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미술대관』, 조선고서간행회, 1910, 23×16cm, 55쪽, 도판 81쪽


본 자료는 1910년 조선고서간행회에서 발행한 책으로, 조선의 미술과 공예를 개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고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회화 16점, 조주(彫鑄, 조각 및 주조-금속 18점, 석기 10점, 목기 11점), 도기 14점, 칠기 3점, 건축 4점, 의관과 무기 6점의 이미지와 해설을 수록하였다.
서문에서 발행인이자 편집자인 샤쿠오 슌조(釈尾春芿)는, 본 회가 고서 간행을 주안점으로 삼는 단체의 성격상 미술공예품으로서 반드시 가치 있는 것만을 싣기보다는, 역사적 변천 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자료를 중심으로 수록했다고 밝혔다. 그는 조선에서는 미술품과 공예품을 보존하는 사상이 부족하여 역사적으로 망라할 만한 자료가 극히 적기 때문에, 궁내부박물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하되, 주로 민간에서 수집한 자료를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궁중과 주요 사찰의 기물, 일본에 현존하는 저명한 유적도 더했으며, 세키노 타다시의 「한국건축조사보고」(1904)와 중복되지 않도록 많은 부분을 생략했다고 덧붙였다.

일제는 조선 병합을 앞두고 1906년부터 구관제도를 실시했다. 구관제도란 조선의 경제·사회·문화 등 전통적 관습과 제도를 조사·연구하여 식민지 지배 기반을 마련하려는 정책이었다. 조선고서간행회 역시 이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설립된 연구단체였다.
간행회를 설립한 샤쿠오 슌조는 일본 정부 정책 수행기관인 경성민단 소속으로 중·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고 학교 설립에도 참여했으며, 1907년에는 잡지 『조선』을 발행했다. 그는 잡지사 내에서 조선고서간행회를 발기하며, 조선의 통치를 위해 조선 고문명의 조사와 연구를 목적으로 내세웠다. 이 책의 논고를 집필한 오오카 츠토무(大岡力)는 당시 경성일보 사장으로 간행회의 평의원이었으며, 이밖에 통감, 통감부총무차관, 내부차관 등 일본인 고위 관리들과 중추원의장 김윤식 등이 임원으로 참여한 관학 단체였다.


내지. 공민왕 필 〈말(馬)〉


논고에서 오오카 츠토무는 ‘조선미술대관’이라는 명칭이 다소 과장되었음을 인정하면서도, 『용재총화』나 『연려별집』에 일부 기록된 것 외에는 조선의 미술에 관한 저술이 거의 없기 때문에 완전한 예술사적 연구서라기보다는 실물을 중심으로 조선 미술과 공예의 개략적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조선 미술의 기원은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조선 문화가 중국과 인도로부터 유래했음을 역사와 유적을 통해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명이 외래에서 전래된 것인지, 혹은 독자적으로 발생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다만 “불교의 전래로 인해 급격한 발전을 이룬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설명하였다. 이는 실증적 연구 방법을 표방하면서도 외래 영향에 의한 발전론을 강조하고, 미술과 공예에 대한 자생적 인식이 부족한 일제 관학자의 전형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내지. 고려시대 금속 13층탑 삽화


책에 수록된 자료로는 회화 부문에서 법륭사 성덕태자상, 백제 승려 담징이 그린 금당벽화, 궁내부박물관 소장의 고려 공민왕의 〈말(馬)〉을 비롯해 이제현, 조선시대 이정, 안견, 신사임당, 윤두서, 김홍도의 작품이 있다. 또한 역사성을 보여주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이끌었던 서산대사와 송운선사의 초상도 실려 있다. 공민왕의 말 그림은 현재 현존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 불상과 탑, 궁궐·사찰 및 부속 문양, 도자기, 칠기, 검, 의관 등이 수록되었다.
비록 시대적으로 모든 자료를 망라하지는 못했지만, 당시 실물을 직접 대상으로 삼고, 이미 조사된 결과와 중복을 피하여 발행한 초기 자료로써, 이 책은 여전히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