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호 촬영

새 천년의 서막을 알리던 2000년 봄, 광주비엔날레 스태프 청년 최연하는 거대한 우주를 만났다. 그의 눈에 비친 신세계는 사진과 영상 예술을 안고 한평생을 내달음쳐온 그의 삶에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그의 임무는 전시장 안의 모든 작품을 슬라이드 필름으로 촬영해 목록화하는 일이었다. 거장들의 작품들을 만나며 예술적 소통의 작동 과정과 결과를 기록하던 그 밀도 높은 시간은, 훗날 그가 자신의 전공을 살려 사진과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감각과 서사의 밑거름이 되었다.

최연하의 큐레이팅 궤적은 '사진'이라는 견고한 장르 바탕에서 출발해 '생태감성학'이라는 드넓은 지평으로 진화해왔다. 2004년 환경재단 '그린아트페스티벌'을 시작으로 , 그는 《Becoming Wetlands》(2008) , 《지구상상전》(2011) , 《크리스 조던: 아름다움 너머》(2019) 등 기후위기와 생태적 의제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전시들을 쉼 없이 일구어냈다. 특히 한겨레신문 전시 디렉터 시절에는 대규모 블록버스터 전시의 예산과 운영, 홍보 전 과정을 관통하며 전시기획의 '야성'을 몸소 체득했다. 현장 실무로 단련된 그는 이후 수많은 기획과 비평 작업을 수행하며 더욱 단단해졌다.

그의 활동은 화이트 큐브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17년간 중앙대, 한예종, 성균관대 등 수많은 대학 강단에서 사진미학에서 사진사, 전시기획과 포트폴리오에 이르기까지 사진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인문학적 담론을 학생들과 나누었다. 이러한 학문적 정열은 『한국 사진 비평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 비평집 『한국사진의 힘』(2020)을 펴내는 연구와 저슬 활동으로 이어졌다. 그가 큐레이터로서 활동하면서 저술활동을 지속해온 것은 전시기획과 비평작업을 불이(不二)의 것으로 삼아 연구자 정체성을 소중하게 여겨온 태도 덕분이다.

최연하가 지향하는 큐레이터정신의 핵심은 '시대의 징후를 읽어내고 행동하는 정동 실천'에 있다. 청춘 시절에 주유천하 하며 세상 물정을 몸으로 익힌 그는 체험을 행동으로 옮기는 유기적인 지식인으로 성장해왔다. 10대 후반 이래 지금까지 이어온 활동가 기질을 바탕으로 ‘연결과 연대’의 화두를 안고 있는 그는 동시대 사회 문제를 예술 정동으로 풀어내는 일들을 해왔다. 그의 길은 자연생태와 사회공동체의 의제를 동시에 담아내는 데 있다. 현재 그는 재단법인 숲과나눔이 설립한 ‘공간풀숲’ 디렉터로서, 예술과 삶, 인간과 자연의 상호의존성을 사유하는 생태 감성학의 거점을 지키고 있다.

큐레이터로서 최연하 정신의 핵심은 시대정신과 동행하는 정동 실천을 생태적 지혜로 치환하는 연대의 기술에 있다. 그것은 렌즈에 포착된 찰나의 진실을 시대의 보편적 가치로 확장하는 일이며, 사진 전문 기획자라는 익숙한 프레임을 넘어서 환경과 생태 의제의 행동가로 진화하는 더욱 넓고 깊은 길이다. 그의 활동은 사진계 또는 미술계 내부에 국한하지 않는다. 시민사회와 학계 등 다양한 주체들과 연대하고 협업하는 과정에서 최연하만의 독창적인 빛과 향이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사진비평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글쓰기를 해온바 여러 권의 저서를 펴낸 현장의 이론가/비평가 역할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렇듯 전방위 활동으로 제도와 현장을 잇는 든든한 가교 역할을 해온 최연하는 장르와 의제를 넘어 조화와 균형의 지식인으로 진일보하고 있다. 그의 삶은 이제 사진 한 장에 담긴 '북쪽'의 고독함에서 출발해, 모든 생명이 인드라망처럼 얽혀 있는 '풀숲'의 생태계로 나아간다. 예술이 자연과 사회와 인간이라는 ‘세계’를 만나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고, 공동의 의제를 설정하며 첨예한 쟁점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큐레이터 최연하의 정동 실천이 오롯이 담겨있다.

- 최연하 (1974~ ) 
광주대와 중앙대 대학원에서 사진학 전공 후 홍익대 대학원 예술학 박사 졸업. 환경재단 큐레이터, 한겨레신문 전시 디렉터, 경기포토페스티벌2022 총감독 역임. 주요 기획전으로 《41.6% 1인가구》(2024), 《거리의 기술》(2021), 《패션사진의 신화 사라 문》(2009), 《123 호외》(2025), 《서울사진축제》(2008/2016), 《못살, 몸살, 몽상》(2015), 《지구상상전》(2011), 《사진의 북쪽》(2008) 등이 있다. 저서로 『한국사진의 힘』, 『사진의 북쪽』 등이 있다. 현 재단법인 숲과나눔 에코아카이브 & 아트센터 감독, <공간풀숲>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