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문명사적 전환기를 살고 있다. 국내외 주요 기업이 내놓은 휴머노이드 로봇들은 시공의 변화를 실감케 한다. 본격 궤도에 오른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컨셉이 인공지능과 로보테크놀로지라는 사실을 증거하려는 듯, 휴머노이드 로봇이 혁명기의 시그니처로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이 격변의 현실을 마주하는 우리의 심리는 불편하다. 기계인 로봇이 인간의 자율적인 특성을 가지며 성장하는 모습에서 다가올 사회적 문제와 윤리적 책임을 직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시대의 불안 심리는 인간과 기계 사이의 탈 경계적 관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네트워크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이로 인해 파생된 인지권(cognisphere)이 새롭게 생성되고 있다는데 핵심이 있다. 우리가 경험하고 사유하는 세계가 디지털 데이터의 영향권에 종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재와 가상 사이를 넘나드는 디지털 정보 이미지는 소설에 나오는 빅브라더처럼 우리의 기억을 왜곡하고 기존의 가치를 혼돈시킨다.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시대는 예술의 정의를 바꿔놓고 있다. 실제 풍경보다 풍경을 그린 작품이 우월하다며 인간 정신을 높게 평가했던 관념 철학자 헤겔의 주장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인간 정신의 위대함이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지능적 네트워크망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기계적 인지 작용뿐만 아니라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믿어왔던 예술 창작활동까지 수행하며 사물과 인간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인공지능이 예술 창조의 능동적 행위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현실에서 예술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인간이 기계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과 맥락을 같이한다. 기계는 인간이 만들어 낸 인공물이다. 따라서 인간은 궁극적으로 기계에 의해 파생되는 사회적 문제에 책임을 지닌다. 구글이 운영하는 유튜브 플랫폼이나, 스마트폰의 정보검색 시스템에 우리는 자유롭게 개인의 민감한 정보를 업로드하지만, 이 정교한 알고리즘 시스템 뒤에는 그것을 구성하는 엔지니어와 프로그래머 그리고 그것을 감시하는 데이터 분석가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공지능 시스템 앞에서 예술의 역할은 무엇인가.
지난 2022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인공지능 시대의 예술’이라는 기획 의도 아래 12명의 국내 작가들의 신작을 한 자리에 소개한 전시회가 있었다. 2019년 개관한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이 기획한 《인공윤리(人工倫理)-인간의 길에 다시 서다》라는 제명의 전시였다. 인공윤리는 ‘인간이 만들어 낸 윤리’라는 뜻과 ‘인간을 지배하는 윤리’라는 뜻이 얽혀 있는 불완전 조합어로 채택된 제명이었다. 참여작가는 강현욱, 김정희, 노진아, 두민, 박관우, 양아치, 염지혜, 오원배, 오주영, 우주+김희영, 이민수, 이예승. 이들은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 만든 윤리가 인간의 삶을 올바르게 견인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저마다의 개성적 작품으로 응답했다.
이 기획전에서 얻은 성과는 ‘디지털 알고리즘의 가변성과 불확실성’에 관한 것이었다. 디지털 알고리즘에 의해 작동하는 인공지능이 점차 결과의 예측이 어렵고 컨트롤이 어려운 단계로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가변성과 불활실성이 지배하는 오늘날 디지털 알고리즘의 작동방식에 대한 관심은 작가의 개성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인공지능과 인간 사이의 소통과 공진(resonance)에 주목하거나, 예술과 빅데이터의 융복합을 통한 창의적 시대상을 이끌어낸 경우도 있다.
인공지능 시대의 예술은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하지만 예술과 과학기술의 융합에서 파생되는 윤리성에 관한 질문은 계속될 것이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재설정하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재정의는 기술의 불완전성만큼 불확정한 주제로 떠오르고 있다. 시대의 자식이라 불리는 예술의 노정도 또 다른 전환기를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