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통한 공동체의 초상과 한국인의 넋을 추구한 작가

권순철(1944 -  )






권순철은 한국 현대회화에서 인간 존재의 실존과 시대의 상처를 집요하게 파고든 작가이다. 198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격동기 속에서 그는 개인의 초상을 통해 집단의 역사와 사회적 긴장을 드러내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그의 화면은 단순한 인물 재현을 넘어, 한 시대를 통과한 인간의 표정과 육체에 각인된 흔적을 기록하는 장(場)이라 할 수 있다.


권순철, 〈용마산 설경〉 / 1986년 서울미술관 개인전


권순철, 〈넋 38선〉/ 2000년 개인전


초기 작업에서부터 드러나는 것은 강한 필선과 두텁게 중첩된 마티에르이다. 거칠고 무거운 붓질은 인물의 외형을 정확히 묘사하기보다 내면의 응축된 감정과 생의 무게를 표출하는 데 집중한다. 화면을 지배하는 어두운 색조와 절제된 색채 대비는 인물의 고독과 긴장을 더욱 부각시키며, 인체는 종종 화면을 가득 채운 채 관람자와 정면으로 마주한다. 이 정면성은 회피할 수 없는 시선의 교환을 요구하며, 회화가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윤리적 관계의 장임을 환기한다.


권순철의 인물은 특정 개인이면서도 동시에 보편적 인간의 표상이다. 노동자, 가족, 주변 인물 등 구체적 모델을 기반으로 하지만, 과장된 손과 얼굴, 왜곡된 비례는 사회 구조 속에서 짓눌린 존재의 상징으로 확장된다. 특히 얼굴의 깊게 패인 주름과 응시하는 눈빛은 삶의 고단함과 존엄을 동시에 담아내며, 한국 현대사의 집단적 기억을 환기한다. 이는 표현주의적 경향과 맞닿아 있으나, 단순한 양식적 차용이 아니라 한국적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형식적 선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권순철 <얼굴>


권순철은 1944년 경남 창원 출생으로  서울대 미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오랜동안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소나무회를 이끌었고 1992 제4회 이중섭미술상, 2013 제17회 KBS 해외동포상문화예술 부문에서 수상했다. 1990년대 이후 그의 작업은 보다 절제되고 응축된 화면으로 나아간다. 색채는 한층 가라앉고, 배경은 단순화되며, 인물은 더욱 고립된 채 등장한다. 이 고립은 단절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사유의 심화로 읽힌다. 인물은 구체적 서사를 설명하지 않지만, 화면에 스며든 시간의 두께는 관람자로 하여금 각자의 기억과 경험을 투사하게 만든다. 회화는 그렇게 작가 개인의 기록을 넘어 공동체적 기억의 저장소가 된다.


2026년개인전은 김종영미술관, 가나아트센터 스페이스 97이라는 서로 다른 성격의 공간에서 동시적으로 조망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조각가 김종영의 정신을 기리는 공간과 상업 화랑의 전시 공간은 권순철 회화의 공공성과 동시대성을 함께 부각시킨다. 그의 작품은 시장의 흐름에 편승하기보다 인간과 시대를 응시하는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해왔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떤 얼굴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얼굴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남겼다.



권순철 <등> 2010


결국 권순철의 작품세계는 ‘인간’이라는 주제를 통해 시대와 맞서는 회화의 가능성을 증명한다. 두텁게 쌓인 물감층은 단지 물질적 질감이 아니라 시간의 축적이며, 화면을 가득 채운 인물은 개별적 초상을 넘어 공동체의 초상으로 확장된다. 그의 회화는 화려하지 않지만 묵직하다. 그리고 그 묵직함 속에서 우리는 삶의 무게와 동시에 꺾이지 않는 존엄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미술계에서 독특한 독자세계를 구축해온 작가이다.




권순철, 김달진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