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미술관과의 인연에 대해 회상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중앙일보사 직영 호암갤러리(리움미술관 전신)의 개관 실무 책임자로 일하면서부터입니다. 80년대 초만 해도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 조직에 학예 분야가 없어 학예사(큐레이터)라는 직함 자체가 없었을 때였지요. 그래서 저를 한국 미술관 제1호 큐레이터라고 한국큐레이터협회에서도 인정해주었답니다. 제1호답게 어깨가 무겁기는 하지만, 그런가 보다 하고 있습니다.’ 


《실크로드 풍물사진전-돈황에서 티베트까지》(1988년)


제20대와 21대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역임한 윤범모 관장의 목소리에는 한국 미술사의 산증인으로서의 담담함이 묻어있었다. 그는 언론으로부터 ‘미술 현장 지킴이’ 혹은 ‘미술계의 르네상스 맨’이라는 별칭을 얻었을 정도로 폭넓은 현장경험을 축적해왔다. 
호암을 떠나 그가 개관 책임자로 문을 연 미술관은 한두 곳이 아니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을 비롯해 이응노미술관, 동아미술관(동아그룹 운영), 경주 솔거미술관 등이 그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온 곳이다. 80년대부터 기획하고 실행한 전시는 부지기수여서 이제는 그 수를 다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미술 평단에 나온 이후 그는 줄곧 ‘미술의 힘은 현장에서 나온다.’라는 신념으로 반평생을 미술 현장과 함께해오고 있다. 

그가 지향하는 핵심 가치는 ‘전문성’과 ‘다양성’ 그리고 이를 아우르는 ‘균형감각’이다. 현실성 없는 주장은 하나의 이상론에 불과하다는 생각과 함께, 구미 중심의 우리 현대미술 편재에 대한 깊은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항상 우리 미술의 현주소를 제대로 파악하고 중심을 잡는 일에 힘을 쏟았다. 특히 미술계에서 한국미술사 전공자가 드물고 대부분 서구 현대미술사 전공자들로 채워진 현실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했다. 


1980년대 뉴욕 백남준 스튜디오에서 윤범모, 백남준, 김구림, 김차섭, 전수천 등


이에 따라 전통을 창조적이면서도 비판적으로 계승하고, 우리 현실에 맞는 주체성 있는 미술에 방점을 찍어왔다. 이러한 신념은 국립현대미술관장 재임 시절 본격적으로 정책에 반영되었다. ‘미술로 감동과 상상력이 넘치는 사회’를 비전으로 내세우고,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도약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무엇보다 전문인력의 안정화를 위해 39명의 전문임기제를 일반직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관장 직급을 1급으로 상향 조정하는 등 미술관의 대외적 위상과 조직의 내실을 동시에 다져 나아갔다. 

또한, 4개 관의 관별 특성화 전략을 통해 운영의 새로운 방향성을 도모했으며, 과천관에 어린이미술관과 옥상정원을 마련하고 덕수궁관은 근대미술 특화 전략으로 대중의 뜨거운 사랑을 받게 했다. 재임 기간 중 윤범모의 가장 눈부신 성과 중 하나는 소장품 1만 점 시대의 진입과 ‘이건희컬렉션’의 원만한 기증 절차 수행이다. 삼성 호암갤러리 시절부터 이어진 인연을 바탕으로 유족과 합의를 끌어내며, 초유의 작품 기증 사례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 컬렉션은 특별전과 지역 순회전을 통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이는 미술이 대중과 호흡하는 결정적인 계기의 순간이었다. 



이응노미술관 개관식(2000년) (좌측부터) 윤범모, 김흥수, OOO, 한승헌, 박인경(故이응노 선생의 부인), 오광수, 지건길, 김종규, 박석원, OOO


더불어, 매년 20여 건의 대형 전시를 개최하며 소외된 장르를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개관 50년 만에 처음으로 개최한 본격적인 서예전과 채색화전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인들이 관람하는 획기적인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윤범모는 국제적 위상 강화에도 박차를 가했다. IT 강국의 저력을 바탕으로 ‘온라인 미술관’을 개설해 외국 유수 언론으로부터 세계 10대 온라인 뮤지엄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또한, 영문판 소장품 도록 발행과 현대미술 통사 『한국미술 1900-2020』의 출판은 한국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미술 한류’ 원년을 선포한 그는 미국 LA카운티뮤지엄과 구겐하임미술관에서의 한국 미술품 전시를 주관하며 전례 없는 대대적인 한국 현대미술의 해외 진출을 이끌었다. 

그는 또 다각적인 사업을 통해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끌어냈으며, 2020년 약 5,000건이었던 뉴스 보도 건수를 2021년 6,000건 이상으로 증대시키는 등 문화예술기관으로서 이례적인 홍보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동아일보를 비롯한 주요 일간지와 잡지에 기고 및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EBS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는 등 대외 매체를 통한 대중 소통에도 앞장섰다. 아울러 미술관 웹사이트 내 다채로운 참여형 프로그램을 개발·제작하여 관객과의 접점을 확장하는 데도 기여했다.
더불어 과천관에 설치된 백남준의 〈다다익선〉 보존 처리를 완료하고 재가동을 기념하는 축제를 추진하며 미디어 아트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기도 했다. 


다다익선 재가동 기념식-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2022.9.15)


그러나 두 번이나 선임된 관장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예술적 양심과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자신의 표현대로 ‘저급한 정권 아래에서 더 이상 부역할 수 없다.’는 단호한 판단하에 자진 사표를 던지고 미술관을 나왔다. 이는 문화예술계 기관장으로서 자존심을 지킨 유일한 사례로 평가된다. 국현 시절의 기록과 고뇌는 퇴직 이후 『현대미술관장의 수첩』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왔다.

이제 그는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로서 다시 한번 미술 현장을 지키고 있다. 비엔날레 창립 당시 집행위원과 큐레이터로 참여했던 그가 다시 친정으로 돌아와 우리 비엔날레 문화의 정착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다 보니 ‘원로’ 소리를 듣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행사장이나 모임에 가면 최고 연장자로 대접받지만, 그는 여전히 개인적인 욕심보다 후배들이 잘되기만을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한다. 우리 미술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필봉을 놓지 않고 현장을 누벼온 그의 삶은, 현실성 있는 실천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 보이고 있다.  


- 윤범모(尹凡牟, 1951- ) 동국대 미술사학 박사, 뉴욕대 예술행정학과 수학,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등단(1982). 호암갤러리 개관 팀장(큐레이터), 예술의전당 미술부장, 가천대 미술대학 교수,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창립회장, 한국큐레이터협회 회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박수근미술상 운영위원장,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및 창원조각비엔날레 총감독. 제20-21대(2019-22)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동국대 석좌교수 역임. 『현대미술관장의 수첩』, 『미술현장과 전시』, 『미술의 전통과 시대정신』, 『백년을 그리다』, 『화가 나혜석』, 『한국미술론』, 『미술본색』, 『평양미술기행』 등 30여 권의 한국미술 관련 저서와 『파도야 미안하다』, 『화택』, 『토함산 석굴암』 등 다수의 시집. 미국 정부 초청(USIS) 미국 미술계 시찰(1985), 호주 정부 초청 미술계 시찰(1994), 서울올림픽 개최 이전 중공(중국) 대륙-백두산에서 티베트까지 취재 여행(1988, 3개월간), 북한 당국의 공식 초청 북한 미술계 탐방(1998). 현 (재)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