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세상에 전하는 온화한 사랑과 위로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최승애의 작업은 ‘사랑’에서 싹튼다. 그녀는 사랑에 관한 문화적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하트 아이콘(heart icon)’을 통해 함께하는 세상에 요청되는 오늘날 사랑의 의미를 되묻는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하트 아이콘으로 다양하게 변주하는 그녀의 작업에 담긴 미학적 함의는 무엇인가?
I. 자기애와 이타애 - 하트 아이콘이 전하는 온화한 사랑
최승애의 작업은 부조에서 환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하트 아이콘(♡)’의 변주를 선보인다. 오늘날의 기호화된 하트 아이콘뿐만 아니라, 쿠션을 반으로 접어서 만들어진 형상에서 추출된 일명 쿠션 하트 아이콘, 그리고 물방울과 풍선 형태가 접목된 유연한 하트 아이콘 등이 그것이다. 또한 작가는 하나의 하트 아이콘뿐만이 아니라, 여러 개가 수직으로 쌓아 올려지거나 꽃이나 식물 이미지처럼 둥그렇게 집적되기도 하고, 커다란 하트 위에 인물, 반려동물, 구름과 같은 이미지가 정겹게 공존하기도 한다. 이처럼 최승애의 작업은 개별체나 군집의 하트 아이콘을 다양하게 변주하면서 ‘공존의 사회’ 및 ‘사회적 인간’을 동시에 은유한다는 점에서, ‘함께하는 세상’에 전하는 온화한 사랑과 위로 그리고 조화의 메시지’를 품은 작업이라고 정의할 만하다.
생각해 보자. 하트 아이콘은 흔히 사람의 심장 혹은 마음을 단순화한 형상이라고 해설된다. 문화사적으로 볼 때, 하트 아이콘은 이러한 심장, 마음에서 발원하는 사랑의 상징이 된다. 고대 그리스 시대 최음제, 피임제로 사용되었던 ‘실피움(Silphium)’이라는 식물의 씨앗 모양에서 하트가 기인했다는 주장은 하트가 사랑에서 출발했음을 상기하게 만든다. 중세 기독교에서는 가시가 둘러싸인 불꽃 심장 혹은 하트 모양을 통해 인류를 향한 예수의 ‘성심(Sacred Heart)의 사랑’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거나, 13세기 중세 필사본에서는 마치 심장처럼 덩어리로 뭉뚱그려진 하트 아이콘이 ‘연인 사이의 사랑’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사랑’을 의미하는 하트 아이콘이 그 의미를 탈각하고 보편화된 문양처럼 사용된 것은 르네상스 시대에서였다. 15세기에 오늘날 하트와 유사한 형태가 의복, 동전 등의 장식 문양에 두루 사용되었고, 16세기에 52장의 ‘프랑스식 카드 덱(French-suited deck)’ 등의 카드 놀이판 디자인을 통해서 비로소 오늘날의 하트 아이콘으로 구체화, 보편화되기에 이르렀다.
하트 아이콘은 오늘날에도, 본래의 의미가 퇴색된 감이 없지만, 여전히 ‘사랑’이라는 의미를 담은 상징적 기호로 사용된다. 하트 아이콘은, 자기애(自己愛)나 이타애(利他愛)를 두루 아우른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과도한 자기 집착에 함몰된 나르시시즘(Narcissism)의 ‘병리적인 자기애’를 표상하지는 않지만, 그리스 철학에서 언급하는 ‘건강한 자기애’라는 의미의 ‘필라우티아(Philautia)’를 포함한다. 나아가 하트 아이콘은 연인 사이의 육적인 사랑인 에로스(Eros), 동료 간의 애정을 의미하는 필리아(Philia), 가족애라는 스토르게(Storge), 그리고 인류를 향한 자기희생의 아가페(Agape) 등 사랑의 다양한 감정을 두루 아우른다.
그렇다면, 다양한 하트 아이콘의 변주를 선보이는 최승애의 작업은 어떠한가? 그녀의 작업은 나르시시즘이 아닌 필라우티아라는 건강한 자기애를 포함하되 기본적으로 ‘타자를 향한 사랑’에 방점을 찍는다. 작품을 보자. 빨간 쿠션을 가슴에 끌어안고 환하게 웃는 여인상을 선보이는 작품 〈휴식〉은 작가 자신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빨간색 쿠션은 작가에게 위로를 주는 유연하고도 푹신한 단순한 오브제의 의미를 넘어, 하트 형상을 공유한 작가의 마음이자, 사랑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건강한 자기애로부터 출발한 이타애’의 메시지를 읽는다. 최승애의 이 작품과 관련한 작업 노트를 살펴보자: “코로나 때 외출이 자유롭지 않은 분위기에서 나름의 밝고 즐거운 삶을 느끼자는 위로의 마음과 희망을 담은 작품입니다. 때론 힘들고 절망적이기도 할 때 좌절하지 않고 나 자신에게 휴식과 위로를 주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자존감은 사랑이 담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작품은 기본적으로 삶의 위로를 담고 풀어가고 있습니다. 나의 이기적인 마음보다 ‘너는 잘 지내고 있니?’라고 토닥토닥 안아줄 수 있는 마음의 수양이기도 합니다. 나 스스로 사랑해 줄 수 있는 마음의 성숙이 있어야 타인도 보듬어 줄 수 있는 인성이 키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나이 들어가며 ‘온화한 사랑’의 마음을 잃지 않기를 소망하며 작업해 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최승애의 작업은 자존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필라우티아라는 건강한 ‘자기애’뿐만 아니라 그것에서 자라는 에로스, 필리아, 스토르게, 아가페와 같은 다양한 ‘이타애’의 메시지를 두루 껴안는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최승애의 작업을, 그녀가 직접 언급했듯이, 하트 아이콘이 전하는 “온화한 사랑”이라고 평할 만하다.
II. 되기의 정동 - 받은 사랑과 주는 사랑
자기애와 이타애의 균형감 있는 실천을 시도하는 ‘온화한 사랑’은 최승애의 작업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 그것은 무엇보다 최승애가 인용하는 ‘하트 아이콘’ 자체에서 발현된다. 그것은 인간의 심장 형상을 단순화하면서 잉태했지만, 때론 실피움의 씨앗 형태, 때론 사과나 복숭아의 열매 형태와 겹치면서 오랫동안 ‘사랑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 왔다. 최승애의 작품이 길어 올린 하트 아이콘은 부드러운 곡선을 지닌 윗부분과 감정의 방향을 상징하는 뾰쪽한 끝을 지닌 아랫부분 그리고 인간관계의 조화와 균형을 떠올리게 만드는 좌우 대칭 형태를 통해 ‘사랑’, 그것도 ‘자기애와 이타애를 두루 껴안은 온화한 사랑’이라는 상징적 메시지를 전한다.
그런데 이 하트 아이콘은 대개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트 위에 사람이나 새, 반려견이 함께 올라앉아 있거나 여러 개의 하트가 병치된 방식으로 하트는 늘 누구(무엇)와의 만남을 시도한다. 작품 〈비움B〉를 보자. 옆으로 누운 하얀 하트 아이콘 위에 검은 사람이 앉아서 어딘가 바라보고 있는 형상의 레진 재질의 이 작품에서 하트는 마치 커다란 바위처럼 인간에게 위로와 편안한 휴식을 제공한다. 같은 형상의 세라믹 부조 작품 〈바라보기〉나 〈도란도란B〉는 하트 위에 올라앉은 인물 형상을 더욱 선명하게 구체화하고 하늘 위로 떠다니는 구름을 추가하여 단순한 형상의 작품을 풍경처럼 치환함으로써 이 하트 아이콘이 전하는 위로와 휴식 그리고 사랑의 의미를 강화한다. 또한 단순하고도 붉은 하트 아이콘 위에 아이와 강아지가 함께 기대어 앉은 작품 〈꾸러기〉나 하트 위에 두 아이가 함께 앉아 있는 작품 〈도란도란B〉는 위로와 휴식뿐만 아니라 정감 가득한 이타애, 즉 ‘타자를 향한 사랑’을 전한다.
한편, 하트 형상 위에 마치 사과의 잎처럼 굵거나 가는 선에 매달린 구름 형상을 함께 선보이는 스테인리스 스틸의 〈falling in love〉 연작은 또한 어떠한가? 하트 위에 떠오른 뭉글뭉글한 구름의 형상은 “사랑에 빠진 누군가의 가득 차오르는 행복한 마음”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그렇다면, 최승애가 인용하는 ‘하트 아이콘’을 쿠션 형태와 접목한 또 다른 연작은 ‘온화한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어떻게 전하는가? 이 연작은 ‘쿠션을 반으로 접은 형상’을 근간으로 한, 일명 ‘쿠션 하트’라고 부를 만한 도상이 여러 형식으로 다양하게 변주된 것이다. 어찌 보면 쿠션처럼 보이고 또 어찌 보면 입술 모양이나 하트처럼 보이는 쿠션 하트는, ‘쿠션이 물리적으로 접힌 상태’를 스테인리스 스틸을 단조 기법으로 조형하고 붉은색, 보라색의 캔디 도장으로 마감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부드러운 형상과 견고한 재료가 맞물리면서 선보이는 이미지는 감각적 긴장과 의미의 재배치를 유도한다. 견고한 재료를 사용했음에도, 쿠션 하트 이미지로 인해 ‘유연성, 탄력성, 그리고 응축과 확산’의 분위기를 배태하고, 표면을 정제되고 차분하게 마감한 캔디 도장은 관객의 모습을 비추는 반영 효과로 인해 차가움 대신 따스하고도 다정한 감정을 전달하면서 ‘온화한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관객에게 효율적으로 전한다.
그뿐인가? 이 연작은 쿠션 하트가 마치 모듈처럼 사용되고 결합하면서 다양한 변주를 선보인다. 두 개의 쿠션 하트가 수직으로 결합한 〈어부바〉, 세 개의 하트로 구성된 〈삼중주〉, 다섯 혹은 여러 개의 하트로 구성된 〈하모니〉, 여러 하트가 모여 둥근 모양을 만든 〈별〉, 그리고 다수의 하트가 마치 식물 형상으로 이어진 〈향기로움〉과 같은 다양한 변주를 통해, 이 연작은 나라는 주체가 타자와 맺는 ‘온화한 사랑’의 메시지와 ‘사랑의 관계 지평’을 효과적으로 선보인다.
최승애가 선보이는 ‘온화한 사랑’은 들뢰즈와 가타리(Gilles Deleuze et Félix Guattari)가 언급하는 ‘정동(affect)’처럼 만남의 관계 지평을 확장한다. 이들이 말하는 ‘정동’이란, ‘한 개인 주체가 느끼는 주관적 감정(affection)’과 달리, ‘인간 주체가 세계 속에서 타자와 만날 때 발생하는 사회관계망 속에서 생성되는 힘과 능력의 변화’를 뜻한다. 즉 들뢰즈와 가타리가 해설하는 정동은 한 개인 주체의 내부에서 완결되는 감정에 집중하기보다, 일련의 ‘배치(agencement)’ 속에서 ‘타자 되기(devenir-autre)’를 실현하는 일에 골몰한다. 따라서 최승애의 작업이 탐구하는 ‘온화한 사랑’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관점으로 말해, ‘강아지 되기, 나무 되기, 새 되기, 외국인 되기, 소수자 되기’와 같은 ‘타자 되기의 정동과 사랑’을 실천하고 종국에 타자와의 ‘함께-되기(devenir-avec)’를 실천하는 셈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최승애의 ‘온화한 사랑’은 ‘정동’의 진동이며, 이 진동은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흐름과 연결망 속에서만 존재한다. 최승애가 탐구하는 ‘온화한 사랑’이란 소유하려는 충동의 욕망이기보다는 흘려보내려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것은 인류와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을 타자에게 혹은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주는 사랑’이기도 하다. ‘주는 사랑’은 사회학자 마르셀 모스(Marcel Mauss)의 증여(gift)의 개념처럼, 단순한 물질 교환이 아닌 사회적, 정서적 관계를 맺는다. 증여는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선물처럼 ‘주는 사랑’은 주는 순간, 이미 타자의 세계에 속하면서 나와 타자의 관계를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까닭이다. 이처럼 최승애의 온화한 사랑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정동의 배치’라는 관계적 사건과 더불어 모스의 ‘주는 사랑’이라는 증여의 윤리 속에서 완성된다.
III. 에필로그
최승애는 건강한 자기애로부터 발원하고 이타애로 확장하는 ‘온화한 사랑’을 하트 아이콘을 변주하는 작업을 통해서 조형적으로 성찰한다. 그것은 타자-되기와 함께-되기처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의 ‘되기의 정동’을 조형적으로 실천하는 일이자, 누군가에서 ‘받은 사랑’을 되돌려 주는 ‘주는 사랑’으로 변환하는 미학적 실천이기도 하다.
나아가 최승애는 위로와 치유의 마법을 발현하는 ‘주는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배우는 사랑’이 무엇인지 명상하고, 탐구한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1956)에서 사랑이란 소유와 교환의 대상이 아니라 노력과 훈련을 통해 습득해야 하는 기술이자 능력임을 강조한다. 타자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다하는 성숙한 사랑이자 ‘배우는 사랑’인 셈이다.
최근, 최승애는 ‘배우는 사랑’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듯, 새로운 연작을 실험 중이다. 물을 담은 풍선이 팽창하거나 중력에 의해 늘어지는 변화를 자신의 작업에 도입한 것으로 보이는 〈유혹〉, 〈유영의 시간〉과 같은 새로운 연작이 그것이다. 이 연작이 쿠션에서 변용된 하트 아이콘과 어떠한 만남의 관계학을 형성해 나갈지, 그리고 ‘함께하는 세상에 전하는 온화한 사랑과 위로’라고 할 수 있는 그간의 주제 의식을 어떻게 변주해 나갈지 자못 궁금하다. (20250810)
출전/
김성호, 「함께하는 세상에 전하는 온화한 사랑과 위로」, 『최승애』, 전시 카탈로그, 2025.
(최승애 개인전, 2025. 5. 2~5. 11, 구띠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