는 이중적 관계로 볼 수 있다. 우리는 그의 작품에 달이 존재하지 않지만, 달빛을 통해 달의 존재를 인지한다. 이를 통해 실재와 환영의 경계, 진실과 허상의 경계는 어디인지, 모든 존재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한다. 실제 이재삼의 그림 속은 모든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물안개의 시작이 어디인지 끝은 어디인지 알 수 없다. 물안개가 가득 덮인 안개의 실체를 알 수 없고, 거대한 나무를 둘러싼 깊은 어둠의 끝(깊이)이 어딘지 알 수 없다. 폭포 그림도 다르지 않다. 이처럼 이재삼의 그림 속에 펼쳐진 풍경은 시작과 끝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세계이다.
이 점에서 수중월은 인간이 포기하지 못하는 이상이나 꿈, 욕망처럼 직접 확인할 수 없는 것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즉, ‘손에 잡히지 않는 이상(理想)’의 상징이다. 예컨대 물 속에 보이는 달은 아름답지만, 정작 잡으려고 하면 흩어져버린다.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이 그러하다. 작가의 욕망도 다르지 않다. 수십 년을 그리고 그렸지만, 여전히 완성하지 못한 자연 세계처럼, 수중월은 이재삼이 영원히 잡아둘 수 없는 달이며, 완성할 수 없는 나무, 채울 수 없는 호수이다. 결국, ‘수중월’은 자연 성찰을 통해 그(우리)가 깨달아야 할 진리가 무엇인지를 사유하는 공간으로 볼 수 있다. ‘실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깨닫고 나면 본래 존재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는 의미랄까. 사물의 외형적 닮음보다 내적 본질의 성찰과 자연 존재의 순리를 느낄 수 있게 몽환적인 그의 작품들에서 이러한 느낌이 전해진다. 결국, 수중월은 이재삼에게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무엇을 위한 것인지 스스로 묻고 해답을 구하는 깨달음의 시간이고, 그 깨달음의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이다. 수중월은 ‘물은 곧 정신이며, 달은 진리를 상징한다. 물이 고요해질수록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라는 의미로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3층 전시구성 명(주제어)인 ‘심중월(心中月)’은 또 어떤 의미인가? 문자 그대로 ‘마음속의 달’을 뜻하지만, 이 또한 수중월과 맥락적으로 상통한다. 다만, 외부(물속)가 아닌 마음(내부)속의 달을 의미한다. 즉, ‘내면세계의 달’이다. ‘마음속에 비친 달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다. 자신을 비춘다는 것은 ‘자아 성찰’을 뜻한다. 거울을 통해 참된 자아를 발견하듯 내면의 달빛 풍경은 이재삼이 품고 사는 이상이다. 마음속에 담긴 이상이나 상상의 세계는 늘 현실과 다르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마음속 달빛은 보이는 것 저 너머에 있는 자연의 세계를 비춘다. 그가 그려낸 달빛 풍경은 자연과의 교감을 통한 내면의 깨달음으로 그려낸 자연의 진리이다. 예컨대 어둠 속 달빛 아래 생명력을 뻗어가며 꿈틀거리는 듯한 나뭇가지들, 꽃이 만발한 나무가 전하는 생의 환희와 영적인 기운은 이재삼이 마음에 품고 있는 달빛 풍경들이다.
주지하다시피 현실의 달빛은 시간, 계절에 따라 빛의 강도와 깊이가 다르다. 달이 차고 기우는 주기에 따라 달빛도 다르고, 달그림자도 다르게 드리운다. 이러한 자연 현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다면, 그것은 인상적 풍경에 머물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재삼의 작품은 ‘달빛’이란 단어에 내재한 많은 상징적 의미를 떠오르게 하는 의경(意境)이다. 즉, 느낌보다 뜻에 의미를 두었다. 이재삼의 작품이 단순히 인상적 풍경이 아닌 상징적 풍경(혹은 상징적 인상)인 근거다. 물속의 달(수중월)이 외적 환경에 영향을 받아 형상이 변화하듯, 마음속의 달(심중월)은 내적 마음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수중월이 외부 현실과 환영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두었다면, 심중월은 작가의 내면적 탐구, 혹은 내적 깨달음에 더 의미를 둔 개념이다.
결국, 수중월과 심중월은 이재삼이 화가로서 자연탐구를 통해 내면의 진리를 찾는 사유의 원천이자 깨달음의 대상이다.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고요하면 심중에 떠오르는 달처럼, 정신과 마음으로 발견하는 진리와 이상을 의미한다.
에필로그
하이데거는 「예술작품의 근원」이라는 논문에서 ‘예술의 가치는 진리를 나타내는 것이며, 예술의 본질은 진리의 생성과 발생이다.’는 의미로 예술의 존재를 피력했다. “예술품의 역할은 단순한 진실이 아니라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며 작품이 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진리를 나타내는 하나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결국, 미는 진리를 드러내는 방식이다”라고 강조했다. 9)
이재삼의 검은 세계는 자연 존재의 진실을 증명하는 생멸의 공간이자 존재의 불완전성과 생성의 연속성을 경험하는 장이다. 그가 그려낸 검은 심연에는 수중월과 심중월을 통해 깨달은 생의 순리와 자연의 진리를 담고 있다. 그렇게 이재삼은 처음 작가로서 지향했던 자연 존재의 본질과 진실에 대한 끝없는 탐구를 지속한다. 그리고, “작가라는 사람은 혼자 노는 법에 통달하는 사람, 그림을 통해서 철들어 가는 사람임을 알게 된다”‘작가 이재삼 자신을 말하다’,10) 라고 말했던 것처럼, 지금 그는 독자적인 존재로서의 의식을 강조하며 자신이 소망하는 ‘위대한 칩거’를 이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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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인정신과 관련해 이재삼 화가는 영월에서 시계포를 운영하며 아날로그 시계, 특히 까다로운 명품시계를 장인적 태도와 기술을 겸비한 섬세한 재능으로 고치시던 부친(故 이태희)을 떠올린다. 그리고, 부친의 꼼꼼하고, 세밀한 장인적 성격의 유전자(DNA)를 자신이 물려받았다고 여긴다.
2) 이재삼의 목탄화는 크게 인간과 자연으로 양분된다. 초기에는 인물화에 초점을 맞췄으나, 점차 자연을 주요 소재로 다루기 시작하면서 그의 작품세계는 훨씬 넓고 깊어졌다. 자연생태의 순리와 본질을 터득하면서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듯하다. 인물화는 정면 대신 옆면을 선호하고, 상호 응시하는 강렬한 인물상이 주를 이룬다. 옆면의 표현은 라캉의 거울 단계처럼 자기 인식을 타자적 시선 안에서 탐구하려는 의도가 느껴진다. 일부만 그려진 얼굴은 불완전한 자아, 드러남과 감춰짐, 이중성을 통한 인간의 내면적 모순, 혹은 상호의존적 존재(서로 응시한 얼굴)로서의 인간 탐구로 보여진다. 다만, 이 글에서는 지면과 글의 성격상 자연을 모티프로 삼은 작품세계에 초점을 두고자 한다.
3) ‘작가 이재삼 자신을 말하다’, 제3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전,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 p.32.
4) ‘작가와의 대화’,제3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전,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 p.425.
5)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故常無, 欲以觀其妙, 常有, 欲以觀其徼。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玄之又玄. 衆妙之門。노자, 『道德經』 제1장.https://blog.naver.com/hitomi0521/223601902539 외 참조.
6) ‘작가와의 대화’ 제3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전,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p.425; 실제 달빛은 소리를 내거나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그러나 달빛이 드리운 밤의 시간에는 인간이 자연과 교감하는 감각이 달라진다. 바람소리,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와 풀냄새, 흙냄새와 같은 자연의 움직임이 잘 들리고, 이를 인지하는 감각이 예민해진다. 달빛이 드리운 밤에 자연의 움직임과 변화를 감지할때는 오감을 넘어서는 직관적 감각이나 심리적 인식까지 포함한 감각이 살아난다. 이재삼이 말한 ‘달빛소리, 달빛기운, 달빛 냄새’는 단순한 상징적 표현이 아닌 그가 작품을 제작할 때 지향하는 감각적이고 몰입적인 경험을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이는 <달빛녹취록>이란 이번 전시명이 시각적 요소를 초월한 초현실적 확장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과 연결된다.
7) 〈달빛녹취록, Vol.5 (Transcript of the Moonlit Vol.5)〉2022-2023 캔버스에 목탄543 × 2270cm. 이 작품은 전시공간에 따라 설치 작품 피스의 수가 유동적이다. 이 작품은 이번 전시 전체를 이끄는 핵심이다.
8) 이재삼 작가는 초기의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 달의 형상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9) 창홍지음, 정유희 옮김, 『미학산책』, 시그마북스, 2010, p.307.
10) ‘작가와의 대화’, 제3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전,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 p.32. p.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