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 살다 보니 봄여름에는 지네와 개구리를 잡고, 가을이면 으름 따 먹기, 겨울이 되면 동네 또래와 꿩을 잡는 등 자연과 함께 했던 기억이 어린 시절의 전부였다. 초등학교 때 어른들이 장래희망을 물으면, ‘잔디밭에서 놀쿠다!’(‘놀겠다.’는 제주 방언)’라 말해 핀잔을 듣기도 했다. 말이 씨가 돼서일까, 그는 곤충(메뚜기류)연구자가 되었다.

정세호가 박물관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1987년의 일이다. 그때 몸담게 된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연사박물관은 제주도의 독특한 민속과 다양한 자연사 분야가 집약된 종합박물관이다. 1978년 문공부 설계승인을 받아 1984년 5월 24일 문을 열었다. 공립박물관으로는 개관식에 대통령(전두환)이 참석한 유일한 곳이 아닐까 싶다.



곤충학술 조사-한라산 관음사 길목 ⓒ 2007


그는 사범대학에서 생물교육학을 전공했다. 일선 중등학교 교사의 길이 열려있었으나 대학 때 ‘곤충학실험실’에서 일한 인연으로 박물관을 택하게 된다.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국내에서는 자연사 분야 전시가 전무한 상황이어서 당시 박물관 육상동물전시관에는 획일적인 곤충 상자에 표본을 진열한 정도가 전부였고, 조류·포유류·양서류와 파충류 표본도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서는 자연사를 처음 보여주는 박물관이어서 관람객의 호응은 뜨거웠다. 그렇지만,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외국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도무지 방향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1996년 동물연구관으로 승진하면서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견학 기회가 주어졌다. 워싱턴을 찾아 스미스소니언 곤충전시관을 본 결과 ‘내 방법이 틀리지는 않았구나.’라는 것을 확인하고, 예산만 있다면 우리도 더 잘해 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뉴욕자연사박물관에서는 육상생태계 ‘디오라마’라는 전시기법을 보고 적잖이 감명을 받았다.
물새가 해안가 모래 위로 걸어가는 발자국을 그대로 연출한 것이었다. 박물관에 이런 세심한 연출이 필요함을 실감하며 돌아왔다. 요즘은 전문업체에 맡기지만, 당시에는 잔디를 캐서 말린 후 색을 입히고 바다 돌을 주워 드릴로 뚫고 조류 박제를 앉히는 일, 나뭇잎을 본드에 적셔 일일이 다림질을 해가며 가짜 나무를 만드는 일 등 모든 소품을 직접 제작해야만 했다. 곤충의 생태적인 디오라마 연출, 작은 상자 안에 식물과 표본을 함께 구성하는 등 창의적인 시도로 우리나라 대표 박물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제주곶자왈생태탐방-제주마을 큰낭이야기 투어 ⓒ 2025
좌측 4번째가 정세호 관장


1992년 정세호에게 가뭄 중 단비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우근민 제주도지사의 지시사항으로 ‘제주도 곤충 학술조사’를 그가 주관하게 된 것이다. 당시는 곤충이 미래 산업으로 관심이 커지던 때로, 한라산을 중심으로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는 곤충이 그 대상이었다. 곤충연구를 하려고 해도 공립박물관 특성상 예산 부족과 지역에 선행연구자가 없어 언감생심이었는데, 도정 최고책임자의 지시에 예산까지 주어졌으니, 물 만난 고기 마냥 제주도 곤충자원 조사는 힘차게 시작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분야별 최고의 곤충 전문가가 총망라되어 2년간이나 진행됐다.
밤낮없는 일정으로 육체 피로는 쌓여갔지만, 정신적 행복감은 높아만 갔다. 이를 충족하기 위한 명목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을 수 있었으니, 정세호에게는 천재일우인 셈이었다. 연구관 승진을 위한 면접 때의 일이다. 면접관이 ‘국가에 불만이 없냐?’고 물었다. ‘불만보다는 큰 혜택을 입었다고 했다.’‘왜냐?’는 질문에 ‘먹고 살길이 막막한 곤충연구자인 제가 직장도 다니고, 아들 셋을 낳아 행복한 가정도 꾸렸으니 이보다더 큰 수혜가 어디 있겠나.’라고 답했다. 이렇듯 정세호는 자신을 행복한 사람이라 말한다.



《대한민국을 구한 제주인》 특별전 개막식 설명하는 정세호 관장 ⓒ 2018


우리나라에서 박물관 붐이 일었던 2005년, 제주에도 다양한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서울에 있던 아프리카박물관도 그 중 하나로 개관 준비가 한창일 때, 서귀포 이전부지에서 한종훈 관장을 만나게 된다. 한 관장과의 조우는 정세호에게 박물관의 사회적 책무를 재인식하게 해준 큰 계기가 된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내가 지은 것이지만 박물관은 사회의 것이다.’라는 신념에서 알 수 있듯, 한종훈 관장은 박물관의 공공적 역할을 실천하려 애써온 선각자였다.

그리고 마침내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로 한 국가의 원동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문화인들의 새로운 사고를 원하고 있으며, 미래의 문화 흐름은 바로 우리 문화인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결정해야 한다. -중략- 이에 우리는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품고 각 단체의 역량을 결집하여 문화사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자 제주도박물관협의회를 창립한다.’라는 선언문을 채택하고 제주도박물관협의회를 창립하게 된다. 초대 한종훈 회장을 도와 정세호는 사무국장을 맡아 이를 주도하였다. 이를 기점으로 ‘박물관 천국 제주특별자치도’로서 박물관이 관광의 핵심축임을 분명히 하고자 2007년에 ‘박물관문화엑스포’를 전국 최초로 열어 3만 1,000명이 다녀가는 대성황을 이루어 냈다. 이를 통해 박물관이 제주 관광과 문화의 중심이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박물관이 문화축제의 한 장르가 될 수 있음도 확인했다.

제주 박물관인의 역량 강화를 위하여는 ‘고랑몰라 봐사알주’(百聞 不如一見이라는 제주 방언)’를 슬로건으로 국내와 일본, 중국 박물관을 견학했다. 그뿐만 아니라 ‘박물관 천국 제주특별자치도’ 공동 리플릿을 국·영·중·일문판으로 제작해 홍보에도 노력했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2019년부터 현재까지 제주도박물관협의회장을 맡아 박물관 발전에 앞장서고 있다.

정세호가 30여 년을 박물관에서 일하면서 보람 있었던 것 중 하나는 《대한민국을 구한 제주인》 특별전(2018.11-2019.2)이다. 6.25가 발발하자 2만여 명의 제주인은 평화를 지키고자 전장으로 달려가 백두산 밑 장진호와 혜산진까지 참전하게 된다. 이분들은 인천상륙작전, 서울탈환 등에서 혁혁한 공적을 세웠으며 고태문 대위, 강승우 중위 등은 우리나라 호국영웅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평화를 지키고자 했던 이분들의 업적과 뜻이 모여, 제주도는 ‘평화의 섬’을 도 브랜드 콘셉트로 확정했다.

또한, 곤충학에 입문한 지 40여 년의 연구 성과를 『제주도곤충총서』(2019)로 집대성한 것도 큰 보람이라고 그는 말한다. 제주도 곤충이 근대식 학명에 처음 등재된 1847년부터 170여 년의 선행연구기록과 그간 채집 관찰한 곤충 5,108종을 담은 5,000쪽 분량의 방대한 규모다. 마지막으로 공립박물관으로는 처음으로 누적관람객 3,300만 명을 개관 35년(2018.5.5) 만에 달성했다. 단순계산으로 우리 국민 65%가 방문한 셈이다.

‘자연에서 배워 박물관에 돌려준 삶이었습니다. 남은 생, 박물관을 위해 봉사하는 게 바람입니다.’ 정세호의 이 같은 말에는 제주 바람에 서린 예리한 여운이 뇌리 깊이 파고드는 듯했다.



- 정세호(鄭世瑚, 1963- ) 제주 출생, 제주대 생물교육학 전공, 동 대학원 석·박사. 세계야생화박물관 방림원 관장, 제주특별자치도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위원회 위원장. (사)제주도박물관협의회 회장.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연사박물관 연구원·연구관, 관장(2017-2019) 역임. 국무총리표창(2010), 문화체육부장관상(2006)·제주도지사상(1994) 수상. 『제주마을 큰낭이야기』(2024, 도서출판 각), 『한국산 산림서식 메뚜기 도감』(2010, 국립수목원), 『제주도 곤충』(2004, 일진사) 등 저서 15권. 논문·학술조사보고서 70여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