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던 때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9남매 중 혼자 교육을 받아 전북대학교 법정대학에 진학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집안을 일으킨 후, 정치평론가가 되고 싶었다. 2차 시험에 번번이 떨어지던 중, 집에 큰 불이 나 그 꿈을 접어야만 했다. 그동안 공부한 것을 기초로 공무원이 되어 평생을 법원에서 봉직했다. 그걸 보고자란 아들이 법대를 희망하자 부모님은 극구 만류했다. “법관보다는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국문과를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줄곧 문예반에서 글쓰기를 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과가 어떻겠냐는 어머니의 권유로 선택한 것이 건축이었다. 배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며 배재학당역사박물관장인 김종헌의 얘기다.



보성중학교 입학기념 가족사진(뒷줄 우측이 김종헌), 1975.3


김종헌이 대입을 준비할 때는 1980년 계엄 시국이었다. 그 혼란 속에서 친구들은 죄다 서울대에 합격했지만, 김종헌은 점수가 그에 미치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대학에 들어가 유명한 건축가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더 열심히 공부했다. 특히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에서 태어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1967-59)가 오히려 유럽에 영향을 미친 건축가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라이트 연구에 매진했다. 그 연구 성과로 제1회 꾸밈건축평론상을 수상했다. 건축계의 첫 평론가로 등단하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여러 건축 잡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에게 라이트 탐구는 오히려 한국성에 관심을 두게 했고 전통을 트렌드와 절충하려는 연구 태도는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입사한 현대산업개발 설계실에서 익힌 6년간의 실무경험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설계 방법을 익힐 수 있었고, 사회 변화와 경제적 흐름·주거와 사회·CAD와 정보화 사회 등에 눈을 뜰 수 있었던 것이 그것이다. 충청대를 거쳐 배재대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전공이었던 건축사(史) 연구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2002년, 미 대사관 직원 숙소부지 지표조사는 정동과 인연을 맺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김종헌은 덕수궁 선원전(璿源殿) 복원공사를 가장 내놓고 싶은 프로젝트 중 하나라고 말한다. 이런 정동은 그의 관심을 자연스럽게 그의 대학이 속한 배재학당으로 옮기게 했고, 배재학당 동관을 역사박물관으로 조성해 본격적으로 박물관 업무에 뛰어들게 했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 준공 후 교민대상 강연 2022.6.1


《아펜젤러》를 주제로 한 전시를 시작으로 《천로역정》 등 한국 근대기를 조망한 다양한 전시를 기획했다. 특히 《배재학당 앨범전》은 한 인물이 교육을 통해 어떻게 완성되어가고, 어떤 스승과 친구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성장케 되는지를 알게 해준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승만, 김소월, 나도향 등의 성장 수수께끼를 앨범에서 끄집어내는 작업이었다. 이 전시는 반향을 일으키며 골동품점에서 같은 앨범 가격이 5배나 뛰는 기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또 한글을 테마로 한 《28자의 놀이터》전은 헐버트와 아펜젤러, 주시경 등을 통해 배재학당이 한글 보급에 얼마나 크게 이바지했는지, 또 한글에서 발아한 예술가들의 작품에서는 우리글의 아름다움과 확장성을 새삼 조망할 수 있었다. 이렇듯 잠자고 있던 유물이 참신한 기획으로 재탄생한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희열이라고 김 관장은 말한다.

박물관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전시는 배재학당의 5개 건축물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인물과 유물, 건물들을 연계한 《5개 건축에 담긴 시간의 켜》였다. 이 프로젝트는 관람객이 바닥을 밟으면 화면이 바뀌는 인터렉티브 기법을 적용했다. 앞으로 나가면 과거로, 뒤로 물러서면 현재로. 그것은 앞에서 본 현재가 아니라 유물과 인물, 건물이 서로 관계 맺기를 하며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시간과 공간의 축이 전환되는 방식이었다. 13년이 지난 지금도 배재학당의 스토리가 담긴 이 미디어파사드는 정동 야행에서 다시 방영해도 늘 신상(新商) 같은 모던한 시도였다고 그는 회고했다.

연구년에서 복귀해 다시 박물관을 맡게 되면서 올해 새롭게 선보인 《해방정국과 배재학당》전은 배재학당 개교 140주년과 광복 80주년을 기념하고 해방정국에서 학당이 배출한 인물들의 활동상을 조망하기 위한 기획이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해 그와 대척점에 있던 여운형, 이 밖에 김규식, 노일환, 서재필, 신봉조, 윤치호, 주시경, 지청천 등이 이때 어떻게 활동했는지를 드러내고자 했으며, 12·3 계엄으로 드러난 극한 좌우 대립이 마치 당시와 같다는 생각의 반영물이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예민한 때였지만 ‘독립의 원천은 결국 교육’이라는 명제를 놓고 ‘역사를 만드는 것은 사람, 사람을 키우는 것은 교육’이라는 방향을 기저로 했다.



《해방정국과 배재학당》(2025.8-2026.8) 전시 포스터


한편 광주과학기술원의 전문구 교수와 협업해 개발한 유물수어, 한국예술종합학교 민경찬 교수와 함께 개화기 서양음악을 복원해 〈음악을 통해 본 정동〉 행사에서 한예종 음악가들이 재현한 공연은 박물관에서 맛본 큰 보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2012년에 시작해 2018년에 준공까지 ‘워싱턴 D.C.주미대한제국공사관 보수 및 복원’ 현지 감독관으로 전 과정에 참여한 일이다. 특히 연구년을 이용해 2015년에서 2017년까지 현지에 머물며 직접 공사를 진두지휘했고, 2024년에는 성공적인 복원이 높이 평가받아 미국 국가 사적으로도 지정되는 기쁨도 맛볼 수 있었다. 이 밖에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사무동(옛 국군기무사 본관) 조성에 참여해 우리 근현대 역사적 상황을 미술관에 담아내는 데 일조했고, 호미곶 등대연구를 통해 ‘2022년 올해의 세계 등대’로 선정되는데도 기여했다. 이를 계기로 2023년도에는 2022년 양자역학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알랭 아스페(Alain ASPECT) 교수와 함께 심포지엄에서 발표와 토론을 했던 것 역시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알랭 아스페 교수와 프랑스 보르도 르 베르동에서, 2023.10.24


김종헌은 해양수산부 등대문화유산위원회 위원(장), 저탄소사회를 지향하는 목조건축협회 회장, 한국건축역사학회 편집위원장, 한국주거학회 부회장, Documentation and Conservation of Modern Movement(Docomomo)-Korea 회장, 철도학회 위원 등을 역임했거나 맡은 건축가, 건축사가, 평론가, 교육자, 건축·등대·철도·문화유산 분야 전문가, 문화기획자다. 배재학당은 근대교육과 이곳으로 이식된 서구문명, 여기에서 배출한 인물과 이들의 역할 등을 배태한 우리 근대사의 나이테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에는 이 나이테가 켜켜로 펼쳐져 있다. 평소 필자가 봐온 김종헌 관장은 배재학당이 그러했듯, 겉 물결 그 아래에서 진중하면서도 크게 움직이는 저력의 소유자다. 그가 써 내려갈 정동의 또 다른 서사가 기대되는 까닭이다.


- 김종헌(金鍾憲, 1962- ) 전북 장수 출생. 고려대 건축공학 전공 학·석·박사, 배재대 건축학부 교수,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위원,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이사, 배재학당역사박물관장. 대통령 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복원 및 보수공사 자문 및 총괄 감독 등 역임. 대통령상(건축의 날), 자랑스런박물관인상(한국박물관협회), 대한건축학회학술상, 한국건축가협회 특별상(초평상) 등 수상. 『한국의 등대』(한국항로협회), 『현장에서 만난 문화재이야기 2, 3』(문화재청), 『한국건축의 이해』(멀티미디어 컨텐츠) 등 저술, 학술논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