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 연필. 연필은 지우고 다시 쓰는 우리의 삶과 닮았다.
- 박현택 연필뮤지엄관장

“‘연필 따먹기’는 연필 두 자루를 책상 중앙에 맞대놓고 연필의 머리나 끝 부분을 번갈아가며 손가락으로 튕겨 상대의 연필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놀이였죠. 아마 저랑 비슷한 연령대라면 기억하실 겁니다. 제 짝은 늘 선수였습니다. 몽당연필 두어 자루를 밑천으로 내주면 서너 자루가 돌아오곤 했으니까요. 연필심 대결도 있었지요. 연필심을 맞대고 힘을 주어 상대의 심을 부러뜨리는 건데, 당시 No.2라는 노란색 미제연필은 늘 최강자였습니다. 당시 미제 연필은 이렇듯 부의 상징이자 자존심이었습니다.” 박현택 관장의 말이다.


왼쪽부터) 연필뮤지엄 박현택 관장, 김훈 소설가, 이인기 설립자

연필은 19세기 후반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1940년대 중반에 와서야 국산 연필이 나오게 된다. 국산 연필은 심이 약했고 나무도 질이 좋지 않아 깎기가 힘들었다. 쉽게 부서지고 부러지니 자주 깎아야 했고, 잘 깎이지도 않으니 연필을 주로 사용했던 초등학생들에게 연필 깎기는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이 고통은 중학생이 되어서야 서서히 벗어날 수 있었다. 주요 필기구가 볼펜이나 만년필 따위로 바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운뎃손가락 끝 마디는 이미 굳은살이 박여 밉게 변한 후였다. 훈장같이 변한, 이 손가락의 마디는 평생을 우리와 함께하며 인류를 기록으로 남기는 든든한 옹벽이 돼주었다.

연필이 지금의 모양을 갖게 된 것은, 프랑스의 과학자이자 화가 니콜라 자크 콩테(Nicolas Jacques CONTÉ, 1765-1805) 덕분이다. 그는 1795년에 흑연과 점토를 섞은 심을 고온에서 구워 쉽게 부러지지 않는 필기구를 개발한다. 그의 이름이 이 필기구의 이름이 된 콩테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까지도 기본적인 미술 재료로 애용되는 콩테는 흑연과 점토 혼합물에 색소와 왁스의 첨가물이다. 콩테의 제조법에서 진화한 것이 지금의 연필이다.

그 후 20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흔히 쓰는 연필은 세로 18cm, 가로 0.5cm의 직사각형 6개가 만난 육각형입니다. 이를 면적으로 환산하면 0.528㎡로 0.16평 정도 됩니다. 이 작은 면에 다양한 색과 이미지를 입혀 기발하게 디자인을 해낸 연필을 보고 있노라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디자이너인 제가 연필에 빠져들게 된 이유입니다.” 연필뮤지엄 이인기 설립자의 연필론(論)이다.


딕슨램슨연필깎이 ⓒ 연필뮤지엄 소장

연필은 저마다 각기 다른 개성과 이미지를 담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취향과 감성이 깃든 연필을 발견하고 수집하는 즐거움은 그 어떤 행복에 비할 수 없다. 연필을 수집하며 느꼈던 행복, 연필을 손에 쥐었을 때의 떨림이 연필의 가치를 만들어준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연필은 충분히 특별한 가치가 있다. 타자기와 컴퓨터가 등장했을 때 모두가 입을 모아 연필의 시대는 끝났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연필을 가까이 두며 사랑한다. 오랜 세월이 지난 디자인이 시간을 넘어 아름다운 가치를 발현하는 것처럼 연필은 세월이 흐를수록 아날로그 감성으로 빛난다. 이인기의 연필 수집과 애착의 이유다.

디자인을 전공한 박현택 관장도 회고한다. “제가 다시 연필을 가까이하게 된 것은 미술대학 입시 준비 때입니다. 하얀 석고상을 앞에 두고 소묘를 하려면 4B연필이 필요합니다. 연필의 대명사로 파버카스텔(Faber-Castell)이 꼽히지만, 그 시절 제가 추앙했던 최고의 연필은 미쓰비시 하이유니(Mitsubishi Hi-Uni)였습니다. 20-30원짜리 동아연필이나 문화연필만 알던 때 큰마음 먹고 산 4B연필은 잠자리가 그려진 톰보(Tombow)였지요. 그런데 이 엄청나게 비싼 연필을 대충 쓰고 버리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심~봤다!’ 그런 걸 만나면 얼른 주워놨다가 하얀 볼펜대에 꽂아 사용하곤 했지요. 소묘할 때는 연필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정하기 쉬운 목탄이나 콩테도 사용했습니다. 길쭉한 숯 막대기, 목탄은 손이 더러워지지만, 콩테는 연필처럼 나무가 감싸고 있어서 손에 묻지 않아 선호했지요.”


연필뮤지엄 전경

2021년에 문을 연 연필뮤지엄은 강원도 묵호(동해시)에 있다. 묵호역에 내려 건너편 언덕배기를 올려다보면 뮤지엄 로고가 눈에 들어온다. 연필을 테마로 한 우리나라 최초의 이 뮤지엄은 연필을 사랑한 디자이너 이인기가 30여 년 동안 모은 결과물이다. 기획과 개관준비는 대학 선배 박현택이 함께했고, 초대 관장 역시 박현택이 맡게 됐다. 오랜 기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체득한 혜안과 경험에서다. 전시공간은 2층과 3층으로 우선 2층에는 연필의 역사와 제작 과정 등의 설명을 시작으로 캐릭터의 대명사 월트디즈니의 캐릭터 연필들, 세계 유명 뮤지엄과 갤러리에서 만든 연필들이 있다. 한 층을 더 올라가면 역사적인 빈티지와 골동 연필을 비롯해 저명한 건축가, 소설가, 디자이너, 화가 등이 애용했던 연필, 그들의 예술관을 엿볼 수 있는 소품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외국의 유명 인사들이 사랑한 연필, 연필을 주제로 한 영상물도 감상할 수 있다. 4층은 연필과 문구류, 기념품이 갖춰진 뮤지엄숍과 카페가 자리한다. 동해를 바라보며 관람객 각자가 연필의 추억을 끄집어내 펼쳐보기 딱 좋은 여백의 장소다.

연필을 깎거나 쓸 때 나는 ‘사각사각’ 소리, 은은한 나무 향은 오감을 자극해 주는 아날로그적 실체다. 연필은 추억 속의 사소한 물건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과거에 연필은 보석에 못지않은 귀한 물건이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작은 발상도 연필이 있었기에 구체화 될 수 있었다. 따라서 연필은 인류를 있게 한, 숨은 공로자다. 연필심 흑연(Carbon, 탄소)은 다이아몬드와 화학성분이 같아 둘 다 불에 타면 사라진다. 그렇지만 연필은 영원한 기록을 남기고 다이아몬드는 영원한 사랑을 기약한다. 깎고, 부러지고, 쓰고, 지우고, 다시 깎았던 연필은 우리의 삶과 닮았다. 자신을 사르며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삶은 숭고하다. 촛불이 아름다운 것은 매 순간 흔들리면서도 주변을 밝히기 때문이며, 연필이 아름다운 것은 그때그때 닳아가면서도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연필은 그래서 숭고한 유산인 것이다.


- 이인기(李寅奇, 1962- ) 속초 출생, 홍익대 시각디자인 학사, 동 대학원 광고홍보 석사. 한국일보 편집 전문기자(1988-1994), ㈜디자인소호 설립(1994) 대표이사, (사)한국디자인산업연합회 회장(2022- ), 한국종합예술학교 디자인과 겸임교수(2016-2024) 역임. 연필뮤지엄 설립(2021). 글로벌 IF어워드 위너 수상(2025). 『편집디자인 펴다 보다 끌리다, 쓰다 그리다 생각하다』(2016, 모노폴리) 저술.

- 박현택(朴鉉澤, 1961- ) 예천 출생, 홍익대 시각디자인 학·석사, 동 대학원 미술학 박사. 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 전문경력관(1996-2021), 연필뮤지엄 관장(2021- ), 대한민국디자인전람회 초대디자이너. 레드닷디자인어워드, 국립중앙박물관회 학술상, 국무총리 표창 등 수상. 『오래된 디자인』(2013, 컬처그라퍼), 『보이지 않는 디자인』(2016, 안그라픽스), 『박물관에서 서성이다』(2023, 통나무) 등 저술, 『한국전통문양1,2,3』, 『조형』Encyclopedia of Asian Design 등을 기획 집필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