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욱진, 〈아이들과 교회〉, 1950년대 후반 추정(1990년 후서명 추정), 종이에 크레파스, 20.3×14.3cm
신세계갤러리 센텀시티에서 열린 장욱진(張旭鎭, 1918-90) 전시 오프닝 전날(2011.3.2), 유족과의 식사 자리에 동석한 적이 있었다. 진진묘(眞眞妙) 이순경 여사와 장남 내외, 네 분의 따님과 외손녀 한 분까지 많은 유족이 모였다. 부산은 작가가 6·25를 겪은 도시로, 매일 한 되들이 소주병을 옆구리에 차고 새벽마다 용두산에 올랐다는 애환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이 시절 기숙이 마땅찮아 폐차장 버스에서 잠을 자거나 육군 8사단 소속으로 종군화가단에 참여하다가, 국립박물관 부산임시사무소에서 열린 《신사실파 제3회전》(1953)에 출품하는 등 남녘 항도에서의 피난 생활을 한동안 이어가기도 했다. 전시장 안쪽 중앙에 걸린 〈자화상〉(1951)은 부산에서 이리저리 떠돌다 잠시 고향에 돌아가 심신의 안정을 찾았던 시기에 그린 작품이다.

마해송(馬海松)의 동화집 『앙그리께』(1959, 『경향잡지사』)에 실린 장욱진의 표지화
이 전시가 시작될 즈음, 《장욱진 5주기 기념전》(1995, 호암갤러리) 도록과 부산공간화랑 개관 30주년 기념도록 『DOCUMENT 30 KONGKAN』(2005)에 실린 작품 〈아이들과 교회〉를 부산의 모 화랑에서 만났다. 주일학교 주보 표지로 사용하면 맞춤할 것 같은 도상인데, 화면 구성의 짜임새가 독특하다. 첫째, 소녀의 얼굴 윤곽, 눈, 코, 입, 목 그리고 소년의 몸통은 연두색으로, 소년의 얼굴 윤곽, 눈, 코, 입, 목 그리고 소녀의 몸통은 붉은색으로 처리했다. 색의 배치가 ×자로 교차하면서 상하좌우로 대칭을 이룬다. 둘째, 소녀의 단발머리는 길고 굵은 3개의 면으로, 소년의 까까머리는 짧고 가는 9개의 선으로 처리해 또 다른 대조를 이룬다. 셋째, 소녀의 눈과 코는 선조임에 반해 소년의 그것은 원과 삼각형이라는 폐곡선의 평면 구조로, 이 또한 상반을 이루고 있다. 넷째, 소녀의 몸통은 2개의 가로선으로, 소년의 그것은 4개의 세로선으로 처리했는데, 전체적으로도 소녀는 가로선의 구성을, 소년은 세로선의 구성을 취하고 있으며, 소녀의 경우는 얼굴은 거의 정원(正圓)으로, 몸통은 크게, 목은 짧게 처리한 반면, 소년의 경우는 얼굴은 살짝 납작한 원형으로, 몸통은 작게, 목은 길게 처리했다. 모양·크기·길이의 대비가 만드는 미묘한 느낌이 전체적인 화면의 균형감을 잘 살리고 있다. 다섯째, 인물의 연두색 윤곽선 안에는 노란 바탕색을 칠하지 않고 붉은색 윤곽선 안에는 노란 바탕색을 칠해, 서로 대칭을 이루도록 화면을 꾸몄다. 흑색, 연두, 적색, 황색의 전체 구성 역시 대단히 감각적이다. 모든 조형 요소가 대비되는 패턴으로 나타나지만, 이 상반이 거슬리지 않고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정교한 계산이 깔리지 않고서는 이루어지기 힘든 구성과 배열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치밀한 성향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장욱진, 〈자화상〉, 1951, 종이에 유채, 14.8×10.8cm
제작연도는 90년, 서명은 후기에 주로 사용한 ‘Ucchin.C’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1950년대 작품일 것으로 추정된다. 제작 후 서명이 없는 상태로 남아 있다가 1990년에 서명한 것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이와 유사한 작가의 50년대 작품 도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마해송의 장편 동화 『앙그리께』 표지화의 경우, 소녀만 등장하고, 교회 대신 집이 있으며, 아이들의 몸통을 더 간략하게 처리했다. 또 아이들 얼굴에 모두 바탕색을 칠했고, 자전거가 있으며, 50년대에 주로 사용한 서명 ‘UCCHIN.CHANg’을 기재했다. 이상의 몇몇 차이 외에는, 도상의 구성과 소재는 물론 화면 바탕이 노란색이라는 점까지 〈아이들과 교회〉와 일치한다. 『앙그리께』가 1959년 출판되었으므로 표지화는 당연히 그 무렵 제작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과 교회〉 역시 제작연대를 50년대 후반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