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성림은 대구미술관 큐레이터로 시작했다. 수년간의 준비를 거쳐 2011년에 개관한 대구미술관은 탄탄한 예산과 인력을 확보하고, 소장품과 전시 등 사업에서도 안정감 있게 출발했다. 그는 창작스튜디오 지원, 청년미술프로젝트와 대학연합전 등 대구예술 활성화를 맡았다. 미술문화 생태계의 한 축으로서 미술관의 지위와 역할을 향한 배우며 개관특별전과 어미홀 프로젝트 기획 등으로 활동했고, 적지 않은 시일 후 공주시립미술관 건립준비 큐레이터로 일하며 도시 정체성과 미술관의 관계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갖춰나갔다.
연구자로서 황성림은 미술 제도와 사회의 관계를 살폈다.「독일 통일 이후 동독 미술의 수용 과정」을 다룬 박사학위 논문에서 그는 커다란 사회변동 이후 국가·사회에서 먼저 자리 잡은 판단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탐구했다. 통일독일의 전시분석으로 기성의 관념이 끼치는 영향을 분석했고, 대구와 공주에서 ‘무엇이 예술을 예술로 보이게 하는가’ 라는 물음을 이어갔다. 미술관 제도에 대해 학문 탐구와 현장 실천을 두루 경험한 황성림은 ‘보는 방식, 제도의 언어, 그리고 예술의 현실화’라는 세 가지 요소 사이의 관계를 살피며 활동한다.
베를린 레지던스 활동 후 2020년 제주도로 터전을 옮긴 그는 동료와 함께 아트랩티(ArtLab TEA)를 설립하고, 우도에서 폐담수장 공간의 《수리수리 담수리》전과 주민참여프로젝트 《우도9경》을 공동 기획했다. 섬 주변의 섬이라는 특별한 환경과 주민·예술가가 참여한 공동체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그는 관계가 곧 전시가 되는 상황, 즉 ‘예술이 일상의 감각과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긴장’에 주목했다. 예술이 세상을 바꾼다는 목적의식보다는 일상에서 예술이 작동하는 방식 자체에 의미를 두고, 미술공간이 아닌 생활공간에서 공동체 예술의 가치를 실천했다.
현재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일하는 그는 독립큐레이터의 시간을 골똘하게 돌이켜보고 있다. 공공미술관은 학예와 행정, 시설과 예산 등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사회 제도로서 전시가 자리 잡는 방식’을 구현한다. 비록 느린 속도는 비효율적이지만, 그 느림 속에서 제도로서 미술이 자리 잡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제도공간에서는 사회적 맥락에서 의미를 찾는다면, 개인의 감각을 구상하고 실현하는 독립큐레이터의 길은 제도보다는 관계를 중요시한다. 전자든 후자든 ‘미술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작동할 수 있을까’를 질문하고 해답을 찾아나가는 황성림의 길에는 변함이 없다.
이렇듯 기관 소속과 독자의 길을 걸어온 그는 자신의 시선을 확고부동한 위치에 올려놓는 것을 언제나 경계한다. 이는 익숙한 것에 길들여져 새로운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그의 길은 ‘흔들림 속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다. 연구와 실무를 겸비한 그의 장점을 살려 논문 주제였던‘보는 방식의 제도화’를 현장에서 발견하고 그 속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찾는다. 제도공간은 같은 방향을 향하는 곳이지만, 차이를 통한 새로움을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큐레이터 황성림정신의 핵심은 ‘끊임없는 대안 모색’에 있다. 그것은 ‘정해진 해답이나 완성된 구조를 의심하고 다른 가능성을 끝까지 탐색하려는 태도’에서 나온다.
수원시립미술관은 복잡한 여건 속에서도 아카이브 구축과 연구 성과를 쌓아왔다. 그 성과를 이어 나가는 것이 황성림의 당면 과제이다. 예를 들어, 수원예술가 나혜석에 대한 여성주의 관점을 젠더 문제와 그 너머의 사회적 감수성 영역으로 넓혀나가며,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을 넘어 돌봄과 공생을 모색하는 일이 그것이다. 그는 말한다. “대구에서는 제도의 구조를 배웠고, 제주에서는 협업의 방식을 배웠으며, 수원에서는 현실 속에서 방향을 세우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 모든 경험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예술은 지금, 이 사회 안에서 어떻게 작동할 수 있을까?” 대구와 베를린·제주·공주를 거쳐 수원에 자리잡은 황성림을 ‘끊임없이 대안을 모색하는 큐레이터’로 살아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황성림(1975- ) 영남대 미학미술사학과 석사 및 동대학원 박사 졸업. 대구미술관 개관준비 큐레이터(2007-12), 개관전 《기가 차다: 적을 보다》(2011), 《삶과 풍토: 삶》(2011), 어미홀 프로젝트 《심문섭》(2012), 《신상호》(2012) 등 기획. 대구문화재단 베를린 협력 레지던스 파견 큐레이터(2016-17), 제주 아트랩티 공동설립(2020-21) 《우도 프로젝트》(2020) 공동 기획. 공주시립미술관 개관준비 큐레이터(2021-23) 역임. 현 수원시립미술관 학예팀장(2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