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 미로재단 조르디 준코사 부관장과 레지스트라 ⓒ 2004 바르셀로나 미로재단


불어불문학을 전공하면서 프랑스 문화예술을 접하게 되었다. 사간동 프랑스문화원을 드나들면서 인접 미술관을 자주 찾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미술사 및 미술비평 등 미술 관련 강좌도 수강하게 되었다. 또한, 대학 때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활동하면서 음악에도 깊은 관심을 두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의 축적으로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학부 때 두 차례의 파리 어학연수에서 유럽의 다양한 예술을 접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졸업 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게 됐고, 파리에서 문학을 공부하던 중 미술로의 전향을 결정하고 사립 학교(École)에서 미술 복원학을 공부했다. 6년간의 파리 생활은 문학에서 미술로의 전환, 폭넓은 여행과 미술관 경험, 문학과 미술·음악이 조화를 이룬 예술가들의 삶에 관한 관심을 갖게 했고 진로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김보라는 회상했다.

세종문화회관미술관은 김보라가 미술계에 공식 데뷔한 무대다. 이곳에서 그는 관련 학업을 병행하면서 세부 진로도 모색할 수 있었다. 이후 경기도미술관 건립 TF에서 일하게 되면서 보다 전문적인 미술관인으로 성장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당시 경기도박물관장으로 있으며 건립 TF를 총괄하던 이종선 관장을 통해 미술관 경험을 폭넓게 쌓을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큰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특히 전반적인 건립 프로세스와 운영계획 수립, 개관전시와 소장품 수집 등 미술관 설립의 A부터 Z까지 전 과정을 진행해 본 경험은 미술관장으로서의 소양에 튼튼한 기반이 되어준 소중한 기회였다.
특히 개관 전시는 스페인 호안미로재단과 공동기획한 《호안 미로, 상징의 세계》였다. 이 전시는 김보라가 2년 동안 직접 미로재단과 조율해가며 추진한 이상적인 전시 사례다. 따라서 예산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었고, 관람객에게는 세계적인 작가 작품을 부담 없이 향유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다. 공립미술관이 직접 나서 해당국 기구와 협업해 공동 기획한 국제전은 지금까지도 찾아보기 어려운 예가 아닌가 싶다.

김보라에게 또 다른 전환점을 준 것은 《박서보의 오늘, 색을 쓰다》전이었다. 서양 문학을 전공하고 서양 문화예술에 심취해 있던 그에게 한국 미술을 처음으로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2년 동안 전시를 기획하면서 한국의 미학적 관점에서 박서보를 비롯해 당대 작가들을 연구할 수 있었다. 당시는 ‘단색화’라는 용어가 생기기 전으로 박서보 전은 색을 다룬 그의 첫 번째 전시였고, 우리 근현대 작가를 여러 관점에서 지속해 탐구할 필요성을 느끼게 해준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경기도미술관은 건립 과정을 통해 한국의 공립미술관과 외국 유수의 뮤지엄을 들여다볼 기회와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고 국내외 뮤지엄 관계자와 만날 기회를 제공했다. 


박서보 작가와 김보라, 경기도미술관 《박서보의 오늘, 색을 쓰다》 전시 설치 ⓒ 2007


이때 느꼈던 것은 김보라가 유럽에서 접했던, 정체성이 명확한 미술관의 모습을 우리에게서는 찾기 쉽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역의 특성을 담아내는 차별화된 미술관으로 정체성을 확립하기에는 미술관의 콘텐츠가 미흡하다는 점, 그리고 관장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비전과 운영 방향은 학예 역량을 축적하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후, 경기도미술관을 나와서는 앞서 언급한 미술관의 형태를 찾는 데 공을 들인 시간이었다. 전시를 기획하는 일도 좋지만, 다른 곳과 차별화된 미술관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은 생각이 강했던 때였다. 그 무렵 성북구립미술관이 그의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서울 ‘성북’은 예나 지금이나 예술가들이 관계를 형성하며 수많은 이야기가 차곡차곡 수장된 지역이다. 이곳 같으면 미술관에 독창적인 옷을 입힐 수 있겠다 싶어 김보라에게 직감적인 매력으로 다가왔다. 당시 성북은 김보라가 간송미술관을 찾곤 했던 그저 고즈넉한 지역에 불과했다. 프랑스에서 보았던 예스러운 마을과 같은. 그런 까닭에 어떤 망설임도 없이 지원서를 내게 되었다. 

성북은 유럽처럼 예술가들의 생가 그 자체가 미술관이 되어 많은 사람을 감동케 할 수 있는 곳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이곳의 예술가들은 오랜 시간 지역을 위해 연대하고 있다는 것, 한국의 근현대 예술가들의 체취가 퇴적돼 있음도 성북을 선택하게 된 이유였다. 그렇게 2009년, 성북과 인연을 맺고 경기도미술관에 이어 미술관 개관 업무를 맡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2012년부터 지금까지 관장으로 일해오고 있다. 

개관 전시는 현존하는 원로작가를 다 모심으로써 미술계의 이슈가 되었다. 한국 근현대 미술의 중심지 성북, 여기서 발아한 예술가의 삶과 예술을 담는 미술관으로 정체성을 분명히 하려 지금까지도 고심해 오고 있다. 김보라의 미술관론은 ‘고유한 특성과 신뢰 형성’에 있다. 지역적 특성을 면밀히 분석해 이에 부합한 콘텐츠를 발굴, 미술관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미술관과 인연을 맺은 사람과의 신뢰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현대 미술관이 추구해야 할 ‘지속성’과 ‘항구적인 발전’에도 가장 중요한 초석이기 때문이다. 


김보라, 성북구립미술관 기획전시 개막식 ⓒ 2023


이러한 기저에서 성북구립미술관은 먼저, 지역 근현대 주요 작가의 소장품을 강화하여 미술관의 성장 기반을 확고히 하였다. 서세옥·최만린·윤중식 등 성북 지역 주요 작가 작품을 기증받아 4,700여 점의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전국 공립미술관 소장품 3위 수준으로 오랜 신뢰 관계에서 기인한 성과다. 다음으로, 예술가들이 살았던 집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조각가 최만린의 집을 미술관으로 공공화해 냈다. 김보라의 세 번째 미술관 개관인 셈이다.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은 2020년 개관해 크게 주목받았고, 대한민국 공공건축상도 받았다. 지금은 서세옥미술관을 추진하고 있으며, 윤중식 등의 가옥보존도 검토하고 있다.

지역 미술가의 발굴 성과는 문학가·음악가·건축가까지로 그 범위를 넓히는 동력이 되고 있다. 이처럼 폭넓은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들의 독특한 개성과 철학 등이 성북의 정체성과 교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주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성북구립미술관이 지역에 깊이 스며들어 성북이 예술의 전진 기지가 되었으면 하는 게 김보라의 미술관 미션이다.
“예술가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관장 스스로 충분한 영감을 받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포용적인 태도가 필요합니다. 과거-현재-미래를 넘나들면서 미술관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관장의 역량을 키워나가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 늘 책을 가까이하고 다양한 문화예술을 접하며 세상의 변화를 읽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콘텐츠를 미술 안에서만 찾으려 하지 않고, 미술이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면서 더 넓은 의미로 작동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김보라 관장은 부언한다. 그는 이처럼 모든 영역에서 되도록 넓은 관심을 두려고 애쓰고 있다. 그가 쌓아왔던 소양의 폭과 경험의 색채가 그랬던 것처럼. 


- 김보라(金보라, 1974- ) 서울 출생, 숙명여대 불어불문학 전공, 동 대학원 문화예술행정학 석사, 이화여대 조형예술학 박사 수료. 성북구립미술관 관장(2012-현재), 서울시미술관협의회 회장, ICOM 한국위원회 및 (재)한국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이사. 세종문화회관 큐레이터,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 서울시 박물관미술관 진흥정책 심의위원, 경기도 건축물 미술작품 심의위원, 사립미술관 전문인력 지원사업 평가위원 등 역임. 2023 ‘박물관 및 미술관 발전유공’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수상. 미술관 관련 논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