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료는 1952년 11월 10일부터 16일까지 덕수궁미술관에서 개최된《백이의(벨기에) 현대미술전(Exposition D’Art Moderne Belge)》의 팸플릿이다. ‘백이의(白耳義)’는 벨기에의 일본식 표기로, 한국전쟁이 첨예하게 진행 중이던 시기에 개최된, 해방 후 열린 최초의 국제 전시이다. 전시에는 벨기에의 젊은 현대화가 6명의 80점이 전시되었다. 참여작가는 루이 반 린트(Louis Van LINT, 1909–86), 안느 보네(Anne BONNET, 1908–60), 마르크 멘델손(Marc MENDELSON, 1915–2013), 가스통 베르트랑(Gaston BERTRAND, 1910–94), 폴 델보(Paul DELVAUX, 1897–1994), 에드가르 티트가트(Edgard TYTGAT, 1879–1957)로 추상화 및 초현실주의 계열의작품들이 전시되었다.



《백이의 현대미술전》, 덕수궁미술관, 1952.11.10-16, 13×18cm, 10쪽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세계 각국에서 우방들의 원조가 있었는데, 벨기에도 룩셈부르크와 연합군으로 1대대급 규모로 파병하여 1951년부터 정전 후 1955년까지 한국에서 주둔하였다. 『서울신문』 1952년 11월 8일자 기사에 따르면, 1952년 6월 신문사 특파원으로 일본으로 건너와 활동 중이던 벨기에 기자 수잔 비바리오는 전쟁 중인 한국으로 6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방문하여 벨기에 종군기자로서 취재 및 이승만 대통령 및 한국정부·예술관계자들과 회견 후 한국의 실정과 전쟁 상황을 유럽에 알렸다. 일본 동경에서 《벨기에 현대미술전》을 개최 후 오사카에서 순회 예정 중에, 전쟁으로 문화적 교류가 없는 한국에 전시를 개최하고 벨기에와의 친선을 도모하고자 하는 취지를 밝혔다. 또한 수잔 비바리오는 한국의 파견군 지휘관인 조지 비바리오 중령의 친누이라고 설명했다.

“건국 이래 외국회화의 전람회를 가져본 것은 이것이 처음이어서 의미 깊은 일”(『서울신문』 1952.11.12) “한국미술가들의 지대한 관심을 집중한 가운데 기대되던”(『평화신문』 1952.11.12), “우리미술계에 적지않은 시사와 자극을 주는 바”(『조선일보』 1952.12.31)

전시서문에 수잔은 “신세대를 대표하고 있기에 또 백이의에서 가장 우수하고 최첨단을 걷는 화가로 간주되고 있기에 이 전시회에 선발되었다. … 만약 여러분이 추상예술에 관심이 없는 분이라면 역정만 날터이니 이 전시회에 나오시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신미술에 대해 언급했다. 참여작가 중 4명의 작가는 2차대전 후 미술의 재건과 새로운 조형정신을 모색하며 결성한“젊은 벨기에 회화(La Jeune Peinture Belge, 1945–1948)” 그룹 소속이다.



폴 델보 〈소녀의 얼굴(少女의 顔)〉
델보는 초현실주의작가이다. 그에게 있어서는 존재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해야할 것을 표현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의 형식은 고전적이며 에스프리는 초현실적이다. 이 양 요소의 결합은 그 개성의 핵심이 되고 있다. 세대에 충실한 그는 그 주제와 자료간에 또 조소적인 요소와 거기에 결부된 이념간에 조화를 성립시키고 있다. 그의 천재는 이 균형을 성립시키는 것이다.

당시 한국 미술계는 주로 피란수도인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었으며, 유영국, 김환기 등 몇몇 작가들이 기하학적 추상 작품을 실험적으로 하고 있었지만, 본격적인 추상화가 등장하기 이전이었다. 첨예한 전쟁 중이었지만, 많은 미술인과 일반인에게 관심을 받았던 이 전시는 그 취지대로 포성이 들리는 폐허의 수도에 예술의 의미와 새로운 조형을 경험을 선보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