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방가르드적 미래를 모색하는 신예 조각가들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I.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 – 상상과 실천으로 가능성을 여는 신예 작가들
《2025대교국제조형심포지엄》(7. 11~7. 29, 중앙대학교 다빈치캠퍼스)은 무더위와 폭우가 맞물린 시기를 지나 전시회(8. 7~8. 17, 노들섬갤러리 1관)를 끝으로 전체 행사를 마무리한다. 2000년 '대학생·대학원생 조각대전'을 개최하고, 2012년부터 지금의 형태로 명칭과 사업 내용을 변경하여, 올해까지 26년째 이어온 이 행사는 ‘대학,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 국내 유일의 조형심포지엄’을 지향한다. 세계청소년문화재단과 대교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외교부가 후원하는 이 행사는, 미술 전공의 국내외 대학생 이상을 대상으로 참여 작가를 공모하고, 심사를 거쳐 최종 참여 작가와 수상 작가를 선정하고 전시를 개최한다는 점에서, ‘신진 조각가의 발굴, 육성, 지원 사업’으로서의 위상을 견지한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품고 올해 행사의 의미와 참여 작가들의 작품을 분석, 해설한다. 지금까지의 행사가 동시대 미술, 특히 조각 현장에서 담당하는 역할과 의미는 무엇인가? 올해 행사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올해 참여 작가들의 작품은 어떤 형식과 내용들을 갖추고 있는가? 신예작가들의 각 출품작에서 우리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를 발견하는가?
올해 행사, 즉 《2025대교국제조형심포지엄》은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주제를 내세웠다. 이번 심포지엄에 참여가 확정된 작가 12인과 보조 작가 12인 등 24인은 대학생 또는 대학원생으로 여전히 배움과 수련에 있는 학생이라는 점에서, 이 주제는 오늘날 ‘예비 작가 또는 신진 작가’에게 당면한 문제의식을 우리에게 가감 없이 전한다.
신진 작가란 어떤 이들인가? 우리는 흔히 '나이가 젊은 작가, 또는 전시 경력이 일천한 작가, 무명의 작가'와 같은 답변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단순히 '나이가 젊은 작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현재 미술 현장의 중추 세력이 아니지만 훗날 미술 현장의 중심 세력이 될 ‘미래를 꿈꾸고 준비하는 미술가 주체들’이라는 점에서, ‘차세대 작가’, 혹은 떠오르는 작가라는 의미에서 이머징 아티스트(emerging artist)라고 할 만하다. 아울러 이들은, 상투화된 조형 언어를 오랜 실험으로 도달한 완숙함의 경지라고 우기는 기성세대의 작가들과 달리, 경계 없는 아방가르드적 실험을 주저하지 않는 관계로 새롭거나 힘 있는 ‘신예(新銳, new and superior)’ 혹은 ‘신예 작가’이기도 하다.
따라서 올해 행사의 주제,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은 ‘미래를 꿈꾸고 준비하는 신예 작가’들을 지칭하는 은유적 초상이자. 그들이 화두로 쥔 ‘예술가로서의 존재론적 질문과 성찰’이기도 하다. 현재는 비주류의 신진일 따름이지만, 그들도 언젠가는 주류의 기성 작가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이 주제는 “미술이란 무엇인가, 시간 속에서 미술가와 작품은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시간성과 관련한 신예 작가들의 존재론적 성찰을 요청한다. 주지하듯이,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단순한 예측이 아니라,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나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철학적 사유에서처럼, 현재와 과거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통해 어떤 '가능성의 장'을 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주제는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주목하는 미래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행위자(Actor)인 ‘윤리적 주체로서의 인간’, 나아가 우리 관점에서, 미래에 책임을 다하는 ‘윤리적 주체의 미술가’를 요청한다.
아울러 이 주제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사는 신예 작가들이 추구하는 예술의 무한한 힘을 상상하게 만든다. 문화 이론가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이 언급했듯이, 예술은 현실의 이데올로기적 제한을 넘어서 억압된 미래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만드는 구조적 실천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예술은 유토피아적 상상력을 제약 없이 자유롭게 실험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올해 행사가 주제로 내세운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은 예술적 미래를 꿈꾸고 준비하는 신진 작가들의 예술가 초상인 동시에, 아방가르드적 상상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여는 신예 작가들을 발굴, 육성, 후원하는 《2025대교국제조형심포지엄》의 매개자로서의 예술 실천인 셈이다.
II. 미래를 생각하고 걷는 사람 – 신예 작가들의 출품작 분석과 해설
이번 조형심포지엄에 참여하는 신예 작가들은 상상과 사유로 예술적 가능성을 꿈꾸고, 실험과 실천으로 자신의 예술 세계에 천착한다는 점에서, 가히 ‘미래를 생각하고 걷는 사람’이라고 할 만하다. 이들은 중앙대 다빈치캠퍼스에 마련된 조형심포지엄에 참석해서 18일에 이르는 무더운 여름 동안 창작의 땀을 부단히 흘렸다. 이 글은 저마다의 주제 해석과 조형 세계를 통해 창작의 열정을 불태운 12인의 출품작을 다음처럼 해설한다.
1. 허정원 – 자연과 대면한 지난한 창작 노동 : 허정원은 정과 끌을 들어 카빙(carving)의 기법으로 거대한 통나무를 깎아 예술가 초상을 만든 작품인 〈조각과 굳은살〉을 선보인다. 그것은 나무를 통째로 조각의 질료로 삼은 것으로, 마치 로댕이 대리석 덩어리를 쪼아내어 그 속에서 인체의 형상을 건져 올린 것처럼, 허정원은 자연의 질료 속에서 조각가의 모습이 투영된 ‘자소상(自塑像)’을 건져 올린다. 나무의 거친 외피를 그대로 남긴 좌대와 한 덩어리로 이어진 정교한 재현 기법의 ‘살아있는 듯한 인체 조각’은 자연과 대면하면서 쏟아부었던 작가의 지난한 창작의 노동과 열정을 가늠하기에 족하다. 작품에서 강조된 질감 대비처럼, 실제로 작가에게 굳은살을 안겨준 고된 창작 노동이 빛나는 지점이다.
2. 김민지 – 동심의 기억이 견인하는 공감과 위로 : 김민지의 출품작 〈행복하게 영원히〉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감성을 ‘지금, 여기’에 소환한다. 동심(童心)에서 발원하는 ‘상상 기억’이란 때론 무모하고 엉뚱하지만, 베르그송(Henri Bergson)이 언급하는 체험적 기억인 ‘순수기억(mémoire purifiée)’처럼 순연한 무엇이다. 특히 유년기에 자신을 투사했던 애착 인형은 성인이 된 작가에게 여전히 행복과 영원성의 존재로 기억되는 ‘그때, 그곳’에 관한 따스한 체험적 유산이다. 주로 ‘3D 프린팅’으로 만들어진 작은 인형 조각에 스퀴시젤, 용수철, 자석 등 부드럽고 유연한 재료를 병행해 오던 그간의 제작 방식에서 탈피해서, 김민지는 이번 작품에서 FRP로 된 대형 조각에 덧붙인 실리콘과 우레탄 채색을 통해 새로운 조형을 실험한다. 동심을 소환해서 작가가 관객에게 전하는 공감과 위로가 정겹다.
3. 문지현 – 충돌하는 감정이 도달하는 내면의 성찰 : 문지현의 작품 〈폭발하는 몸_긴장의 해부〉는 미래를 ‘감정의 폭발과 충돌과 같은 일련의 균열에서 시작되는 시간’으로 해석한다. 파열, 폭발, 충돌은 대개 억압으로 응축되어 있던 잠재성의 어떤 존재가 임계점을 만나 현실에서 비로소 사건으로 가시화되는 작용이다. 그것은 하나의 몸체로부터 분열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개체들이 서로 만나면서 일으키는 충돌의 사건이기도 하다. 문지현은 두 인물의 상반신이 하나의 몸체처럼 뒤섞인 파편적 혼성의 형상을 선보인다. 파편의 철판 조각들을 용접으로 얼키설키 연결한 삐죽삐죽하고 울퉁불퉁한 상반신을 FRP로 만들어진 다리가 지탱하고 있는 형상은 두 사람 사이의 갈등과 파국을 유추하게 만들면서도, 파국 이후 사건 해결을 위해 잠시 침묵의 시간을 보내는 일련의 상황으로 볼 수 있도록 우리를 안내한다. 가히 충돌하는 감정이 몸을 추스른 채 목표 지점에 도달했거나 도달 예정인 ‘내면 성찰의 시간’이라고 할 만하다.
4. 소윤수 – 형상 해체로 인한 변화 가능성을 잉태한 미래 : 소윤수는 〈형상 해체〉라는 제명의 작품을 통해 오늘날 현대인에게 팽배한 ‘정신분열증적 현대인상’을 선보인다. 둥그런 모양의 각파이프로 해체된 구조물 위로 배치된 쌍생아 같은 작품 속 인물은 한편으로 알이 깨지면서 태어난 ‘미완의 분신’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규범과 윤리로 구조화된 현대 사회의 억압을 탈주하고 해방의 기치를 내세우면서 뛰쳐나간 ‘완전한 자유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의 해체적 인간 형상은 이내 새로운 재구성과 혼성의 만남을 주선하면서 우리에게 부정적 차원에서 긍정적 차원으로 이동하게 만든다. 그는 모터에 의해 작동하는 기계적 회전 운동과 더불어 관성에 따른 모빌의 진동 운동이 겹쳐 있는 두상 형태의 키네틱아트를 통해서, 작가/나/너/관객 그리고 시간/공간, 해체/재구성의 관계를 흥미롭게 탐구한다.
5. 이소윤 – 산맥으로 형상화된 역사의 지평 위에서 : 이소윤의 출품작 〈기반 너머〉는 화강암 계열의 마천석을 깎아 거대한 산맥 형상을 만들고, 오목의 ‘골’ 표면 위에 ‘은’을 소성해서 마치 흐르는 계곡물처럼 올려놓은 작업이다. 재현된 산맥의 형상은 세월의 흔적이 덧입혀져 온 ‘이 땅’이라는 물질성의 기반이자, 현 인류가 이끌어 온 역사 속 삶의 근원적 토대로 상징된다. 산맥 위를 흐르는 강물 같은 형상으로 덧올려진 소성된 ‘은’은 인류가 지나온 과거의 궤적인 동시에 지금, 여기의 시공간을 관통해서 앞으로 지나갈 미래의 방향을 알려주는 지표(index)가 된다. 이처럼 시공간의 흐름이 이끄는 우리의 미래는 그때의 시간과 그곳의 공간이 맞물려 ‘이때, 이곳’ 혹은 ‘지금, 여기’의 시공간을 펼쳐 보이는 가운데서 점차 선명해진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Helena Norberg-Hodge)의 주장처럼, 결국 인류에게 지속 가능한 미래란 역사의 지평을 존재 기반으로 삼는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s)’인 까닭이다.
6. 금예진 – 약동하는 물고기가 꿈꾸는 미래 : 금예진은 출품작 〈물과 공기의 사이〉에서 상상으로 변형된 물고기 형상 위에 자신의 예술가적 비전을 투사한다. 그것은 강과 바닷물을 가르고 공기 중으로 뛰어오르는 역동적인 물고기에 감정 이입한 작가가 ‘미래를 향한 자신의 꿈과 소망’을 이 물고기 형상 위에 투사한 것이다. 그렇다. “미래는 지금 마주친 현재가 모여 이루어질,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이라는 작가의 언급처럼, 불투명하고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선명하게 하는 일이란 도약을 날마다 준비하면서 현재의 시간 근육을 튼튼히 하는 일이다. 보라! 적삼나무를 깎아 만든 금예진의 ‘상상의 물고기’는 비늘 대신 흐르는 물결처럼 이어진 시간의 근육들을 웅크려 힘껏 도약하는 중이다.
7. 김채운 – 음파들의 공명과 공존 : 김채운의 출품작 〈Interlock〉은 작품명처럼 우리에게 ‘둘 이상의 존재가 맞물려 긴밀하게 연결된 어떤 상태’를 전한다. 그것은 두 개의 음파가 충돌하는 순간을 구조적으로 추상화한 것이다. 두 개의 음파가 충돌할 때 ‘각 음의 압력값이 벡터처럼 더해져서 새로운 파형을 만들면서도 서로를 파괴하지 않고 공존하는 중첩(superposition)’과 더불어 ‘중첩된 파형이 파동의 위상 차이에 따라 강해지거나 약해지는 간섭(Interference)’ 현상을 만든다는 점을 주목할 때, 두 음파의 충돌을 마치 팽이 형상처럼 추상화한 그의 작품은 단순한 물리적 진동을 넘어서, 서로 다른 존재 간의 감응과 교류를 이끄는 미학적 사건을 잉태한다. 자연과 인간이 대립하지 않고 공존하듯, 합판과 알루미늄의 모듈로 구성된 김채운의 작품은 상호의 영역으로 침투하고 스며드는 ‘음파들의 공명과 공존’의 장으로 우리를 이끈다.
8. 황수환 – 철 위에 입힌 따스한 감성 : 황수환은 출품작 〈당신은 나에게 너무 가까웠다〉를 통해서 ‘철’이라는 차가운 매체를 ‘감정을 품은 살아있는 생명체’로 전환하는 작업에 골몰한다. 그것은 양쪽이 대칭적인 회전체로 가운데가 넓고 양 끝이 뾰족한 ‘쌍원추체(Bicone)’ 형상으로 된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의 조각 표면 위에 황토를 덧입힌 후 서로 대각선으로 맞물리게 해서 세워 놓은 추상 조각이다. 산업성, 무기질성, 기계적 질서를 상징하는 차가운 금속 위에 바른 황토는 유기적 흔적, 생명성, 땅의 기억을 불러온다. 그의 작품은 조각이 단지 형태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촉각적 서사와 정서적 공명을 담아내는 매개체임을 보여준다. 조각에서 표면은 경계가 아니라 인간의 체온과 기억을 품은 접촉의 장소인 까닭이다. 결국 우리는 그의 작품을 단단한 세계 속에 틈을 내고, 무기질의 구조 속에 인간적 감수성을 심는 작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9. 바르큰 조쉬쿤 – 대리석 위에 입힌 상상의 쿠션 : 바르큰 조쉬쿤은 출품작 〈Anvil〉을 통해서 고유한 물성을 전복하고 물성과 감각의 경계를 교란하는 실험에 천착한다. 단단함과 기능성을 상징하는 ‘모루’의 형상을 대리석으로 정교하게 재현하면서도, 그 표면을 마치 폭신한 쿠션처럼 보이도록 함으로써 관객에게 감각적 충돌을 유발하는 까닭이다. 이러한 조형 실험은 돌이라는 재료의 본질적 속성과 조형된 이미지 간의 불일치를 통해 단단함과 부드러움, 실재와 환영 사이의 경계를 흐리면서 관람자의 촉각적 상상을 유도한다. ‘쪼아냄’이라는 물리적 노동을 통해 형성된 조각이 오히려 ‘눌린 자국’과 같은 부드러운 흔적을 남기며, 형상과 감각이 서로 위장하는 지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조쉬쿤은 조각의 전통적 역할을 재고하면서도, 무거움 속의 가벼움, 단단함 속의 유연성을 부조리하고도 우아하게 시각화한다.
10. 서지원 – 속도의 미래와 아이러니 : 서지원의 출품작 〈Atypical image #1 motorcycle〉은 스테인리스 스틸 판을 겹겹이 쌓아 올려 만든 질주하는 형상의 붉은색 모터싸이클을 선보인다. 그는 ‘치밀하게 짜여 있는 듯하면서도 해체되는 듯한 형상’의 조각을 통해서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앞을 향해 질주하는 욕망의 현대인을 비판적으로 풍자하고 은유한다. 아울러 그의 작품에 드러난 붉은색은 욕망과 맞물린 오늘날 산업의 과열 현상을 상징적으로 시각화한 것이자, 그것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담은 것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단지 현재의 속도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속도 그 자체가 미래를 어떻게 왜곡하고 탈취하는지를 질문한다. 미래는 오지 않은 시간이 아니라, 과열된 현재가 지속해서 잠식하고 있는 시간이 아닌가? 질주가 계속되는 한, 미래는 도달할 수 없는 과거의 잔영이 될지도 모른다.
11. 손보영 – 기억의 지형, 시간의 풍경 : 손보영의 출품작 〈반경 1km〉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거주지 1km 이내의 반경 속에서 작가가 일상적으로 만난 마을의 풍경을 선보인다. 십자가를 달고 있는 작은 교회, 동그란 창문의 빌라, 나지막한 기와집과 높은 빌딩에 이르기까지 조각적 설치의 방식으로 선보이는 ‘회화적 느낌의 동떨어진 마을 이미지’는 작가에게 있어 단지 외부의 재현이 아니라, 내면의 기억과 감정이 덧입혀진 개인적 지형도가 된다. 시간의 흔적을 담은 퇴락한 벽면, 창문 밖으로 보이는 앙증맞은 실내 풍경과 따스한 조명은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시간적 경계를 넘나든다. 각각의 요소는 과거의 기억이면서도, 재구성된 현재이며 미래의 상상이다. 손보영은 물리적 장소를 내면의 풍경, 시간의 풍경으로 변주한 비물질적 서사를 통해 관객에게 공동의 기억과 공유의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가히 조각을 통해 시간과 기억, 감정이 공존하는 '내면의 마을'을 세운 시도라 할 것이다.
12. 안효렬 – 상상력으로 미래를 여는 풍경 : 안효렬은 출품작 〈Freedom in the Playground〉를 통해서 ‘상상력으로 미래를 여는 풍경’을 관객에게 선보인다. 이 작품은 작가가 유년기에 뛰어놀았던 미끄럼틀이 있는 놀이터의 형상과 함께 돔과 첨탑이 어우러진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 형상을 혼성해 만든 상상의 조각 작품이다. 재료와 형식의 차원에서, 무수하게 많은 열쇠를 용접으로 이어 붙여 만들어 건축물 안팎을 동시에 볼 수 있도록 만든 커다란 투과체의 조각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만끽했던 해방감과 설렘, 그리고 장대한 르네상스 건축에서 받았던 감흥을 오버랩한 이 작품은 유희와 지혜, 이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상상력의 입구를 우리에게 열어 보인다. 그의 작품에서, 미래로 미끄러져 나가는 미끄럼틀과 놀이터, 역사의 찬란한 문화유산이 투영된 이상향으로서의 르네상스 건축 그리고 틈을 만들면서 중첩되고 연결되어 개인-사회-문명의 무수한 경계와 연결망처럼 해설할 만한 ‘용접된 열쇠의 연쇄’를 보라. 특히 획일적인 자본주의 사회의 상징으로 상정된 ‘열쇠’가 함유한 네거티브의 의미에서부터 상상력으로 건져 올린 ‘개방, 혹은 해방’이라는 포지티브의 의미는 매우 주목할 만하다.
III. 에필로그
《2025대교국제조형심포지엄》에 참여하는 신예 조각가들은 예술적 상상과 실천으로 저마다의 미래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자 미래를 향해 걷는 사람’이다. 신예 작가는 기성의 제도와 규범에 비판적으로 도전하고 참신한 변화를 시도하는 아방가르드적 실험 정신에 기초하여 자신의 예술 세계를 천착해 나간다는 점에서 ‘아방가르드적 미래를 모색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신예 작가는 현재 미술 현장의 비주류의 위치에 존재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기성 작가로 성장하고 주류의 미술 현장에 편입된다는 점에서, 그들의 장래는 밝다. 다만 그들이 작업에 있어, 아방가르드적 실험 정신을 놓지 않은 채 자신의 창의성 가득한 창작을 견지해 간다는 전제가 필요하긴 하다.
신예 작가들이 지난한 과업을 지속해 나가는 데 있어, 미술 매개자와 후원자의 역할은 매우 주요하다. 이러한 차원에서 2000년부터 행사를 지속해 온 《대교국제조형심포지엄》은 국내외 조각예술 분야 대학생 및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 신예 작가 등용문이자, 이들을 발굴, 후원 및 육성하는 대표 기수라고 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행사는 1, 2차에 이르는 공정한 심사를 거쳐 참여 작가를 선정하고 심포지엄을 통해 이들이 예술감독과 조감독의 디렉팅 속에서 다른 참여 작가, 보조 작가와 함께 작업하는 시간을 제공함으로써 참여 작가 간 네트워킹을 다각도로 실천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위시로 총 4인의 수상 작가에 대한 특별 장학금, 그리고 참여 작가들 모두를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급하는 후원을 지속해오고 있다. 특히 3백 명이 넘는 역대 행사의 참여 작가들과의 지속적인 네트워크는 해당연도에 참여하는 신예 작가들에게 든든한 인적 자산이다. 나아가 주최 측은 기업 관계자 및 개인 컬렉터, 그리고 미술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작가의 후원을 유치함으로써 작가의 창작 활동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인큐베이터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담당한다.
관건이 있다면, 다매체를 통한 전방위적 홍보 활동뿐만 아니라, 국제적 행사명에 걸맞게 해외 참여 작가의 비율도 일정 부분 늘리고 글로벌을 지향하는 행사로 거듭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대교국제조형심포지엄》이 앞으로도 국내외 신예 조각가들의 훌륭한 등용문이자, 인큐베이터 그리고 네트워크의 플랫폼으로 발전해 나가길 기대한다. (20250723)
출전/
김성호, 「아방가르드적 미래를 모색하는 신예 조각가들」, 『2025대교국제조형심포지엄』, 전시 카탈로그, 2025.
(2025대교국제조형심포지엄, 2025. 8. 7~8. 17, 노들섬갤러리 1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