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나’로부터 - 알터에고 혹은 타아를 모색하는 조각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조각가 김현준(하이킴)은 인체 조각이라는 범주 안에서 인간을 탐구한다. 사실적 재현에 기초한 구상 조각뿐만 아니라 대중문화가 침투한 팝(Pop)적 조각에 이르기까지 그 조형적 언어는 각기 다르면서도 일관되게 인간이라는 주제에 천착한다. 그가 탐구하는 인간 존재라는 주제 의식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작품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

Why, 200x170x160cm, Wood, 2017

어떤 꽃을 피울까 3 은행나무, paint 38x38x115cm 2023
II. 알터에고 혹은 타아로서의 ‘내 안의 나’
김현준(하이킴)의 작업은 작가의 내면을 성찰하는 ‘알터에고(Alter Ego)라는 주체’로부터 출발한다. 흔히 ‘또 다른 자아, 혹은 제2의 자아’를 지칭하는 알터에고는 그가 작가 노트에서 언급하는 “자신 안의 나”인 셈이다. 그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관습과 구조 안에서 반복적인 삶을 사는 현대인이 망각한 본연의 내 모습’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의 조형화를 시도한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본연의 내 모습’이란 때로는 침잠에 깊이 빠져든 소외된 인간 형상으로, 때로는 재기발랄하고 쾌활한 인간 형상으로 다양하게 조형화되면서 여러 정체성으로 부단히 움직인다. 생로병사의 인간사와 희로애락의 사건들을 맞이하는 한 인간 주체에게 있어 ‘본연의 내 모습’은 고정되지 않고 지속해서 이동하는 정체성을 드러낸다. 마치 프로이트(S. Freud)가 주장하고 있듯이, 자아(ego)가 ‘또 다른 나’인 본능(id)과 초자아(superego) 사이를 오가면서 양자를 끊임없이 중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인간 주체의 정체성이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늘 변모하는 것이 아니던가?
이러한 차원에서 그가 탐구하는 ‘내 안의 나’ 혹은 ‘인간 본연의 내 모습‘은 타자로부터 주어진다. 달리 말해 본연의 내 모습은 타자로부터 발견되는 것이다. 라캉(J. Lacan)에 따르면 그것은 대타자(Autre)의 욕망을 모방하는 것이자, 사회화된 타자의 욕망을 따르는 것이기도 하다. 거울 이미지처럼 쉽게 자아와 동일시되는 소타자(autre)와 달리 대타자는 자아가 여러 타자와 관계를 맺도록 매개하는 상징적 질서인 동시에 자아라는 주체를 둘러싼 ‘또 다른 주체’로 자리한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의 무의식과 욕망은 사회화된 구조 속의 ‘대타자 담론’이자 ‘대타자 욕망’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김현준(하이킴)이 조각 작업을 통해 제시하는 ‘내 안의 나’는 ‘내 안의 관성적인 나를 지우고 찾는(찾으려는) 새로운 나’라는 의미의 ‘알터에고’이자 ‘대타자를 대면하면서 찾아가는 나’라는 의미의 ‘타자화된 나’, 즉 ‘타자가 지닌 자아’인 ‘타아(他我, Autre soi)를 모방하는 나’라고 할 만하다.

How, 가변 설치, Wood, 2019

Some how, 62x77x172 Wood, 2019
III. 김현준과 하이킴 –네버 엔딩, 삐삐, 파트라슈, 플라워
이 글은 작가명을 왜 김현준(하이킴)으로 호명하는가? 그는 보편적 인간의 존재론을 탐구하는 형상의 인체 조각에 있어서는 김현준이라는 작가명을, 그리고 만화, 애니메이션 등 대중문화에 기초한 허구적 인물과 동식물을 상징화한 팝적 구상 조각에 있어서는 하이킴이라는 작가명을 선보인다. 한 명의 조각가가 사용하는 김현준과 하이킴이라는 두 이름은 마치 분열된 ‘내 안의 나’ 혹은 ‘알터에고’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두 이름으로 창출하는 각기 다른 조형적 특징의 구상 조각은 한 사람에게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타자화된 나’ 혹은 ‘타아를 모방하는 나’의 정체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먼저, 전통적인 목조각의 형식을 띤 김현준의 구상 작업에는 인간 존재에 대한 진중하고도 묵직한 성찰의 면모가 엿보인다. 눈을 감고 명상에 깊이 잠긴 인물이나,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거나, 무릎을 가슴에 모든 인물상에서는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의 분위기로 가득하다. 이러한 인물상의 머리나 등으로부터 자라는 식물 줄기 형상은 비극적 고난이나 좌절로부터 한 줄기 긍정의 희망을 피워 올리기에 족하다. 아울러 하늘을 비상하는 인물 형상에서는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메시지를 함께 전하기까지 한다.
그뿐인가? 이러한 작업에 표기된 작품명은 우리에게 인간 정체성과 그 존재에 대해 더욱더 깊은 사유를 요청한다. 예를 들어 ‘나를 너라고 부르는 너는 누구니?’라고 하는 작품명은 대표적이다. 호명하는 인간 주체와 호명되는 주체 사이의 관계 맺음과 존재론적 위상에 관한 질문인 까닭이다. 아울러 김현준은 ‘어디, 왜, 어떻게, 어떻게든, 끝도 없이, 그리고 그 후로 나’ 등으로 번역되는 ‘Where’, ‘Why’, ‘How’, ‘Somehow’, ‘Never-ending’, ‘And, thereafter me’와 같은 영문의 작품명을 통해서 ‘지금, 여기’에서 성찰하는 인간 주체의 미래를 향한 존재론적 성찰을 더한다.
한편, 하이킴이라는 작가명으로 제작한 작품들은 무거운 주제 의식을 다룬 이전 연작들과 달리, 가볍고 팬시한 ‘팝아트’, ‘아트 토이’ 형식을 취한다. 스웨덴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Astrid Lindgren)의 동화책인 『말괄량이 삐삐(Pippi Longstocking)』(1945)의 주인공인 ‘삐삐’나, 영국 작가 라마네(M. L. de la Ramée)가 위다(Ouida)라고 하는 필명으로 지은 소설 『플란다스의 개(A Dog of Flanders)』(1872)에서 등장하는 강아지 ‘파트라슈(Patrasche)’, 그리고 일본 팝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인 『활짝 웃는 꽃(Flower Ball』(2002)에 영감을 받은 ‘빨간 머리 소녀, 강아지, 웃는 꽃’ 이미지가 그것이다. 하이킴은 고의적인 패러디 전략을 통해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이러한 대중적 아이콘을 자기 작품에 적극적으로 견인한다.
그는 출전이 다른 세 주체를 단독이나 군집으로 등장시키는 개인화나 가족화의 전략을 선보인다. 꽃을 들고 있거나 머리에 꽂은 소녀상과 꽃을 물고 있는 강아지의 초상은 대표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점박이나 누렁이 등 다양한 종의 강아지와 더불어 다양한 동세와 복장을 한 빨간 머리 소녀, 그리고 한 송이거나 다양한 색상의 군집화를 통해서 또는 꽃잎에 하트를 접목한 새로운 캐릭터로서의 꽃을 통해서 세 유형의 ‘창출 가능한 다양한 변주’를 지속적으로 시도한다. 그는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사람, 동물, 식물’ 사이에 형성되는 하이킴표 ‘만남의 관계 지형도’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이처럼 유형의 아이콘이 불러일으키는 따스함, 정겨움, 명랑함, 귀여움과 같은 감성은 우리에게 하이킴이라는 작가명으로 선보이는 조각을 김현준이라는 작가명으로 선보인 이전 조각과는 달리 매우 친숙한 무엇으로 만들기에 족하다.

어떤 꽃을 피울까 4 은행나무,paint 27x27x37cm 2023

어떤 꽃을 피울까(Helper)2 PLA,wood,paint 27x27x22cm 2023

어떤 꽃을 피울까(Helper)3 PLA,wood,paint 27x27x22cm 2023
IV. 에필로그
어떤 면에서 김현준과 하이킴이라는 두 개의 작가명을 통해서 각기 다른 형식과 내용을 선보이는 그의 작업은 알터에고나 타아처럼 ‘내 안의 또 다른 나’, 혹은 ‘본연의 나’를 모색한다. 때로는 묵직한 인간 존재론의 차원을, 때로는 재기발랄한 대중문화 속 감성의 차원을 탐구하는 그의 작업은 ‘내 안의 나’라는 화두를 틀어쥔 채 여전히 변화를 거듭하는 현재 진행형이다. 작가 김현준(하이킴)은 예술 텃밭에 뿌린 씨앗이 날마다 어떤 꽃을 피울지를 기대하고 탐구하는 태도를 견지하면서 오늘도 작업에 나선다.
출전 /
김성호, 「‘내 안의 나’로부터 - 알터에고 혹은 타아를 모색하는 조각」, 『2025 H-EAA: HOBAN – Emerging Artist Awards』, 김현준 작가 비평 매칭 자료집, 호반문화재단, 2025.
(2025 H-EAA: HOBAN – Emerging Artist Awards-전국 청년작가 미술공모전, 2025. 6. 20~8. 17, 호반아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