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공간의 서정과 사유를 담다
하계훈 | 미술평론가
송지연은 도시의 풍경을 자신만의 고유한 표현 기법으로 작품에 담는 작업으로 익숙하게 알려져 있다. 도시는 포유류 동물의 일부로서의 행동 특성을 가진 인간이 서식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도시의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자연에 비하여 효율적이고 압축적으로 살아가기에 적합한 공간의 특성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러한 성격을 가진 도시라는 공간은 고대부터 존재해 왔지만, 근대에 들어서서 산업혁명 이후 기술의 발달을 바탕으로 점차 그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나면서 공간의 물리적 범위를 확장해 오는 동시에 우리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행동규범을 결정하여 왔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은 가끔 자신이 시골이나 자연환경에 놓이게 됨으로써 도시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상황을 체험하며 스스로가 얼마나 이러한 환경과 거리감을 가지고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들 중 일부는 불편함을 느끼지만, 다른 일부는 이와는 정반대로 각종 규범에서 벗어나게 될 수 있음을 즐기고 자연에 자신을 스스로 흡수시키면서 의식적으로 도시를 회피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을 도시인과 자연인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작가 송지연은 도시에서 태어나 성장한, 소위 도시형 작가다. 송지연에게 오늘날의 도시 풍경은 지극히 익숙하고 당연한 모습이다. 자신이 태어나서 안정감을 느끼며 점진적으로 성장하고 활동의 영역을 넓혀간 공간으로서의 도시는 그 공간의 거주자들에게 생존과 성공의 필수적 요소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물론 도시화(urbanization)는 나라와 지역에 따라 그 진행 정도가 다르므로 작가와 주변 인물들 가운데에는 각자가 거쳐 온 경험과 개개인이 처한 시대와 환경에 따라 도시를 바라보는 견해차가 있을 수도 있다.
미술사를 살펴보면 많은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서 도시를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산업혁명으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농촌의 쇠락과 공동체의 해체를 염려했던 작가들 가운데 바르비종파를 대표하는 밀레와 같은 화가는 자신의 시대에 급속히 확장해 가던 도시환경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밀레는 도시화와 산업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는 시기에 화가 활동을 하면서 농촌 공동체의 순수성과 노동의 가치가 사라져가는 것을 안타까워하였다. 그런가 하면 유럽의 인상파 화가들이나 미래파 화가들은 대부분 도시 생활을 긍정적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몬드리안(P. Mondrian)은 뉴욕 거리의 격자형 도로를 굽어보는 시각으로 국제적 메트로폴리스인 뉴욕이라는 도시 공간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교통 현상을 빨강 노랑 파랑의 삼원색을 가지고 추상적으로 표현하였으며, 현대 작가 가운데 아일랜드의 더블린 출신인 숀 스컬리(Sean Scully)는 추상적인 화면 안에서 색채를 중심으로 도시를 바라보면서 도시의 에너지와 역동, 그 속에서 벌어지는 쇠락과 재생을 전달하고자 하였다.
도시를 바라보는 방법과 태도는 이처럼 다양할 수 있다. 송지연은 도시와 자연을 대척적 이분법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에게 익숙한 도시공간을 바라보면서 이러한 시각 가운데 자신과 관련 있는 공간을 적당한 거리를 두고 관찰하고 그 안에 담긴 구성 요소들의 모습을 가치 중립적이고 차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자신의 작품을 시작한다. 도심 번화가와 주거지 등 작가의 활동 반경에 들어오는 모든 공간은 송지연의 작품 속에 도입될 수 있는 소재감이다. 기본적으로 작가는 자신이 머무는 도시의 공간과 자신의 주변에 펼쳐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따뜻한 시선으로 어루만진다. 그리고 이러한 작가의 시선이 관람자들과 공유될 수 있도록 자신이 주관적으로 공간을 규정하거나 정의하지 않는다.
따라서 작가는 공간에 등장하는 건물이나 도로, 가로수와 같은 요소들에 개별적 해석의 여지를 남기기 위하여 그 형태를 불분명하게 묘사한다. 과거에 “도시는 선이다”라고 언급한 모 인사의 말처럼 도시 공간은 대부분 선으로 규정되고 그렇게 규정된 개별 오브제는 그것이 건물이건 도로이건 경계를 명확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송지연은 이러한 도시 구성 요소의 속성을 회화적으로 모호하게 함으로써 마치 인상파 화가들처럼 묘사한다.
작가가 이렇게 의도적 모호함을 표현하는 방법은 엄격한 윤곽선을 회피하고 그 재현성에 민감하지도 않으며 강렬한 색채 대비나 채도 높은 색상의 적용에 노력하지도 않는 편이다. 오히려 작가는 도시의 대표적 표정인 대상들을 암시하는 청회색이나 적색 계통 색상의 물감을 여러 번 올려 칠함으로써 바닥의 물감 일부가 드러나는 화면의 질감을 드러내고, 그럼으로써 관람자의 시선을 이러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 같다.
송지연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도시 공간의 모습은 작가가 그 안에 들어선 시점보다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공간을 굽어보는 형식의 작품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다수의 작품에서는 원근법적 소실점이 도입되거나 모종의 거리감을 나타내는 조형 어법이 적용된다. 작가는 엄격한 비례나 대칭 형식의 화면 구성보다는 바로크적 운동감을 주는 비대칭적 원근법을 적용하거나 물리적 거리에 비례하는 대상의 모호성을, 마치 카메라의 초점 심도를 낮게 조절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고 때로는 이러한 원근법적 표현이 강화되면서 일부 작품에서는 사물의 형태가 거의 해체되는 듯하게 표현되면서 추상에 가까운 화면이 형성되기도 한다.
이러한 표현 방법은 화려한 색채의 도입 없이도 작품의 회화적(painterly) 성격을 높여주며 점차 추상화하면서 우리가 새로운 시각으로 도시를 바라보며 체험하게 해준다. 작품들 가운데 <같이 바라보다 2024>와 같은 작품은 화면 가득 주택들이 들어선 공간이 주는 갑갑함을 빠르게 흘려보내는 사선 원근법의 운동감으로 상쇄할 수 있게 해주며, <흩날리다 2025>에 묘사된 일몰/출 시점 도시의 표정은 청색 조의 모노 톤이 화면을 지배하면서 거의 추상에 가깝게 다가온다.
화가뿐 아니라 누구라도 본래 자신에게 익숙한 도시환경이 변화하면 불안감이나 당혹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송지연과 같이 화가들 가운데 일부는 이러한 도시의 모습과 그 변화가 중요한 창작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관찰력이 풍부한 예술가들에게는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과 재구성된 기억이 작가의 창작 욕구를 자극하기도 하며 일부 작가들은 자신의 일상 공간에서 어느 순간 무심하게 다가오는 장면을 통해 뜻밖의 창작 의욕이 발동하는 예도 있다. 이러한 감각과 정서의 자극이 송지연 작품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송지연의 작품 일부에는 기억과 기록, 회고의 정서도 담겨있다. 한남동 재개발 지역을 기록하는 듯이 그린 <먼 곳을 바라보다 2024>에서는 전형적인 산동네 서민들의 밀집 주거지의 초저녁 표정을 차분하게 그려내고 있다. 언덕을 따라 성냥갑이 차곡차곡 쌓아 올려진 것 같은 풍경 속에 노란 불빛이 귀가하는 사람들을 안내하는 듯한 작품은 문학적 감성마저 자극한다. 언덕 맨 위에는 이 모습을 굽어보는 듯하게 높게 자리 잡은 교회에서 종소리가 들리는 듯한 장면을 보여준다. 작가가 본 것은 눈앞에 펼쳐진 언덕 위의 집들이지만 그림 속에서는 작가의 시각이 아닌 청각으로 감지하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이처럼 송지연은 도시의 일상 장면을 스냅사진처럼 포착하고 그것을 회화적 언어로 번역하여 다시 작품 속에 서정적 감성을 담아낸다. 작가는 이러한 도시의 풍경 속에서 포착되는 장면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과거 현재를 추억하고 사유하며 그들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는 작업을 차분하게 진행해 나가면서 관람객들과의 교감의 밀도를 높여가학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