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주 추상으로 성찰하는 빛과 영원한 생명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신혜진의 작업은 보이는 존재와 보이지 않는 존재에 관해 탐구한다. 존재론 혹은 실재론과 같은 담론에 근거한 채 ‘콜라주 추상(collage abstraction)’이라는 조형 실험을 거듭하는 것이 그것이다. 작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빛과 영원한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녀의 실재론적 전환의 조형 실험과 반성적 신앙 그리고 그녀의 영원을 향한 여정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떠한 철학적, 미학적 의미를 지니는지 자세히 살펴본다. 



II. 타자의 죽음 - 보이지 않는 존재에 관한 성찰  
신혜진의 작업은 인간 존재에 관한 질문과 대답을 시각화하는 것에 집중한다. 이러한 그녀의 주제 의식은 우리에게 후기인상파 화가 고갱(P. Gauguin)의 한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D'où venons-nous? Qui sommes-nous? Où allons-nous?)〉(1897)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고갱이 인생 최대의 고빗길에서 창작에 매진했던 것으로,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철학적 질문으로 넘실댄다. 
신혜진 또한 작가 노트에서 “이 세상에서의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과 함께 나의 그림은 다시 시작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듯이 인간 존재론 성찰에 골몰한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지인의 죽음과 함께 찾아온 우울”에서 기인했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고 하는 고갱의 작품 속 질문처럼, 죽음이란 인간 존재가 알 수 없는 영역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이다. 누구나 죽음 뒤의 상황이 어떠할지 알 수 없다. 즉 ‘죽음 이후’란 인간이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유일한 차원으로, 다른 이의 죽음을 통해서 비로소 그 상황을 인식할 수 있는 ‘타자의 죽음’인 까닭이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의 삶은 우리를 존재의 문제에 성찰하도록 이끈다. 신혜진 또한 ‘What is Man?’(2019)이란 제목의 작가 노트에서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 사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 인생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라고 되뇌면서 고갱이 이미 성찰했던 오랜 인간 존재의 문제의식을 성찰한다. 
우리는, 타자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죽음 이후 육신이 흙으로 가는 것을 알지만, ‘영혼 또는 영혼을 품은 몸’은 죽음 이후에 어디로 가는지 알 길이 없다. 혹자는 영혼만 육신에서 나와 구천(九泉)을 떠돈다고 하고, 혹자는 그간의 업(karma)에 따라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나 영겁(永劫)의 윤회(輪廻)를 거듭한다고 하고, 혹자는 심판이 예정된 세상 종말과 휴거(携擧) 전까지 잠자는 상태로 머문다고 하고, 혹자는 연옥에서 정화의 과정을 거치거나, 지옥 혹은 천국으로 간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어떤 이는 죽음 이후에 윤회를 끊는 해탈의 경지로, 어떤 이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하나님의 나라 혹은 영원한 천국’으로 가기를 갈망한다. 이러한 갈망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이 현실에서 본 적 없는 세상 혹은 보이지 않는 세상을 간절히 염원하는 일련의 영적 태도와 맞물린다. 이러한 영적 염원은, 각 종교에 따라 다르지만, 공통되게 ‘보이지 않는 죽음 이후의 세계와 존재’를 어떠한 ‘영원한 세계’로 인식한다. 우리는 지금, 여기의 현실에서 어떻게 이러한 보이지 않는 세계와 존재를 보고 인식할 수 있을까? 많은 종교가 이야기하듯, 그것은 죽음 이후의 세계이자, 삶 이전의 세계이며, 삶의 현실에서 맞이하는 현생 이면의 세계기도 하다. 
신혜진은 삶의 현실에서 이러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성찰하고 시각화를 시도하면서 궁극적으로 그것을 보고자 한다. 보이는 존재들 안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보고 읽으려는 태도가 그것이다. 그것은 직접 볼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을 통해 현실 속 신자들의 마음과 삶 속에 실제로 거주하며, 그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기독교적 신앙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자, ‘세계 내 존재(In-der-Welt-Sein)’로서 ‘자기의 죽음을 의식하고 죽음을 향해 나가는 인간 존재’인 다자인(Dasein)의 철학을 설파하는 하이데거(M. Heidegger)의 인간 존재론, 그리고 세계 속에서 가시적 존재로부터 비가시성의 의미와 객체와의 상호작용을 성찰하는 메를로 퐁티(M. Merleau-Ponty)의 후기 현상학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실 속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이 비가시성은 가시성이 배제한 잔여물이기보다 원초적인 것이다. 여기에 신혜진의 작업이 지향하는 궁극의 목표가 담겨 있다. 즉 ‘유한한 가시적 현실에서 인간이 객체와 맺는 관계 지형을 탐구하고 그 안에서 무한한 비가시적 존재’에 관한 시각화를 통해서 그 근원적 의미를 모색하는 것이다. 



III. 콜라주 추상 - 실재론적 전환의 조형 실험과 반성적 신앙   
신혜진은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는 현실 속 인간 존재론을 가시적 세계와 비가시적 존재의 관계를 한데 아우르면서 탐구하기 위해서 ‘오브제를 통한 추상’이라는 조형 언어를 사용한다. 즉 땅이라는 현실의 지평과 하늘이라는 근원적 세계를 잇고 삶의 궁극적이고 근원적인 질문을 성찰하기 위해서 ‘추상’의 언어를 사용하되, 천 조각이라는 실물의 오브제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실존적 차원을 강조하기 위해 현실 속 구체적 ‘실제(actuality)’를 통해 형이상학적 ‘실재(reality)’를 증명하려는 ‘페브릭 오브제(fabric object)’라고 할 만한 납작한 천 조각들을 캔버스 화면 위에 콜라주의 방식으로 도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그녀의 작업은 어떤 차원에서는 섬유 회화(fiber painting), 섬유 부조(fiber relief)라고 부를 만하지만, 이 글에서는 간단히 ‘콜라주 추상’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신혜진이 ‘인간이란 무엇인가?(What is Man?)’라는 커다란 화두 속에서 탐구한 작품  〈Recovery〉(2017)을 보자. 이 작품은 염색한 작은 천 조각을 캔버스 위에 반복적으로 붙여 나가고 다시 그것을 해체하는 방식을 병치한 작업이다. 콜라주와 데콜라주(décollage)가 한 곳에 병치된 작품은 버려진 천 조각에 리사이클링 아트의 방식으로 생명력을 불어넣으면서 인간의 삶 자체를 은유한 추상이 된다. 2008년 폐업하는 직물점에서 맞닥뜨린 버려진 천들을 헐값에 사들여 자기 작업 속으로 끌어들인 그녀의 ‘섬유 회화 혹은 콜라주 추상’은, 생을 다하고 주검의 위치에 있는 것들을 예술로 되살린다. 신혜진에게 있어, 이 버려진 천 조각은 기독교 신앙을 통해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났던 그녀의 구원 경험과 맞물린 메타포로 간주되기에 족하다. 
신의 피조물인 인간이란 정녕 어떠한 존재인가? 신의 축복을 받았기에 서로 사랑할 존재가 아니던가? 신혜진의 또 다른 작품 〈너와 나 그리고 우리〉(2019)에서는, 무수한 천 조각을 콜라주로 덧댄 기하학적 추상과 함께 질퍽한 마티에르를 지닌 자유로운 표현주의적 추상이 좌우로 대립하면서 서로 다른 인간이 만나 사랑을 이루는 만남의 관계학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작품 〈전쟁, 그리고 빛 = NEW CREATION〉(2023)은 어떠한가? 인간의 만남은 사랑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시기, 질투, 미움은 전쟁의 폐허와 같은 상흔을 남기기도 한다. 파란색 인디고 염료로 염색한 천을 찢어 캔버스 위에 손바느질로 붙여 만든 작은 콜라주 조각들은 피폐해진 개별적 인간을 은유하고, 그들이 모여 만든 인간 군상은 폐허가 된 도시 이미지나 야만에 휩싸인 전쟁 국가와 같은 집단을 은유한다. 이러한 황폐한 전쟁터의 풍경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그녀는 최근의 국가 간 전쟁 관련 신문 기사를 콜라주하는 방식을 병행했다. 참혹한 어둠을 물리치는 화면 중앙의 색은 신의 은총을 은유하는 신성한 흰빛이다. 참혹한 전쟁으로 맞부딪친 두 인간 집단 사이에 개입하는 신의 은총으로 평화를 찾기를 바라는 작가의 간절한 염원한 담은 작품이라고 하겠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 있다. 필자가 신혜진의 이러한 ‘콜라주 추상’ 작업에, ‘실재론적 전환(Realist turn)의 조형 실험’이라는 부제를 제시한 이유는 무엇인가? 작가 신혜진이, 1999년 미국 철학자 그레이엄 하먼(Graham Harman)이 주창한 ‘객체지향 존재론(Object-Oriented Ontology, OOO)’이나 2007년 그레이엄 하먼과 프랑스 철학자 퀑탱 메이야수(Quentin Meillassoux) 등이 기후 위기의 시대를 타계하기 위한 철학으로 제안한 ‘사변적 실재론(Speculative Realism, SR)’을 이론적 바탕으로 삼은 채 자신의 콜라주 추상을 탐구해 오고 있는 까닭이다. ‘객체지향 존재론’은 “세상의 모든 객체(object)는 인간 인식을 초월하여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사변적 실재론’은 “실재(reality)의 본질이 인간 인식과 관계없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지만, 양자는 동일한 뿌리에 기초한 동류의 철학이다.  
양자 모두 인간 중심주의 사유를 탈주하고 객체들의 존재론적 독립성을 강조하면서 비인간 중심주의 사유를 전개하는 ‘존재론적 전환(Ontological turn)’, 더 구체적으로 ‘실재론적 전환’을 꾀한다. 이것은 존재론이 인간 존재론에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사물의 존재론으로 확장하는 것일 뿐 아니라, 세계와 사물의 존재 본질은 인간의 인식이나 경험과 관계없이, 객체 스스로 세상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실존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라는 점을 강조한다. 
작가 신혜진의 작업이, 신의 주권과 인간의 죄, 그리고 신의 구속(救贖)을 통한 구원의 은혜를 강조하는 개혁주의 신학을 근본적 바탕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그녀가 창작 이론의 또 다른 바탕으로 삼는 두 철학은 개혁주의 신학과 본질적으로 거리가 있다. 그렇지만 두 철학이 탈인간중심주의를 천명한다는 점은, 인간의 인식과 경험을 넘어서는 창조주에 대한 이해, 피조물의 독립성과 다양성 그리고 관계성의 차원에서 개혁주의 신학과 맞닿게 하는 주요한 지점이 된다. 이러한 지점은 신혜진이 인간의 욕망에 따른 이기주의가 낳은 물질문명의 각종 폐허를 목도하면서 ‘인간의 반성적 성찰’의 차원에서 비인간이라는 객체지향의 철학에 매료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평면적 오브제인 조각 천들을 캔버스 안으로 견인하는 신혜진의 콜라주 추상은 객체지향 존재론이나 사변적 실재론에 기초한 실재론적 전환을 도모하는 조형 실험의 장이면서도, ‘예술로 재생한 조각 천’들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자율성을 지닌 채 살아가는 인간이나 객체를 은유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성찰하는 장이 되기도 한다. 천 조각을 해체하고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예술적 재생뿐만 아니라 일련의 영적 재생을 맞물리게 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그녀의 작업은 하나님이라는 절대자 앞에서 콜라주 추상이라는 미술 언어로 실행하는 ‘회개적 성찰, 혹은 반성적 신앙’이라고 할 만하다. 



IV. 임마누엘의 빛과 생명 – 현존적 실재론과 영원을 향한 여정 
신혜진의 콜라주 추상은 객체지향 존재론과 사변적 실재론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현존적 실재론(Presential Realism)’이라고 할 만한 개혁주의 기독교 신앙의 토대 위에서 펼쳐진다. 
‘현존적 실재론’이란, 철학적 실재론을 신학에 적용한 ‘실재론적 신학(Realist Theology)’의 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의 존재가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실제로 인간과 세계 안에서 경험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이러한 입장은 “하나님은 세계를 초월하지만 동시에 세계 안에 내재한다”는 ‘내재적 초월성(Immanent Transcendence)’과 ‘성령 내주(indwelling of the Holy Spirit)’의 개념과도 궤를 같이한다. 이러한 현존적 실재론은 이미 성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 사건으로 증명되지 않았던가? 
신혜진의 작품 〈His Story〉(2024)에는 이러한 성육신으로 인한 하나님의 내재적 초월성에 관한 신앙고백으로 가득하다. 그녀는 작가 노트에서 다음처럼 적고 있다: “우리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 사이에서 살고 있다. (중략) 우리에게 보이지 않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은 History(His story)를 지금도 써가고 있다.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 이 다섯 가지 쏠라(sola, 오직)가 이 세상을 뒤덮고 있다.” 
이 작품은 푸른색으로 염색된 천 조각들이 콜라주의 방식으로 마치 블록처럼 쌓인 바탕 화면 위에 흰색의 둥그런 고리 모양의 아이콘(icon)을 올려놓는다. 기독교 성화에서 원형(圓形)의 아이콘은 넓게는 하나님과 같은 완전함, 영원함, 신성함의 상징이며,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과 신자들에게 약속한 ‘영원한 생명’의 상징으로 간주된다. 그녀의 작품 제목처럼 하나님의 역사를 표현하기에 제격인 도상인 셈이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신혜진의 또 다른 작품들에는 ‘성령 내주’ 혹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의 ‘임마누엘(Immanuel, עִמָּנוּ אֵל)’에 관한 신앙고백으로 충만하다. 그것은 “하나님은 초월적이면서도 동시에 세상 안에 그리고 신자의 삶 속에 함께한다”는 ‘임마누엘의 위상으로서의 실재’이자 ‘현존적 실재’라는 신앙고백과 같은 것이다. 신혜진의 작품에서 이러한 임마누엘의 신앙고백은 빛과 생명으로 드러난다. 가히 임마누엘의 빛과 생명이라고 할 만하다. 
작품 〈빛으로...〉(2024)는 황색 혹은 갈색으로 염색한 천 조각을 일일이 바느질해서 연결한 콜라주 화면 위에 임마누엘의 빛이라고 할 만한 신비로운 흰색의 빛줄기가 횡단하는 추상적 풍경을 선보인다. 삶의 현장 속에 비춘 임마누엘의 개념을 은혜로운 빛줄기의 모습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또 다른 작품 〈RED SEA〉(2024)에서 이 빛은 구체적인 역사적 삶 속에서 현현하는 빛나는 길로 등장한다. 이 작품은 구약 성서의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짙푸른 색의 천 조각들이 연결된 화면 위를 쐐기(∧) 형상으로 가르는 하얀 길로 표현하고 있다. 
나아가 삶의 구체성 안에 개입하는 성령의 ‘임마누엘’ 또는 ‘내재적 초월성’을 빛과 생명으로 표현하는 작가의 신앙고백은 작품 〈Water of Life 22_01〉(2022)에서도 이어진다. 염색 천 조각들을 손바느질로 잇고 콜라주한 검푸른색 화면을 환하게 밝히는 것은 가장자리에 표현된 하얀 생명수 줄기다. 여기서 검푸른색이 인간 실존의 우울함을 표현한 것이라면, 흰색은 하나님의 영원한 빛을 표현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 작품은, 죄에 빠진 목마른 인간 영혼을 살리는 생명수를 표현한 것이지만,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한복음 8:12)고 한 예수의 언약처럼, 인간의 삶 속에 개입한 ‘생명의 빛’을 표현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신혜진이 어느 가을날 아파트 창밖의 가로수 잎새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장면을 목도하면서 신의 메시지를 발견한 것처럼,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임마누엘의 신앙고백이란 이처럼 소소한 일상에서 매번 맞닥뜨리는 사건이 된다. 창조주의 ‘보이지 않는 능력과 신성이 모든 피조물에 분명히 보임으로써 알려진’(로마서 1:20) 셈이다. 그래서 작가 신혜진은 작품 〈감사 노래〉(2024)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경배하기를 지속한다. 이 작품은 하나님이 주신 은총을 하얀 바탕 위에 하얀 빛줄기로 표현한다. 
임마누엘의 빛과 생명에 감사한 까닭일까? 신혜진은 하얀색의 빛과 생명으로 표현한 하나님의 은총과 계시에 하얀 반석의 형상으로 응답한다. 작품 〈반석_01〉(2024)이나 〈반석_02〉(2024)은 임마누엘의 은총에 감사하면서 암울하고도 검푸른 세상에 굳건히 중심을 잡고 자리를 지키는 ‘믿음의 하얀 반석’이 되고자 하는 신혜진의 다짐을 엿보게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이 작품들은 강인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향한 ‘영원한 여정’에 나설 것임을 다짐하는 작가의 자화상과 다를 바 없다고 평가할 만하다. 



V. 에필로그 
작가 신혜진은 ‘콜라주 추상’의 조형 언어를 통해서 인간 존재론을 탐구한다. 그 존재론은 인간의 욕망과 이기주의가 낳은 물질문명의 폐허를 목도하면서, 객체지향 존재론과 사변적 실재론의 이론을 바탕으로 탈인간중심주의의 모토 아래 반성적 성찰을 거듭하는 실재론에 집중하는 것이다. 다만 작가는 이러한 실재론을 근본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치부하는 형이상학적 존재인 신에 대한 성찰과 그로부터 말미암은 인간 존재론을 탐구하는 것에서 찾는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시각화를 당면한 과업으로 삼은 신혜진의 작업은 개혁주의 기독교 신앙의 바탕 위에서 버려진 천이라는 ‘실제(actuality)’에 감정이입하고 손바느질로 되살려내는 ‘콜라주 추상’ 작업으로 견인하여 ‘실재(reality)’가 무엇인지를 추적하고 성찰한다. 신혜진은 현실 속 나약한 인간을 천 조각들로 상정하여 그것을 하나하나 이어주고 꿰매면서 죄에 빠진 인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거듭하면서, 구원자로서의 ‘현존적 실재’, 또는 영원으로 이끄는 ‘임마누엘의 실재’라고 하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작업으로 지속한다. 이처럼 그녀의 모든 작업은 신자의 삶 속에 하나님이 항상 함께한다는 작가의 신앙고백이 ‘지금, 여기’에 살아 꿈틀거리는 무엇이다. 그것은 작가에게는 한 편의 자화상이자, 고백록이며, 타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전하는 한 편의 간증 서신이라고 할 만하다. 
(20250201)


출전/ 
김성호, 「콜라주 추상으로 성찰하는 빛과 영원한 생명」, 『신혜진』, 전시 카탈로그, 2025.
(신혜진 개인전, 2024. 12. 18~2024. 12. 31, 지든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