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는 기계 – 테크네의 정신을 되살리는 공생 기계
(하편)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VI. 공생 기계들 – 출품작 해설
이번 기획전이 전시 공간 ‘동빈문화창고1969’를 하나의 공생 기계로 만들고자 했듯이, 포항 연고 작가 6인을 포함한 총 24인과 더불어 2팀의 특별 작가팀의 출품작들 모두 각각 공생 기계의 메시지를 품어 안는다. 각각의 공생 기계들이 서로 네트워크하는 커다란 전시를 이룬 셈이다.
이 글은 출품작들을 관람 동선과 달리, 주제별로 범주화해서 다음처럼 살펴보고자 한다.
1. 기계 도시 포항 - 배현철, 박성규, 서종숙, 김진우, 안효찬,
2. 공생 기계와 식물 풍경 - 이철진 하사안, 한진수, 안진의
3. 공생 기계와 비인간 동물 - 맹하섭, 서성봉, 최문석,
4. 공생 기계와 인간 - 박해강, 김정기, 최지훈, 정국택, 한승구, 노진아, 신교명
5. 공생 기계와 비인간 행위자 네트워크 - 김태중, 오지헌, 이탈, 최철, 한호
6. 숨쉬는 기계 - 포항예술고등학교팀, 국민대학교 자동차공학과팀
1. 기계 도시 포항 - 배현철, 박성규, 서종숙, 김진우, 안효찬,
배현철은 기계 도시 포항이 둘러싸고 국도 7번이 지나고 있는 장소에서 맞닥뜨린 풍경을 담은 작품 <국도 7번 2541>을 선보인다. 1970-80년대 포스코 건설 이후, 원자재 및 철강 운송의 주요 도로였던 7번 국도는 포항의 산업 축, 도시화 축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영일만 해안과 연계된 해안도로로, 문화관광 축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작가는 이 국도에서 만난 작은 바다마을을 담담한 필치의 재현 언어로 그려낸다. 바다 위 등대가 있고 육지 끝자락 언덕에 올망졸망 모인 집들의 풍경이 정겨운 풍경화는 우리에게 기계 도시 포항의 공간적 맥락을 상기하게 만든다.
박성규의 출품작 <철의 숨결>은 용접 작업을 하는 풍경을 클로즈업한 사진을 선보인다. 포항의 산업 현장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드는 이 사진 작업은 푸른빛과 흰빛이 어두운 배경을 뚫고 날카롭고도 강렬하게 퍼져 나가는 노동과 창작 현장의 모습을 마치 기하학적 추상화처럼 포착해 낸다. 중앙에 자리한 강렬한 푸른빛은 기계의 ‘심장’ 또는 ‘핵심’처럼 보이고, 그것으로부터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빛의 잔상들은 기계가 내뿜는 생명의 에너지처럼 보인다. 가히 철의 숨결이자, 기계의 숨결이라고 할 만하다.
서종숙은 여러 평면 작품을 된 출품작 <기계의 신>을 통해서 경상북도 의성에 있던 성냥 공장의 기억을 불러온다. 1970년대 최대 호황을 누렸던 성광 성냥 공장이 1980년대 이후 일회용 가스라이터 보급으로 급격히 사라진 현실에서 불이 일으킨 문명을 떠올리는 작가는 “성냥의 불씨가 기계의 심장을 두드리며 사람들의 노동과 도시의 시간을 일으키고 다시 뺏어갔던” 시절을 상기하며 영원히 불꽃을 꺼트리지 않을 ‘기계의 신 아이그니스(Aignis)’을 창조한다. 라틴어 불(Ignis)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는 그녀의 아이그니스는 관객에게 선보이는 미래를 기계의 신이다. 스토리가 가득 담긴 큐알 코드는 관객에게 덤이다.
김진우는 철로 구현된 거대한 조각, <숨쉬는 기계>를 통해서 기계 도시 포항의 역사적 맥락을 작품화한다. 그는 60여 년 동안 경북 의성 성냥 공장에서 실제로 사용되었던 옛 기계를 가져와 작품 속에 ‘발견된 오브제’로 전유한다. 이 역사적 오브제를 철로 만든 거대한 나무 혹은 숲의 형상과 결합한 작가는 “산업의 흔적과 자연의 형상이 서로 호흡하며 상생하고 공생”하는 오늘날 포항이 당면한 문제의식을 성찰한다. 서서히 움직이는 이 거대한 키네틱 조각은 도시의 문명과 자연의 공존을 성찰하는 하나의 커다란 ‘숨쉬는 기계’이자 ‘공생 기계’인 셈이다.
안효찬은 <Form work> 연작으로 오늘날 기계 산업 문명이 안은 디스토피아를 선보인다. 키를 높인 삭막한 흰색 빌딩과 거무튀튀한 색의 건물들, 녹슨 공장과 기계의 모습들이 건축 패널, 거푸집, 시멘트, 철, 나무 등으로 표현된 채 하나의 우울한 연극 무대처럼 꾸며져 있다. 도시 풍경 이면에 산재해 있는 검붉은 돼지의 사체들을 보라. 기계 문명 안에서 벌어진 사회적 불안, 고립, 갈등 등 현실의 난제들이 한꺼번에 우루루 쏟아지고 있는 것처럼 표현된 이 은유의 설치 작업에서 우리는 이미 현실이 된 채 미래를 달리고 있는 기계 도시 문명의 디스토피아를 맞이한다. 그것은 작가가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냉혹한 비판적 경고!
2. 공생 기계와 식물 풍경 - 이철진 하사안, 한진수, 안진의
이철진은 출품작 <색의 정원>을 통해서 ‘식물성의 자연’과 ‘기계’의 만남을 산뜻한 조형 언어로 선보인다. 화사한 꽃의 형상을 나무판에 새기고 색상을 입혀 조각으로 만들고 커다란 지게차 위에 올려놓은 이 작품은 식물성의 자연과 기계와의 공생을 시각화하기에 족하다. 무겁고 육중한 검은 기계 위에 놓인 가볍고도 자그마한 나무꽃들은 단순하고도 유려한 장식 패턴이 함유한 자연의 본질적 생명력과 공생의 메시지를 침묵의 기계에 경쾌한 언어로 그러나 진중한 태도로 건네는 중이다.
하사안의 작품 <이정표>는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열대 식물인 여인초(旅人蕉)가 품은 메시지를 기계와 함께 전한다. 여행자의 종려나무(Traveler's Palm)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식물은 부채처럼 넓게 펼쳐진 잎에 고인 물로 고단한 여정에 지친 목마른 여행자를 부른다고 한다. 작가는 이 식물 형상을 재현한 조화들이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도록, 기계 장치를 결합했다. 작가의 키네틱 아트는 여행객을 이정표로 초대하듯이, 관객에게 유연하게 손짓하는 식물과 그 움직임을 조정하는 기계와의 공생의 메시지를 듬뿍 담아 전한다.
한진수는 작품 <리퀴드 메모리>를 통해 강가에서 주운 발견된 오브제들을 전시장에 흩뿌리듯이 배치한 ‘풍경 설치’를 선보인다. 부서진 노란색의 장난감 자동차, 바닥에 놓인 나무토막과 길게 누운 나무줄기, 낚싯줄에 매달린 채 모터에 의해 움직임을 지속하는 가냘픈 새의 깃털, 그릇 속 녹색 물에 잠기고 벗어나길 반복하는 작은 추(추) 등 자연물과 인공물 그리고 기계가 혼성된 풍경은 그가 사물들을 발견했던 알지 못하는 ‘강가’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망각으로 잠재워진 기억 속 자연 풍경을 천천히 떠올리게 만든다. 낚싯줄에 매달린 새털을 천천히 들어 올리고 내리길 반복하는 기계의 움직임처럼 말이다.
안진의는 <꽃의 시간_헤테로토피아>라고 하는 제명의 두 평면 작품을 통해 문명의 가속화가 낳은 전쟁의 폐해를 꽃의 자연성으로 치유하는 헤테로토피아의 세계관을 시각화한다. 푸코가 언급한 이 공간이 ‘현실 속에 존재하지만, 현실의 질서를 비틀어 보여주는 ‘다른 공간’이듯이, 작가는 페르시안 정원처럼 이질적인 것의 혼성을 통해 공생의 이념을 은유적으로 선보인다. 탱크, 비행기와 같은 참혹한 전쟁 기계를 꽃으로 뒤덮어 자연의 호흡과 시간을 수혈하는 작가의 작품은 관객에게 선사하는 ‘현실 속 유토피아’인 셈이다.
3. 공생 기계와 비인간 동물 - 맹하섭, 서성봉, 최문석,
맹하섭은 출품작 <WEALTY2>에서 아크릴판을 중첩해서 만든 사슴 형상의 조각을 선보인다. 사슴은 순수와 우아, 재생과 성장, 그리고 풍요와 신성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긍정적 상징을 지닌 동물로, 그의 작품에서 빛의 각도와 방향에 따라 다채롭고 아름다운 색으로 변화하는 광학적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풍요와 고귀함으로 상징된다. 기획전의 주제인 기계와의 연관성이 희미한 출품작임에도, 아크릴판을 잘라 집적한 기계적 구조 공학이 돋보인다는 것이 흥미롭다.
서성봉은 출품작 <바다의 기억>에서 자신이 태어나 성장하면서 마주했던 고향 제주도의 신비한 바다의 세계를 소환한다. 깊은 바닷속을 유영하는 잠수함 이미지의 조각이 그것이다. 스테인리스 스틸 판을 단조기법으로 이어 붙인, 지난한 수공의 결과물인 이 작품은 분명 잠수함을 만든 것이지만, 어찌 보면 커다란 물고기 형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중앙에 자리한 축에 매달려 바람에 따라 천천히 좌우에서 위아래로 움직이는 작가의 잠수함이란 공생 기계와 비인간 동물의 혼성체라고 할 만하다.
최문석은 작품 <12gear 24wings>에서 기다란 배의 형상을 구조물 위에 깃털이 달린 기게적 장치가 마치 노를 젓듯이 리듬감 있게 움직이는 키네틱 아트를 선보인다. 또 다른 작품 <Whale Wave>에서 그는 천장에 있는 거대한 시계의 기어 구조 아래 3마리의 고래 형상의 조각체들이 매달려 유영하고 있는 풍경을 선보인다. 바다 위와 바닷속 풍경이 병치된 이 작품들은 관객에게 깃털, 고래, 바다로 잇고 있는 자연과 함께하는 배, 시계로 대별화된 기계의 만남을 떠올리게 만든다. ‘유기적 생명성과 기계적 질서’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인식과 함께 말이다.
4. 공생 기계와 인간 - 박해강, 김정기, 최지훈, 정국택, 한승구, 노진아, 신교명
박해강은 작품 <One Point>를 통해서 인간의 두 눈이 아닌 하나의 ‘기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데카르트 원근법이 함유한 시점의 문제를 확장한다. 주지하듯이, 데카르트적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투시 원근법의 시선은 인간의 감각을 제거하고, 세계를 계산 가능한 기하학적 대상으로 고정한 근대적 시각 권력의 시작이었다. 실제로 이 작업은 마당의 핀 꽃들을 대상화해서 표현했던 이전의 작업이 하나의 일관된 시점으로 확장한 우주 풍경이다. 작품명처럼, 하나의 시점에서 확장한 작업은 화면 중앙에 기하학적 선들이 모이는 추상화된 우주의 풍경으로 귀결되면서 또 다른 원 포인트인 소실점을 드마마틱하게 형성한다. 가히 기계의 눈에 감정 이입한 상상의 풍경이라고 하겠다.
김정기의 출품작 <조종사>는 2022년 타계하기 전, 2016년 유럽의 한 행사에서 고인이 수묵으로 실연했던 라이브 드로잉 작품이다. 수많은 관객 앞에서 즉흥적으로 그린 이 작품은 1차 세계대전에 사용되었던 영국의 단좌 복엽기 Sopwith Camel과 그 주위에서 군복 입은 의인화된 동물들이 사진 촬영을 위해서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극적인 장면을 담고 있다. 가히 역사 속 군사 기계라는 팩트와 함께 의인화된 동물이라는 작가적 상상력이 맞물린 픽션이 혼성된 팩션이자, 기계와 인간의 공생이 만든 환영이라고 할 만하다.
최지훈의 출품작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자동차경주 중 타이어 교체 및 긴급 정비에 나선 붉은색 복장의 테크니션들이 긴박하게 움직이는 초긴장의 상황을 포착한 회화 작품이다. 가속하는 기계에 관한 맹신과 노동 그리고 속도 경쟁에 관해 환호하는 관중처럼 인간은 이미 기계와 함께 살고 있지만, 때론 기계가 인간 삶을 결정하는 주체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화면 속에 초현실적으로 개입한 구형 자전거를 끌고 있는 영국 신사 인형이나, 스파이더맨, 뽀로로 캐릭터뿐만 아니라 애드벌룬, 롤리팝(lollipop)과 같은 일상의 오브제들은 오늘날 팽만한 소비 사회 속에서 자동차라는 ‘속도 기계’를 대면하는 인간의 소비와 기호 욕망을 여실히 반영한다.
정국택은 현실을 분주하게 살고 있는 현대인의 초상을 출품작 <Blue sky>로 선보인다. 스테인리스 스틸 봉을 자르고 잇거나 휘어서 연결하여 만든 인간 조각은 중력을 거부한 채 가뿐하게 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으로 설치되었다. 작가는 저마다 넥타이를 매고 있는 집단 초상을 통해서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꿈과 자유를 갈망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유쾌하게 풍자해 낸다. 차가운 기계 문명 속 현대인의 초상은 몰개성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저마다 뜀박질하는 심장을 가지고 사는 존재임을 상기할 일이다.
한승구의 작품 <Mirror Mask>는 스텐파이프, 철, 광학산판, LED 등을 통해 구현한 커다란 인간 두상을 설치해서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도모한다. 관객이 멀리서 작품을 볼 때는 조각의 전체상이 잘 드러나지만, 작품에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 작품 표면이 반사체로 작동하여 조각의 얼굴 형상은 사라지고 관람자의 모습만 반영되는 마술적 조형 언어를 통해서 작품은 오늘날 공동체로 살아가는 ‘사회적 인간’의 존재적 위상을 명쾌하게 은유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이 기계-인간은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페르소나의 잠재된 은폐와 위장의 욕망을 되돌아보도록 권유한다.
노진아는 관객과 상호작용을 하는 대화형 AI 로봇인 <히페리온의 속도>를 선보인다. 작가는 관객의 대화에 응대하는 사람 얼굴 형상의 ‘기계-인간’을 통해서 역으로 인공지능의 기술 만능주의를 경고하면서 거대 자본과 개인화된 데이터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것을 요청한다. 그리스어 히페리온이 “빛처럼 빠른 존재”, “태양보다 높은 존재”를 의미하듯이, 히페리온으로 간주하는 오늘날 기계-인간인 인공지능에 대한 맹신을 접고 희로애락의 감정과 피가 흐르는 몸을 지닌 인간 본성을 살펴볼 일이다.
신교명은 “머리에 신이 깃든다고 여기는 명두(明斗)를 단 기계종”을 상상하고, 관객이 자석을 들어 참여할 때, 자력에 반응하면서 종을 울리는 기계-인간을 형상화한 작품 <Machina Sapiens>를 선보인다. 명두라는 것이 무당이 수호신으로 삼은 주술적 청동 거울이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명두를 단 새로운 기계종은 미래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허구의 역사를 상상하고 만들기 위해 인간에게 타종하도록 주술을 걸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은 의도하지 않게 작가가 만든 기계-인간의 노예가 된 셈이다. 전시장 곳곳에 고대인의 암각화를 흉내 낸 ‘기계종의 위조 암각화’를 형상화한 또 다른 작품인 <Traces of Machina Sapiens>는 이러한 허구 역사를 완성하기 위해 인간에게 마법을 걸어 작업을 지시한 주술적 결과물이 아닐까?
5. 공생 기계와 비인간 행위자 네트워크 - 김태중, 오지헌, 이탈, 최철, 한호
김태중은 <뮤직룸>을 출품했다. 디지털 전자 신호를 아날로그로 바꾸는 DA 전환을 통해서 스피커가 종이판을 진동해서 사운드를 만들고 공기에 파장을 전함으로써 관객에게 비로소 음악을 들려주는 기계를 선보인다. 이 음악-기계는 알록달록한 커다란 종이 스피커와 드로잉이 올려진 사운드 장치와 오토바이 헬멧 등이 선반 위에서 어우러진 채, 꽤 힙(Hip)한 ‘비인간 행위자 네트워크’ 풍경을 만든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벽화는 어떠한가? 플라스틱 필라멘트를 녹여 드로잉하는 3D 펜으로 그린 레코드판을 둘러싼 이미지-텍스트와 여러 인물을 그린 팝적 초상은 음악-기계의 청중인 셈이다.
오지헌의 출품작 <끈: 빛의 흐름>은 전열체인 ‘빛나는 끈’을 제시한다. 검거나 흰 복수의 패널들을 서로 연결하는 빛나는 선은 흰빛의 밝은 LED 조명을 깜빡이면서 스피커를 통해 비장감이 넘치는 의미심장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만남, 연결, 소통의 욕망을 강화하는 이 끈 혹은 선은 모든 사물의 존재를 행위자로 연결하면서 존재적 위상에 관해 질문한다. 우리들 사물이 너희 인간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행위자라는 의미에서 같은 위상의 존재가 아니던가? 작가의 ‘사운드 조각’은 사물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사회적 인간의 초상’을 신박하게 덧입힌다.
이탈은 키네틱 아트인 〈나는 너를 모른다〉를 출품했다. 여기서 나는 기계 혹은 관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너는 누구인가? 내용을 알 수 없는 종이 파편들에 담긴 누군가(혹은 왜곡된 누군가의 진실)이다. 기다란 철제 구조물 위에 두 줄로 도열시킨 수십 개의 백열전구는 관객의 접근을 간파한 센서의 작동을 통해서 다른 속도로 다양한 유형의 점멸을 시작하고 백열전구 앞에 놓인 종이 파편들을 일시적으로 비추는 행위를 거듭한다. ‘국제 재판소의 형식을 빌린 비공식 사건 번호’와 ‘사법 절차에 의해 은폐되고 조작된 기록’을 담은 종이 파편들은 알 수 없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진실을 추적하는 기계-기자의 빛나는 탐사보도라고 할 수 있을까?
최철의 출품작 〈AI 마네킹 클럽〉은 작품명처럼 그야말로 혼성의 풍경을 선보인다. 페인팅으로 가득한 바닥과 벽을 무대로 삼아 분절되고 재구성된 마네킹, 사다리, 책상 등의 오브제와 더불어 컴퓨터 게임 장치와 영상이 혼재된 이곳은 가상과 현실의 경계 어디쯤 있어 보인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과 같은 실감형 기술 기반의 몰입 환경을 모두 아우르는 확장현실(XR)을 지향하는 작품은 ‘비인간 행위자들의 네트워크’인 셈이다. 그것은 어찌 보면 인간을 위해 태어나 인간을 위해 봉사에 나섰던 기술-기계들이 여전히 “인간을 위한다”라는 명목으로 일으킨 혼돈의 쿠데타 현장이기도 하다.
한호는 출품작 〈Eternal Light-Eclipse〉을 통해 기계로 시뮬레이션하는 이클립스(Eclipse)의 우주적 환영을 장대한 모습으로 선보인다. LED로 빛나거나 검은색으로 된 두 개의 원형의 아크릴판이 알루미늄 프레임 안에서 모터의 작동으로 인해 서로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이 작품은 일식이나 월식을 자연스럽게 유추하게 하면서 우리를 우주 판타지의 세계로 인도한다. 한낱 기계 따위가 시간 초월의 궁극적 존재인 ‘영원한 빛’을 어찌 흉내 낼 수 있을까? 아서라! 인간과 공생하는 기계가 행위자 네트워크를 이루는 철학과 예술의 상상계에서 어찌 불가능한 일이 있을까?
6. 숨쉬는 기계 – 포항예술고등학교팀, 국민대학교 자동차공학과팀
포항예술고등학교팀은 저마다 주제를 다양하게 해석하는 개성 가득한 평면 회화 작품들을 선보인다. 출품작들은 기계 문명의 혜택을 받고 사는 현대인의 행복한 일상, 산업 시스템이 구축한 대중 편의주의, 상상과 공상으로 가득한 기계 도시, AI가 일으키는 폐해를 바라보는 비판적 관점 등 다양한 해석의 층위를 선보인다. 참여 작가들은 기술의 유토피아의 수혜 아래서 성장하고 기술의 디스토피아를 염려하는 문화 전환이라는 화두를 안고 해결해야 할 차세대 포항 예술인이라는 점에서, 다음 세대의 ‘숨쉬는 공생의 기계 도시 포항’을 이끌 막중한 책임의 주체다. 이러한 차원에서 거는 기대가 크다.
국민대학교 자동차공학과팀은 이 프로젝트를 여는 출발점이었다. 오랫동안 대학 강의를 맡아 온 이 기획전의 총감독 김진우가 학부 학생들과 함께 ‘결과 보고전’ 형식의 전시를 매년 진행해 오면서 전문 예술가들의 참여를 통해 점진적으로 그 규모와 내용을 확장해 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 전시는 ‘기능성’의 차원에서 다른 성격의 활동으로 규정되어 온 공학도의 디자인과 예술가의 순수 미술이 어떻게 ‘기계 철학’의 차원에서 함께 만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해 왔다. 따라서 전시는 공학도에게는 “문화적 소양을 기반으로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융합적 사고 능력을 배양하는 교육”적 역할을 부여하고, 예술가에게는 기계공학의 근본적 역학에 대해 다시 성찰하게 함으로써 각자의 예술적 활동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왔다. 관객은 기계 드로잉이 주를 이룬 이번 출품작들을 통해서, ‘숨쉬는 기계’라는 주제가 함축하는 인간-기계의 공생에 관한 다양한 질문과 함께 그것에 답하는 공학도들의 테크네의 정신과 자유롭고도 신선한 창의적 결과물을 만나게 된다. (20251011)
출전/
김성호, 「숨쉬는 기계 – 테크네의 정신을 되살리는 공생 기계」, 『숨쉬는 기계』, 전시 카탈로그, 2025.
(숨쉬는 기계전, 2025. 9. 1~10. 18, 동빈문화창고19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