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민화의 현대적 계승과 변용 —최숙지의 신(新)민화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작가 최숙지(崔淑枝, 1944~ )는 일심화(一心華)라고 하는 불명(佛名)처럼, 불심 가득한 신앙 속에서 전통 민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변용하는 현대 민화에 천착한다. 이 글은 최숙지의 전 작업을 전통 민화의 형식과 내용을 계승하고 그것을 지금, 여기에서 재해석하는 신민화(新民畵)로 호명한다. 그도 그럴 것이 최숙지의 작업은, 현대미술의 장에서 전통적 민화를 소재나 도구로 삼아 그 형식을 차용하는 여타의 작가와 달리, 형식과 내용 모두 민화의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동시대적 민화에 천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히 민화의 전통적 형식과 내용 안에서 오늘날 새롭게 구성되는 민화의 의미를 모색하는 현대 민화라고 하겠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전통의 현대적 변용과 변주의 차원에서 몇 개의 소제목으로 범주화하고 세세히 살펴본다. 




II. 비전문가 민중으로부터 잉태한 삶 속의 민화
최숙지의 작업은 민화로 출발해서 민화에 발붙이고 민화의 궁극 지평으로 향해 간다. 주지하듯이 민화는 조선시대 궁정의 도화원(圖畵院) 또는 도화서(圖畵署)에 화원(畵員)으로 소속된 전문 직업 예술가와 달리 비전문 예술가인 서민 혹은 민중으로부터 태어난 미술이다. 
궁정의 직업 화가들의 그림에 비해 천한 그림으로 취급받았던 만큼, 민화는 당시 속화(俗畵), 별화(別畵), 잡화(雜畵) 등으로 불렸다. 중국 화풍에 영향을 받은 전통화와는 달리 색이나 화면 구성 등에서 유치하고 치졸한 면모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던 당시의 그림에 ‘민화(民畵)’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이는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였다. 그는 1937년 일본의 월간지 『공예』에 실린 「공예적 회화」라는 글에서 ‘민중 속에서 태어나고 민중에 의해 그려지고 민중에 의해 구입되는 그림’을 민화라고 부를 것을 제안했다. 그런데 사실 이 민화라는 용어는 오쓰에(大津繪), 데이에(泥繪), 에마(繪馬)와 같은 일본의 전통미술을 번역한 말이다. 물론 그가 1929년 일본 동경에서 열린 민예품 전시회에서 한국의 민속적 회화를 민화라고 규정했거나, 1959년 『공예』에 「불가사의한 조선 민화」라는 논문을 게재해서 조선의 민중 회화에 집중하고 있지만, 그 출발은 일본의 ‘민예’를 지칭하는 용어와 혼성한 것으로, 일본의 제국의주의적 식민 사관에 의해 규정된 것이었다.  
해방 후에, 민화라는 일본화된 이름을 극복하려는 논의들이 속속 생겨났다. ‘겨레그림, 서민회화(庶民繪畵), 서민화(庶民畵), 백성화(百姓畵). 대중화(大衆畵). 민중화(民衆畵)’라는 이름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용어들에는 우리 전통 시대의 미의식과 생활 감정이 솔직하게 반영된 ‘서민들에 의한, 서민들을 위한 그림’이라는 뜻이 잘 담겨 있다. 이러한 한국적 이름 짓기의 여하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는 최종적으로 ‘민화’라는 용어로 통칭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차원에서 창작 주체와 향유자가 서민층이라는 기본적인 특성을 간과하고서는 민화에 대한 논의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하겠다. 물론 도화서의 화원이나, 양반 문인, 또는 승려도 민화를 그리기도 했다는 점에서, 민화는 서민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대체로 무명의 일반 백성들이 창작 주체임과 동시에 향유자라는 점에서 ‘민중(서민, 백성)을 위한 민중의 그림’이라는 데에는 특별한 이견이 없다. 
이러한 차원에서, 비전문 민중으로부터 잉태한 민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변용하는 최숙지의 현대 민화는 민중의 삶과 정서가 뿌리를 내리는 작업임을 표방한다. 예술가의 관념과 순수한 표현 의지에 천착하는 전문 예술의 장과 달리 그녀의 현대 민화는 삶의 현장에 토대를 둔 많은 이의 희망과 소망을 담아내는 일에 더욱더 집중한다. 




III. 쓰임새에 주목하는 실용화로서의 현대 민화
민화의 시작은 조선 후기로 볼 수 있다. 봉건 사회가 해체되는 영조, 정조 시대를 전후하여 사설시조나 판소리, 민요, 민담 등의 놀이문화와 함께 생성되었던 민화는 당시의 현실적 유교 정치와 실학적 풍토 속에서 더욱 만개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부유한 신흥 상인이나 중상류 서민층이 민화 화가에게 의뢰하는 그림들은 호사가들의 감상용 그림이기보다는 실생활에 쓰이는 생활 도구와도 같이 기능하는 실용화(畵)였다. 
최숙지의 현대 민화 또한 이러한 실용화를 표방한다. 병풍 혹은 병풍보다는 작은 크기의 공간을 가리기 위한 가리개(가림막) 위에 그려 넣은 초충도나 화조도 혹은 보살(菩薩) 형상은 대표적이다. 둥그렇거나 네모난 베갯잇에 사용할 목적으로 그린 잉어 형상이나, 찬합(饌盒) 혹은 반짇고리 뚜껑에 그린 여러 종류의 화려한 나비 형상도 쓰임새를 전제한 ‘장식용 실용화’를 표방한다. 접부채 혹은 합죽선(合竹扇)에 그린 꽃과 나비 형상은 어떠한가? 때로는 양귀비, 모란을 오가는 화조도나 무수한 책가도 이미지가 접부채 위에 산뜻하게 자리를 잡았다. 
최숙지가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실용화로서의 민화적 가치는 한국 전통화를 순수 회화와 민수 회화로 분류한 조자용의 다음의 글에서 잘 드러난다: “민수화는 대체로 생활에 쓰이는 실용화, 실화, 활용화, 응용화 등으로 불리는 그림을 말하며 감상 미술을 위한 그림이 아니라 삶을 위한 그림이다.” 여기서 조자용이 언급한 ‘민수화’는 민화의 다른 말로, 감상이 아닌 삶을 위한 도구적 목적의 그림임을 명확히 한다. 이처럼 민화의 위상은 감상용보다는 실용성에 근접하고 있는 까닭에 조선시대 회화 연구에 있어서 소홀히 다루어져 온 것이 사실이다. 이우환은 『이조의 회화』에서 조선조 회화의 연구에 있어서 감상화만 강조하고 실용화를 홀대했다고 지적하면서 양자를 통합하여 조선 회화를 재구성할 것을 제시한 바 있다. 
대개 사대부 문인이나 궁정 화가는 창의성을 기조로 한 채 같은 형식의 문인화나 산수화를 여러 장 그리지 않는 것과 달리, 민화 화가는 실용성이 목적인 까닭에 같은 제재나 소재 등 본에 따라 베껴 그리는 방식으로 똑같은 것을 여러 장 반복해서 그렸다. 오늘날의 에디션 아트의 성격과 유사하게 맞물리는 지점이다. 
최숙지 또한 작은 장롱 혹은 반닫이, 병풍, 가리개, 베갯잇, 찬합, 접부채와 같은 쓰임새를 전제한 도구 위에 자신의 현대 민화를 반복적으로 그려 올림으로써, 그녀가 재해석하고 있는 자신의 작업이 실용화임을 방증한다. 즉 다양한 실용적 도구 위에 십장생도를 통한 장생(長生), 모란도나 원앙도를 통해 복록(福祿)과 같은 기원과 소망을 담고, 나아가 수호신 그림을 통해 벽사(辟邪), 척사(斥邪)처럼 액운을 물리치고자 하는 제의적 신념을 담기도 한다. 그뿐인가? ‘책가도(冊架圖)’를 통해서 자녀와 후손을 위한 교화(敎化)의 목적을 시각화하기도 한다. 




IV. 지금, 여기의 진경(進慶)을 꾀하는 현대 민화 
최숙지의 현대 민화는 전통 민화가 꾀하는 “사귀(邪鬼)를 쫓고 경사로운 일을 맞이함”이라는 벽사진경(辟邪進慶)의 세계관으로부터 ‘벽사’와 ‘진경’을 취한다. 다만 ‘벽사’와 같은 주술적 제의는 과학적 사유가 팽배한 오늘날 더 이상 유용하지 않는 까닭일까? 그녀의 그림에는 벽사의 관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 대신 진경의 세계관으로 가득하다. 실존적 인간 존재에게 당면한 예측 불가능한 미래와 그것으로 인한 불안은 우리에게 행복을 갈망하게 만든다. 복잡다기한 현대 사회에서 오래 살고 복되며 건강하고 편안하길 소망하는 수복강녕(壽福康寧)과 행운과 장수를 희망하는 길상수복(吉祥壽福)에 대한 희망은 오늘을 사는 우리를 더욱더 부추긴다. 
옛 민화를 내용과 형식으로 나누는 범주는 무수하나, 대개 내용에 따라 장생도(壽), 복록상징도(福), 벽사도(辟邪), 교화도(敎化) 등의 네 가지로 범주화해 볼 수 있다. 최숙지의 현대 민화에는 벽사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것이 현대적으로 변용되어 나타난다는 점에서 특별히 떼어내지 않고 이 글에 포함해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장생도(長生圖) 작업이다.  
최숙지의 현대 민화에는 장수에 대한 바람이 잘 녹아 있다. 옛 시대에 죽음이라는 두려운 존재 앞에 선 사람들의 가장 큰 소망은 아마도 무병장수, 부귀영화, 백년해로를 누릴 수 있는 불로장생일 것이다. 불로초를 찾아 나선 진시황제의 부질없는 염원을 우리가 역사에서 보았듯이, 장수에 대한 소망은 옛날이나 오늘날이 다르지 않다. 전통 민화에서 장생도는 백수백복도, 백록도, 백학도, 백어도, 백접도, 백란도 등 무수한 그림들에서 백(百)이란 숫자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99는 모자란 숫자이고 100을 하늘의 수이자, 완전수로 생각하였기에 기인한 것이다. 
대신 최숙지는 십장생도(十長生圖)를 통해 이러한 장수에 대한 소망을 표현한다. 십장생은 ‘해, 구름, 물, 바위, 소나무, 대나무, 불로초, 사슴, 거북, 학’을 지칭하는데, 각 동물은 장수를 상징한다. 최숙지는 십장생 모두를 화면에 그려 넣기도 하지만, 사슴 두 쌍을 배경으로 한 소나무와 물 그리고 바위가 있는 풍경을 그리거나 십장생 중 다른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풍경을 그리는 방식으로 장생도에 천착한다. 또는 일월도나 송학도를 통해 장수에 대한 소망을 담아내기도 한다. 장생도는 노인들의 축수를 기원하기 위해 회갑잔치 수연병풍으로 많이 쓰이거나 세화(歲畵)로서 정월 때 장식을 위해 사용되기도 했는데 최숙지의 작품에서도 이러한 세화로서의 쓰임새는 어렵지 않게 살펴볼 수 있다. 




둘째, 복록상징도(福祿象徵圖) 작업이다. 
삶 속에서 찾는 복은 얼마나 값진 것인가? 오복(五福)은 『상서(尙書)』에서 언급하는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지칭한다. 그렇지만 서민층이 바라는 오복은 다르다. 『통속편(通俗編)』에서 언급하는 수, 부, 귀, 강녕, 자손중다(子孫衆多)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서민에게는 남에게 덕을 베푸는 유호덕이나 귀가 낫고 사람의 천수대로 사는 고종명보다는 슬하에 자손이 많은 것이 오히려 더 행복한 조건이었을 것이다. 최숙지의 작업에서 이러한 자손중다의 소망은 연꽃을 배경으로 나들이에 나선 한 쌍의 ‘원앙도’나 ‘잉어도’ 그리고 한 쌍의 꿩을 그린 쌍치(雙雉圖)에 넉넉히 담겼다. 원앙, 잉어, 쌍치는 금실 좋은 부부와 자식의 복을 비는 상징인 까닭이다. 괴석과 어우러진 풍성한 꽃잎의 ‘모란도’에는 재산과 안녕을 바라는 소망을 담았다. 궁중 회화의 전통에서 민화로 옮겨온 일월도(日月圖) 혹은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는 최숙지의 작업에서 자주 드러나는데, 이 그림에는 하늘과 조상의 축복을 기원하는 염원을 담는다.
최숙지의 작업에서는 많은 부분, 화려한 꽃에 둘러싸여 있는 새들의 난무가 아스라한 ‘화조도’가 다채롭게 묘사되어 있다. 민화 가운데 제일 많은 양을 차지하는 화조도가 자연을 방안에 두고 자연의 질서와 정기를 배우고 닮아 행복을 추구하려는 민중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그녀 또한 자신만의 화조도에 자연으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우고 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는다. 




셋째, 벽사도(辟邪圖) 작업이다. 
우리에게 벽사도로 익숙한 처용도, 해태상은 최숙지의 작업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또한 청룡(靑龍), 백호(白虎), 주작(朱雀), 현무(玄武)의 사방(四方)수호신을 그린 벽사도로서의 사신수도(四神獸圖)도 찾기 어렵다. 다만 모란꽃 속에 숨어 있는 용어 모습이나 책가도 속에 자리한 청룡의 형상을 발견할 수 있는데, 벽사보다는 진경을 앞세우는 그녀의 창작 태도로부터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잡귀, 귀신이나 질병을 쫓아낸다는 축사(逐邪)의 기능을 하는 벽사용 그림을 매년 새해마다 이웃들이 세화로 서로 나눠주고 새로 붙이는 옛 민화 전통이 그녀의 작업에서는 그저 상징으로만 남은 셈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호랑이는 벽사의 오랜 상징이고, 까치는 벽사의 상징으로 불리는 주작의 변형이지만, 까치와 호랑이를 함께 그린 ‘작호도(鵲虎圖)’에서 호랑이는 해학미 가득한 동물로 그리고 까치는 길상조로 변용된 것이라는 점을 유념해 둘 필요가 있겠다. 익살스러운 표정을 한 호랑이를 약 올리려는 듯 소나무 위에서 짖어대는 까치의 모습을 보라! 최숙지의 현대 민화 속 위엄과 용맹 그리고 벽사의 상징인 호랑이나 까치는 이미 인간과 친밀한 대상으로 탈바꿈한 지 오래다. 





넷째, 교화도(敎化圖) 작업이다. 
조선 후기의 상황은 유교의 종교적 바탕과 현실성에 기초한 실학의 이념 아래 권선징악의 윤리관과 도덕이 요청되었기에, 전통 민화가 교화의 메시지를 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지묵필연(紙墨筆硯) 등의 문방사우(文房四友)와 서가의 일반 기물을 첨가하여 진열해 놓은 책거리그림, 문방도(文房圖)로 불리기도 하는 ‘책가도’는 대표적이다. 자녀들의 교육이나 장식화로서 기능을 감당하는 이 책가도는 국화와 같은 식물과 다기(茶器)가 어우러진 정물과 더불어 역원근법, 투영법, 음양법이 표현된 특수한 화법이 일품이다. 
최숙지의 작업에서도 이러한 책가도는 매우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나는데, 옛 민화에 대한 최숙지식의 현대적 변용이 제일 잘 드러난 작업이기도 하다. 세로로 긴 화폭 위에 모란꽃을 구륵법(鉤勒法)의 방식으로 외곽선만 표현한 신비로운 화면을 배경으로 모과를 담은 그릇, 필기구를 담은 도자기 그리고 괴목과 책들을 함께 구성한 책가도도 그러하지만, 복잡다기한 격자 모양의 커다란 틀 안에 각기 다양한 정물을 담은 책가도는 매우 실험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중앙에 자리한 일월오봉도와 하부에 위치한 처용 혹은 용의 얼굴이 보이는 가운데 좌우 화폭에 다기, 도자기 화병, 필기구 등 다양한 정물과 더불어 책들이 빼곡하게 자리한 채, 마치 지금껏 보지 못했던 어떤 문인 가문의 커다란 서재 풍경처럼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류의 책가도는 실험이고 현대적이자 최숙지의 민화라고 규정해도 좋을 만한 독창성을 내포한다. 또한 반닫이 위에 초충도와 문자도 그리고 하회탈 형상이 함께 그려진 책가도는 매우 흥미롭다. 반닫이를 장식하는 실용화이자, 자녀들에게 바른 훈육의 메시지를 전하는 교화도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도 현대적이기까지 한 까닭이다.   




한편, 민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교화도는 문자도다.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恥)의 8문자의 변형인 일명 효제도(孝悌圖)로부터 출발한 문자도는 유교의 윤리관을 전달하려는 교화의 기능을 담당한다. 이 효제도에는 부모에 대한 효도, 형제와 이웃에 대한 우애, 군부에 대한 충성 등 인간이 갖추어야 할 삼강오륜의 덕목을 담고 있다. 
최숙지의 문자도 또한 이러한 효제도에 나타난 교화의 메시지를 전한다. 반닫이 위에 표현된 문자도나, 책가도에 등장했던 문자도도 흥미롭지만, 특히 그녀가 송판 위에 작업한 효제도는 우리의 시선을 끈다. 이 효제도에는 화조, 잉어, 원앙이 한데 어우러진 8개 글자를 통해서 자녀를 위한 어머니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특히 '효(孝)'자 위에 죽순과 잉어가 그려져 있는데, 그 안에 왕상빙리(王祥氷鯉), 맹종설순(孟宗雪筍)의 뜻을 지니고 있다. 즉, 중국 진 시대의 학자 왕양이 마음씨 비뚤어진 계모가 병상에 누워있을 때 쾌유를 위해 얼음을 깨뜨리고 고생하며 잉어를 잡아 드렸다는 이야기와 중국 오나라의 관리였던 맹종이 연로한 모친의 병을 고치기 위해 눈 쌓인 대나무 숲에 들어가 뜨거운 눈물로 죽순을 소생시켜 그것을 캐어 드렸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처럼 문자도 안에 담긴 효도의 드라마는 우리에게 깊은 교화의 메시지를 전한다. 마치 중세 시대의 성화(聖畵)가 문맹인을 위한 교육적 기능을 감당했던 것처럼 이 문자도는 메시지를 담은 캘리그램(Calligrams) 또는 이미지와 텍스트가 결합한 아이코노텍스트(Iconotext)의 유형으로 당시 유교적 가르침과 교화의 메시지를 삶 속에 고스란히 반영해 낸다. 





끝으로, 최숙지의 작업에서 강력한 교화의 메시지는 여러 보살(菩薩) 형상에 지속해서 나타난다. 일반적인 교화도가 대개 유교적 가르침을 내포하고 있는 반면에 최숙지의 현대 민화에는 이러한 유교적 교화 사상 외에도 불심에 기초한 신앙 고백이 주를 이룬다. 불경에서 발췌한 텍스트와 연꽃잎과 기암괴석 위에 앉거나 서 있는 보살 이미지가 쌍을 이룬 이러한 보살상은, 지옥의 중생을 구원하는 ‘지장(地藏)보살’, 현세의 고통을 없애주는 ‘관세음(觀世音)보살’, 내세의 중생을 구제하는 ‘미륵(彌勒)보살’의 구체적인 구분과 상관없이 본인과 자녀 세대를 위한 훌륭한 교화도로 자리한다.  
원래 보살이란 불교에서 “깨달음을 이미 얻어 천상 세계에서 살며 환생하지 않을 수 있지만, 중생을 돕기 위해 일부러 속세에 환생을 자처하는 존재”을 가리킨다. 훗날 이 말이 “위로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제도하는, 대승 불교의 이상적 수행자상”으로 지칭되면서 고승(高僧)이나 보살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수행하는 평신도(특히 여신도)를 높이는 말로 사용되기도 해왔다. 최숙지는 이러한 신앙을 지속해서 다잡는다. 
특히 최숙지는 10쌍의 관음보살도(관세음보살도)를 제작했는데, 이 관음보살상은 “중생 앞에 나타나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하면서 자비를 베푸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는 점에서 번뇌의 굴레를 벗어난 정토(淨土)를 믿는 불교 신도 최숙지가 귀의해야 할 존재처럼 나타난다. 그렇다. 진경이란 바로 ‘지금, 이곳’을 정토로 보고자 하는 상황에서 비로소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이리라.




V. 에필로그 
일심화 최숙지는 민중의 예술인 민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변용하는 현대 민화의 장에서 가히 새로운 민화라고 할 만한 조형 실험에 매진한다. 한지 위에 구륵법으로 먹선을 올려 정성스럽게 밑그림을 먼저 그린 후 그 위에 황(黃), 청(靑), 백(白), 적(赤), 흑(黑)의 오방색 안료를 펴 바르면서 작업을 이어 나가고 작품을 완성한 후 떨리는 마음으로 낙관을 찍어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 작가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해 볼 만하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한지에 옻칠을 입혀 지지대를 튼튼히 할 뿐만 아니라. 여러 번의 배접을 통해 공을 들이는 창작 노동은 작품을 완성한 후에도 여러 차례 지속된다. 
옛 민화의 전통을 지금, 여기에 계승하고 현대적인 변용과 변주를 거듭하는 최숙지는 민화다운 민화가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날마다 지금, 여기에 요청되는 현대 민화에 관한 조형 실험에 나선다. 그러한 조형 실험을 거쳐 그녀는 오늘도 불심을 바탕으로 한 채 유교적 교화를 수용하고 장생과 복록을 도모하는 진경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는 중이다. (20241106) 

출전/
김성호, 「전통 민화의 현대적 계승과 변용 —최숙지의 신(新)민화」, 『최숙지』, 화집,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