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宗悅, 『朝鮮とその藝術』, 叢文閣, 일본,
1922, 334쪽, 19×14cm, 표지


이 책은 일본 근대기 미술·공예 비평가이자 민예운동의 창시자로 잘 알려진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의 첫 번째 한국 관련 저서로, 그가 한국의 미와 그 특질을 미학적·사상적으로 해석하고 설명한 최초의 주요 저술이다.

야나기는 1910년 창간된 종합예술지 『시라카바』의 동인이자 핵심 인물로, 이 잡지는 일본 군국주의가 팽배하던 시기에 반대급부의 사조인 유럽의 자연주의와 개인주의, 영국과 독일의 공예운동, 그리고 인간 중심의 감정과 이상을 중시하는 낭만주의 미학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상적 배경 속에서 그는 도쿄제국대학 철학과에 진학하며 서구의 문예와 사상, 종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이후 조선의 문화와 미술을 바라보는 미학적 시각 형성에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야나기는 1909년 모란이 그려진 조선의 큰 항아리를 구입하면서 조선 도자를 처음 접하였으며, 1914년 아사카와 노리타카가 선물한 조선시대 〈백자청화초화문각병〉을 계기로 조선의 예술과 동양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이후 그는 1916년부터 조선을 여러 차례 방문하여 경주 불국사 등을 여행하였고, 1919년 3·1운동을 목격한 경험을 바탕으로 조선 현실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켰다. 이를 토대로 「조선인을 생각함」을 일본 요미우리신문에 발표하였고, 1920년 동아일보에도 게재하였다. 이러한 글들을 포함하여 약 3년간 집필한 9편의 글을 묶어 1922년 『조선과 그 예술』을 간행하였다.




1. 내지. 청룡도(평안남도 강서부 우현리, 3묘중 제1묘, 동벽 벽화, 고구려 시대)
2. 내지. 호(壺), 이조자기, 야국도, 염부 - 아사카와 노리타카에게 받은 조선시대 〈백자청화초화문각병〉, 일본민예관 소장
3. 내지. 미륵(이왕가박물관 소장, 삼국시대) -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야나기는 한 민족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종교나 예술과 같은 내면적 이해”와 “순수한 사랑에 기초한 공감적 이해”를 강조하였다. 그는 조선에 대한 분석적 지식에 기반하기보다는 ‘정(情)’과 ‘사모함’, 그리고 조선에 대한 공감적 태도를 바탕으로 글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도자, 조각, 건축, 석탑 등을 중심으로 한국의 미를 ‘선의 미’, ‘백색의 미’, ‘비애의 미’, ‘무작위’, ‘자연으로의 귀의’ 등의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그는 특히 무명 장인의 공예와 소박한 생활 미술에 주목하며 이를 근대적 미의 기준과 구별되는 순수한 아름다움으로 평가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이후 그의 ‘민예’ 사상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조선의 공예품이 사라져가는 현실에 주목하며 이를 보존할 필요성을 강조하였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1921년 조선민족미술관 설립 계획으로 이어져 1924년 개관했다.

이 책은 조선의 역사와 문화, 미술을 하나의 미적 특질로 파악하려는 초기 시도로서, 일제강점기 일본인 연구자에 의해 형성된 한국 미술 인식의 한 흐름을 보여준다. 이후 이 책은 한국 미술과 미의식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인용과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며, 한국의 미를 해석하고 재정립하려는 후대의 연구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이 책은 일본 고고학 연구자 오노 사치오(大野 左千夫, 전 와카야마시립박물관 학예전문위원 겸 시사편찬위원)의 기증 자료이다. 그는 15년간 서울아트가이드를 구독하고 있으며, 근대기 한국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지금까지 국제우편으로 6점의 자료를 기증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