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미술관 - 두 번째 10년의 도약을 위해

김영호 / 미술사가, 중앙대 명예교수

엄미술관은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사립미술관으로, 조각가 엄태정 작가의 작업 공간에 자리를 정하고 문을 열었다. 2016년 개관한 이래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라는 운영 철학을 내세우며 현대미술의 지역 확산과 지역민들의 문화 향유권 확장에 독보적으로 기여해 왔다. 

엄미술관이 지난 10년 동안 기획한 주요 전시회와 교육프로그램을 보면 미술관의 위상이 오롯이 드러난다. 우선 국내외 유명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기획전시를 꾸준히 개최해 온 것이 주목된다. 예술 실험을 하는 다양한 작가들의 레디메이드 오브제 설치작업뿐만 아니라, 사물과 인간의 관계를 심도있게 다루는 전시, 그리고 환경 문제와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전시를 통해 동시대 미술관으로서의 역할을 확장해 왔다. 그리고, 기획전시와 연계한 교육프로그램, 특히 어린이와 가족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점도 인정된다. 음악, 미술, 공예 등의 분야를 융합한 교육 활동은 아이들의 창의력 및 상상력 증진에 기여한 모범 사례로 남는다. 

엄미술관이 현대미술의 지역 확산과 지역민들의 문화 향유권 확장에 나름의 역할을 수행해 왔음에도 사립미술관으로서 어려움이 없지 않았을 터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개관 10년을 맞은 엄미술관이 일군 성취를 냉정하게 돌아보고 향후 10년을 건강하게 지속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가져야할 사안일 것이다.  

우리나라 사립미술관은 국·공립 미술관과 비교 불가할 정도로 재정, 인력, 시설, 홍보 등 운영적 측면에서 고초를 겪고 있다. 만성적인 재정난과 낮은 재정자립도는 사립미술관을 위기로 몰아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공립 미술관의 낮은 입장료 또는 무료 정책으로 인해 사립미술관은 관객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ICOM이 내세운 비영리 기관이라는 미명의 속박으로 재정자립도가 매우 열악하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소장품 구입 예산은 물론 전시 기획 및 운영, 작품 보존 및 관리, 시설 유지 보수, 전문 인력 인건비 등의 기본 사업을 추진하기에도 턱없이 예산이 부족하다. 

엄미술관은 사립미술관으로서 어려움을 감내하며 문화적 소명을 수행해 왔다. 관장의 공공성에 기반한 운영 철학과, 사업가이자 유명 컬렉터였던 선친이 남긴 예술 사랑의 정신은 지난 10년의 노정을 견인해 온 정신적 기반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한국의 대표적인 1세대 추상 조각가인 엄태정 작가의 작업 공간에 둥지를 틀고 작가의 작품 판매금으로 부족한 예산을 충당해 오면서 차별화된 전시와 교육프로그램으로 미술관의 존재 가치를 유지해 왔다는 사실에 숙연해질 뿐이다. 시간은 흐르고, 이제 엄미술관은 지난 10년의 노정을 되돌아보며 또 다른 10년을 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엄미술관과 같이 고군분투하는 사립미술관의 지속적인 도약을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미술관 운영 책임을 개인의 몫으로 방치하기엔 정부가 추진했던 미술관 진흥정책의 책임이 간과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1990년대 초 박물관 1,000개 시대를 선언한 이래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을 제정하고 등록기준을 하향 조정하면서, 소장품 100점 등이면 개인 누구든 미술관을 개관할 수 있게 되었다. 정부의 폭발적 문화시설 확충 정책으로 머지않아 수적 목표는 어렵지 않게 달성되었으나 그 여파로 대부분의 사립박물관과 미술관들은 예고된 재정난에 허덕이며 정부의 한정적 재정 지원사업에 의존하는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우리나라는 전체 등록박물관 1,199개 중 557개에 달하는 사립박물관을 보유하고 있다(2023년 전국문화기반시설 총람). 대학박물관 119개소를 빼면 사립박물관이 국·공립박물관보다 숫적으로 우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부는 뮤지엄 진흥의 시대를 넘어 뮤지엄 도약을 위한 관심과 정책을 강화하고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현재 박물관학 분야의 논문과 보고서 그리고 사립박물관 현장평가를 통해 제기되는 내용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재정적 지원 확대 및 다변화  
① 운영비 지원 현실화: 현재의 일회성, 프로젝트성 지원에서 벗어나, 미술관의 규모, 소장품의 가치, 공공 기여도 등을 고려하여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운영비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② 세제 혜택 강화: 사립미술관에 대한 법인세 감면, 기부금 소득 공제 확대 등 세제 혜택을 강화하여 기업이나 개인의 기부를 활성화해야 한다.
③ 펀드 조성 및 투자 유치 지원: 사립미술관 전용 문화예술 진흥 펀드를 조성하여 작품 구입, 전시 기획, 시설 개선 등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고, 민간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④ 매칭 펀드 및 성과 기반 지원: 미술관 자체 노력에 따른 수익금이나 민간 후원금에 비례하여 정부가 지원금을 매칭하는 매칭 펀드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미술관의 공공 기여도, 관람객 수, 교육 프로그램 참여율 등 성과 지표에 따른 차등 지원을 통해 미술관의 자생력을 높이고 선의의 경쟁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2. 전문 인력 양성 및 지원
① 학예 인력 인건비 지원 및 고용 안정화: 사립미술관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인 전문 학예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건비 지원을 확대하고, 장기 근속을 유도할 수 있는 고용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② 전문성 강화 교육 프로그램 지원: 학예사, 보존 전문가, 교육 담당자 등 미술관 전문 인력을 위한 지속적인 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참여를 지원하여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③ 인턴십 및 일자리 창출 지원: 예비 학예 인력의 미술관 현장 경험 기회를 확대하고,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인턴십 프로그램 및 단기 체험형 일자리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3. 법적 제도적 기반 마련 및 개선
① 미술관 진흥법 제정 또는 개정: 현재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통합되어 있어 미술관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미술관만을 위한 독립적인 진흥법을 제정하거나, 기존 법률을 미술관 특성을 고려하여 전면 개정하여 사립미술관의 설립, 등록, 운영 및 지원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② 미술관 등록 기준 완화 및 유연화: 지방 소규모 사립미술관의 현실을 반영하여 미술관 등록 기준을 현실적으로 완화하고, 특히 전시 공간 면적 등 물리적 기준보다는 콘텐츠와 프로그램의 질적 수준을 중요하게 평가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③ 감사 및 평가 시스템 개선: 사립미술관의 특성을 반영한 합리적이고 유연한 감사 및 평가 시스템을 구축하여 불필요한 행정 부담을 줄이고, 미술관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지원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4. 네트워크 및 협력 강화
① 사립미술관 간 네트워크 구축 지원: 사립미술관 간의 정보 교환, 공동 전시 기획, 작품 순회전 등 협력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정부 지원을 강화하여 시너지를 창출하고, 운영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② 국·공립 미술관과의 협력 촉진: 국공립 미술관과 사립미술관이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맺고 협력할 수 있도록 공동 프로그램 개발, 소장품 교류, 인력 교환 등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③ 해외 미술관과의 교류 지원: 사립미술관이 해외 미술관과 교류하고,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도록 통역, 홍보, 물류 등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5. 홍보 및 마케팅 지원
① 통합 홍보 플랫폼 구축: 정부 차원에서 사립미술관의 정보를 통합적으로 제공하고 홍보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하여 관람객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② 미술관 주간 등 특별 행사 기획 지원: 특정 기간 동안 사립미술관을 집중적으로 홍보하고 할인 혜택 등을 제공하는 '미술관 주간'과 같은 특별 행사를 기획하고 지원하여 대중의 관심과 방문을 유도해야 한다
③ 미술관 교육의 중요성 홍보: 미술관 교육이 단순한 여가 활동이 아니라, 창의력, 사고력 증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미술관 교육 프로그램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

엄미술관은 지난 10년 동안 '공공성'과 '지역사회 기여'라는 핵심 가치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해왔다. 정부는 엄미술관을 포함한 사립미술관의 공적을 인정하고, 그들의 강점을 더욱 발휘할 수 있도록 단순한 재정 지원을 넘어선 종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정책 지원을 마련함으로써 한국 미술관 문화의 다양성과 발전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엄미술관 역시 새로운 10년을 설계하기 위해 지난 10년의 경험과 노하우를 주변과 함께 나누길 바란다.


1차 게재 20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