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제공 윤소진
1980년 7월 어느 날, 5.18 광주항쟁의 핏자국이 아직 선명한 때였다. 최열은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 동인들과 나주지역 영산강변에서 퍼포먼스를 벌였다. 광주항쟁 해원굿으로 펼친 야외미술전, <남평 디딜강 씻김굿>이 그것이다. 미술인 최열의 첫 기획이었다. 1984년 미술평론가 원동석과 공동기획한 <해방 40년 역사전>과 1986년 <그림마당민 개관기념전> 및 <우리 시대 30대 기수전>, <오윤판화전>, <젊은 세대에 의한 신선한 발언전>, <통일전> 등을 기획하면서 청년 최열은 전시기획자로서 나이 서른을 맞이했다.
민미협을 결성하고 그림마당민 전시기획자 일을 거치며, 민중미술 운동 한가운데에 뛰어든 그는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건설준비위원회(이하 민미련) 조직사업을 펼쳤다. 사회변혁 운동의 격동 속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운동에 결합하는 현장미술운동 조직을 만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변곡점인 ‘민족해방운동사 걸개그림 전국 순회전’(1989)을 기획했다. 서울에서 시작된 이 전시는 광주, 대구, 부산, 마산, 서울 등 전국을 돌고 한 후, 북한의 평양축전으로까지 이어졌고, 결국 공안사건으로 번져 홍성담, 최열 등의 미술인들이 옥고를 치렀다.
최열은 민중미술운동에서 출발하여 전시기획자로서, 미술사 연구자이자 저술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그의 활동은 미술계의 자장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한국의 수많은 미술운동 가운데 감옥에서 실형을 산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민미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최열과 그의 선후배 동료들은 민주화를 향해 청춘을 바친 사회운동가들이었다. 이렇듯 지난한 과정을 거치면서도 그는 일제강점기 항일미술운동사를 발굴하고 집필해 <한국현대미술운동사>를 출간했다. 기억의 뒤편으로 멀어져가던 항일미술운동을 역사화한 것이다.
시국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후 최열은 민미련 조직 해소를 주도했다.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의 소명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는 1994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민중미술 15년전>에 기획위원으로 참여했다. 이 전시는 1980년대 초부터 이어온 ‘조직운동으로서’ 민중미술운동의 종식을 의미했다.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반합 혹은 비합으로서 민중미술운동의 결과를 국립기관에서 펼쳤다는 것은 패러다임 전환임에 분명했다.
미술 운동이자 사회운동으로서 민중미술의 문을 닫고 나온 최열은 이후 미술사학 운동을 전개했다. 한국의 근대미술과 현대미술을 연대기로 정리한 책 <한국근대미술의 역사>, <한국현대미술의 역사>는 우리나라 근대미술사학의 전환점을 찍은 역작이다. 20세기 미술 전반을 사실에 기반해 정리한 이 책들에 이어 그는 18세기 이후 조선미술사 저술에 힘을 쏟았다. 저술활동뿐만 아니라 학회 활동에 나선 최열은 한국근대미술사학회 및 인물미술사학회 창립을 주도했다. 이러한 활동은 서양미술사나 조선 이전 미술사 일색의 학계에 근대미술사와 조선 후기 미술사 연구의 큰 변화를 일으켰다.
50대 이후 그는 18-19세기 조선회화에 관한 공부에 열정을 바쳤다. 그 결과 <옛그림으로 본 서울>, <옛그림으로 본 조선> 등의 역작을 펴냈다. 그의 연구와 저술 활동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요즘도 후배들과 함께하는 정관학회와 민중미술연구회 등의 활동을 통하여 스스로 정리하고 공유하는 일을 하고 있다. 또한 10년 전부터 시작한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정보센터에 민중미술을 비롯한 미술자료 수만 건을 기증한 후, 그 아카이빙을 연구성과로 확장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이러한 미술자료 기증에는 미술작품도 포함된다. 아직 세상에 덜 알려진 작품들을 미술자료로 올려놓고, 향후 연구 성과를 통한 재평가를 기다리는 것이다.
미술사학자로서 당대 최고의 저술 성과를 내고 있는 최열은 그 바쁜 가운데서도 독특한 방식으로 큐레이터 일을 이어왔다. 큐레이터의 모든 일은 연구로부터 비롯한다고 하지만, 전업연구자와 큐레이터의 연구 방법론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최열은 전업연구자로서 자신의 연구 분야 작품과 자료를 수집하고 그것을 전시와 기증으로 연결하는 매우 특별한 활동을 해왔다. 국현의 ‘최열컬렉션’을 이뤄오면서 그는 민중미술 관련 작품과 자료는 물론이고, 근대미술 가운데서도 특히 독립운동가 유묵 등의 연구와 수집, 기증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람전 허산옥 탄생 100주년 기념전>(낙원상가 d/p)을 열어 기생 출신 화가의 작품을 통해 조선 전통과 근대 서화의 새로운 면모를 세상에 공개했다.
“내 스승은 정관 김복진 선생이며, 내가 학자로 존경하는 분은 성호 이익 선생이다. 성호 선생께서는 ‘의문을 갖고 스스로 깨우치는’ 치의자득(致疑自得)과 ‘스승을 섬김에 의문을 숨길 수 없다’는 사사무은(事師無隱)의 방법론을 알려주셨고, 충실하게 따르려 노력했다. 나는 미술운동이건 미술공부건 경쟁하지 않는 삶과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태도로 살아왔다. 나는 한마디로 성시산림(城市山林)이다. 내 생애는 ‘홀로 삼천리를 걷는다’는 독행삼천리(獨行三千里)다.”
이렇듯 쉼없이 읽고 쓰며 평생을 살아온 학인(學人)으로서 큐레이터 최열 정신의 핵심은 ‘세상의 변화를 향한 의지’에 있다. 청년 시절부터 그의 지향점은 미술계가 아니라 세상이었다. 그는 사회변혁운동으로서 미술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 민중미술운동에 이어 근대미술사학운동으로 사회변화 운동의 길을 걸어온 그는 미술사학 저술은 물론 김복진과 권진규, 박수근, 이중섭, 김정희 등 다수의 예술가 평전으로 깊이를 더해왔으며, 의병과 독립군, 카프, 기생 출신 화가들 등 잊혀진 미술사를 복원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나아가 그는 ‘국립 20세기(근대)미술관 설립 전국회의’ 대표로 활동하면서 근대미술의 제도적 완성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독행하는 행동가 최열은 지금도 여기에 있다.
- 최열(1956- ) 미술사학자. 중앙대 예술대학원 석사 졸업. 『가나아트』 편집장(1998-2001), 가나아트센터 기획실장(1998-2008), 김종영미술관 학예연구실장(2010-2012), 한국근대미술사학회, 인물미술사학회 회장 역임. 인물미술사연구소 소장, 정관학회 회장. 저서 「한국현대미술운동사」, 「김복진」, 「추사 김정희 평전」 등. 한국미술저작상, 월간미술대상, 혜곡 최순우상, 우현 고유섭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