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초상 - 푸른 멍의 상징 역사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작가 채성필은 지금까지 <익명의 땅>, <원시향>, <땅과 달>, <바람의 땅> 등 다양한 연작을 통해서 작품 세계를 펼쳐 왔다. 이번 전시는 이전의 <블루의 역사> 연작을 재해석한 <물의 초상> 연작을 선보인다. 이 글은 최근작을 ‘푸른 멍의 상징 역사’라는 개념으로 해설한다. 그것이 무엇이고 어떠한 미학적 함의를 지니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II. 구상과 추상, 필연과 우연, 채우기와 비우기의 경계
채성필의 작업은 추상과 구상을 넘나든다. 완연한 추상이나 구상 작업도 있지만, 대개 양자의 경계를, 더 구체적으로는 경계의 언저리를 오가는 것들이다. 경계는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구분 영역이지만, 그것은 이쪽과 저쪽을 포섭하는 공유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같은 회화라도 어떻게 보면 구상처럼 또 어떻게 보면 추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혹자에게는 푸르른 하늘 위에 쏟아지는 따스한 햇볕처럼 보이거나, 파도가 넘실대는 푸르른 바다의 풍광처럼 보이기도 한다. 때론 물길이 흐른 흔적을 닮은 추상처럼 보이기도 하다가 하얀 폭포수 혹은 빗줄기를 지면 위에 한가득 쏟아내는 풍경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또 어떤 그림은 일견 패턴화된 추상처럼 보이다가도 짙푸른 카펫 위에서 사람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군무를 추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채성필의 회화는 돌이 가득한 산등성이, 혹은 황량한 벌판에 피어나는 들풀과 바위, 혹은 심연의 바다 혹은 사람들처럼 보이는 이미지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그것은 관자에 따라 때로는 재현의 구상 풍경처럼, 때로는 표현주의의 비정형 추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채성필의 이러한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오가는 회화는 재현과 표현의 조형 언어가 겹쳐 있는 일명 ‘흘러내리기 기법(dripping technique)’으로 유발된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은 기법을 오랜 실험기를 거쳐 자신의 작업에 주된 조형 방식으로 견인해 왔다. 지구의 중력을 타고 흐르는 흙물에 섞인 물감의 낙하! 그것은 중력과 그것에 개입하는 작가의 통제와 조율이 만든 필연에 의한 것이자. 물질과 물질 사이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낙하운동의 궤적과 흔적을 남기는 우연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또한 그것은 작가 채성필이 흙과 물 그리고 안료를 조율해 만든 정교한 협주곡(concerto)이기도 하지만, 물질이 중력에 따라 바탕 면의 흙을 깨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펼쳐지는 자유롭고 즉흥적인 랩소디(rhapsody)이기도 하다.
체성필은 이러한 구상과 추상 그리고 필연과 우연의 경계를 오가는 작업을 위해서 몇 가지의 단계별 과정을 거친다. 먼저 그는 바닥에 캔버스를 눕혀 놓고 그 위에 엷은 천연 '펄 안료(pearl pigment)'을 몇 차례 입혀 은빛 광채가 나는 표면을 만든다. 이 천연의 안료는 광물을 주원료로 하고, 아라비아고무, 합성수지액 등의 전색제(展色劑) 혹은 접착제에 섞어서 도포하는 분말상(粉末狀)의 착색제로서 흙으로 대표되는 자연으로부터 추출한 것이다. 이후 그는 고운 거름망으로 여러 차례 거른 황토와 천연의 안료를 섞어 만든 흙물을, 수수나 풀로 엮어 직접 만든 ‘수수 붓’에 흠뻑 적신 후 드리핑 기법으로 화면 위에 이리저리 흩뿌리면서 점차 또 다른 옷을 입혀 나간다. 여기까지는 더하기와 채우기의 방식으로 이루어진 일차적 회화 작법이 적용되는 단계다.
이후 그는 빼기와 비우기의 방식의 이차적 회화 창작의 단계를 거친다. 흙물로 덮인 캔버스의 표면이 완전히 건조되기 전에 캔버스를 세워 놓고, 캔버스 표면 위에 강력한 수압의 물을 분사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물벼락을 맞은 물감은 이전 단계에 칠해진 먹과 흙을 일부 섞으면서 은빛 바탕 면을 타고 유유히 낙하하면서 물질의 흔적과 궤적을 만들어 간다. 이때 작가는 캔버스를 잡고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가면서 흙물의 낙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면서 자신만의 회화를 만들어 나간다. 이처럼 그의 작품은 구상과 추상, 필연과 우연, 채우기와 비우기의 경계 언저리를 오가고 배회하면서 창출한 신묘한 무엇이다.
III. 흙과 물의 만남이 이룬 세계
대비의 속성이 경계의 언저리에서 서로를 오가는 채성필의 창작 과정에는 ‘흙과 물’로 만드는 신비로운 세계가 드넓게 펼쳐진다.
화가 채성필은 동양 철학의 오행(五行) 중에서 ‘흙(土)’을 ‘불(火), 물(水), 나무(木), 쇠(金)’을 모두 품는 근원적인 요소로 인식하면서 일명 ‘흙 그림’을 그린다. 흙은 미생물, 식물, 동물 등 생명체뿐 아니라 비생명체에 이르기까지 자연 생태계의 모든 물질을 품어 안음으로써, 자연을 낳는 근원으로 자리할 뿐만 아니라, 복잡다기하게 상호 연결된 생태계의 질서와 균형을 유지하는 터전이기도 하다.
채성필은 인간이 떠나온 자연으로서의 원시향(源始鄕)이자, ‘지금 여기’에 소환되는 생명 근원의 세계로서 흙을 소환한다. 그에게 흙이란 “스스로 그러하게 하는 것, 과정으로서의 창작(poietique), 즉, 원래 그러했던 것처럼, 있는 그대로의 자연”인 셈이다. 또한 그에게 흙은 인간 존재의 기원이자, 생성소멸의 생명을 품은 출발지이자 생명이 다하는 마지막 종착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흙은 인간이 ‘주검’의 상태로 다시 회귀(回歸)하는 운명을 예정한 중간 기착지(寄着地)라고 할 만하다. 즉 ‘흙’이란 인간이 발을 디디고 서 있는 ‘지금, 이곳’의 차안(此岸)이라는 리얼리티의 세계이자, ‘나중, 그곳’을 상정하는 피안(彼岸)이라는 상징의 세계이기도 하다. 엄밀히 말해,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간접 경험’으로 인식되는 세계라는 점에서, 이 ‘흙’의 세계는 차안을 포함하되 차안과 피안을 잇는 경계의 영역이자 ‘현실계’와 ‘현실계 이후’를 연결하는 기착지로서의 ‘중간계’이자 ‘경계의 언저리’라고 할 만하다. 그래서일까? 채성필의 작업에서 흙은 물질적 세계뿐만 아니라 영적 세계를 만나게 하는 장이 된다.
변화와 재생의 놀라운 능력을 지닌 흙을 자신의 창작을 위한 질료로 가져온 채성필의 작업은 노동으로 말미암은 땀과 창의적 숨결이 맞물리는 것이기도 하다. 인류가 흙에 씨를 뿌려 경작하여 자연 생성의 변화를 불러온 것처럼, 그는 캔버스 위에 생성, 변화의 사건을 견인한다. 따라서 특수한 조형 기법과 노동으로 캔버스에 올려져 밀착한 흙의 존재는 변화의 사건들이 만나는 장이자 그 변화의 사건들을 창의적으로 한데 아우르는 터전이 된다.
그런데 시각적으로 마치 두꺼운 마티에르를 가진 것처럼 보이게 만든 환영의 흙층은 실상 캔버스 위에 정제된 흙이 얇게 층을 이룬 납작하고 미세한 표면의 존재이다. 어떻게 이러한 마술적 효과가 가능한 것일까? 채성필의 작업에서 흙의 놀라운 변화와 생성을 선보이는 마술적 효과는 ‘물’과의 만남을 통해서 가능해진 것이다. 흙이 물을 만나 이룬 흙물 그림! 그것의 효과는 물이 흙에 침투한 양과 시간, 중력에 순응하는 흙물의 낙하 속도, 그것을 거스르는 작가의 필연적 개입과 그에 따른 우연의 효과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그의 작업에서, 캔버스 위에 흙물의 흔적을 남기고 흙에서 증발한 물은 존재하지 않으나, 흙과 만나 벌인 일련의 ‘사건 흔적’을 통해 “물이, 그때, 그곳에 존재했었음”을 증빙한다.
채성필이 이러한 흙, 물, 중력, 필연, 우연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시도한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되었다. 프랑스 유학 초기 그가 좁은 부엌에 화폭을 눕혀 놓고 회화 작업을 한창 하던 중 그의 아내가 준비하던 음식을 실수로 바닥에 쏟았을 때, 그는 그림을 보호하려고 순간적으로 캔버스를 일으켜 세워 놓았는데 그 순간 캔버스에 나타난 놀라운 변화를 맞닥뜨리게 되었다. 마르지 않은 물감이 중력에 따라 캔버스 위로 줄줄 흘러내리면서 ‘저절로 그려진 회화’! 그것은 창작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발견이었다. 그것은 이 땅의 중력이 만들어낸 필연이었으나 작가에게 그것은 자신이 잠시 부재했던 우연의 순간이었다.
이 우발적인 사건은 화가 채성필에게 ‘흙물이 중력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필연 속에 우연을 던져두는 새로운 창작의 언어’를 구상하게 만들면서 그의 작업에서 대전환점을 마련한다. 채성필은 ‘중력’이라는 필연의 세계에 자신의 흙물 회화를 던져 ‘예측 가능’과 ‘예측 불가능’ 사이에서 우연적 효과를 건져 올린다. 흙을 가르면서 낙하하는 물과 물감의 흐름을 지켜보다가 캔버스를 기울이거나 캔버스의 방향을 바꾸어 흐름을 조율하면서 간헐적인 개입을 지속하면서 흙물이 낙하하는 예측하기 쉽지 않은 우연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렇듯 채성필의 작업에서 물은 흙을 만나 변화를 창출하고 그것을 지속하는 원동력이다. 물은 흙의 농도를 조절하고 상호작용을 하면서, 중력에 따라 속도와 강도의 변화를 견인하는 그의 독특한 흙물 회화의 근원적 힘인 셈이다.
IV. 푸른 멍 – ‘상징 역사’로서의 물의 초상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물의 초상> 연작은 이전의 <블루의 역사> 연작을 의미심장하게 재해석한다. 그는 <블루의 역사> 연작을 선보이면서 관련한 작품을 다음처럼 설명한 바 있다: “블루는 멍이고 희망이며, 대지를 감싼 바다이고 역사를 지켜본 하늘이다.”
그의 작가 노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블루는 하늘이나 바다의 대표 상징색으로 인식되어 온 만큼, 자연의 또 다른 표상이라고 할 만하다. 심리적으로 안정, 고요, 신뢰를 주는 블루는 서구 예술사에서 고귀함, 신성함과 연관된 종교적 상징으로 일찌감치 사용되어 온 바 있다.
흥미로운 것은, 블루가 품은 ‘긍정의 상징적 메시지’ 너머에서 작가 채성필이 멍, 아픔, 상처와 같은 ‘부정의 역사적 내러티브’를 발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몇몇 작품은 국내외에서 벌어진 특별하고도 구체적인 사회적 사건들을 모티브로 삼아 창작한 것이다. 예를 들어 점점이 떨어진 푸른 점들이 가득 찬 작품은 한국의 세월호 참사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촛불 집회’를 생각하면서 그린 것이다. 굽이치는 바다의 물결들처럼 보이는 이미지 또한 그가 멀리 프랑스에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역사를, 미디어를 통해서 목도했던 시절에 그린 작품이다. 블루란 ‘푸른 하늘과 같은 희망’과 ‘푸른 멍과 같은 우울’의 감성을 동시에 함유하는 만큼, 이처럼 진보와 질곡의 역사를 상징한다.
다분히 추상적 이미지인 그의 <블루의 역사> 연작이 제시하고 있는 ‘역사’라는 제명은 그런 면에서 상징적이며 은유적이다. 생각해 보라. 땅을 가르고 흐르는 물길은 역사(歷史)에 대한 숨겨진 상징처럼 읽힌다. 몇몇 작품은 그가 특정 역사를 주목하면서 그린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보편적인 역사 자체에 대한 작가의 회화적 진술이 된다.
이번에 선보이는 <물의 초상> 연작은 몇몇 특수한 사회적 사건에만 매몰되지 않고 보편적인 역사의 담론으로 보폭을 확장한다.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이라는 ‘역사’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역사가 ‘과거에 있었던 사실에 대한 기록이자, 해석’임을 우리에게 전한다. 역사가 대개 ‘문자의 발명 이후, 문헌 자료에 의해서 기술되는 역사 시대’를 조명하는 과업임을 생각할 때, 작가 채성필이 역사적 담론으로 접근하는 <물의 초상> 연작은 이 문자의 시대 앞뒤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물의 초상> 연작은 <블루의 역사> 연작을 새롭게 재해석한 것이기도 하지만, “시적 상상력을 통해 태초의 모습을 지닌 자연-근원적 공간”을 탐구해 오던 <익명의 땅>이나 <원시향> 연작을 지속하는 또 다른 버전의 작업이기도 하다. 시원(始原)의 푸르른 땅은 그래서 현재의 시공간을 넘어서는 추상적 상징이자 은유가 된다.
생각해 보라. “선사 시대는 인류 역사의 95%를 차지한다”고 전해진다. 이 시기는 고고학이 담당하는 시대이다. 따라서 채성필이 이미지로 진술하는 역사란 선사 시대, 역사 시대를 구분하는 연구 방법론을 넘어서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역사’ 자체를 상징한다. 원(源)역사, 전(前)역사, 혹은 역사 후기 등의 시기를 모두 아우르는 역사란 보편성 안에 특수한 역사를 모두 품는 상징이자 담론이다. 그것은 ‘역사이면서 동시에 역사가 아닌 것’으로,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언급한 상징 권력이나 상징 자본처럼 작명해 본다면, 가히 ‘상징 역사(histoire symbolique)’라고 할 만하다. 채성필의 <물의 초상> 연작은 어떠한 시대의 이야기이면서 순차적이지 않은 담론과 상징을 시각화하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채성필의 작업에서 ‘상징 역사’는 푸른 멍처럼 자리한다. 광물질의 은분과 흙이 칠해진 캔버스 바탕 위에 질곡을 헤치면서 굽이굽이 흐르면서 만드는 푸른 멍! 그것이 남긴 존재의 흔적과 자취를 감춘 부재의 무엇을 통해서 그는 상징 역사가 한 덩어리로 선보이는 아픔, 상처에 대한 치유의 마법을 꿈꾼다. 따라서 채성필의 <물의 초상> 연작은 이 시대와 저 시대를 넘나드는 상징 역사로서, 과정으로서의 시적 상상력과 질료에 관한 연금술(鍊金術)적 탐구를 지속하는 유의미한 미적 성과물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20240205)
출전 /
김성호, 「물의 초상 - 푸른 멍의 상징 역사」, 『채성필』, 2025.
(채성필, 2025. 3. 5~4. 30, 데이트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