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과 정현웅의 우정 《시그널, 텍스트×도판》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 우리에게 애송받는 백석(1912-1996)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의 일부다. 이 시는 눈 오는 밤,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안고 언덕길을 오르다가, 사랑하는 존재인 ‘나타샤’를 떠올리며 위안과 희망을 찾는 시이다. 흰 당나귀는 그와 나타샤를 이어주는 상징적 존재로 등장하며, 눈과 고요한 밤의 정취 속에서 순수한 사랑과 그리움이 부드럽게 펼쳐진다. 이 시와 정현웅의 삽화가 펼침 페이지로 수록된 <여성> 1938년 3월호를 전시했다.
....미스터 백석은 바로 내 오른쪽 옆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사진을 오리기도 하고 와리쓰게(*주: 조판/ 레이아웃)도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밤낮 미스터 백석의 심각한 프로필만 보게된다. 미스터 백석의 프로필은 조상과 같이 아름답다. 미스터 백석은 서반아 사람도 같고 필립핀 사람도 같다. 미스터 백석은 필립핀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 미스터 백석에게 서반아 투우사의 옷을 입히면 꼭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내용은 정현웅(1911-1976)이 백석의 옆모습을 그리고 서술한 내용이 실린 <문장> 1939년 7월 임시증간호에서 찾아 함께 전시했다. 백석과 정현웅의 우정을 살필 수 있었고 북한에서 활동한 예술가이다.

《시그널, 텍스트×도판》전시회 12월 31일까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1900년대부터 발행된 정기간행물, 단행본 등의 표지화 및 삽화와 표지해설 및 평론, 시를 살펴보며, 그림과 문자와의 관계성을 사유하는 90여점을 만나는 기회이다.
최근에 많이 사용하는 “시그니처”는 서명을 뜻하며 “시그널”은 일정한 부호, 표지, 소리, 몸짓 따위로 특정한 내용, 또는 정보를 전달하거나 지시를 말한다. 이번 전시는 텍스트와 도판을 중요시하여 잡지 표지화만 보여주는게 아니고 작가의 설명문을 보여주고 <문학사상> 표지화 2003년 6월호 전병현이 그린 이태극 초상화 원본도 보여준다. 고희동이 신지식인 남자를 그린 원작이 망실된 <청춘> 1914년 창간호에 실린 ‘공원의 소견’ 도판, 화가 박래현과 시인 조병화 주고 받은 쌍방간의 글 들을 소개했다. 이상범의 ‘낙화암’ 삽화, 곽훈의 ‘나는 원시인의 아들이다’ 시집 표지그림인 ‘할라잇’ 시리즈 그림도 전시하였다.
300년이 넘은 18세기 전반인 청나라에서 나온 <서경대전> 1717년 서책, 프랑스 시사주간지 <라 뷔 일루스트레(La Vie Illustrée)> 1904년 1월29일자 프랑스화가가 그린 고종황제 초상화가 표지로 실린 잡지, 근대 개화기 서양인이 한국을 이야기한 희귀본 등을 공개했다.
<월간매신> 1934년 10월호는 오일영의 ‘메뚜기’ 그림도 좋지만 잡지 내용 중 조선화단인(朝鮮畫壇人)언·파레트 기사를 발굴했다. 우리 근대 미술사에서 중요한 화가 47명의 근황 을 소개하며, 얼굴사진 11명이 실렸다. 빛바랜 갱지 위에 국한문 혼용에 지금과는 맞춤법도 다르지만 읽어가며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니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원자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