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기술복제시대의 물결 속에서 끝없는 원본성의 붕괴를 목격하고 있다. 이러한 복제성 범람의 시대에 무한복제 가능성이라는 매트릭스(Matrix) 개념은 이미 1999년 영화로 개봉되어 AI(인공지능)가 지배하는 세상에서의 현실과 가상, 진실과 거짓 사이의 철학적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잠깐 눈을 돌려 1930년대로 돌아가보자. 독일의 미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1936년 그의 논문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에서 아우라(Aura)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 바 있다.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먼 곳으로부터의 일회적 현상(einmalige Erscheinung einer Ferne, so nah sie sein mag).”

예술작품은 전통적 입장에서 원본이 지니는 시간과 공간에서의 유일한 현존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진, 영화처럼 ‘부재의 증명’으로서 현존성이 결여된 작품은 아우라가 없다. 나아가 이러한 입장에서 보자면 복제품이나 대량생산된 상품에서 아우라의 부재를 경험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결론적으로 아우라란 “지금, 여기”의 존재성으로서 진품성, 고유성, 시·공간적 고정성에서 비롯되는 숭고한 분위기를 의미한다.



〈기자에몬이도 다완(喜左衝門井戶 茶碗)〉, 16세기, 조선시대, 높이 9.1×지름 15.5cm,
일본 국보 26호, 교토 다이고구샤(大德寺) 소장.


《기형도감: 운상현 도예전》 전경, KCDF 갤러리, 2025 ⓒ 사진_장동광


회화나 조각 등 순수미술 작품에서 발현되는 것은 유일무이성 혹은 복제불가능성으로서 이 아우라가 핵심적인 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공예의 경우 수공예의 일품성으로서 유일무이성과 함께 주물 등 원형 틀(몰드)을 사용하는 기법에 따라서는 복제가능성 즉 원본 유사성이 존재하게 된다. 그간 우리는 예술작품의 유일무이성은 심미적/예술적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는 메이저 예술로서 핵심테제였던 반면, 공예의 경우 실용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우라의 변경지대에 위치한 것으로 취급해 왔다. 그러나, 아우라의 문제가 이 유일무이성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기자에몬이도 다완(喜左衝門井戶 茶碗)〉을 상기해보자. 일본에서는 다완으로 규정되어 온 것은 사실 막사발과 같은 조선의 식기로서 기능을 지녔던 실용품이었지만 일본인들이 상찬해 마지않는 에도시대부터 전해져내려와 오늘날 일본의 보물로까지 지정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아우라가 유일무이성을 넘어 다른 차원까지도 포섭할 수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미학적 의미부여가 사회적 합의로 정초되면 비록 실용적이라고 할지라도 심미적 오브제성으로 전치될 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우리는 아우라가 단지 순수미술적이냐, 실용적 공예냐로 규정할 수 없는 문제임에 봉착하게 된다. 이른바 공예가 정신(Craftsmanship)은 다른 의미로 예술가 정신으로 전환되거나 승화될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 앞서 벤야민이 언급했듯이 사진과 영화, 음반을 비롯한 대량복제의 산물인 디자인 제품들은 아우라의 몰락이 내재해 있다고 보았다. AI시대를 대표하는 챗지피티(Chat GPT)의 물결 속에서 원본가치는 오히려 더욱 빛을 발하는지도 모른다. 원본이 없다면 파생가치 또한 기초 없는 모래성과 같은 무상한 것이기 때문이다. 복제생산이라는 디자인의 뿌리인 현대공예의 수공예성(Handcrafted Quality), 그 실용적 가치 너머의 유일무이성이 예술개념의 지도 속에서 본래적 미학적 의미를 회복할 시대는 언제쯤 도래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