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재 / ‘당신의 시선으로’ 본 도시의 초상  


김영호 중앙대 명예교수, 미술사가


‘당신의 시선으로’라는 제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주체들과 시선의 문제에 천착해 온 정현재가 다섯 번째 개인전을 연다. 작가가 모티브로 설정하고 있는 ‘당신의 시선’이란 타자의 시선으로 여길 수 있겠지만 거기에는 작가 자신의 시선이 오버랩되어 있다. 관객으로서 타자가 바라보는 작품 속에는 세상을 향한 작가의 시선이 응축되고 표현되기 때문이다. 작가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제명은 자신의 창작물에 타자의 시선을 연계시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일 것이다. 작가는 작품에 표상된 자신의 시선과 그것을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 사이에 피어나는 공감대에 관심을 둔다. 그리고 이러한 소통과 교감의 행위를 통해 작가는 자신과 모두를 둘러싼 세상의 비밀스런 문들을 하나 둘 열어가고 있다.


화가 정현재가 작품을 통해 찾으려는 세계란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은 우리에게 예술의 본성과 그 표현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이러한 질문은 또한 특정 작가에게 국한된 것이 아닌 근대 이후 대부분의 예술가들에게 주어진 보편적 화두이기도 하다. ‘모든 예술작품은 그 시대의 아들’이라는 바실리 칸딘스키의 말에 비추어 보면, 결국 정현재가 발견하고자 하는 예술의 화두는 동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존재 또는 사유 방식의 문제와 맥을 함께 하고 있다. 정현재의 그림은 단순히 현실을 모방하는 차원을 넘어 동시대를 향한 작가의 내면적 감정 혹은 정신적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 나타난 형식 분석을 통해 동시대성이란 무엇이고 미술사적 맥락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이번 개인전에 선보이는 신작들을 보면 정현재가 시도하는 작품 제작 형식은 크게 두 갈래로 정리된다. 하나는 잘라낸 캔버스 조각을 이용한 콜라주 기법이고 다른 하나는 튜브를 이용해 물감을 격자무늬로 짜내며 그린 선묘 기법이다. 이 두 개의 시리즈 모두는 강렬한 재료의 물성을 드러내는 질감 표현과 추상적인 조형 원리를 고수하고 있어 이전 작업과의 일관성을 엿볼 수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자신의 독자적인 어법으로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정현재의 콜라주 기법 시리즈는 작은 캔버스에 다양한 이미지를 선행 제작하고 건조시킨 뒤, 그 이미지를 세분하여 대형 캔버스에 콜라주하고 색상을 덧입히며 작품을 완성시키는 방식이다. 작고 불규칙한 패턴의 조각들이 거대한 사각의 평면 위에 배치되며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가는 방식은 수많은 건물과 구조물들이 빼곡하게 모여있는 도시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사각형의 조각들은 창문처럼 내부의 색채를 드러내거나 외부의 빛을 반사하는 듯한 효과를 준다. 작가는 이렇듯 자신이 바라본 도시의 풍경을 작은 단위로 파편화하고 그것을 조형의 단위로 삼아 새로운 캔버스에 도시의 공간 이미지를 새롭게 표상해 낸다. 불규칙하게 배열된 수많은 조각의 리듬은 시간을 살아가는 유기체나 파편화된 정보망을 보는 듯 하다. 다양한 크기의 색면 배치는 반복과 변주의 리듬을 더해주고 있다.  


두 번째, 선묘 기법 시리즈는 튜브에 담긴 아크릴 물감을 캔버스에 짜내며 화면에 수직과 수평의 선들로 조직된 바탕을 만들어 내는 방식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캔버스 전체를 덮은 격자무늬의 선들은 화면에 반복과 질서의 기운을 발생시킨다. 그 위를 덮은 임파스토(Impasto) 기법으로 두껍게 올린 비정형의 물감은 혼돈과 무질서를 지닌 유기적 자연의 역동성을 드러내고 있다.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둡고 심오하며 시각적으로 강렬한 질감의 존재감을 나타낸다. 작가의 그리기 행위가 남긴 물감층은 축적된 시간성을 드러내며, 거친 물감층 사이로 생긴 틈과 균열은 세밀한 공간감을 불어넣고 있다. 구체적인 형상을 배제하고 캔버스에 색채, 질감, 형태로 의미를 파생하는 작가의 추상적 표현 방식은 순수한 감각과 감정 효과를 중시하는 작가의 의도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정현재의 신작들은 재료의 물성과 색채에 대한 탐구를 통해 보는 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콜라주 시리즈가 다양한 파편의 혼합을 통해 도시 건축이나 구조물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표현했다면, 선묘 시리즈는 격자 무늬의 단순화된 패턴과 유기적인 물성의 대비를 통해 현대 사회의 복잡성과 자연 공간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 이 모든 작업에서 무질서와 질서 사이의 관계를 탐색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평면 회화의 경계를 넘어 조각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표현 방식과 재료의 물성을 적극 활용하여 시각뿐만 아니라 촉각적 경험을 유도하는 표현 방식은 작가의 실험적인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정현재의 작품은 관람객의 경험과 상상력을 존중하며 열린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이러한 작가의 작업 태도는 관객들을 능동적으로 작품에 참여하게 만든다. 그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집합적 도시의 단면, 현대 사회의 복잡성, 또는 인간 내면의 관계 등의 보편적인 주제들은 관객의 시선과 공명하면서 보편성을 갖게 될 것이다. 주제와 타자의 시선을 제명으로 삼아 동시대성을 표상하는 작가의 조형 방식이 향후 어떤 모습으로 심화해 나갈지 사뭇 기대가 크다. 



정현재, <당신의 시선으로 4>, 72.7x72.7cm, 캔버스에 아크릴릭, 콜라주, 2025



정현재, <당신의 시선으로 4>, 72.7x72.7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25



1차 게재 202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