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미술의 심장 : 2026 홍콩 아트위크, 다시 뛰다
시장 회복의 신호탄 쏜 ‘아트바젤 홍콩’부터 담론의 깊이 더한 M+, AAA까지
홍콩의 3월은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캔버스이자 거대한 거래소로 변모한다. 통상적으로 3월 마지막 주, 세계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홍콩을 필두로 아트센트럴, 세계적 경매사의 이브닝 세일, 주요 미술관, 화랑의 특별전이 집중되는 이 시기를 우리는 '홍콩 아트위크'라 부른다. 매년 9월 미술주간을 운영하는 한국에게 홍콩의 3월은 아시아 미술시장의 패권을 가늠하는 소중한 척도다. 지난 3월 25일부터 28일까지 방문한 홍콩은 팬데믹의 긴 터널을 완전히 벗어나, 단순한 '판매의 장'을 넘어 '경험과 담론의 장'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2015년부터 몇 차례 방문했던 이 시기를 지켜봐온 필자에게 코로나시대 이후 다시 본 2026년의 홍콩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고도 정교한 전략이 맞물리는 현장이었다.
상. 아트 바젤 홍콩 2026 국제갤러리 ‘인카운터스’ 강서경 설치작품 사진: 국제갤러리 Sebastiano Pellion di Persano 제공
하. 페로탕 갤러리 부스 전시 전경
아트바젤 홍콩 / 아트센트럴, 한국 화랑들의 전략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세계 주요 갤러리 240곳이 참여한 이번 아트바젤 홍콩은 완만한 시장 회복세를 반영하듯 활기찬 분위기 속에 개막했다. 특히 한국 화랑들의 약진은 이제 현상을 넘어 주류로 안착한 모습이었다. 가장 돋보인 곳은 국제갤러리였다. 대형 설치 작품을 선보이는 '인카운터스' 섹션에서 강서경의 멀티미디어 텍스타일 설치작을 선보이며 동양적 미학과 현대적 감각의 결합을 증명하며 빛났다. 리안갤러리는 한국 전후 아방가르드의 선구자 이건용의 〈바디스케이프〉 대작과 이강소와 남춘모로 이어지는 포트폴리오를 통해 한국 회화의 층위를 두텁게 소개했다. 아라리오갤러리 역시 이진주, 백정기 등 아시아 현대미술의 복합적 정체성을 탐구하는 작가군을 통해 컬렉터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선화랑은 '인사이트' 섹션에 이정지를 내세웠다. 이번 페어에서 한국 화랑들은 기존의 단색화 열풍을 넘어, 그 이후의 포스트 단색화와 실험미술을 체계적으로 제안했다. 이는 단순한 유행 소비를 넘어 한국 미술의 스펙트럼을 국제적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아트바젤의 위성 페어인 아트센트럴은 젊고 실험적인 에너지로 차별화를 꾀했다. 센트럴 하버프런트의 대형 텐트 아래 100여 개 화랑이 참여했는데, 써포먼트갤러리는 작년 아트센트럴 10주년 레전드 섹션에서 선정된 이인섭을 내세웠고, 김리아 갤러리는 ‘네오(Neo)’ 섹션에서 캐스퍼 강, 황도유 등의 작업을 통해 한지라는 매체의 물성을 탐구하는 한국적 현대미술을 선보여 호평받았다. 부산의 맥화랑은 강혜은, 김은주 등 중견여성 작가들의 '반복과 중첩'을 주제로 한 기획을 통해 한국 미술의 깊이를 알렸다.
상. 아시아 아카이브에서 쟝 샤오강과 함께 한 필자
하. M+ 지그컬렉션전 아이웨이웨이 작품
옥션, 경험을 소비하는 젊은 컬렉터들
경매 시장의 변화는 더욱 극적이었다. 3월 27일 열린 크리스티 홍콩 이브닝 세일은 아시아 진출 40주년을 기념하는 축제였다. 시장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우환, 이성자, 이배 등 한국 작가들의 작품은 '완판' 행렬에 동참하며 한국 현대미술이 국제 경매 시장의 탄탄한 블루칩임을 재확인시켰다. 주목할 점은 소더비와 필립스 등 글로벌 경매사들의 행보다. 이들은 더 이상 작품을 벽에 걸어두고 입찰만 기다리지 않는다. 소더비는 DJ 퍼포먼스와 결합한 이벤트형 오프닝을 통해 젊은 VIP 유입을 꾀했고, 필립스는 자오우키를 중심으로 한 '끝없는 대화(Endless Dialogue)'라는 특별 기획 전시를 통해 프리뷰를 격상시켰다. 서울옥션 또한 그랜드 하얏트 홍콩에서 열린 프리뷰에서 나라 요시토모의 대작 〈Nothing about it〉을 선보였고, 이 작품은 3월 31일 서울에서 150억 원이라는 국내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M+ 미술관 전시의 새로운 패러다임, AAA 현재를 움직이는 아카이브의 힘
홍콩 서구룡 문화지구의 랜드마크 M+는 이번 아트위크 기간 동안 '미술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했다. 특히 한국작가 이불의 전시는 서울 리움미술관에서의 전시와는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 리움이 작품의 조형성과 미학적 완성도에 집중한 정제된 전시를 보여주었다면, M+는 방대한 아카이브와 드로잉, 제작 과정의 서사를 보강한 연구형 전시를 지향했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오가는 작가의 세계관이 리움과 달리 넓은 공간 속에 펼쳐져서 사회적 맥락과 결합하며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상설 전시인 《지그 컬렉션: 혁명에서 세계화까지》는 울리 지그라는 한 개인의 헌신적인 기증이 어떻게 국가적 미술관의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였다. 울리 지그는 스위스 사람으로 중국과 북한 대사도 지낸 사업가로 중국 현대미술 최대 컬렉터 중 한 명이다. 1970년대 말 이후 중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역사적 서사로 체계화한 이 전시는 M+를 방문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부여한다.
또한 동아시아 전통 산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산수: 에코와 시그널(Shanshui: Echoes and Signals)》 전시에서는 이우환, 정창섭, 이수경 등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철학적 개념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목격할 수 있었다. 관람객이 직접 이우환의 금속판 위를 걷게 하는 연출은 정적인 감상을 넘어선 깊은 사유의 경험을 제공했다. 《Zao Wou-Ki: Master Printmaker》는 자오 우키의 판화 작업을 중심으로 1949~2000년 작품 약 180점을 통해 회화와 판화의 관계, 추상미술 실험과 동서 융합을 조망한 회고전이다.
3월 26일, 홍콩의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AAA)를 작년 8월에 안토니 용 수석연구원이 우리 박물관을 내방했던 일을 확산시키기 위해서 찾았다. 마침 그곳에서는 세계적인 작가 장샤오강의 토크쇼가 진행 중이었고 열기가 대단했다. AAA의 25주년 프로젝트와 연계된 이 행사는 작가가 2007년부터 이곳과 함께 디지털화해온 자신의 자료를 바탕으로 기억과 정체성을 재독해하는 시간이었다. 과거의 기록이 창고에 쌓여있는 유물이 아니라, 작가의 현재 작업을 지탱하고 새로운 담론을 생성하는 동력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홍콩 아트위크가 여타 도시의 페어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바로 이러한 탄탄한 연구 기반과 기록의 보존이 시장의 화려함과 병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밤에는 광주비엔날레 설명회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한 《아트커넥트 : 코리아 X 홍콩》에도 참석했다.
화려함 뒤에 숨은 '미술 생태계'의 유기적 결합
2026년 홍콩 아트위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유기적 결합이다. 아트페어는 시장의 활기를, 경매는 가치의 척도를, 미술관과 아카이브는 담론의 정당성을 부여하며 도시 전체가 하나의 완결된 미술 생태계로 작동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김달진 유튜브 쇼츠, 페이스북 라이브 등 30개를 생중계하며 느낀 열기는 뜨거웠다. 이제 컬렉터들은 단순히 작품을 사는 행위를 넘어, 그 작품이 품고 있는 역사적 맥락과 전시의 경험을 함께 소비한다. 한국 미술 역시 단색화라는 단일 브랜드를 넘어, 실험미술과 아카이브, 여성 작가 프로젝트 등 다각도의 접근을 통해 그 깊이를 인정받고 있다.
홍콩 아트위크는 여전히 화려했다. 하지만 그 화려함은 단순한 자본의 잔치가 아니라, 오랜 시간 공들여 쌓아온 연구와 기록, 그리고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춘 기획력의 결과물이었다. 한국 미술계 역시 9월의 미술주간을 준비하며 홍콩이 보여준 이 유기적이고 입체적인 전략을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기존 미술주간의 전시 할인, 홍보 중심을 벗어나 2024년부터 ‘대한민국미술축제’로 바꾸어 키아프, 프리즈 서울, 전국 비엔날레, 지역 미술관, 갤러리를 묶는 국가 단위 플랫폼으로 확대 개편되었는데 우리의 K-인프라를 활용 글로벌 큐레이터, 컬렉터들이 참여하도록 더 섬세한 전략의 실현이 필요하다.
상. M+에서 진행중인 이불의 개인전 《Lee Bul: From 1998 to Now'》 전시 전경
하. 미화 1,300만 달러에 판매되며 이번 아트 바젤 홍콩에서 최고 판매가를 기록한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Jeune femme brune〉, Oil on canvas, 55.6×38.1cm, 1917~18 ©Pace Gallery
좌. 크리스티 40주년 이브닝 세일
우. 루이스 부르주아 〈Couple〉, Fabric and hanging piece in aluminium, glass and wood vitrine, Hanging piece: 43.2×16.5×15.2cm, Overall: 193×61×61cm, 2002 ©Courtesy the Foundation and Hauser&Wirt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