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하는 것들에 관한 목격자로서의 증언과 애도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최원준의 사진 작업은 2014년 4월 16일 안산 단원고의 동급생, 친구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가져온 세월호 참사를 맞닥뜨리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2015년 세월호 참사를 대면하면서 타인의 죽음을 우리의 죽음으로 인식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카메라를 들었다. 그는 오랫동안 카메라 앵글에 포착되는 피사체를 통해서 참사의 상흔을 더듬으면서 “타인의 고통 앞에서 우리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면서 사진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해 왔다. 
그의 사진 작업에는 슬픔에 가득 찬 세월호 유가족들의 모습과 더불어 사고 규명에 무책임했던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와 집단적 저항이 그리고 참사 이후 수습 과정에서 많은 국민에게 주어졌던 지난하고도 고된 애도의 시간이 담담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의 사진은 실제 사건, 사고를 채증하고 기록하는 보도사진에 담긴 ‘다큐멘터리 사진(documentary photography)’의 정체성으로 출발한 이래, 사건의 전개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실제의 현장에 투영된 ‘다큐멘터리 예술 사진(documentary art photography)’의 장으로 자리 이동해 왔다. 2015년부터 작업을 해왔지만, 사건이 있은 지 10년이 지나는 길목에서 비로소 선보이는 최원준의 사진 연작 〈낯설어진 이야기, 익숙해진 숨쉬기〉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현실 속에 벌어졌던 거대 사건에 대한 목격과 증언이란 어떠한 의미인지에 관해서 성찰하게 만든다.
병풍도 부근 해상의 참사 현장과 맞닿은 팽목항으로 나가 바다 위에 헌화하며 ‘떠난 이들’의 영혼을 위무하는 유족들, 상처를 켜켜이 쌓은 채 뭍으로 나온 거대한 세월호의 몸체와 그 앞에 노란 리본으로 연대에 선 유족과 시민 행동가들의 모습은 그의 사진에서 대개 뒷모습이나 얼굴이 배제된 부분적 모습을 통해 익명성의 존재로 드러난다. 심지어 최원준이 추적한 노란 옷과 노란 염색 머리를 한 채 오랫동안 상례(喪禮)의 시간으로 보내는 한 유족의 모습은 실제의 모습 그대로임에도, 관객에게는 뉴스로 맞이했던 익명의 세월호 유가족이라는 전형화된 아이콘처럼 다가선다. 그는 왜 트라우마의 시간을 사는 유족을 몰개성의 인물로 등장시킨 것일까? 그것은 ‘떠난 이’라는 피해자의 부재를 더욱 극대화하는 장치이자, 국가적 책무를 방기하고 사회적 재난을 낳은 보이지 않는 가해자에 대한 격렬한 저항을 침묵의 언어로 대신하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생각해 보라. 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자와 유족의 고통은 주디스 버틀러 (Judith Butler)의 철학적 언명인 ‘애도할 수 없는 생명(ungrievable lives)’처럼, ‘공적 애도의 장’에서 배제되거나, 정치적 불편함으로 치부되었고, 유가족과 시민들의 추모 운동은 ‘국가가 기꺼이 애도하지 않으려 한 생명’을 기어코 애도하고 기억하려는 투쟁이었다. 이러한 차원에서 최원준의 사진은, 존 태그(John Tagg)의 지적처럼, 국가 폭력, 은폐, 사회적 무관심과 같은 ‘권력관계와 사회 구조를 드러내는 도구’로서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그뿐인가? 최원준의 사진은 이러한 현장을 배경으로 한 인물뿐만 아니라, 현장의 장소적 맥락과 더불어 시간의 흔적을 침묵으로 증언하는 사물들을 기록하기도 한다. 물속에서 가까스로 꺼낸 녹슨 세월호의 육중한 몸체도 그러하지만, 생환자를 기다리는 유족들의 임시 숙소 속 이부자리가 어지러이 놓인 한 침대, 망자의 영정 사진 앞에 놓인 묵주와 십자가, 흰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인 한 무더기의 흰 국화, 그리고 항구의 바닷바람에 날리고 있는 노란 리본의 물결에 이르기까지 말이 없는 사물들은 망자를 위한 묵언수행을 하는 중이다. 
당시 최원준에게 있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였을까? 사건을 채증, 기록하고 사회에 고발하는 일? 아서라! 그의 세월호 참사와 고통의 이미지는 단지 사실을 증명하거나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사진은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보도사진에서 우리가 발견하곤 했던 익숙한 현실 일부를 배제하고 또 다른 낯선 일부를 선택하여 우리에게 선보임으로써, 관객의 마음에 흔적을 남기고, 타인의 고통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즉 그의 ‘다큐멘터리 예술 사진’ 또는 ‘작가주의 다큐멘터리 사진(authorial documentary photography)’은 현실의 사건을 관람자에게 상기하도록 돕는 단순한 매개자의 역할을 자임하면서도, 관람자에게, 그들이 단순한 관객이 아닌 잠재적 목격자라는 사실을 상기하게 만든다. 그렇게 함으로써 관람자에게 잠시나마 사건에 관한 윤리적 증언의 지점을 서성이거나 가로지르게 만든다. 
사진 이론가 수잔 손택(Susan Sontag)은 『타인의 고통에 관하여(Regarding the Pain of Others』(2003)에서 타인의 고통을 담은 사진 이미지를 바라보는 관람자를 ‘목격자(witness)’로 정의한다. 그녀는 전쟁, 폭력, 재난의 사진 이미지가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재현하고 소비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보는 관람자에게 어떤 윤리적, 정치적 긴장을 요구하는지를 탐구한 바 있다. 손택이 주장하듯이, 사진은 사건의 증언이자, 집단적 기억의 매개체로서 사진의 관람자를 목격자의 자리로 초대하고, ‘목격자-되기(witnessing)’를 요청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최원준의 사진은 인재(人災)로 인한 참사로 ‘떠난 이들’과 그 사건 뒤에 ‘남겨진 이들’이 떠안은 고통을 그저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에게 ‘목격자-되기’ 또는 ‘목격자로서 증언하기(bearing witness)’를 제안하고 요청한다고 평할 수 있겠다. 
사회적 대참사의 상흔이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많은 이의 어깨와 가슴을 누르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도 세월호야?” 혹은 “또 세월호야?”라는 냉소의 시선은 여전히 사회 일각에서 꿈틀거린다. 국가적 트라우마를 그저 과거의 일로 되돌리고 망각의 길로 나서고자 하는 일부 시민과 관람자에게 최원준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일련의 사회적 책임에 따른 윤리적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보도와 예술의 경계에서 만들어진 그의 사진들은 특정 순간의 진실을 포착하는 동시에, 그 순간을 넘어서는 의미를 탐색한다. 즉 그의 사진은 단순히 비극의 장면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마음을 찌르고 흔들면서, “너는 이 고통을 어떻게 기억하고 애도할 것인가”를 묻는 이미지인 셈이다. 
손택이 경고하듯, 고통을 재현한 사진이 ‘박제된 비극(frozen tragedy)’ 혹은 ‘소비되는 스펙터클(consumed spectacle)’로 전락하지 않게 하는 것은 관객 스스로의 응답에 달려 있다. 최원준의 사진은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적 사건과 트라우마를 안은 관객 사이를 매개하면서 관객이 세월호 참사라는 사회적 기억을 현재화하면서도 그것이 ‘피상적 감상, 무력한 연민으로 소비되지 않도록 담담히 경고한다. 이제는 ‘낯설어진 이야기, 익숙해진 숨쉬기’가 된 오늘날 현실 속에서 공동체 기억의 책임과 연대의 의무를 성찰하도록 요청하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한편, 최원준은 2021년부터 시선을 공간으로 옮겨 가림막 너머 공사장이라는 ‘변화의 풍경과 과정’에 주목하는 〈Blurring Scene - Landscape Series〉에 골몰하고 있다. 그는 도시의 대규모 공사 현장을, 하루의 공사를 끝낸(혹은 시작 전인), 새벽 시간에 촬영하는 방식으로 가림막 뒤에 존재하는 공간을 우리에게 선보인다. 가림막 뒤 공사장은 ‘잠시나마 사건을 은폐한 공간’이자, ‘완공과 동시에 사라지는 일회성 공간’으로, 불확정적 시간을 품은 공간이다. 그곳은 변화를 앞두고 있지만 불확실성이 교차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드러남과 감춤, 생성과 소멸의 경계가 교차하거나 뭉뚱그려져 있다. 모호한 경계를 품은 가림막 뒤의 공사장은 우리에게 무심히 지나치는 공간과 시선의 한계를 재고하게 만든다. 
글을 마치자. 최원준은 지금까지 두 사진 연작을 통해서, “주로 쉽게 소비되거나, 잊히는 것들에 주목한다. 사라져가는 풍경, 희미해진 기억, 사회적 비극 속에 남겨진 사람들의 흔적 같은 것들”을 목격하고 탐구하면서 그것을 ‘침묵의 미적 언어’로 승화하는 일에 골몰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최원준의 두 사진 연작이 지닌 미학적 함의는 ‘소멸한(하는) 것들에 관한 목격자로서의 무언(無言)의 증언과 애도’라고 평할 만하다. (20250629) 


출전/ 
김성호, 「소멸하는 것들에 관한 목격자로서의 증언과 애도」, 『제22회 사진비평상-창작상』, 전시 카탈로그, 2025. 
(제22회 사진비평상-창작상(최원준, 황준하), 2025. 8. 1~8. 14, 충무로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