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로 살아남기 

김성호(성신여대 초빙교수, 미술평론가)




ⓒ김성호, 2025. 


수경은 독립큐레이터다. 아니, 이름만 그렇고 실제로 백수다. 몇몇 재단에 기금 신청해서 간간이 기획일도 했지만, 지금은 할 일 없이 꿈만 키우는 중이다. 수경은 백수에서 탈출하고자 오랫동안 준비했던 공립미술관 큐레이터 공모에서 최근에 낙방한 후, 우울과 자학으로 지옥 같은 일주일을 보내는 중이다. “띠리릭” 전화가 왔다. 남자 친구 경수가 위로주를 사 준다고 해서 외출을 감행한다. 

수경은 그동안 A도립미술관과 B시립미술관의 임기제 학예연구사, C사립미술관, D아트센터의 큐레이터 채용 공모에서 줄줄이 낙방했었다. 물론 몇몇 갤러리에서의 큐레이터 경력이나 한 비엔날레에서 운 좋게 일했던 큐레이터 경험이 있기는 했다. 지역의 E문화재단에서 문화행정직으로 이 년 정도 일한 적도 있지만, 맨날 회의만 하고 서류만 잔뜩 만들면서 야근하는 것 같아 그녀의 적성에는 그다지 맞지 않았다. 미술관의 학예연구사로 일하고 싶은 욕망이 간절한데, 그녀에게 그것을 실현할 가능성은 점점 멀게만 느껴진다. 

미대 시절 특강을 나왔던 한 큐레이터가 너무나 멋져 보여 큐레이터가 되려고 대학원 예술경영학과에 진학했건만, 현실은 학교에서 배운 것을 써먹기에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큐레이터가 되려면 미술 이론도 빠삭해야 한다고 해서, 미술사나 미학 스터디 모임도 부지런히 참여했고, 비평문도 쓸 줄 알아야 한다고 해서 개인 블로그도 운영하면서 글쓰기 훈련에도 매진했고, 국제 감각도 익혀야 한다고 해서 한 문화재단에 지원해서 해외 큐레토리얼 레지던시도 반년 정도 다녀왔건만, 한국의 큐레이터 현실은 그저 맨땅에 헤딩해야만 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갤러리에서는 그저 심부름하는 일이 거의 다였고, 비엔날레에서는 작가 미팅에 바쁜 예술감독 밑에서 일정표 짜는 일과 수석큐레이터가 벌인 사건을 수습하는 일로 기운을 소진하기 십상이었다. 감독과 집행위원회가 네 탓 공방을 하면서 심하게 싸우고 나면 양쪽의 눈치를 보느라 감정 노동하는 일도 녹록지 않았다. 

대학원 시절 강의를 나왔던 K 선생이 최근 모 사립미술관의 관장이 되었다던데, 큐레이터 채용 공고가 나오기 전에 K 선생을 한 번 찾아가 슬며시 청탁을 넣어볼 것인지 수경은 고민해 본다. K 선생이 지역의 공립미술관 관장으로 일할 때, 자기 제자를 학예실장에 꽂아 넣어서 재계약을 앞두고 중간에 잘렸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아무리 사립이라도 내 청탁을 들어줄까? 모교의 S 교수는 최근 은퇴 이후 대선 캠프에 들어가서 큰 거 한 방 노리나 보던데, K 선생한테 ‘새끼 큐레이터’로 뽑아달라고 청탁하는 것이 무슨 큰 문제가 될까? 아서라! K 선생이 뭘 보고 나를 뽑아주겠나? 그만두자. 30대 중반의 나이가 될 동안 제대로 한 게 거의 없네. 

수경은 답답하다. 엄마는 지자체 학예사 시험에 응시해서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라고 날마다 성화를 부리고, 경수는 자기가 다 먹여 살릴 테니 빨리 결혼하자고 보채니 수경이 최근에 받는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돈도 안 되는 그림만 그리면서 예술가 자존심만 내세우는 경수랑 죽어도 결혼은 못 한다고 그녀는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이놈 뒷바라지하고 애 키우면서 경력 단절자로 평생 살아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경수가 오늘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던진 한마디가 수경의 염장을 세게 질러댄다. 

 “내가 너 취직시켜 줄게, 스위스 갤러리에서 나랑 전속 계약하자고 연락이 왔어. 내 개인 아트 매니저로 일해 줘. 나만 믿어. 나 자신 있어. 너 어차피 미술관에 큐레이터 지원해도 계속 떨어지잖아!” 


* 이 글은 팩션(faction)이다. 

출전/
김성호, 「큐레이터로 살아남기」, 『서울아트가이드』, 섹션-지금, 한국미술의 현장, vo1.282, 6월호, 2025, p,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