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韓國現代畵家畫展(한국현대화가화전》, 국립대만예술원, 1960.2.6-10, 26×19cm, 접지 2쪽, 출품작 1장
(우) 대한민국현대화가화전 - 백양회원 출품작
이 자료는 백양회 주최로 1960년 대만, 홍콩에서 개최된 《한국현대화가화전(韓國現代畵家畫展》의 리플릿이다. 국립대만예술관에서 1960.2.6-10일까지 개최된 이후 대만 중국문화협회의 주선으로 홍콩전이 1960.2.29-3.2 기간 동안 세인트존성당 별관화랑에서 개최되었다. 김기창, 김정현, 김청강, 김화경, 박래현, 성재휴, 이남호, 이유태, 천경자, 허건 총 10명의 95점이 출품되었다. 이후 1961년 일본전까지 이어졌으며, 민간 미술단체에서 개최한 최초의 해외미술전이다.
백양회는 1957년 창립된 동양화가 단체로, “한국의 현대 동양화 연구와 그 발전, 선양 및 후진 양성을 목적”으로 발족했다. 창립회원은 후소회의 김기창, 박래현, 이유태, 이남호, 장덕(장운봉)과 김영기, 천경자, 김정현, 조중현 9명의 중견화가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되었다.
1945년 해방과 1950년대 미술계는 일제에 의해 주입된 조선향토색과 일본화풍, 식민지적 관점에서 벗어나, 탈식민과 왜색 탈피, 한국 미술의 정체성 모색, 새로운 사조의 수용 등의 과제를 안고 전환의 국면에 있었다. 1950년대 들어 국가 주도의 대한민국미술전람회가 정착하면서 심사위원 선정 문제 및 편파 심사,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보수적인 운영 체계 등의 문제가 야기되었다. 이러한 상황들은 1950년대 후반 재야적 단체들이 발족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동양화 분야에서는 전통의 계승과 관련하여 어느 분야 보다도 왜색 탈피와 민족미술의 수립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백양회는 이러한 배경에서, 특히 채색화를 왜색으로 규정하며 국전에서 비판과 소외받는 상황 가운데 김기창과 김영기를 필두로 김은호와 그의 문하에 있는 동양화가들의 단체인 후소회 화가들 일부와 그 외에 뜻을 같이하는 작가들이 재야적 성향을 가지고 발족하였다. 소속 작가들은 공통된 성향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현대 동양화”를 실천의 과제로 삼으며, 민족미술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또한 회원들 대부분 일본 유학을 하고 시기적으로 일제강점기에 교육을 받았지만, 민족미술에 대한 의식을 가진 중견작가로서,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서양화 기법의 수용 등 재료와 기법, 소재 등에 있어서 보편적이고도 다양한 화풍의 현대 동양화를 위해 새로운 대안과 지향점을 찾고자 노력하였다.
백양회에서 주최한 1960년 대만·홍콩 순회전은, 국가적으로 문화 외교의 물꼬가 조금씩 열리고 있는 상황 속에서 민간 미술 단체에서 기획한 최초의 해외전시로서 주목된다. 당시 국제적으로 냉전 질서 속에서 문화 교류가 외교의 일환에서 마련되었으며, 해외 전시는 국가의 근대성과 예술의 정체성을 동시에 보여주며 경제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는 상징적인 기능을 했다.
대만 전시는 중국에서 유학했던 김영기가 대만화단의 중국인 동창과 연락을 하면서, 아시아재단, 대만 대사, 대한민국 영사관, 중국문화협회, 중국미술협회, 홍콩중국미술회, 한국은행 등 많은 해외 주재 단체들의 도움으로 개최되었다.
“동양의 대국제도시에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 화가전이 개최되는 것이며 이곳의 내국인들의 관심이 얼마나 크다는 것은 향향시보, 성도일보, 화교일보, 화남일보 등을 비롯하여 두 개의 영자신문까지도 붓을 나란히 하여 격찬을 하고 수많은 작품 사진으로 지면을 장식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넉넉히 엿볼 수 있습니다.”
김영기, 「한국현대화가전 성황」, 『조선일보』 1960.3.8
해방 이후 한국 미술이 직면한 과제 속에서 《한국현대화가화전》이라는 표제로 개최한 이 해외전은 이후 ‘한국화’의 명칭 담론을 촉발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이 해외전을 통해 현지 작가들과의 교류 및 ‘아세아미술가국제연합예비회담’이 개최되고, 동남아시아 8개국에서 《동남아순회 한국현대미술전》(김경승, 김영기, 김순연, 권영휴, 이완석)이 기획되는 등 해외 교류의 문을 확장하는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