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 지역 근대화가인 김윤민(金潤珉, 1919-99)의 이름을 아는 미술계 인사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경남 남해 출생으로 유년기에 도일(渡日)해 오사카(大阪)미술학교를 졸업했고 《문부성미술공모전》과 재야전시인 《신관서미전》에 입선했다. 왜정 말기에는 징용을 피해 시코쿠 섬에서 반년을 숨어 지내다 1945년 귀국했고 이듬해 부산으로 이주, 경남중·부산사범학교·개성중·부산서중·대신중·은하여중·중앙여중 등지에서 38년간 교편을 잡았다. 1953년부터 54년까지 서성찬(徐成贊)·김영교(金昤敎)·김종식(金鍾植)·임호(林湖)·김경(金耕) 등과 함께 ‘토벽(土壁)’ 동인으로 활동했고, 1974·78·93년에 총 3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김윤민, 〈전설〉, 1970년대 후반, 캔버스에 유채, 45.5×53cm
그의 작업 소재와 내용은 산과 강, 사람과 동물이 어울린 전원경으로 근대기 여타 작가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이를 양식화시키는 측면, 즉 형식요소에 있어서는 현저한 차이를 드러낸다. 목가적 자연주의의 세계를 초현실적 양식으로 표출하고 있는 극히 이례적인 작가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회화공간은 항상 보아 익숙한 곳임에도 마치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미시감(未視感, jamais vu)의 공기 속에 존재한다. 각설탕이 뜨거운 물 속에 들어가 형체 없이 녹아버리듯, 모든 현실의 대상이 이내 꿈이나 환영 같은 초현실의 기운 속으로 흐릿하게 사라진다. 그러나 이러한 낯선 미시감의 공기는 모든 것을 흡인·소멸시키는 블랙홀의 강포하고 무자비한 인력과는 달리, 평화롭고 아늑한 어머니의 자궁처럼 생성과 화육(化育)의 온기를 품고 있다. 부드러운 청록색으로 어머니의 유방처럼 둥글둥글한 우리 산하를, 아련한 주황색으로 천진무구한 아이의 선량한 마음을 소박하게 표현한 그의 화면은 은일(隱逸)적 자연지향 및 동심회귀의 소망과 깊이 관련되어 있으며, 평면적·정태적 화면 구성은 동화적 시정과 고졸한 격조미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화가는 이러한 내용과 형식의 결합을 통해 일차적으로는 자연과 인간의 재현을 추구하면서도, 단순한 재현을 넘어선 특유의 몽환적 분위기와 초현실의 신비감을 화포 위에 담아낸다. 성실하고 꼼꼼한 작화 태도, 평온하고 진솔한 필치의 중첩, 물성에 대한 연구와 깊은 이해, 순후(淳厚)하고 깨끗한 정신성 등의 완벽한 결합은 화면을 그만의 개성적 양식으로 새롭게 승화시키고 있다. 과작(寡作)임에도, 차별화된 자신만의 독창적 형식미를 창안했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재평가와 그에 걸맞은 자리매김을 요하는 근대화가이기도 하다.

김윤민, 〈바다와 여인〉, 1970년대, 캔버스에 유채, 41×53cm
이 드로잉은 부산의 J씨 구장품으로, 소장자 사후인 2017년 11월 무렵에 부산의 한 골동가게(M목기)로 흘러나왔다. 나중에 그림을 본 원로 평론가이자 화가의 부산사범 제자이기도 한 옥영식은 그림 속 장소가 부산 괴정동의 싸리골(세리골, 사리골) 약수터임을 밝혔다. 화가가 이 약수터 근처에 살았기 때문에 여길 자주 들렀으며, 이곳을 그린 화가의 유화도 몇 점 있다고 했다. 그림에 얽힌 사연을 소장자 J씨로부터 직접 들었다는 모(某) 화상의 전언에 의하면, 오랫동안 약수터를 오가다 서로 면식이 생기게 되면서 골동이나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J씨에게 화가가 선물로 주었던 그림이라 한다. 그림 속 모자 쓴 여인이 J씨이다. 평온하고 아늑한 필치로 화가의 유화에서 풍기는 기묘한 감성을 그대로 빼다 박은, 일견 어눌해 보이지만 천연한 미감을 지닌 격조 있는 드로잉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