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소(This Place)》에 나타난 이미지의 정치 - 랑시에르의 ‘다른 가시적 시스템’을 중심으로 -



심현섭 | 미술평론가


목차 


서론


I. 새로운 통찰의 가능성, 《이 장소》


II. 《이 장소》에 내재한 ‘다른 가시적 시스템’

  1. 이미지의 새로운 구축, ‘다른 가시적 시스템’

  2. 《이 장소》에 나타난 ‘다른 가시적 시스템’의 특징

     1) 감각적 자리의 변위를 통한 새로운 상식의 생성

     2) 기획그룹전의 효과, 다양한 시선의 콜라주

     3) 비자발적 이미지의 우연적 성찰:  쿠델카와 이정진의 사진 



결론




초록 


이 논문은 기술적 이미지인 사진 이미지가 사회변화에 대한 열망을 담은 정치의 미술로 드러나기 위해, 그리고 그 의도를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수행할 적절한 방법을 랑시에르의 이미지론을 통해 탐구한다. 랑시에르는 이미지를 ‘가시적 시스템,’ 즉 구조적 통합체로 파악하고 이미지의 정치화를 위해서는 이 시스템의 적확한 운용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다른 가시적 시스템’으로 구별한다. 본고는 이 ‘다른 가시적 시스템’의 특징적 내용을 랑시에르의 저서에 나타난 이미지론을 취합하여 감각적 자리의 변위를 통한 새로운 상식의 생성, 다양한 시선의 콜라주, 비자발적 이미지의 우연적 성찰로 세분한다. 그리고 이의 구체적 내용을 확인하기 위하여 프레데릭 브레너가 기획한 글로벌 예술 프로젝트 《이 장소》(2014)를 분석한다. 이 과정에서 감각적 자리의 변위가 곧 정치라는 점, 기획 그룹전이라는 전시 형식이 사회적 통념에 저항하면서 대상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고찰을 끌어내려는 방법으로 활용된 점, 특히 비자발적 이미지에 내재한 실존적 성격을 밝히기 위해 프로젝트에 참여한 요세프 쿠델카와 이정진의 사진을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그러나 이 분석의 결과는 또 하나의 방법일 뿐 규범이 될 수 없으며,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치의 미술의 표현방법을 찾아 나가는 일의 불가피함을 결론으로 삼는다.



서론


사진 이미지는 사진이라는 장치(apparatuses)를 통해 만들어지는 ‘기술적 이미지’다. 이미지는 세계와 인간 사이의 매개물이기에 기술적 이미지 또한 세계와 인간을 매개한다. 빌렘 플루서(Vilem Flusser, 1920-1991)는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가 발생한다고 본다. 즉 기술적인 이미지는 사진의 표면에 세계의 징후를 자동적으로 묘사하기 때문에 의미를 파악해야 하는 기호가 아닌, 그저 표면에 드러난 세계를 분석하면 되는 직서적인 이미지로 잘못 인식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사람들은 이러한 인식을 객관적이라고 생각한다. 정리하자면, 사람들이 기술적인 이미지를 드러난 현상 외에 달리 표명된 의도가 없는 이미지로 오해하고 이를 객관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플루서는 이 ‘객관성’이 기만적인 착각이라고 지적한다. 


 그에 의하면 사진 이미지/기술적 이미지는 장치가 가지고 있는 객관성과 사물의 상태를 코드화한 사진가의 주관적 개념이 투쟁하는 현장이다. 이때 주관적 개념은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와 관련한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키려는 사진가의 열망이다. 이러한 열망이 공동체와 관련하여 어떤 방식으로 표출되는지는 작가 개인의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과 정치적 성향에 따른 선택의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예술이 사회 속에 거하면서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평등과 자유를 지향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열망 또한 그러한 방향으로 표출되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본다면 플루서가 말하는 사회변화에 대한 열망은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 1940- )가 강조하는 ‘정치’의 열망과 다르지 않다. 랑시에르는 우리 사회를 지배자의 부당한 몫의 분배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치안(police)’의 상태로 본다. 그리고 이에 계쟁을 일으켜 바로 잡는 행위 또는 그 결과를 ‘정치(la politique)’라고 부른다. 특히 그는 보는 것과 언어/말의 지배가 치안의 본질적인 요소로 보고 이를 뒤엎는 것이 곧 정치라고 규명한다. 


 그러므로 정치는 무엇보다 먼저 어떤 논쟁의 이해 가능성의 조건들, 즉 보는 것과 말하는 것으로 구성되는 개념을 재정립하려는 열망을 갖는다. 플루서는 이와 같은 열망이 없으면 인간과 사회는 인간 이하의 장치에 의해 노동을 상실함으로 현재진행 중인 로봇화에 함몰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플루서 논의의 핵심은 장치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 속에서 인간은 메타적으로 사유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사진 혹은 사진가의 철학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만적인 객관성을 버리고 보고 말하는 것, 즉 ‘감각적인 것’의 치안적 개념을 재정립하려는 정치의 열망은 어떻게 이미지로 드러나는가? 랑시에르는 여기에 예술의 역할이 있다고 본다. 예술은 인간의 시각과 언어를 가시적으로 재현하고 추상한다는 점에서 보고 말하는 것에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정치와 예술은 동등한 위상을 가지고 정치의 예술화와 예술의 정치화 사이를 오가며 서로를 드러낸다. 그러나 랑시에르는 정치에는 예술이 있고, 예술에는 정치가 있지만 예술은 정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반복하여 강조한다. 예술과 정치는 상호보완적이지만, 예술이 정치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예술이 정치를 드러내지만, 그 표현에서는 예술만이 갖는 자율적 방법을 견지해야 한다는 예술관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예술관 아래, 랑시에르는 그 자율적 방법의 하나로 ‘다른 가시적 시스템(different system of visibility)’의 구축을 제시한다. 예술이 정치의 열망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플루서가 태도적인 측면에서 예술가/사진가의 철학과 사유의 필요성을 강조한다면, 랑시에르는 사유의 이미지화, 즉 구체적인 표현 방법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논문은 우리가 사는 세계와 관련된 통념을 변화시키려는 사진가의 열망이 담긴 전시의 사례로 프레데릭 브레너(Frédéric Brenner, 1959- )가 기획한 글로벌 예술 프로젝트 《이 장소(This Place)》(2014)를 분석하고자 한다. 연구자는 먼저 이 기획전이 갖는 정치적 함의를 확인하고, 이 기획전이 이미지를 정치화하기 위해 구축한 ‘다른 가시적 시스템’을 1) 감각적 자리의 변위를 통한 새로운 상식의 생성 2) 다양한 시선의 콜라주: 기획그룹전 3) 비자발적 이미지의 우연적 성찰: 쿠델카와 이정진의 이미지로 분류하여 고찰한다. 이 과정에서 감각적 자리의 변위가 곧 정치라는 점, 기획그룹전이라는 전시형식이 사회적 통념에 저항하고 대상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고찰을 이끌어내기 위한 방법으로 유용하다는 점, 특히 비자발적 이미지에 내재한 정서의 차이와 실존적 성격에 주목할 것이다.


 … 하략 …




** 이 논문은 현대예술사진학회의 학회지 『모멘텀』 6호(2025.9), 1-30에 실린 논문으로 저자의 화두인 ‘정치의 미술’의 가시적 표현 방법에 관한 연구시리즈다. 


원고 전문은 현대예술사진학회 > 학술지 https://acapa.or.kr/_Vol-6 )에서 볼 수 있다.  


심현섭 SHIM Hyounsup, 《이 장소(This Place)》에 나타난 이미지의 정치-시에르의 '다른 가시적 시스템'을 중심으로 -

https://drive.google.com/file/d/1ePWlgSwMQgDfDM_OOQZyKbIMVMHq5w0I/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