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프랑스 장기 출장이 계기가 되어 18일간의 일정으로 3년 만에 세 번째 프랑스 여행을 다녀왔다. 파리에 도착한 후 다음날 이층버스를 타고 시내 투어에 나선 내 눈을 포착한 것은 시내를 유독 휘감은 그래피티 낙서화였다. 프랑스 파리의 고색 창연한 건물들은 오래되어 세월의 때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서울처럼 도색으로 외관을 개선하거나 외장 자재 교체 같은 건물 관리가 어려운 상황인듯 했다. 우중충해진 색깔과 여기저기 피어있는 곰팡이가 켜켜이 쌓여 착색되고 어둑해진 도시 전체는 울적해보였다. 그러한 건물과 골목 곳곳에 스프레이로 페인팅된 식별되지 않는 문자와 울긋불긋한 색감, 폭력적일 만큼 정돈되지 않은 선의 그래피티로 인해 파리라는 도시 전체의 이미지가 크게 달라져 보였다. 값나가는 대리석으로 치장한 건물의 외관, 문화재급 건물의 기단, 가게의 셔터 등 여백이 있는 공간만 있으면 여지없이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었다.

프랑스 고속철도인 테제베TGV를 타고 약 4시간을 달려 동남부 론알프 지방에 위치한 도시 그르노블(Grenoble)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곳의 상황도 파리와 대동소이했다. 역에서 도보로 8분 거리인 숙소로 가는 동안에도 도로변 건물 여기저기 어지러운 그래피티가 여전했다. 시각적으로 강렬하기 때문에 원치 않아도 눈에 들어왔고 나중엔 그 자극이 괴롭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문화를 보고 체험하기 위해 먼 곳을 마다하지 않고 큰 비용을 들여 찾아왔건만 날카로운 시각적 자극에 힘들기만 했다. 유럽의 로마, 피렌체, 밀라노도 별반 다르지 않았으나 그래피티 예술가들에게 합법적인 공간을 제공하는 정책이 있는 스위스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깨끗했다.



차고 셔터에 그려진 그래피티 ⓒ 촬영 안문훈


그래피티는 거리예술(street art) 도심예술(art urbain)로 불리며 키스 해링과 장 미셸 바스키아를 거쳐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래피티를 통해 사회 공동체가 예술을 폭넓게 받아들인 사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뉴욕의 낙후한 공장지대였던 브루클린은 그래피티를 중심으로 모여든 예술가들로 인해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 사례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무법의 영역인 그래피티에서는 문제되지 않던 기존 예술에 대한 차용과 패러디는 공공미술의 영역에서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미술협회와 마을미술프로젝트 위원회가 주관하며 시작된 공공미술진흥사업인 마을미술프로젝트는 우리동네 공공미술 프로젝트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어 지속되어 왔다. 하지만 기획·공모·작가 선정·작품 제작이 연간 공공예산 집행에 맞추어 속전속결로 진행되는 이 사업에서 키스 해링과 뱅크시의 작품을 변형한 많은 벽화 등 일부 사례가 이른바 “짝퉁논란”과 같은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또, 국내 지방자치단체가 야심 차게 추진했던 공공미술이 소수 시민의 민원이나 공공 기관의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인해 흉물로 취급되어 작품이 변형되거나 심지어 철거된 사례 또한 심심치 않게 있었다.

2015년 중앙일보에 보도된 그래피티 공유지 침입 및 훼손 사례를 인용해 본다. 2월 새벽 힙합모자와 후드티 차림의 백인 4인이 쇠톱과 절단기로 환풍기 덮개를 열고 왕십리역 구내로 침입하여 임시차고지에 대기 중이던 5호선 지하철 차량 측면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KLUE’라는 대형 그래피티를 그린 사건이다. CCTV를 통해 경찰이 추적한 결과 호주에서 온 4인 원정대로 이미 출국한 뒤였다. 낙서 훼손은 가볍게 여겨지기 쉽지만, 엄연히 대한민국 형법 제366조 재물손괴 조항을 적용되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있다. 자신의 정서와 감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려는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작품을 남과 나누려면 그것이 공공과 사유재산을 훼손하는 방식이 아니라 합당한 방법이어야 하고 동시에 공공의 정서에 받아 들여질 수 있는 미적 감각을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