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부터 거제도는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대한조선공사의 후신인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 등 중공업 단지가 들어서게 된다. 이에 따라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찾아 거제로 들어오게 된다. 화복동문(禍福同門)이라고 했던가. 새로운 도시를 만들기 위해 반듯하고 너른 도로, 주택단지를 조성한답시고 땅을 파고, 오래된 것들을 철거하며 지나가는 중장비의 요란한 굉음 속으로 지역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던 것들도 함께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거제박물관과 황수원 관장, 2026
이걸 보고 있던 황수원에게 지역문화와 역사를 보존하여 향토의 정체성을 후대에 물려주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거제의 역사와 삶을 수집해 정갈한 마음을 담아 보여주고 있는 거제박물관 설립자 황수원 관장의 회고에는 당시 가졌던 의지의 결연함이 잘 묻어나고 있었다. 대우조선중공업주식회사의 종합기획실 출신이었던 황수원은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을 찾아가 그 중요성을 설명하고 재정적 지원을 요청했다. 이 지원으로 박물관과 거제문화재단을 설립할 수 있었고 그 의지의 실체는 지금까지도 잘 이어오고 있다.
박물관을 개관하기에 앞서 저명한 사회학자 서울대 김경동 교수의 제안으로 부산대 출신의 사회학연구자 등 4-5명이 의기투합해 거제사회연구소를 설립해 거제지역에 관한 사회과학적 연구를 단행해갔다. 몇 차례 여론조사를 통해 거제도와 부산을 잇는 연륙교 ‘거가대교’의 타당성을 정부에 건의하고 거제 장기개발계획을 수립하여 지역신문에 연재했다. 왜곡된 시장구조를 개선하고자 거제의 유통산업구조를 조사한 연구보고서를 발간해 지자체에 건의하였고, 원주민과 이주민 간의 갈등 관계를 분석하여 이를 극복할 방안이 담긴 연구보고서를 출간하기도 하였다.

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과 거제에서, 2014
거제도는 한국전쟁 당시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과 17만 3000여 명의 전쟁포로를 수용함에 따라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찾기가 어려운 지역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원주민의 자기 역사와 문화에 대한 무관심, 농어업에서 산업사회로의 급격한 변화는 정체성의 혼란을 더욱 심화시켰다. 조선소로 유입된 산업 엘리트 군과 기술이 없어 먼발치에서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원주민은 변방으로 밀려나 결국에는 이들의 무기력과 불만이 대규모 파업으로 이르게 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고 황수원은 회고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원주민의 지역문화에 대한 자긍심 회복과 이주민들의 거제 고유문화와 역사에 대한 존중심을 갖도록 하는 조치가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황수원의 이런 판단이 박물관 설립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동의와 협력이 필요했다. 먼저 지역민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유물기증 운동을 펼쳐 나아갔다. 이 운동은 큰 호응을 얻었고, 지금의 유물 대부분은 그렇게 수집된 것이다. 한 편으로는 동아대학교박물관 심봉근 관장의 도움을 받아 학예사(나동욱, 후일 부산박물관장)를 채용해 유물의 분류와 거제 전 지역에 대한 지표조사를 시행해 나아갔다. 엄동설한에도 아침에 출근하면 여직원에게 유물 정리를 맡긴 채, 나동욱 선생과 단둘이 빵과 사이다 한 병씩을 사 배낭에 넣고 거제 주변의 섬과 산을 누볐다. 한번은 간첩이라고 신고를 당해 관계 당국의 조사를 받은 적도 있다. 당시의 지표조사결과는 지금도 거제의 유물과 유적을 조사하는데 중요한 기초자료가 되고 있다.
자료를 수집하는 데는 고물상과 쓰레기장도 중요한 거점이 된다. 고가구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헐값에 사 온 궤짝 안에 함께 있던 고서를 찾아냈고, 마을 쓰레기 소각장에서는 귀중한 유물을 멸실의 위기에서 살려내기도 하였다. 이런 숱한 우여곡절은 37년이 지난 지금도 진열장을 맴돌며 유물의 가치를 발해주고 있다.

경남박물관인대회, 산청, 2018
좌측부터 황수원, 윤열수 한국박물관협회장, 김의광 목인박물관장, 이도열 고성탈박물관장
‘당시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진주박물관 등 국립박물관 몇 개를 빼면 지역에서 사립박물관이란 것이 대단히 생소한 때였습니다. 정부(문화부)에 박물관 등록 신청을 했는데 우리 박물관이 등록번호 2번을 받았고 지자체 담당 공무원이 ‘수장고’라는 단어조차 처음 들어본다고 해, 서로 얼굴을 보며 겸연쩍게 웃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당시로써는 박물관에서 문화행사나 학술발표는 물론 기획전시조차 하기 어려운 여건이었다. 그런데도 문학 세미나와 음악회 등을 열어 지역민들과의 거리를 가깝게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전시회를 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이 방문해 오래된 민속품이나 골동품을 보며 과거를 추억하며 즐거워해 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순수했던 그때가 그립기도 하단다.
‘박물관을 개관할 때나 지금이나 저는 이것을 개인의 재산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재단법인을 만든 배경도 그러하거니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한 점이라도 더 모아 온전히 후대에 물려주는 일이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웃는 표정의 황수원 관장의 얼굴에서는 욕심같은 것은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그에게 박물관을 하면서 행복했을 때는 언제고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물었다. ‘사립박물관을 운영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이 때로는 박물관의 존폐와 연결되는 문제라서 심각해지기도 하지요. 반면, 우리의 소중한 문화와 역사를 다루며, 실물을 통해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것은 커다란 행운입니다. 박물관에서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인생을 배울 수 있었던 것에 늘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은 더욱 환해 보였다.
황수원은 1990년부터 박물관 조성을 계획하고 유물을 모아 1991년 12월 21일에 거제박물관을 개관했다. 이 과정에서 비영리 공익법인인 (재)거제문화재단을 설립, 박물관을 재단에 귀속하여 거제박물관을 ‘공공·공익, 항구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 우리나라에서 2번째로 종합사립박물관으로 등록했고, 경남에서는 단연 첫 번째로 등록(경남 제1호)한 고고·민속 분야의 전문박물관이 되었다. 황수원은 박물관의 관장과 재단이사회장을 맡아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발굴·보존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우리 배의 역사’, ‘생활 속의 대나무’, ‘비단벌레의 비밀’, ‘경남 박물관 연합 전’, ‘기증유물 특별전’ 등 100여 회의 전시와 ‘거제박물관대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주민과의 소통도 활발히 해가고 있다. 거제에 가면 거제박물관을 꼭 들러야만 하는 이유다.
- 황수원(黃授援, 1956- ) 경남 거제 출생. 성균관대 법률학과 학사. (사)경남박물관미술관협의회장·(사)한국사립박물관협회 정책위원장 겸 이사·(사)한국박물관협회 이사·거제대 외래교수·부산매일신문·경남신문 칼럼위원 역임. 현 거제박물관 설립자 겸 관장, (재)거제문화재단 이사장, 옥동힐링가든(국가등록 경남 제7호) 대표, 남해안 관광신문 대표, (사)경상남도정원협회 감사. 문화관광부장관 표창(2005), 경남지사표창(2013). 칼럼 연재 모음집 「정든 거제 정들인 사람」(2007, 순리)·「오래된 미래」(2012, 거제박물관)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