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민의 화두는 기억이다. 그는 기억을 주제로 기록과 연구·전시·교육을 통하여 평화예술의 길을 걷는 큐레이터다. 유수의 미술문화공간에서 인턴으로 출발해 홍익대미술관과 평화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한 그는 조사연구와 전시 기획과 출판·소장품 등의 업무를 맡아 기관 소속 전문가로서의 실력을 쌓았다. 독립큐레이터로서 그의 출발은 김근태 추모전 시리즈다. 《생각하는 손》(2014), 《포스트트라우마》(2015), 《따뜻한 밥상》(2017), 《도래할 공동체》(2019) 등의 전시에서 그는 노동과 기억, 생명, 공동체 정신을 담아 민주주의와 인권 가치를 풀어냈다. ‘남영동 515호’에서 진행한 전시 《근태서재 시 소리 숲》(2018)은 고문의 장소를 사유와 인간 존엄의 기억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의 전시 기획은 감옥이라는 역사적 기억 공간으로 이어졌다. 《문익환 목사 감방전_꿈은 가두지 못한다》, 《민청학련, 철혈광복》 등 다수의 서대문형무소 감방 전시가 그것이다. 그는 전시 기획자에 그치지 않고 공간 기획자로 일해왔다. 세월호참사의 희생자를 기억하고 시민이 함께하는 전시관 ‘기억과 빛’(2019), ‘영등포산업선교회 역사관’(2021) 공간 기획을 했으며, 도봉구의 김근태기념도서관 아카이빙과 전시 기획을 주도했다. 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기억을 동시대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하여 그는 기록과 기억의 예술을 펼쳤다. 기억을 공공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은 개인의 기억을 사회적 기억으로 연결하는 일이다. 큐레이터로서 그가 사실과 감각 사이를 오가는 것은 공감의 코드를 장착한 예술이 기억 재생에 최적의 길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 큐레이터가 공간의 규범 속에서 엄격하게 움직인다면, 독립큐레이터는 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문제의식을 펼쳐나간다. 김병민은 전쟁과 국가폭력·애도·인권·민주주의 등의 주제로 전시장과 현장을 분주히 오가며 사회적 대화를 제안한다. 그는 기억을 토대로 연구와 전시, 교육을 연계하는 예술적 실천이자 사회적 행동가이다. 그에게 아카이브는 ‘기록이 상처를 위로하는 자리’이다. 기록은 ‘개인의 기억을 사회적인 것으로 전환하여’ 다수의 사람들과 대화하게 하는 밑거름이다. 도서관과 뮤지엄·극장 등의 문화인프라에 비해 기록관 제도가 상당히 미비한 우리 사회의 현실에 비춰봤을 때, 독립큐레이터에서 기록전문가로 진화해 온 그의 길은 매우 소중한 문화자산이다.
김병민은 기록관 전문가, 도서관 종사자, 뮤지엄 큐레이터 정체성을 한 몸에 지니고 이를 통하여 김근태기념도서관을 기록관과 박물관 기능을 결합한 도기박(도서관·기록관·박물관; 라키비움 Lachivium)으로 확대하고 있다. 나아가 근현대사기념관, 김근태기념도서관, 문익환 통일의 집, 박종철센터, 식민지역사박물관,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 이한열기념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등의 작은박물관 네트워크를 통하여 평화 예술 연대의 장을 펼치는 꿈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사회적 활동가와 예술가 실천가 역할을 병행하는 큐레이터로서 김병민 정신의 핵심은 고통의 역사를 인간 존엄으로 승화하려는 태도에 있다. 한 인간의 삶의 기억을 고정적인 상징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을 돌아보며 그의 정신적 가치와 관계 등을 총체적으로 성찰하는 일에 매진한다. 기록을 통하여 기억을 살리고 그것을 역사와 현실의 장에서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김근태’를 사회운동가·고문피해자·정치인으로서만이 아니라 인간의 상처를 치유하는 예술의 힘을 알았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김병민은 트라우마의 전이를 겪었던 사람으로서 국가폭력과 사회적 재난으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우리 사회가 기억과 예술의 힘으로 치유와 회복의 길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 김병민(1982- ) 경희대 사학과 및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졸업, 평화박물관 큐레이터(2009-2011), 홍익대학교미술관 큐레이터(2011-2013), 신한대 리나시타교양대학 미술이론 강의(2015- ), 2014년 부터 전쟁·평화·민주·인권 주제 독립큐레이터로 활동. 《김근태 추모전》 시리즈, 김근태기념도서관 아카이브 정리 및 전시 기획(2021-2026), 현 김근태재단 아카이브센터장(2021- ), 늦봄문익환추모사업회 이사(2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