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삶, 인간의 존엄을 끝까지 증언한 화가

황재형(1952-2026)






황재형은 전남 보성 출생으로 중앙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후, 1980년대 초반 ‘민중미술’의 흐름 속에서 현실을 직시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1982년 미술동인 ‘임술년’을 창립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했으나, 그는 화실에 앉아 풍경을 그리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1980년대 중반 강원도 태백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후  태백, 삼척 등지에서 직접 광부로 일하며 탄광촌의 이웃들과 삶을 공유했고 '광부화가'라고 통칭되었다. 이러한 그의 행보는 한국 미술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현장 밀착형' 예술의 전형이 되었다.




<황지 330>  1981 (1982 중앙미술대전 장려상)


주요 개인전은 1984년 제3미술관 첫 개인전 쥘흙과 뉠땅, 2013년 전북도립미술관의 삶의 주름, 땀의 무게, 2017년 박수근미술관에서 수근미술상 수상작가전, 2017년 가나아트센터 십만개의 머리카락,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최된 대규모 회고전 《회천(回天): 다시 하늘을 우러러보며》에서는 그의 40년 예술 세계를 총망라한 전시로, 탄광촌 작업복 연작부터 머리카락 초상화까지 선보이며 큰 울림을 주었다. 수상은 1982년 제5회 중앙미술대전 장려상, 2013년 제7회 민족미술상, 2016년 제1회 박수근미술상을 한국적 사실주의의 계승자로 인정받았다.



<연탄찍기> 1986



황재형의 작품 세계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초기에는 하이퍼리얼리즘(극사실주의) 기법을 빌려 광부의 작업복과 장화 등을 통해 노동의 고단함을 증언했다. 중기에는 석탄 가루가 섞인 흙과 캔버스를 결합해 마티에르(질감)를 강조하며 탄광촌의 풍경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내면을 포착했다. 후기에는 매체의 확장을 시도했는데, 특히 머리카락을 재료로 활용한 초상 작업이 유명하다. 타인의 신체 일부였던 머리카락을 한 올씩 붙여 완성한 광부의 얼굴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실존적 질문을 던지며, 회화의 한계를 넘어선 숭고미를 보여주었다.



<검은 산, 검은 울음> 1996-2006



미술사적 위상에서 볼 때 황재형은 한국 민중미술 1세대 작가들 가운데서도 꾸준한 작업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심화시킨 사례로 꼽힌다. 그는 시대적 요구에 반응하면서도 유행에 편승하지 않았고, 현실 참여와 예술적 완성도 사이의 균형을 끝까지 유지하며 이러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업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메탈지그와 선탄부> 2004-2009

 

결국 황재형의 회화는 특정 시대의 산물에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노동과 삶, 인간의 존엄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통해 동시대 미술이 어떤 방식으로 현실과 관계 맺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중요한 사례이다. 그의 타계는 한 시대를 증언해온 작가의 부재를 의미하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은 한국 사회의 기억과 함께 오래 지속될 것이다.


 

<드러난 얼굴> 2017



황재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