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이-팝: 데몬 헌터스〉 넷플릭스 공식포스터
이 연재를 시작하며, 계간으로 미술계에 관한 ‘사색(思索, 四色)’을 하겠다는 중의적 의미에서 ‘미술사색’이라는 칼럼명을 정했다. 어언 10회째가 되었으니 3년이 다 되어가는 셈이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새로운 일로 바쁘게 지내다 보니 석 달이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그래도 미술행정 서류와 공적인 업무에 휩쓸려 다니다가 이 칼럼이 있어서 글쓰기의 감성적 사유를 할 수 있음은 일탈의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들어 케데헌(영화 〈K-Pop Demon Hunters(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준말)의 세계적 열풍이 넷플릭스의 화면을 벗어나 지구 곳곳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하나의 애니메이션 영화가 이렇게 큰 파장을 몰고 온 것을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케데헌의 중심축은 한국 전통문화의 요소들 즉 까치호랑이, 무당, 조선시대의 애환 등이 동시대 한국의 풍경과 만나 춤과 노래로 승화된 것에 있다 할 것이다.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한국 무속신앙의 구전설화가 개인적 정서와 만나 케이-팝의 물결 속에서 현대적 감성으로 승화된 것이라 본다. 나는 이것을 한국민화 등에서 추출할 수 있는 규범으로부터의 탈피, 자유로운 표현과 해학성 등이 오늘의 종착역에 도착한 한 사례라 할 만하다.
이러한 케데헌의 성취는 일면 한국 전통문화의 부흥을 예고하고 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중심주의가 가진 인간성 상실의 몰락을 아시아의 철학적 전통에서 찾으려 했던 쟈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와 같은 철학자들이 언급했던 일련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아시아, 특히 한국, 중국, 일본에서 전래되어 온 홍익인간 개념이나 성리학에서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 센노 리큐(千利休, 1522-91) 등은 아시아 문명에 대한 주목을 대변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이기이원론은 인간의 본성과 도덕성, 사회질서, 수양방법에 관한 철학적 문제를 상기시켰고, 리큐는 간소하고 차분한 일본의 미의식인 와비(侂び)의 개념을 정립하여 조화와 존경, 맑음과 부동심을 의미하는 화경청적(和敬淸寂)의 정신을 강조하였다. 센노 리큐는 차 마시는 것을 단순한 마시는 행위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 다도(茶道)로 발원시킨 16세기 인물이다. 조선시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중엽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와 초의선사(草衣禪師, 1786-1866)의 교유는 조선시대 선(禪) 수행으로서 다도문화의 한 역사를 입증한다. 최근 들어 다도가 요가와 더불어 정신수양의 한 축으로서 뿌리를 내리려는 흐름도 이러한 전통문화의 부활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라 하겠다.

유정혜, 〈금빛베일〉, 《엮음과 짜임: 현대트랜스로컬시리즈》 특별전,
2025청주공예비엔날레 ⓒ 사진 정태규
이러한 변화적 국면에서 명동 신세계백화점 본점 옆에 개장한 신세계헤리티지관은 우리 전통공예와 차문화를 선도하는 의미 있는 공간이 아닐 수 없다. 바야흐로 케데헌의 열풍과 더불어 국립중앙박물관 기념품 ‘뮷즈’는 품절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개막한 2025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 목격한 《엮음과 짜임: 현대트랜스로컬시리즈》 특별전은 전통문화(공예)의 나아갈 길과 관련하여 커다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한국의 현대공예가와 인도의 장인, 패션디자이너들과 협업한 이 전시는 전통이 현대로 흘러 새로운 융합의 가능성을 보여준 섬유예술의 비옥한 삼각주와 같았다. 수공예의 전통이 오랜 역사 속에 숙성되어 온 인도의 기예가 한국 현대공예가의 미적 정신과 만나 경계 없는 일원론적 세계를 구현했다. 지역과 중심의 경계가 사라지고, 전통과 현대가 하나가 되고, 서로 다른 국가의 민족미학이 하나의 강물이 되어 흐르는 현장. 이제 전통문화는 현재성을 호흡하는 예술(Living Arts for Present)로 재정의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