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노마드 – 다름을 포용하고 다양성을 전하는 창발성의 희망 메신저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프롤로그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후원하고, ㈜스페셜아트가 주최·주관하는 《2024 장애인 미술 아트페어 - 아트노마드 아트페어(ARTNOMAD ARTFAIR)》(이하 2024아트노마드)가 2023년에 이어 2회 행사를 맞이했다. 이 행사는 “장애 예술인들의 예술적 가능성과 잠재력을 발굴하여 이들의 성장과 자립을 지원하는 기업”인 스페셜아트가 ‘장애인의 이동권을 모티브로 기획한 투어형 아트페어’를 지향한다. 즉 이 행사는 ‘장애 예술인을 발굴하여, 장애 예술인들의 창작물을 싣고 아직 개척되지 않은 장애 예술의 불모지를 직접 찾아가 작품을 판매, 유통하는 움직이는 갤러리이자 투어형 아트페어’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장애예술인들의 지속 가능한 예술 생태계를 위해 작가들과 세상을 잇는 일”을 모토로 삼고 있는 ㈜스페셜아트가 기획, 진행한 2024아트노마드는 아직 명쾌히 해결되지 못한 장애인의 이동권을 모티브로 하여 ‘이동하는 갤러리와 아트페어’를 기획하여 장애예술의 활성화를 도모했다는 점에서,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내포한다. 특히 2024아트노마드는 사업의 핵심을 “예술을 통해 포용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으로 정의하면서 그 핵심이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문화를 조성하며, 예술을 통해 사회적 포용과 희망을 전파하는 것”으로 풀이한다.
이 글은 상기한 아트노마드를 중심 키워드로 삼고 예술, 포용, 다름, 인정, 이해, 희망과 같은 키워드를 추출하여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개념을 글의 소제목으로 제시한다: ‘I) 다름을 포용하는 아트노마드, II) 다름을 잇고 다양성을 선보이는 아트노마드, III) 창발적 협력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아트노마드’. 이 글은 이러한 세 가지 소제목을 통해서 2024아트노마드가 지향하는 목표와 실천 전략 그리고 올해 실제로 실행된 아트노마드의 성과와 의미를, 사회학적, 미학적 분석과 해설을 통해 세밀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김경희, 단청을 두른 복북어 2, 디지털드로잉, 리미티드에디션 no.1(10). 2022
I. 다름을 포용하는 아트노마드
2024아트노마드는 ‘예술유목민’으로 번역되는 아트노마드(art nomad)를 아트노마드(ARTNOMAD)처럼 볼딕체의 글자를 모두 붙여 고유명사처럼 사용함으로써 장애예술의 브랜드화를 표방한다. 그게 무슨 의미인가?
유목민을 지칭하는 불어 노마드(nomade)는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G. Deleuze)에 의해서 “고정된 정체성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이동하며 새로운 경험을 쌓는 존재”로 정의된 이래, 오늘날 인간 존재를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바꾸어 나가며 창조적으로 사는 인간”으로 바라보게 했다. 즉 들뢰즈는 동시대 인간의 존재를 정주민이 아닌 유목민으로 바라보면서 ‘고정된 경계를 해체하고, 유동, 변화하는 자유로운 정체성의 인간, 경험과 관계에 따른 변화(changement)와 그것의 다름(différence)을 수용하고 지향하는 인간, 다양성과 창조성을 지향하는 인간’으로 해설한 셈이다.
이러한 관점은 오늘날 인간의 개인 정체성과 관계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2024아트노마드는, 2023년 1회 행사와 마찬가지로, 들뢰즈의 철학적 메타포인 노마드를 장애예술에 투영한다. 즉 장애예술을 ‘고정된 경계를 해체하고 다름과 변화를 지향하고, 다양성과 창조성을 지향하는 예술’로 정의한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다름’과 ‘변화’에 관한 것이다. 먼저 ‘다름’이 무엇인가?
다른 곳과 다른 예술? 여기서 ‘다름’은 ‘맞음 혹은 참(true)’에 대비되는 ‘틀림 혹은 거짓(false)’이 아니라 ‘어떠한 것과 차이가 있는 특성’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초원과 ‘다른 곳’을 산, 사막, 바다, 도시, 우주와 같은 장소로 떠올리거나 풍경화와 ‘다른 예술’을 인물화, 정물화, 추상화, 조각, 문학, 음악과 같은 예술로 자유롭게 꼽아볼 수 있듯이, ‘다름’은 ‘차이가 있는 특성’에 집중된다.
그렇다면 이 행사가 대상으로 삼고 있는 장애예술의 ‘주된 주체’인 장애예술가는 어떤 존재인가? 비장애예술가와 다른 특별한 존재인가? 아니. 이런 질문은 설정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 있다. 비장애예술가들이든 장애예술가이든 상관없이 ‘모두 다르고 모두 특별한 존재’인 까닭이다.
생각해 보자. 장애인은 선천적으로 장애를 안고 태어나기도 하지만,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서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되기도 한다. 노화가 동반하는 수많은 질병은 후천적인 장애를 심화하기 전에 죽음으로 우리를 이끌기도 한다. 한편,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장애인은 수술이나 치료를 통해 혹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장애를 벗기도 한다. 비장애인도 장애인이 되기도 하며, 장애인도 비장애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들뢰즈의 철학을 빌어 우리의 논의에 빗대 말하면, 죽음 앞에 선 모든 인간 존재는 ‘잠재적 장애인(handicapé virtuel)’인 셈이다. 들뢰즈의 저서 『차이와 반복(Différence et Répétition)』(1968)에 따르면, 잠재태(le virtuel)는 현실과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가능성이나 잠재력을 의미하는 존재로, 특이점(Singuralité)의 사건을 만나 현실화(actualisation)의 과정을 통해 구체화된 현실 속 실재(réalité)가 된다. 잠재태는, 마치 땅속의 씨앗이 물과 햇볕이라는 특이점을 만나 꽃이나 나무가 되는 것처럼, 다름, 즉 차이를 생성하는 원천으로 작용한다. 쉽게 말해 잠재태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채, 동일성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만을 반복하는 덩어리 존재인 셈이다.
2024아트노마드는 장애예술가를 비장애예술가와 ‘다른 존재’로 구별하기보다, 그 자체로 다름과 차이가 반복하는 무한한 가능성의 잠재태의 존재로 간주하고 잠재태가 지닌 무한한 창조적 가능성에 집중한다. 생로병사의 삶 속에서 모든 사람이 ‘잠재적 장애인’일 수밖에 없듯이 이 글에서 장애예술가와 비장애예술가를 ‘다름’으로 구별하는 것이 무의미할 수 있다. 따라서 2024아트노마드는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종종 치유가 필요한 ‘다른 존재’ 혹은 정상이 아닌 ‘다른 존재’로 구별하고 차별하는 관점을 교정한다. 즉 ‘차이’를 ‘차별’의 근거로 삼는 기득권의 관점을 교정하고 그것에 저항한다.
2024아트노마드는 모든 존재를 ‘모두 다른 존재’로 인식하면서, 장애예술과 장애예술가를 ‘포용(tolerance)’의 방식으로 맞이한다. 불어 똘레랑스(tolérance)는 ‘남의 잘못에 대한 용서’라는 단순한 의미보다 대개 “내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다름을 인정한다”는 의미를 함유한 ‘관용’으로 번역된다. 이러한 사실을 상기할 때, 2024아트노마드가 내세우는 포용은 관용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개념이 된다. ‘포용’은 단순히 차이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 그 차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함께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김단영, 도원행주도 30×30 옻지에 지본채색 2024
II. 다름을 잇고 다양성을 선보이는 아트노마드,
다름과 차이를 포용하는 일이라는 ‘나와 다른 차이’를 관용과 이해를 통해 수용할 뿐만 아니라 그 차이에 담긴 다양성을 용인하고 수용하며 기대하는 일이기도 하다.
노마드의 철학적 메타포는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Who), 다른 시간(When), 다른 장소(Where), 다른 것들(What), 다른 방식으로(How)’ 등 일명 ‘5W1H’로 불리는 일련의 사건에 관한 기본적인 질문 체계에 ‘다른’이라는 형용사를 부가하게 만든다. 즉 사건이나 상황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이러한 질문에 부가된 ‘다름’과 ‘차이’의 꾸밈새는 5W1H를 다양성의 위상으로 견인한다. 2024아트노마드는 실제로 일부 비장애예술인을 포함한 장애예술인(Who)의 소품을 전시, 판매하는 아트페어(What)를 10월 중 각기 다른 일정(When)에 세종, 대구, 서울이라는 다른 장소(Where)에서 트렁크로 이동하는 노마딕 아트페어라고 하는 색다른 형식(How)으로 꾸렸다는 점에서 다양성이라는 정체성과 위상을 선보였다.
주지하듯이 다름과 차이는 다양성을 낳는다. 프랑스의 철학자 데리다(J. Derrida)는 ‘해체(deconstruction)’라는 방법론을 통해 차이(différence)와 다양성(diversité)의 개념을 탐구한 바 있다. 그는 다름이라는 차이가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의미를 생산하는 원동력이라고 보았는데, 이 ‘차이’라는 용어를 사전에 없는 차연(différance)이라는 용어를 작명해 대치함으로써 차이가 이끄는 다양성의 의미를 강조했다. 즉 ‘차이’와 ‘연기’의 개념을 통합함으로써 ‘의미가 결정되지 않고 항상 지연되는 차이’를 통해 다양성을 이해하고자 했다. 그에 따르면 ‘다양성’이란 단순한 집합체가 아니라 서로 다른(차이를 지닌) 요소들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2024아트노마드 또한 ‘다름’이라는 ‘차이’가 상호 작용하면서 관계를 맺고 있는 과정으로서의 다양성을 선보인다. 먼저 청각장애, 시각장애, 지적장애, 뇌병변장애, 발달장애, 지체장애 등 각기 다른 장애를 지닌 모든 장애예술가를 대상으로 공모를 거쳐 참여 작가를 선정, 초대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특별히 행사에는 장애예술의 취지에 공감하는 비장애예술인의 작품도 일부 초대되기도 했다.
참여한 장예예술가들 중 어떤 이는 전문예술의 제도권에서 활발히 예술 활동을 펼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이는 아르 뷔르(Art Brut) 혹은 프리티미티즘 아트(Primitivism Art) 경향의 작업에 천착하면서 생활예술의 장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드로잉, 회화, 사진, 조각, 공예 등 이들이 천착하는 다양한 창작 장르도 그러하지만, 추상, 구상, 재현, 표현, 제시 등 다양한 조형 언어도 주목할 만하다. 어떤 이는 추상을, 어떤 이는 도시 풍경이나 건물 그리는 일에 집중하거나, 또 어떤 이는 동물, 식물 등 소재나 주제 면에서 자연주의 미학에 집중하는 등 이들의 창작 태도나 경향은 무척이나 다양하다.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다름과 다름’ 또는 ‘차이와 차이’가 상호작용을 하면서 견인한 다양성이라는 결과물인 셈이다.
그렇다면 2024아트노마드는 이처럼 다양성을 지닌 장애예술가들의 작품을 효과적으로 선보이기 위해서 아트페어라는 특수한 장에서 어떤 전략과 방식을 기획했을까? 먼저 작품의 다양성을 효과적으로 선보이기 위해서는 무작위의 방식으로 작품을 배치하기보다는 ‘다양성을 잇는 방식’을 고려하는 일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다름과 다름’, ‘차이와 차이’가 명징하게 드러나도록 서로를 대조적으로 배치하는 방식? 장르별로 분화해서 단위별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방식? 아니다.
먼저 2024아트노마드가 ‘다름과 다름’ 그리고 ‘다양성’을 효과적으로 선보이기 위해서 고려한 방식은 동질성(homogénéité)의 맥락 위에 이질성(hétérogénéité)을 펼치는 중성성(neutralité)의 전략이다. 즉 모든 작품이 펼쳐지는 중립적 환경을 조성하여 관람객이 작품 자체의 차이와 다양성을 발견하도록 돕는 공간 연출 방식이다. 또 다른 방식은 들뢰즈와 가타리(Félix Guattari)가 공동 저작인 『천 개의 고원(Mille Plateaux)』에서 언급한 바 있는 유목주의(Nomadism) 방식과 리좀(Rhizome)의 방식이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유목주의나 ‘다름과 다름’을 네트워크로 잇는 리좀의 방식은 앞의 중성성의 전략과 더불어 다양성을 효과적으로 선보이는 장을 펼친다.
2024아트노마드에서 이러한 중성성, 유목주의, 리좀의 배치 전략을 한꺼번에 아우르는 것은 우리가 흔히 커다란 박스형 슈트케이스(suitcase)로 통칭하는 ‘트렁크(trunk)’이다. 여기서 ‘트렁크’는 마치 여행 가방처럼 작품을 한 곳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유목주의’를 실천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작품들을 효과적으로 펼쳐 보이는 동질성과 중성성을 갖춘 ‘야외형 화이트 큐브’를 대신한다. 특히 소품 위주의 출품작들-예를 들어 평면 작품은 30호(90.9 × 72.7cm) 이내의 크기로, 그리고 조각, 공예 등 입체 작업은 92 × 92 × 92cm 이내의 크기로 된 작품이지만, 개별 작품들이 지닌 다양한 형식과 내용은 일련의 중립적 환경 속에서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등신대에 육박하는 커다란 크기를 한 동일한 박스 형태의 트렁크는 야외에서 마치 중립적 환경의 화이트 큐브처럼 사용됨으로써 관객이 작은 크기의 출품작이 지닌 차이와 다양성을 선명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편, 들뢰즈와 가타리가 고찰하는 리좀이 “비선형적이고 비계층적인 연결(connexion non linéaire et non hiérarchique)” 방식으로 ‘다름과 다름’을 이으면서 다양성을 드러내고 있듯이, 2024아트노마드가 실천하는 리좀의 배치 전략 또한 그러하다. 즉 무수한 트렁크의 배치에 있어, 순차적이고 선형적인 상하의 위계의 질서 대신 지그재그 혹은 그물망처럼 비위계적인 수평의 배치 방식을 선택하여 관객이 원하는 박스를 자유롭게 찾아가 작품을 둘러볼 수 있도록 한 공간 연출 전략을 주목할 만하다.

이대호, 휴식, 2013, 장지에 채색, 74x52cm

박태현, 피카소, 53x45cm, sellotape on panel, 2023

이대호, 〈마음〉, 2022, 장지에 채색, 오일파스텔, 55 x 48 cm
III. 창발적 협력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아트노마드
다름을 차별이 아닌 차이로 포용하고 장애예술의 다양성을 선보이는 2024아트노마드는 나아가 ‘장애예술가-예술 작품-관객’이 서로 연결되고 상호작용을 하는 방식을 기획했다. 관객 참여를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다양한 관람 장치와 커뮤니티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관람객은 작품을 감상하면서, 작품 제목, 크기, 제작년도 등 작품에 관한 세부 정보뿐만 아니라 큐알(QR) 코드를 통해 작품의 의미를 풀이하는 해설을 오디오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전시 투어 프로그램’을 통해 진행되는 단체 관람을 통해서 관객은 작품에 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작가와 함께하는 도슨트 프로그램’이나 ‘아티스트 토크’ 프로그램을 통해서 전문 도스튼를 통한 작품 해설은 물론 특별히 참여한 작가들에게 직접 출품작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특히 ‘아티스트 토크’는 작가들에게는 장애예술 아트페어 참여자 입장에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되고 관람객에는 장애예술을 좀 더 가까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주최 측은 이러한 프로그램을 진행함에 있어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 통역을 제공하는 편의도 잊지 않았다. 또한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과 장애인 단체의 자문을 거쳐, 장애를 지닌 관람객들이 이 행사에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배리어프리(barrier free) 구축에 만반을 기했다.
아울러 관객은 ‘작품 주문서 작성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서 실제로 작품을 사지 않아도 작품 주문서를 작성해 보는 체험을 통해서 컬렉터가 된다는 것이 무엇이고 컬렉터의 길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기에 이른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관객을 단지 예술 향유자로만 머물게 하지 않고 창작과 매개 활동을 미리 체험하게 시도함으로써 예술 제도 속 예술가와 컬렉터가 어떠한 존재인지를 가늠해 보게 한다. 이러한 프로그램 속에서 함께 기획된 ‘미술작품과 함께하는 재즈 공연’은 관객에게 덤으로 주는 선물이 된다.
2024아트노마드는 관객에게 흥미롭고도 즐거운 관람과 함께 작품 컬렉션의 기쁨을 제공하기 위해 컨설팅에 기초한 장애예술가 브랜딩, 스토리 중심의 콘텐츠 기획이나 장애예술가와 컬렉터와의 소통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장애 예술에 대한 이해도와 인식 개선 그리고 예술 애호 관객을 확장하고자 했다.
또한 2024아트노마드는 다각적 홍보를 통해 장애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조망하는 일에도 열심히 나섰다. ‘Carry on - [Greeting]’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장애예술가가 소통하기를 희망하는 ‘기획자, 평론가, 컬렉터, 동료 작가, 관객’에게 초대 서신을 보내는 일을 주최 측이 대행해 주고 그들의 회신을 작가들에게 전달함으로써 장애예술가와 다양한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주최 측의 이러한 매개 역할은 현실적으로 볼 때 장애예술인들의 빈약한 미술계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내었다. 또한 아트페어 현장에서 장애예술가들에게 보내는 관객들의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질문도 받아 전시의 형태로 많은 이들과 공유함으로써, 작가에게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관객들에게는 장애예술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이해를 요청할 수 있었다. 2024아트노마드는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대외홍보뿐만 아니라 참여 작가들에게 창작과 전시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예술 전문가들의 가이드를 제안하는 등 장애예술인이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새로운 아트페어 모델을 구축하는 ‘희망의 메신저’가 된 셈이다.
게다가 2024아트노마드는 다양한 기관과의 협력 또한 잊지 않았다. 특히 참여 장애예술가들에게 작품 판매를 통한 경제적 이익과 전시의 성과를 안겨주기 위해 전문 예술인, 예술 단체뿐만 아니라 공공기관과의 다양한 협력을 시도했다. 수많은 팔로워를 지닌 미술계 인플루언서를 섭외하여 아트노마드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도 그렇지만, 컬렉터의 저변을 확장하기 위해 갤러리와 협업한 것도 그렇고, 미술품 구매자에게 작품 및 미술 시장 정보와 큐레이션을 제공한 것은 이러한 협력의 대표적인 예다.
한편,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는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에서는 구매 총액을 기준으로 3% 이상을 장애예술인이 생산한 공예, 공연, 미술품 등 창작물로 구매해야 한다는 ‘장애예술인 창작물 ‘3% 우선 구매 제도’를 시작한 바 있는데, 2024아트노마드는 이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 실무를 전담하는 인력을 배치하는 등 판매를 위한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공공기관의 담당자를 대상으로 온라인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제도 참여를 촉진하고 구매 독려하는 일에 나섰을 뿐만 아니라, 신청 기관을 대상으로 맞춤형 작품 구매를 위한 개별 컨설팅을 제공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장애예술인이 자립적으로 창작 활동을 지속하고, 직업으로서 예술가의 삶을 보장할 수 있도록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이 장애예술인이 생산한 창작물을 구매하도록 의무화하는 공적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2024아트노마드가 실행한 다양한 협력 방식은 ‘창발성(Emergent properties, Emergence, 創發性)의 효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불시에 솟아나는 특성(emergent property)’을 의미하는 창발성은 ‘하위 층위의 개별 요소에서는 특성이 별반 없던 것이 집단을 이루면서 상위 층위의 전체 구조에서 폭발적으로 어떠한 현상을 발생시키는 것’을 지칭한다. 마치 개미나, 꿀벌이 개체 수준에서 보이지 않던 힘이 집단성으로 확장하면서 순식간에 개미탑을 쌓거나 건물을 무너뜨리는 식의 거대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대표적이다. 개별 구성원이 하지 못하는 능력이 사회 조직을 통해서 구현되는 집단적 능력 또한 그러한 것이다.
2024아트노마드 또한 장애예술가와 비장애예술가. 예술 인플루언서, 갤러리, 예술단체, 공공기관 등과 다양한 협력을 실행했다는 점에서, 상위 층위의 집단에서 창발성의 효과를 거두기에 충분하다. 폭발적인 현상으로서의 창발성은 인식론적 입장에서 어떠한 속성이 창발될 것인지를 가늠할 수 없다는 ‘예측 불가능성(unpredictability)’을 특징으로 한다는 차원에서 예술에서의 창의성과 일정 부분 연동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2024아트노마드가 실행한 다차원 협력은, 개별 구성원을 잇는 창의적 조화와 더불어 ‘차이를 포용하고 다양성을 선보이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창발적 협력’이라고 할 만하다.

김현하_AVENGERS B_비단에 수묵채색 및 혼합재료 각30x30cm_2022
에필로그
2024아트노마드는 장애예술인의 이동권을 모티브로 작가와 시장을 찾아나서는 ‘움직이는 갤러리이자 투어형 아트페어’를 표방한다. 예술 지형도에서 미개척된 장애예술이라는 불모지를 직접 찾아가 역량 있는 장애예술인을 발굴하고, 그들의 작품 콘텐츠를 널리 알릴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작품이 실제로 판매, 유통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는 까닭이다.
이 사업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노마디즘의 생태적 사유를 실천한다. 그것은 다름을 차별이 아닌 차이로 바라보면서 장애예술의 다름의 가치와 다양성을 널리 전하는 일과도 관계한다. 오늘날 생태학이란 인간이 살고 있는 모든 공간에서 탈인간중심주의와 자연중심주의의 사회학을 실천하는 일과도 연동되는 까닭이다.
이런 차원에서 야외 공간 혹은 실내 공간에서 ‘중성성, 유목주의, 리좀’의 배치 전략을 실천하는 ‘트렁크’는 장애예술을 실어 나르는 운송 수단이자 그 가치를 전하는 매개체이며 지속 가능한 예술 생태계를 잇는 2024아트노마드의 대표적 상징이자 메타포가 된다. 2024아트노마드는 트렁크에 실은 예술 작품과 함께 유목, 비선형적이고 비계층적인 연결, 그리고 ‘장애예술(가)-작품-관객’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다름을 포용하고 ‘다름과 다름’을 잇는 다양성과 창발성의 미학 그리고 희망의 메시지를 선보인다.
또한 2024아트노마드는 서로 잇고 협력하는 네트워크를 통해 장애예술의 콘텐츠를 전파할 뿐만 아니라 참여 장애예술가들에게 작품 판매를 통한 경제적 이익을 적극적으로 안겨줌으로써 아트페어 본연의 지향점을 분명히 했다. 게다가, 다양한 예술 기관, 비예술 기관과의 다차원 협력은, 개별 구성원을 잇는 창의적 조화와 더불어 ‘다름을 포용하고 다양성을 선보이는 희망의 메시지’ 그리고 창발성의 효력을 전하기에 족했다고 평가해 볼 수 있겠다. 2025아트노마드가 어떠한 다른 장소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관객을 찾아갈지 자못 기대되는 까닭이다.
(20241227)
출전/
김성호, 「아트노마드 – 다름을 포용하고 다양성을 전하는 창발성의 희망 메신저」, 『아트노마드 아트페어』, 전시 카탈로그, 2024.
(2024 장애인 미술 아트페어 - 아트노마드 아트페어(ARTNOMAD ARTFAIR), 2024. 10.1 5~10. 19, 대구 아트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