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오래된 여행 가방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화가 안혜경은 ‘어딘가(Somewhere)’, ‘누군가(Someone)’를 찾아 떠났던 ‘오래된 여행 가방’을 풀고 지난 여행을 되돌아보는 전시를 선보인다. 떠날 때, 그 가방은 가볍디가벼운 것이었건만 돌아올 때마다, 그 가방은 매번 묵직했었다. 그녀가 그림들과 추억을 한꺼번에 담아 왔기 때문이다. 그녀가 찾아 떠났던 어딘가는 어디이며, 누군가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녀가 그 여행 가방 속에 담아 온 것은 또 어떠한 것인가?
I. 낯선 어딘가 - 춤추는 땅
화가에게 여행은 무슨 의미일까? 19세기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에게 모로코 여행은 이국적인 오리엔탈리즘 회화를 선보이는 계기가 되었고, 인상주의 화가 모네(Claude Monet)에게 런던과 베니스 여행은 빛과 대기의 변화를 화면에 가득 담은 독창적 화풍을 낳기에 이른다.
이렇듯, ‘낯선 어딘가’로의 여행은 많은 화가에게 새로운 예술적 영감을 주는 원천이 되기에 족하다. 낯선 장소와 낯선 타자와의 만남을 이끄는 여행이, 화가에게 시선의 해방과 새로운 감각을 선물함으로써 관성처럼 반복했던 그간의 작업 세계로부터 종종 새로운 변모와 전환을 견인하기 때문이다. 즉 화가 외부의 ‘낯선 어딘가’가 그들의 내면에 ‘낯선 무엇인가’를 밀어 넣는 까닭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화가 안혜경에게 그것은 “또 다른 시간”에 관한 관심이었다. 그녀는 “섬에 사는 사람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아카이브하고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전라남도 신안군에 자리한 섬인 자은도(慈恩島)의 둔장마을로 떠났다. 그곳에 “또 다른 시간이 흐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섬이라는 ‘낯선 어딘가’에서 맞닥뜨린 ‘낯선 시간’은 그녀에게 익숙했던 일상을 정지시키고 관성을 탈주하는 새로운 시간 경험을 선사하기에 족했다. 바다에 박힌 듯 고립된 공간과 정지된 것만 같은 시간, 그곳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 이 새로운 관계가 촉발한 심리적 거리감은 화가 안혜경에게 여행자 혹은 임시 거주자로서 맞닥뜨렸던 ‘어떠한 특별함’을 발견하도록 이끈다.
면적 52.63km2, 해안선 길이 56.8km의 자은도는 개발을 위한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인해 전국에서 열두 번째로 큰 섬이 되었던 만큼, 자은도 주민들의 생업이 어업보다는 양파, 마늘, 대파 등을 재배하는 농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안혜경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녀가 자은도에서 발견한 특별함은 바로 넓디넓은 푸른 대파밭에서 박자에 맞춰 춤을 추듯이 시원하게 물줄기를 뿌리고 있던 스프링클러의 장관이었다. 그것은 대파밭 자체가 물줄기를 뿜어내며 춤을 추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가히 ‘춤추는 땅’이라고 할 만하다.
안혜경은 이 신선한 충격을 〈춤추는 땅〉이라는 제명의 연작으로, 캔버스에 담고 또 담았다. 검붉은 흙밭 위에 스프링클러가 힘차게 물을 뿌리는 모습, 붉은 흙밭 위에서 어린 대파가 연둣빛 싹을 틔우는 장면, 그리고 어느새 성장한 대파로 가득한 초록 밭이 스프링클러의 물줄기와 함께 춤을 추는 듯한 장관은 작가의 커다란 캔버스가 비좁아 보일 정도다. 춤추는 푸른 대파밭! 그것은 인간이 자연 속에서 일군 또 다른 자연이다. 자연과 인간의 공생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이 연작은 그 어느 열대 우림이나 자연의 숲보다 거대하고 웅장해 보인다.
이러한 웅대함을 더욱더 극대화하려는 것일까? 안혜경은 물감을 넓게 펴 바른 선명한 색상의 평면과 더불어 굵은 붓 터치와 같은 단순하고도 담백한 조형 언어로 이 웅장한 풍경과 그것을 대면한 자신의 감흥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주로 붉은 땅과 초록빛 대파밭을 화면 안에 클로즈업하는 방식으로 포착한 이 연작은 네다섯 개의 크거나 작은 하얀색 물줄기가 서로 교차하는 형상을 통해서 근경과 원경을 구분할 수 있도록 표현하거나, 푸른 한낮의 하늘 혹은 붉은 노을이 원경으로 펼쳐진 지평선을 화면 상단에 위치시키는 방식으로 근경의 대파밭과 대비되게 원근을 표현하기도 한다.
다만 이 경우 근경과 원경은 투시도법에 따른 정밀한 재현의 조형 언어로 그려진 것이기보다 마치 팝아트처럼 구성적 조형 언어로 표현된 것에 더 가깝다. 작가는 투시도법에 따른 원근법보다 일정 부분 다중 시점이나 왜곡의 시점으로 거리감을 시각화한다. 이 작품들은, 마치 다중 시점과 팝아트 풍의 단순한 조형으로 녹색 근경과 붉은색 원경을 장엄한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는 호크니(David Hockney)의 생명력 가득한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 연작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일까? 붉은 땅 위에 밭고랑이 선명하게 드러난 단순한 배경이나 초록의 싹이 자라고 있는 대파밭을 중심으로 커다란 하얀 물줄기를 힘차게 뿜어내고 있는 안혜경의 〈춤추는 땅〉 연작은 대개 가로 폭이 넓은 화면 안에 널찍한 대파밭을 단순하게 표현하는데, 더러는 세로로 기다란 캔버스 안에 근경과 원경이 한꺼번에 보이도록 풍경을 담아내기도 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교차하는 스프링클러 물줄기 사이로 작은 창고를 그려 넣음으로써 작가가 대면했던 대파밭의 물리적이고 심적인 규모가 얼마나 웅장한지를 실감 나게 표현하기도 한다.
그녀의 후속 작업은 이제 질문한다. 어딘가에서 또 다른 어딘가로 향하는가?
II. 호명되는 누군가 – 한 여자 혹은 엄마
안혜경은 자은도 둔장마을에 있는 춤추는 땅 ‘어딘가’에 여행자로 임시 거주하면서 화가라는 이름을 알리며 ‘낯선 누군가’를 분주히 만나러 다녔다. 같은 하늘, 같은 땅에 살고 있어서였을까? 섬 주민들은 길지 않은 시간 안에 그녀에게 ‘낯선 누군가’에서 ‘낯익은 누군가’가 되어 주었다. 경로당, 집, 밭으로 그들을 분주히 찾아 다니는 낯선 화가를 “경로당 아가씨, 작가님, 이쁜 년” 등으로 부르면서 반겨주는 섬사람들에게 그녀 또한 마음을 활짝 열었다.
인터뷰 형식을 통해 섬사람으로 그리고 아내와 어머니로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기록하면서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촬영하고 초상화를 그리면서 섬 주민들과의 소통을 지속하던 안혜경은 서서히 섬사람이 되어 갔다. 이윽고 안혜경은 공사를 마치고 재개관한 둔장마을회관에 그간의 섬 주민과의 인터뷰를 통해 기록된 글과 그림을 모아 전시했다. 〈화가의 여행 가방〉 연작이 신호탄을 올린 셈이다.
이 연작은 장지 위에 먹물로 섬 주민의 초상화를 그리고 화면 한쪽에 그들이 직접 구술했던 이야기를 써나간 것으로, 텍스트(글)와 이미지(그림)가 어우러진 이미지-텍스트(image-text) 혹은 아이코노텍스트(Iconotext) 형식의 작업이었다. 전자가 미국의 문화이론가 미첼(W.J.T. Mitchell)의 『그림 이론(Picture Theory)』(1994)이 다루는 이미지-텍스트의 합성체를 지칭한다면, 후자는 독일계 프랑스 이론가인 미하엘 네를리히(Michael Nerlich)의 「이코노텍스트가 무엇인가(Qu’est-ce qu’un iconotexte?」(1990)라는 제명의 논문에서 논증했던 이콘(그림)과 텍스트(글)이 총체적으로 하나가 된 유형을 가리킨다. 동양 전통의 문자도(文字圖)나 현대적 캘리그램에서도 보이는 이러한 유형은 비언어인 이미지에 언어를 통해 내러티브가 지닌 의미를 강화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조형 방식이다.
안혜경의 〈화가의 여행 가방〉 연작이 지닌 아이코노텍스트적 유형은, 이제는 주름이 가득한 노인들이 전하는 섬마을 소녀의 꿈과 희망, 청년기의 애잔한 연애사, 결혼과 육아의 고단함 속에서도 놓지 않았던 간절한 바람,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는 현재의 소회 등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기에 제격이다. 흑백의 수묵 초상화와 함께 구수한 사투리가 전하는 생생한 구어체의 말투를 붓글씨로 잔잔하게 써나간 이 연작은 개인별로 압축된 한 마을의 ‘인물 모음집(Collected Biographies)’이거나 오늘날 모습과 과거사가 중첩된 한 마을의 ‘그림-이야기집’인 셈이다.
“70호가 넘던 마을이 이제 30여 호 남았다. 여섯, 열이던 식구는 하나, 둘이 대부분이다. 이제 누가 와서 여기 살까? 다리도 놓고 이제 차로 다닐 수 있는데, 이렇게 살기 좋아졌는데….” 둔장마을 체류 당시 남긴 그녀의 작가 노트에는 섬의 청년들이 도시를 찾아 떠나는 현재 상황을 여실히 전한다. 둔장마을뿐만이 아니다. 안혜경은 둔장마을에서의 작업 이후에 ‘또 다른 어딘가’를 찾아 떠나며 작업을 지속한다. 즉 그녀는 안좌도, 병풍도, 선도, 장산도, 암태도 등의 섬이나 여러 시골 마을에서 이 연작을 이어오면서 6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속해서 화폭에 담아왔다. 그곳은 여전히 청년들이 떠나고 노인과 아이들만이 남은 공간이었다.
이러한 차원에서, 안혜경의 〈화가의 여행 가방〉 연작은 마치 프랑스 누벨바그(Nouvelle Vague)를 대표하는 아녜스 바르다(Agnès Varda)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마을의 얼굴(Visages Villages)〉(2017)를 떠올리게 한다. 이 영화는 당시 88세였던 바르다 감독과 33세의 사진가 JR이 포토 스튜디오 트럭을 타고 프랑스의 작은 마을들과 컨테이너 하역장, 탄광촌 등 산업 유적지를 여행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촬영하는 공동의 사진 프로젝트를 기록한 영화였다. 노동자, 농부, 철도원, 노부부 등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의 초상 사진을 담아 건물, 창고, 컨테이너, 방파제 등에 초대형 포스터로 게시하는 이들의 사진 프로젝트는 안혜경의 연작이 탐구하는 ‘지역 공동체, 삶, 기억, 대화와 위로’와 같은 주제 의식과 맞물린다. 이들의 공동 사진 프로젝트처럼 안희경 또한 도시에서 떨어진 섬이나 시골 마을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미술을 매개로 소소한 대화와 위로를 나누는 ‘삶에서 잉태한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안혜경이 연작에 담아내는 인물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아이 등 성별과 나이를 특별히 가리지 않지만, 섬마을의 특성상, 청년보다는 노년, 할아버지보다는 할머니가 자연스럽게 주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다. “공부하고 싶고 학교 가고 싶어서 포대 종이 잘라서 글씨 연습하고 땅바닥에 글씨 쓰며 불 땠다는 어머니, 동생들만 가르치고 여자라고 학교 안 보낸 엄마가 지금도 밉다는 어머니, 미용사가 되고 싶었다는 어머니, 꿋꿋하게 누운 어른을 돌보는 어머니, 작지만 크나큰 어머니들 얘기”를 글과 그림으로 담는 그녀의 연작은 지역민에게는 따스한 위로를 주고, 화가 자신에게는 반성적 성찰을 되새기는 삶의 프로젝트로, 자은도의 둔장마을이라는 섬마을에서 출발한 후, 이제 ‘또 다른 어딘가’로 이동해 ‘또 다른 누군가’와 함께 지속해 나가는 중이다.
안혜경의 〈화가의 여행 가방〉 연작은 이제 다른 공간이라는 ‘물리적 거리’를 넘어 내 안의 ‘심리적 거리’를 탐구하면서 ‘예쁘고 귀여운 물건’을 유난히 좋아했던 자신의 친모 정애영을 모델로 삼은 작품들로 이어진다. ‘엄마의 열아홉 시절’을 더듬어 지난 이야기를 소환하거나 나이 들면서 ‘소녀처럼 변한 엄마’를 추적하면서 시각적 아카이브와 다양한 회화로 담아낸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나아가 이 연작은 이제 시간의 거리를 거슬러 올라가 역사 속에서 빗겨 난 채 제대로 호명(呼名)되지 못하고 스러졌던 위대한 여성들을 탐구하는 〈보이지 않았던 얼굴들〉 연작으로 옮겨 간다. 한국 여성 독립운동가, 최초의 여성 의사와 비행사, 교육자, 기자,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노동운동가, 시인, 소설가, 예술가, 고대 여성 등 ‘역사 속에서 제대로 호명되지 못했던 위대한 여성들’을 추적하는 작품들이 그것이다. 이들의 초상과 함께 생전 발언이나 글들을 기록하거나 간단한 이력으로 구성된 텍스트가 병치된 이미지-텍스트 혹은 아이코노텍스트 형식의 이 작품들은 궁극적으로 〈화가의 여행 가방〉 연작에 속하면서도 ‘여성주의 미술’처럼 또 다른 성격의 연작으로 자라는 중이다.
우리는 안다. 알튀세르(Louis Althusser)가 언급했듯이, 호명(interpellation)을 통해 구성되는 주체성이란 이데올로기 안에서 허상처럼 구성되지만, 실효적 효과를 지닌다는 것을 말이다. “개똥이 엄마! 칠성네! 부엌데기!”처럼 이 땅의 수많은 어머니에게 가부장 이데올로기로 자행했던 잔혹한 ‘호명’은 ‘한 여자’의 실체를 가리는 허상이었지만, 삶의 역사 속에서 ‘한 여자’의 실제 이름을 가리는 실효적 효과를 거두지 않았던가? 따라서 안혜경의 이 연작은 ‘허상의 호명 속에 묻힌 수많은 여성’의 실명을 소환해 그녀들의 실체를 ‘오늘, 여기’에 되살리는 프로젝트로 자라는 중이다. 그래서 그것은 ‘한 여자’의 실체가 무엇인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있는 예술가 자신에게 질문 던지기를 지속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안혜경의 〈화가의 여행 가방〉 연작은, 섬이나 시골 마을 주민, 그리고 모친의 삶을 추적하거나 역사 속 여성사를 소환하는 식의 다양한 예술적 실천을 통합하는 ‘인물 모음집’이자 삶에 관한 거시적 프로젝트다. 그것은 또한 그녀의 언급대로, “단지 예술에 머무르지 않고, 잊히거나 기록되지 못했던 존재들을 위한 시각적 아카이브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존엄의 기록”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닌 ‘삶의 프로젝트’라고 평가할 만하다.
에필로그
화가 안혜경은 말한다. “여행 가방은 한정된 공간 안에 필요한 것을 차곡차곡 넣어야 한다. 우선순위를 정해서 넣거나 빼야 한다. 욕심껏 많이 가지고 다니면 나만 고생이다. 그런데 밖에서 지내다 보면 그건 가져올 것을... 또 욕심이 생긴다. 방 하나에 욕실, 주방 또는 원룸 형태 숙소에서 혼자 지내다 보면 사실 내가 얼마나 많이 소유하며 지내는지 문득문득 깨닫는다.” 커다란 가방을 들고 다니는 여행은 불편하다. 그렇지만 불편한 만큼, 여행은 진한 호기심과 삶에 관한 욕망을 자극한다.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해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결단일까? 그녀의 여행 가방에는 호박이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다. 왜? 호박은 다른 식물들과 달리 특별한 노력 없이도 무럭무럭 잘 자라는 열매채소(果菜類)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참 ‘고마운 호박’이다. 여행 중에 화가의 마음에 ‘쿵’하고 자리를 잡은 ‘고마운 호박’처럼, 여행과 같은 삶 속에서 ‘예술적 영감’이 선물처럼 주어지길 갈망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관련한 작가의 말을 빌려 이 글을 마무리한다.
“우리 집 언덕에도 있고 이웃집 밭 한편에도 노란 꽃을 피우며 당당하게 자란다. 그 흔한 호박이 내 마음에 들어와 그림에 자리 잡았다.”
(20250917)
출전/
김성호, 「화가의 오래된 여행 가방」, 『안혜경』, 개인전 카탈로그, 2025.
(안혜경 개인전-화가의 여행 가방, 10. 30~11. 9, 공주아트센터 고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