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Archive] 3.
미술단체 지금도 유효한가? 역사와 현황
미술단체들이 지내온 세월을 다시 돌아보는 전시기획이 이어지고 있다. 토탈미술관에서 <난지도.메타-복스 40 : 녹아내린 모든 견고함>을 10월30일부터 11월23일까지 개최한다. 한국현대미술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1980년대 탈모던 운동을 앞장서 1985년 같은 해 2월에 <난지도>가 김홍년, 박방영, 신영성, 윤명재, 이상석이 관훈미술관, 9월에 <메타-복스>가 김찬동, 안원찬, 오상길, 하민수, 홍승일이 후화랑에서 창립전을 가졌으며 40년이 지났다. 이 두 단체의 예술적 실험과 사유가 오늘 날 어떤 의미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다시 논의하는 심포지엄도 개최하고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1980년대는 한국 사회가 정치·사회적 격변 속에서 모더니즘 미학과 반발하며 민중미술이 주류를 이루던 시대이다.
그러나 80년대 중반에는 민중미술이 단순히 비리나 하층의 표면만을 저급하게 표상하며 회화의 본질적인 순수함이 왜곡되고 70년대 화단에 팽배했던 평면의 모더니즘은 생명력을 잃은 장식적인 되풀이로써 진부함을 드러내는 것에 반발했다. 여기에 형식주의 모더니즘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미술 언어를 모색하던 시기로 과감하게 오브제 재료를 끌어들였다. 1986년 2월 대규모 <물(物)의 신세대전>은 큰 기폭제가 되었고 이런 정신은 1987년 최정화, 이불 등의 <뮤지엄>, 1989년 이용백 등의 <황금사과>, 1990년 <서브클럽>등은 젊은 신세대에게는 새로운 무대였고 90년대 미술을 견인했다.

난지도 메타-복스 40년, 2025년
작년 10월에 관훈갤러리에서 <서울미술공동체> 창립 40주년 특별전인 <갑진년 미술대동잔치>를 가졌다. <서울미술공동체>는 1984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 1985년 <을축년 미술대동잔치>를 통해 미술계에 큰 존재감을 드러냈고 1985년 <한국미술 20대의 힘>전은 출품작 36점이 경찰에 의해 강제 철거되고 19명 강제연행 5명 구속으로 민중미술이 사회적 관심으로 대두된 큰 사건이었으며 서울공동체를 5호까지 발간했었다. 11월 관훈갤러리에서 열린 <두렁, 지금>은 미술동인 두렁 창립 40주년 기념전시였다. 두렁은 1982-87년 왕성하게 민중미술을 표장 했던 삶의 공동체 현장에서 함께 하는 미술을 지향한다는 의미였다. 공동 벽화, 걸개 그림, 민중미술 교실 운영, 판화 달력 제작 활동을 하였다. 아카이브 성격의 전시로 전관에서 연대기순으로 조직부터 진행했던 작업 및 이후 개별적인 행보의 결과까지 포괄하며 예술이 사회와 만나야할 지점에 대한 논의를 원했다.

미술동인 두렁, 1984년
한국미술협회 최대 위기
국내 최대 미술 단체인 사단법인 한국미술협회가 최대 위기에 봉착되어 있다. 2021년 1월 16일 제25대 한국미협 이사장 선거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모바일 투표를 통해 진행되었고 이후 부정선거, 정족수 미달 등을 문제 삼는 소송으로 이어졌다. 대법원은 2024년 12월, 당선자였던 전 이모 이사장의 당선 무효 판결을 최종 확정했다. 지난 6월말 예정되었던 재선거 또한 황모 예비후보가 미협이 정당한 이유 없이 자신의 후보등록을 거절했다며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인용하면서 전격 취소 되었다. 인사동에 각 후보 캠프사무실이 차려지고 대형 현수막이 내걸리고 벽보가 붙고 큰 전시회에 찾아가 인사가 이어지기도 했다. 또한, MBN의 9월 보도에 의하면 2023년부터 한국미술협회 전직원 A씨외 14인이 협회 수익금 50억 원을 별도 법인으로 빼돌린 혐의로 접수된 고발장에 따라 수사받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여기에 미협 이사장 기호 4번 허필호 후보가 10월5일 과도한 스트레스로 타계하였다.

미협이사장 후보 지난 7월2일 인사동 벽보 ⓒ사진 김달진
한국미협은 현재 여전히 표류 상태이며 현재 임시 이사장은 이두성(변호사) 명의로 한국미협 7월7일 게시판에 입장문은 “... 최근 선거를 준비하며 각 후보가 부담한 1억원에 달하는 기탁금은 이미 소진된 상태입니다. 동일한 후보들이 본인 판결도 나지 않은 상황에서 3-4개월만에 다시 막대한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은 부당하며, 협회 전체의 책임있는 운영을 고려할 때 결코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닙니다…”
결국 4년 이상 불확실한 상태가 이어지며, 미협 내부 신뢰 붕괴, 운영의 공백, 회원의 불만 누적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놓여있다. 미협이 임원에 관심있는 회원들의 집합체라는 비판을 받고 해체요구도 있다. 후보간에 서로 발목잡고 미술인 대다수 외면하고 무관심속에서 자정능력을 잃어가고 침몰해가는 형국이다. 사단법인 건축가, 국악, 무용, 문인, 미술, 사진작가, 연극, 연예예술인, 음악, 9개 예술문화분야 법인체를 대표하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 회장을 26-27대 하철경, 28대 이범헌, 29대 현재 조강훈 회장이 역대 미협 이사장 출신인데 부끄러운 미협의 민낯이다. 선거를 통한 이사장을 선출하고 미술협회 개혁과 위상 정립은 요원한 일로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며지고 추대 형식도 방편이다.
한국미술협회를 거슬러 올라가면 해방 직후 1945년 10월 좌우 미술인들이 모여 조선미술협회가 결성되었으나, 이념 대립으로 1948년 대한미술협회와 조선미술가동맹으로 분열되었다. 다시 1955년 대한미술협회(고희동 중심)와 한국미술가협회(장발 중심)로 분열되어 대립했다가 1961년 12월에 5·16 군사정변 이후 정부의 예술단체 통합 정책에 따라 한국미술협회(초대 이사장 박득순)로 통합 창립되었다. 1962년 6월: 한국미술협회가 문교부로부터 사회단체 설립을 허가받았으며 8월에 국제조형예술협회(IAA) 회원국으로 가입했고 1978년에 한국미술협회가 사단법인체로 조직을 강화했다. 미술인들의 대표 조직으로서 공모전 주최, 해외 교류, 작가 권익 옹호 등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미술단체 평가, 전시, 기록
필자는 개인적으로 미술단체의 활동에 관심이 많아서 월간 전시계 근무 시절에 ‘근대미술 단체 및 주요 전시회’를 1980년 2,3,4월호에 3회 연재하며 1911년 서양화 연구소부터 1949년 생활미술연구회까지 조사하고 한국미술협회 분열까지 서술했었다. 열화당 미술연감 창간호인 1984년 판에 미술단체 115개를 단체명, 성격, 창립전 연도, 회원을 소개했고 89년까지 제공에 이어 중앙일보사 월간미술이 발행한 창간호 ‘한국미술 1996’ 별책에 196개 단체를 수록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근무시절에 수집한 전시회 자료들은 크게 개인전과 단체전으로 나누어 1989년 발행한 ‘국립현대미술관 자료 목록집’에 단체 343개 파일은 소장자료를 남겼다.

가나아트 근무시절에 ‘미술단체 650여개 실상을 진단한다’는 가나아트 1996년 5 6월에 미술단체의 이모저모, 이념 부재의 미술단체 속에 미술단체 목록, 연도별 도표, 장르별 도표까지 제시했고 몇몇 신문에 인용보도 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김달진미술연구소는 본격적인 한국미술 기초자료 구축 및 활성화 사업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을 받아 2010년 ‘대한민국미술인인명록’, 2013년 ‘한국미술단체자료집 1945-1999’를 펴냈다. 이 단체자료집은 1945년부터 1999년까지 창립된 창작미술단체를 공예, 디자인, 서예, 사진, 건축 부문은 제외하고 총 793개 단체와 일부 도판까지 수록했다.
미술단체를 전시회로 꾸며낸 것은 2013년 《한국미술단체 100년》이 있다. 전시 중에 발간된 한국미술단에 100년 단행본을 주요 전시 자료인 미술단체 팸플릿, 브로슈어, 방명록, 간행물, 포스터, 입장권을 게재했고 학술적인 내용을 보완했다. 한국미술단체의 흐름과 지역적 상황을 위해 미술단체의 기원과 전개, 1900-1953: 최열 / 부산 미술단체 1930-1990년대: 강선학 / 대구 미술단체들의 형성과 활동의 역사: 김영동 / 왜 광주인가? 라는 질문과 대답 100년의 역사: 장석원 / 1950-90년대 미술단체 흐름 그 실상을 본다: 필자가 글을 남겼다. 또한 미술평론가 16인의 설문조사를 통해 평가와 회고를 수록했다.

1회 한국현대미술가협회 1957년

2회 AG전 이승택,신학철,이강소,하종현,김한,김구림,이승조,박석원,이건용,(미상),송번수,서승원,최명영
평가는 우리미술사에 큰 영향을 남긴 단체 5개씩 선정을 받아 집계했는데 1970년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는 한국현대미술에서 본격적인 전위운동을 조직적으로 펼친 단체, 1980년 현실과 발언은 군부 독재시절 리얼리즘을 주창한 미술운동, 1918년 서화협회는 서화가들로 이루어진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 1948년 신사실파는 해방공간에서 우리 미술계에 새로운 바람으로 정신적 가치를 양식화에 기여, 1957년 현대미술가협회는 반국전을 표방하며 뜨거운 추상양식을 표출, 1971년 ST(Space and Time)는 새롭게 시각예술의 저변을 확대한 단체로 각각 큰 평가를 받았다.
또한 미술단체의 역할과 위상을 크게 비판적 평가와 문제점과 전체적인 회고와 전망에 답변을 받아 기록했다. 주요단체의 창립회원 또는 회장을 심층 인터뷰했는데 위에 선정된 단체 중 1970년 AG: 김구림, 1971년 ST:이건용, 1980년 현실과 발언: 김정헌를 포함하여 최장수 한국화 단체인 1936년 후소회: 오용길, 한국 사실주의 중심인 1958년 목우회: 박광진, 인터뷰를 통해 역사를 살폈다. 부록으로 미술단체 연표, 주요 미술단체 126개를 수록했다.

2회 현대미술워크숍, 1981년
미술단체의 현황, 전망
한국 미술단체의 역사는 국가 주도 제도화, 실험과 저항, 다원화 과정을 거치며 한국미술사의 중요한 제도적 기반을 형성하였다. 해방 이후 제도적 전람회와 협회 중심 체제를 거쳐, 현대에 이르러 다양한 실험과 대안적 네트워크로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 과정은 한국 근현대 미술의 제도사, 나아가 작가들의 사회적 결집과 활동 양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초가 된다. 그러면서 미술단체는 제도와 저항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흐름 속에서 공존하였다. 1990년대 이후 국전의 폐지와 국제화 흐름은 미술단체의 성격을 변화시켰다. 한국미술협회가 전국 단위 조직으로 존속하며 회원전, 국제 교류전을 지속하고 있으나, 권위는 과거보다 약화, 외면당하고 있다. 동시에 지역 단체와 장르별 협회가 지역 문화 활성화와 작가 권익 보호에 기여하였다.
현황을 보면 전국 단위의 한국미술협회와 각 장르별 전문 협회가 여전히 공모전과 회원전을 통해 창작 발표의 장을 마련한다. 지역 단체는 지방정부 지원을 받아 전시와 교육 사업을 펼치며, 독립 그룹은 기획 중심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러나 세대 교체 지연, 회원제 운영의 경직성, 미술시장 변화에 대한 대응 부족 등은 현존 단체들의 공통적 한계로 지적된다.
앞으로의 단체의 전망은 첫째, 한국미술단체의 100년 자료를 정리하고 아카이빙하는 학술적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공모전 중심 운영을 넘어 교육, 국제교류, 지역 연계 프로젝트 등 다각적 기능을 확대해야 한다. 셋째, 청년 작가와 중견·원로를 연결하는 멘토링과 네트워크가 절실하다. 넷째, 디지털 플랫폼과 NFT, 온라인 전시 등 새로운 매체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형식이 요구된다.
결론적으로 결국 시대 상황과 맞물려 관람객에게도 외면당하는 미술단체 활동은 빛을 잃어가고 있다. 현재도 미술단체의 전시는 이어지지만 이념을 주창하지 못하고 타성에 젖어 전시를 가졌다는 전시경력만을 남기고 있다. 오늘날 단체보다는 젊은 세대작가 대다수는 개별 활동이나 레지던시, 온라인 네트워크를 선호하며 전통적 협회 중심 활동과는 거리를 두는 경향을 보인다. 각 종 비엔날레, 미술관의 기획전, 독립 큐레이터와 프로젝트 기반이 새로운 협력 방식으로 부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