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인문학(10) 한국 현대미술 1세대 작품 수집의 시점
김영호 | 중앙대 명예교수, 미술사가 objetkim@cau.ac.kr
대학 정년 후 30여년 동안 모아놓은 책들을 골라 지역의 공립미술관에 기증했다. 현대미술 관련 개인화집과 미술관·미술제 전시도록 그리고 전집류를 중심으로 쓸만한 책들을 솎아내면서, 문득 선배나 동료 이론가들이 소장하고 있는 도서들도 지역 공립미술관에 기증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 서가에 무작위로 꽂혀 있으면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겠지만, 미술관 자료실에 잘 분류해 정리하면 연구나 학습 활동에 유용한 공공재가 될 것이다.
미술 분야에서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한 것이 책뿐이겠는가. 회화, 조각, 오브제, 미디어, 설치 영역의 현대미술 작품은 국가 차원에서 대책을 세워야 할 관리 대상들이다. 미술작품은 미술가 개인에 의해 제작되지만 각 시대의 정신을 담은 공공재이자 문화유산으로 후대에 남겨진다. 하지만 남겨진 미술작품 모두가 저절로 문화유산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학문적·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을 선별해 수집 관리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미술관을 세우고, 예술가 지원과 창작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법령을 세우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어 시기를 놓치면 어려움이 뒤따르게 된다. 오늘날 미술관이나 컬랙션이 반 고흐나 세잔 같은 근대미술가들의 작품을 수집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현대미술의 영역에서는 수집을 위한 적정 시기가 도래하기도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지금이 그 때라 할 것이다.
1960년대 한국 현대미술을 선도했던 1930년대 출생 작가들이 타계하고 있다. 6030세대가 남긴 무수한 작품들을 관리하는 일이 시급한 사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말이다. 해방 이후인 1940년대 후반 서울대학교와 홍익대학교에 미술부(과)가 설치된 이후 국내 전문 교육과정을 통해 수많은 작가를 배출했다. 1960년대 한국 현대미술 1세대로서 한국 미술 현장을 주도했던 세대들이다. 이들이 남긴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수집, 관리하는 일은 이제 국가의 중요한 책무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공공기관의 작품 수집 과정은 어떤가. 미술인들이 남긴 작품들은 국·공립미술관에 기증과 구입의 형식으로 들여오게 된다. 기업가 개인 컬랙션이 모은 작품이 국·공립미술관에 기증되기도 한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상황이 여의치가 않다. 공립인 이중섭미술관과 박수근미술관의 사례는 이를 대변한다. 파리의 피카소미술관이나 암스텔담의 반고흐미술관 컬랙션과 비교해 보면 남 보이기 부끄러울 정도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천경자 기념관이나 제주도립미술관의 장리석 기념관 역시 연구의 대상이다. 이 외에도 기증이나 수집의 과정에서 논란을 일으킨 공립과 사립미술관들이 전국적으로 적지 않다.
우리 정부는 1991년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 제정된 이래 미술품들을 수집, 관리, 보존하기 위한 법적 및 제도적 장치를 보강해 왔다. 2023년에는 <예술진흥법>도 제정된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의 국·공립 미술관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술관 사업의 기본은 미술품 컬랙션임에도 지역미술관들은 작품 구입비를 전액 삭제하는 추세다.
이제 정부는 혁신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미술품 감정 및 평가 시스템의 전문성 및 투명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은 기본이다. 작가나 개인 소장가들의 자발적인 국가 기증이나 위탁을 장려하기 위한 세제 혜택, 보존 지원, 사례금 등의 인센티브도 마련해야 할 세목들이다. 국가와 지방정부의 차원에서 더 살펴볼 타산지석도 있다. 프랑스의 FNAC(Fonds National d’Art Contemporain)과 FRAC(Fonds Régional d’Art Contemporain)이 그것이다. 말 그대로 국가와 지역의 현대미술 기금이다. 프랑스 최대의 컬랙션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가(문화부)와 지역(의회 및 국가)이 운영하며, 전시공간 없이 수집된 작품의 보존, 관리 및 대여에 집중하는 기관이다.
이건희 컬랙션이 문화계 전체를 흔드는 상황에서 국가와 지방정부의 컬랙션 책무가 더없이 초라해 지고 있다. 1930년대 출생 미술가들이 196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에 남긴 무수한 미래 자산을 국가와 지방정부가 수집하고 관리하기 위한 정책적 혜안이 필요한 시기다.
- 1차 출처 김영호 컬럼 No.10, [미술인문학], 『서울아트가이드』, 2025.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