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떠나는 ‘만다라 시간 여행’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작가 신은숙은 조각을 기반으로 한 채 설치, 영상의 다매체 언어로 만다라를 염원하는 ‘시간 여행’을 떠난다. 즉 작가는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소망이 작동하는 현재를 중심으로 ‘시간 여행’을 상징화하고, 다매체의 모든 작품이 하나의 만다라로 완성되는 궁극의 지향점을 향해 길을 나선다. 그것은 작가가 예술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과정이자, 자기 존재를 조각적 설치로 모색하는 ‘마음의 지난한 여행’이기도 하다. 마음의 지난한 여행? 그것이 무엇인가?
I. 마음의 지난한 여행과 시간 여행자
작가는 “마음을 그릴 수 있고 조각을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화두를 떠올리며 작업에 천착해 왔다. ‘마음’이라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존재를 돌이나 철과 같은 구체적인 매체 위에 표현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대개 형상으로 볼륨이나 매스를 구체화하는 방식이거나 설치로 상징적 의미를 구조화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마음이란 늘 희뿌연 무엇과 같은 것이어서 조각으로 마음의 형상을 완성하고 설치로 그것을 상징적으로 구조화하고 나면 그 마음의 실체는 이내 사라져 버리거나 미끄러진 채 어디론가 달아나 버린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신은숙은 조각의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순간의 마음 상황을 표현하는 일에 집중한다. 매체를 다듬는 ‘조각’과 더불어 조각과 조각 사이의 관계 의미를 성찰하는 ‘조각적 설치’를 통해 ‘임시적인 마음’ 상황이지만 ‘영원한 무엇’을 담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지닌 채 말이다.
신은숙의 조각은 먼저 〈시간 여행자〉 연작으로 대표된다. 영원을 향한 ‘시간 여행’을 떠나는 인간 주체를 조각의 언어로 형상화함으로써, ‘죽음 앞에 선 유한한 인간 존재’라는 한계와 그 속에서 찾아 나서는 임시성과 영원성, 일시성과 지속성, 비순차성과 순환성과 같은 시간에 관한 철학을 우리에게 성찰하도록 이끈다.
신은숙이 선보이는 작품 〈시간 여행자〉는 두 인간이 하나의 인간으로 통합한 듯 두 개의 목을 지닌 몸체가 타원형의 길쭉한 머리를 공유하고 있어 마치 외계인처럼 보인다. 더러 이 타원형의 머리 위에 선명하게 표시된 눈의 형상은 더더욱 이러한 인상을 부추긴다. 변형된 원기둥 형상의 몸체와 거대한 머리로 도상화된 이 인체상은 마치 니체(F. Nietzsche)가 상정했던 현실에 직립한 채 영원회귀(Eternal Recurrence)를 실천하는 ‘초인(Übermensch)’이거나 노자(老子)나 장자(莊子)가 설파했던 대우주를 응축한 소우주로서의 인간처럼 상징화된다.
흥미롭게도 몸체 상반신에 각인된 무한대(∞)의 도상은 이러한 상징성을 더욱더 강화하는 기제가 된다. 무한대(infinity)는 어떤 수나 양이 특정한 수치로 한정되지 않고 끝없이 감소하거나 증가할 수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즉 무한대는 미시적인 세계로 끝없이 응축해 들어오거나 거시적 세계로 한없이 확장하는 어떠한 변화의 상태를 지칭한다. 이러한 무한대는 기본적으로 수학적이고 양적인 개념이지만, 시간적이고 질적인 개념의 영원성(eternity)과 교류한다. 즉 출발점도 도착점도 없는 상태인 무한대나 시작도 끝도 없는 상태인 영원성은 ‘다른 듯 같은 위상’을 공유하는 셈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신은숙이 선보이는 〈시간 여행자〉는 유한한 인간 존재에 ‘신’의 영원성을 투사한 상징적 도상임과 동시에 영원성을 향한 ‘마음의 지난한 여행’을 감행하는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II. 어두운 터널의 현실에서 염원하는 빛의 만다라
신은숙의 〈시간 여행자〉 연작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지점은 ‘만다라(mandala)’의 세계관이다.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Sanskrit)에서 유래한 ‘만다라’는 ‘본질(mandal)의 소유(la)’, 즉 우주의 존재론적 의미와 그 위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만다라는 대개 원형(圓形)의 도상으로 가시화되어 왔다. 힌두교, 불교 등에서 우주, 전체성, 조화를 시각화하는 근본적인 도상으로 알려진 원형(圓形, circle)은 인도의 만다라뿐만 아니라 인류 원형(原型, archetypes)의 도상으로 발현되어 왔다. 이집트 문명의 태양신 ‘라(Ra)’, 고대 그리스 플라톤의 ‘이데아’, 중세 기독교 미술에서의 신성과 영원성에 대한 상징으로서의 ‘원’은 대표적 인류 원형이었던 셈이다. 티베트 밀교에서 ‘만다라’를 표현하는 ‘오드가르바신파(Odgarba Shyinpa)’의 번역어인 ‘윤원구족(輪圓具足)’은 “낱낱의 살(輻)이 속 바퀴 측(轂)에 모여 둥근 수레바퀴(圓輪)를 이룬다”는 뜻으로 만다라의 중심에서 주변까지 모든 요소가 연결된 원형의 구조를 잘 설명한다. 오드가르바신파는 이러한 ‘원형’과 더불어 ‘사각형’이 주요한 기본 도형으로 병존한다.
신은숙의 조각에서도 원형과 사각형은 만다라를 표현하는 주요한 도상이다. 오석과 스테인리스 스틸로 된 설치 작품 〈만다라 0401〉에서는 바닥에 사방으로 펼쳐진 검은색 돌판 위에 사각형과 원형을 기하학적 추상 형태로 패턴화했고, 또 다른 작품 〈만다라 2014〉에서는 같은 유형의 패턴 조합을 벽면에 비디오 영상과 함께 설치하는 방식으로 시각화했다.
신은숙의 조각에서 〈만다라〉 연작은 만다라 도상이 지닌 ‘시공간’에 관한 조화와 균형의 세계를 드러낸다. 주지하듯이 만다라는 ‘시간(tempus)’과 관련해서 우주적 시간의 흐름이라는 ‘지속성’, 변화의 시간 속에서의 ‘일시성’, 그리고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가 펼쳐지는 ‘영원한 현재성’ 또는 ‘순환성’을 함유한다. 한편, 만다라는 ‘공간(spatium)’과 관련해서는 개별체가 어떻게 전체의 한 부분으로서 존재하는지 보여 주는 ‘전체성과 부분성’ 그리고 미시적 개체가 어떻게 거시적 우주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드러내는 ‘연결성’이라는 속성을 함유한다. 여기서 주요한 것은 개별적 인간 주체가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자기 중심성’이라는 특성에 관한 것이다.
만다라가, 우주와 인간의 합일 그리고 명상을 통해 접근하는 시간과 연결된 인간의 내면적 여정을 강조하듯이, 신은숙의 조각이 천착하는 만다라는 대우주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소우주로서의 인간, 우주 속에서 주체적 역할로 살아가는 인간을 강조한다. 얼밀히 말해, 신은숙의 만다라는 불교적 만다라에 머물기보다 “태극 사상과 우주와 인간의 합일 그리고 작품과 자신과의 일체가 되기를 희망하는 심리적 상징체(psychological symbol)로서의 만다라”에 집중한다.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이 만다라를 해설하는 용어인 ‘심리적 상징체’는 ‘개인의 무의식과 의식이 통합된 상징적인 이미지나 형태’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개인 내면 표현의 문제, 즉 마음의 문제와 연동된다.
이러한 차원에서 만다라를 ‘심리적 상징체’로 받아들이는 신은숙의 〈만다라〉 연작은 세계를 대면한 작가 개인의 내밀한 무의식과 의식이 통합된 마음의 세계관을 드러낸다. 따라서 이 연작은 우주 안에서 세계를 맞닥뜨린 소우주로서의 인간 주체를 탐구한 작업인 〈시간 여행자〉 연작의 연장선에서 읽힌다. 즉 〈만다라〉 연작은 작가의 개인 주체뿐만 아니라 인간 공동체의 개별 주체들이 관계를 이루는 것으로 확장한다.
이러한 주제 의식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신은숙은 2010년 이후 개최된 개인전에서 줄곧 전시 공간 전체를 하나의 만다라로 표현하고자 시도하였다. 전시장 바닥과 벽면을 두루 사용할 뿐만 아니라 볼륨과 매스를 강조한 조각, 관계의 맥락을 탐구하는 설치, 그리고 움직임과 시간 흔적을 탐구하는 비디오 영상과 같은 다매체를 혼성하는 방식은 만다라가 이루는 총체적 관계 미학을 선보인다. 신은숙은 멀티플 조각 사이에 위치한 모니터에 영상을 선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공간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기 위하여 작가 자신의 시간 여행’을 상징하는 한 편의 동영상을 상영하기도 하였다.
신은숙은 강원도 여행 중에 맞닥뜨린 수많은 긴 터널에서 영감을 받은 ‘어두운 현실’과 ‘빛나는 만다라’에 관한 은유를 가시화하기 위해, 다양한 소재의 영상과 함께 스틸 사진과 같은 매체를 두루 사용함으로써 만다라가 함유한 지수화풍(地水火風)의 끊임없는 변화, 생성, 순환의 세계관 그리고 ‘마음으로 떠나는 만다라 시간 여행’을 효과적으로 선보인다.
출전/
김성호, 「마음으로 떠나는 ‘만다라 시간 여행’」, 『미술과비평』 겨울호, vol.84.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