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하는 작은 집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작가 박혜원은 집을 그리고 만든다. 종이나 천 위에 자수로 그려진 작은 집 드로잉이나 지붕을 얹은 입방체와 같은 철 프레임 위에 붉은 실을 감아 만든 집! 그것은 X축과 Y축이 만나 이룬 건축적 구조물로서의 집(House)이기보다 혈연과 가족애로 이어진 가정으로서의 집(Home)이다. 박혜원의 ‘나의 사랑하는 작은 집(My dear little home)’이란 어떠한 것(곳)이고 그것(곳)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II. 셸터와 코라로서의 집 :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존재론적 모상
박혜원이 그리고 만든 집은 어디서 왔는가?
흔히 말하듯 집의 원형은 “비바람과 악천후의 위험 혹은 야수의 위협으로부터 피신했던 인간의 은신처”라고 풀이되는 셸터(Shelter)에서 비롯된다. 그것이 원시 인류가 떠돌아다니던 유목주의 구석기의 동굴과 같은 ‘발견된 셸터’로부터 정주를 선택한 신석기의 움막과 같은 ‘만든 셸터’로 이동했다는 점에서 원래 집의 본질은 자연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차원에서 인간을 위한 집은 결국 자연 그 자체인 셈이다. 집은, 청동기·철기의 문명 시대를 거치면서 성벽으로 둘러싸인 마을과 국가의 개념으로 확장하거나, 오늘날에는 신분과 계급의 분화를 더욱 공고히 하는 환금성의 부동산 재화로 변질된 지 오래다.
박혜원은 이렇듯 오염된 오늘날 집의 존재론적 위상을 본질적인 장소로 되돌려 놓는다. 그녀에게 집은 인간을 생성소멸과 같은 자연의 본성으로 되돌리는 매개 장소이자, 생로병사 또는 삶과 죽음을 한데 아우르는 존재론적 모상(模像)이다. 그게 무슨 말인가?
박혜원이 그리고 만드는 집은 거시적 담론으로 보자면, 프랑스의 문화이론가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가 플라톤의 우주론에서 차용한 ‘코라(chora)’와 같은 것이다. 코라는 플라톤에게서 ‘우주를 형성하는 원초적 공간’이었던 크리스테바의 그것은 ‘절대로 닫히지 않는 무한의 생성 과정, 무정형의 통일되지 않은 에너지 덩어리’이자 생성과 변형을 지속하는 ‘우주의 자궁’인 까닭이다. 이 무한의 공간인 코라는 죽음마저 끌어안는다.
한편, 박혜원에게서 ‘집’이란 거시적 담론을 품은 것이기도 하지만,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것이기도 하다. 박혜원이 이번 전시를 위해 그리고 만든 ‘집’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에 그려진 고졸한 집을 모티브로 삼아 선보였던 단순한 구조의 조각인 〈한 평의 집〉 연작의 연장선에 있다. 이전 연작에서 인간과 자연의 본질적 관계뿐 아니라 삶과 죽음이 한데 맞물린 인간 존재에 관한 질문을 던졌던 것처럼,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도 존재론적 성찰을 이어간다. 이번 출품작들은 〈한 평의 집〉 크기를 1/10 정도로 줄였는데, 이 크기는 임신 32~35주에 이른 임신부의 자궁 크기와 동일하다. 그것은 37~38주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 “조금 일찍 세상에 나온 아기의 집 크기”인 셈이자, 집(家)과 또 다른 집(宮)이 만나 만든 공간인 셈이다.
작가가 실제로 둘째 아이를 조산하고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에서 입원시켰던 경험을 모티브로 제작된 이번 출품작은 자신의 아이가 세상의 삶을 시작하자마자 치료실 안에서 맞닥뜨린 고통을 추체험(追體驗)하는 ‘삶과 생명에 관한 어머니 보고서’와 같은 것이다. 수술 후 거동하기 어려운 상태로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잠깐의 시간 동안만 만날 수밖에 없었던 작은 아이의 몸에 꽂혀 있었던 생명 지속을 위한 호흡기와 알 수 없는 노란색, 까만색 줄들을 보았던 가슴 아픈 경험!
이번 전시에는 이러한 경험이 투영되었다. 세한도의 집처럼 단순하면서도 엄마의 자궁과 같은 크기의 아기집들은 혈관처럼 붉은 실들로 휘감긴 철제 프레임으로 만들어져, 마치 신생아집중치료실 안의 아기 바구니처럼 설치되었다. 붉은 실로 칭칭 감긴 작은 집 안에 설치된 인공조명을 보라! 그것은 뜀박질하는 심장과 우렁찬 울음으로 세상을 곧 맞이하게 될 아기의 원형적 상징(Archetypal symbol)처럼 보인다. 어둠을 밝히는 빛과 같은 생명성으로서 말이다.
그렇다. 박혜원이 전시를 통해 선보이는 집의 원형 상징은 셸터를 둘러싼 무엇이다. 그것은 ‘어머니의 자궁과 코라(생명을 시작하는 집) - 요람과 셸터(삶을 지속하는 집) - 묘지와 납골당(죽음을 기리는 집)’을 오간다. 박혜원의 전시에서 셸터로서의 집이란 가히 ‘자궁과 무덤 사이에서 삶과 죽음 그리고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을 아우르는 존재론적 모상’이라고 할 만하다.

III. 홈으로서의 집: 차안의 평안을 가져오다.
작가 박혜원은 ‘집’을 존재론적 모상이라는 거시적 담론으로 대면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가족 공동체의 행복이라는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맥락으로 견인해 온다. 집의 구조물 설치 작업뿐만 아니라 빛바랜 천 위에 작은 집들을 붉은 실로 수를 넣고 원형의 수틀로 프레임을 만든 평면 작업에서도 이러한 존재론적 모상과 더불어 가족의 행복에 대한 소망 의지는 엿보인다.
박혜원은 첫째 딸이 그린 가족상을 이번 전시에 함께 선보이는데, 그도 그럴 것이, 딸의 그림에는, 자신이 5살 때 유산되었던 동생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반려묘를 포함해서 가족 초상을 4명이 아니라 6명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차안의 세계에 남은 가족 구성원과 함께 피안의 세계로 건너간 동생을 홈(Home)으로 불러들인 첫째 딸의 그림에는 삶과 죽음을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아우르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다고 해설할 수 있겠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삶(의 애착)과 죽음(의 기억)을 함께 불러오는 ‘집’이란 이처럼 포근하고 따스한 공간이다. ‘집’은 프랑스 철학자 바슐라르(Gaston Bachelard)가 해석하는 ‘요나 콤플렉스(Jonah Complex)’와 같은 안온함과 행복함을 지닌 은유의 공간으로 자리한다. 그것은 바슐라르가 ‘집’뿐만 아니라 ‘서랍, 장롱, 구석’과 같은 ‘감쌈의 공간’이 전하는 편안한 분위기를 설명하는 메타포이다. 구약성서의 등장인물인 ‘요나가 거주했던 고래 배 속’처럼 둘러싸인 공간은 우리가 태아로 있었던 ‘어머니의 자궁’처럼 안온하고 편안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자궁이 우리가 본능적으로 안온함을 감지하는 최초의 공간이라고 한다면, ‘집’이 함유하는 ‘감쌈의 공간’은 이성으로 안온함을 인지하는 최초의 공간이라고 할 것이다.
박혜원은 철 프레임으로 입방체처럼 세워 일으킨 투과체의 집을 붉은 실로 감싼다. 윗면과 옆면을 연결하면서 지붕도 만들고 벽면도 만드는 붉은 실은 그녀의 작업에서 주체와 타자 또는 가족 구성원을 서로 연결하는 매개체로서의 존재인 것이 분명하다. 나아가 붉은 실은, 실 한 가닥마다 담긴 정성처럼, 삶을 하루하루 소중히 살아가려는 다짐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러한 다짐이란 ‘집’으로 상징되는 차안의 평안과 행복을 도모하려는 부단한 노력에 다를 바 없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는 박혜원이 만드는 집이 하우스로서의 집이 아니라 홈으로서의 집인 까닭을 이해할 만하다.

IV. 에필로그 - 오랜 기다림
박혜원의 ‘집’은 셸터와 코라를 메타포로 삼은 채,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존재론적 성찰에 깊이 잠입한다. 그녀가 몰입해 온 삶과 죽음의 문제의식은, 기실 타자의 극단적 선택을 가까이서 지켜본, 이른바 ‘자살생존자’로서의 경험으로부터 발생한 심리적 외상뿐만 아니라 임신 및 출산과 같은 어머니로서의 강렬한 직접적 경험으로부터 얻은 육체적 고통과 심정적 희로애락에서 기인한 것이다. 인간 존재론의 거시 담론이 적어도 박혜원에게는 체험적 미시 담론으로부터 출발한 셈이다.
이러한 작가 박혜원에게 힘든 시간을 지탱하게 만든 것은 뜨개질이나 바느질과 같은 지난한 노동과 강도 높은 수행성 그리고 오랜 기다림을 요청하는 작업이었다. 작가는 명상적 수행을 위해서 붉은 실을 들어 이쪽과 저쪽을 오가는 막중한 노동을 자처하고, 작업 안에 시간의 흔적을 입히는 노동을 무수히 반복하는 등 육체적 고통과 오랜 기다림을 마다하지 않는다. 오래된 시공간을 살펴보는 작업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지금, 여기에서 홈으로서의 집을 그리고 만들어 행복한 현재를 지속하기 위함이다. 박혜원은 오늘도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작업을 부여잡고, ‘나의 사랑하는 작은 집’을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치유와 위로가 단단해지도록 급히 서두르지 않고 ‘오랜 기다림’을 지속할 것이다.
(20241011)
출전/
김성호, 「나의 사랑하는 작은 집」, 『박혜원』, 전시 카탈로그, (박혜원 개인전 - My Dear Little Home, 2024. 10. 12~10. 30, 인가희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