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개최된 아트바젤 인 바젤 2025의 핵심 고객층은 유럽 바이어(구매자)들이었으며, 안정적인 컬렉터의 수에도 불구하고 미국 컬렉터의 부재가 두드러졌다. 미국 컬렉터의 참여가 2년 연속 감소한 이유는 국제 정세 불안, 금리·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더불어, 미국의 신규 관세나 지정학적 긴장감도 컬렉터의 심리적 위축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된다. 근래 두드러지는 런던 경매 시장의 약세 역시 2020년 브렉시트와 더불어 경제적 불확실성, 국제 정책 변화 등이 원인으로 분석되는 가운데, 반대로 파리와 밀라노가 급부상한 현상 역시 경제적, 제도적 측면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2025 아트마켓 조세 스냅샷,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미국
국외에서 발생한 소득과 이익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았던 영국의 ‘비거주자(non-dom)’ 세제 혜택이 올해 4월 6일에 폐지되자 영국의 부유한 컬렉터들이 국외로 떠나면서 경쟁 국가들이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그 중에서 조세 제도상 가장 주목받고 있는 국가가 프랑스와 이탈리아, 그 나라 안에서도 파리와 밀라노 시로 시선이 쏠렸다. 이 두 도시는 고도화된 금융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유럽 각국에 대한 접근성이 높으며, 미술 분야 인프라 역시 최고 수준이다. 파리는 메가갤러리 거점들, 아트바젤 파리(Paris+ par Art Basel), 세계적인 국공립과 사립미술관의 공존에 더불어 세계적인 큐레이터, 비평가, 컬렉터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아트 마켓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이탈리아의 로마가 ‘역사와 정치의 도시’라면, 밀라노는 자본과 미래가 움직이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밀라노에는 거의 모든 글로벌 금융기관의 본사가 있어 자산 관리와 투자 기회가 집중되어 있을 뿐 아니라 첨단 산업의 헤드쿼터가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유입되는 자본은 미술계로 이어진다. 세계 최대 디자인 박람회 〈살로네 델 모빌레(Salone del Mobile)〉, 주요 아트페어로 성장한 〈미아트(Miart)〉, 밀라노에 속속 지점을 열고 있는 최상급 갤러리들이 이를 방증한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이 컬쳐램프에 ‘동시대 미술의 실험과 연구를 통해 새로운 세계와 가치를 탐구하는 역동적인 동시대 미술센터’라고 소개한 피렐리 앵거비코카(Pirelli HangarBicocca) 역시 밀라노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렇듯 두 도시의 금융, 교통, 아트 마켓 인프라가 각각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구매, 판매, 증여 등에 부과되는 세금 면에서 그 매력은 컬렉터에게 배가 된다. 이 두 국가는 작품 구매 시점의 부가가치세(VAT), 보유 기간에 따른 자산세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이전 단계의 상속‧증여세 측면에서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한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각각 5.5%, 5%로 유럽 내 VAT가 최저 세율일 뿐 아니라 프랑스는 미술품을 자산세 과세 대상에서 완전히 면제하고, 양도소득세는 판매가격의 6.5% 고정세율(22년 이상 보유시 완전 면제)로 납부, 상속세가 존재하지만 현물납부가 가능하다. 이탈리아는 일반적인 자산세가 없으며 ‘신규 거주자를 위한 정액 세금 제도’를 선택한 개인은 국외에 보유한 미술품에 대해 이탈리아에 신고하거나 세금을 납부할 의무가 없다. 따라서 상속 및 증여세가 면제된다. 이 시점에서 해외 자산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구매를 파리나 밀라노에서 할 이유가 분명해진다.
세계적인 아트페어와 작품 거래의 지역적 한계를 넘어서는 지금, 국가를 오가는 자금과 미술품에 대한 조세 환경의 변화는 고액 자산가의 거주지 및 구매처 이동에 가장 큰 변수 중 하나로 작동하고 있다. 여전히 국제 미술시장에서 자리 잡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한국 역시 이러한 세계의 제도적·경제적 변화에 민감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