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성’ 시리즈의 진화를 통해 한국적 명상의 울림을 추구한 대가
서승원(1941 - )
서양화가 서승원(徐承元, 1941~)은 한국 현대미술사의 격동기 속에서 기하학적 추상의 선구적 기틀을 마련하며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해온 대가이다. 그는 1960년대 초, 당시 화단을 지배하던 정형화된 국전 스타일과 서구의 앵포르멜 경향에 반기를 들며 ‘오리진(Origin)’ 그룹의 창립회원이다. 이는 한국 현대미술에서 논리와 질서를 바탕으로 한 기하학적 추상이 본격적으로 태동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그는 한국현대판화가협회의 창립과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 활동 등을 통해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의 중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동시성 67-9, 1967 ⓒ 서승원
서승원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화두는 ‘동시성(Simultaneity)’이다. 초기 작업에서 그는 날카로운 직선과 엄격한 기하학적 면 분할을 통해 화면 위의 절대적인 질서를 탐구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그의 작업은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서구적 조형 원리에 한국적 정서와 정신성을 결합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며, 화면 속의 딱딱한 경계들은 점차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한지의 질감을 연상시키는 은은한 바탕색 위에 기하학적 형태들이 겹치고 스며들며, 안과 밖, 형상과 바탕이 구분 없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묘경에 도달하였다. 그에게 ‘동시성’이란 단순히 시공간적 일치를 넘어, 전통과 현대,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그리고 작가의 내면과 외부 세계가 하나의 평면 위에서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고도의 정신적 상태를 의미한다.

동시성 67, 1967 ⓒ 서승원
이러한 예술적 성취는 국내외 미술계에서 높이 평가받다. 그는 1969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1971년 파리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 작가로 참여하며 한국 추상미술의 가능성을 세계무대에 알렸다. 1969년 5회 동경국제청년미술가전, 1971년 현대판화그랑프리전 금상(명동화랑), 1976년 알파화학이 주관한 청년미술가상 대상, 1978년 제5회 한국미술대상전 최우수상을 받았다.

동시성 89-112, 1989 ⓒ 서승원

동시성 90-59, ⓒ 서승원

동시성 19-952, 2019 ⓒ 서승원
특히 국립현대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에서의 전시를 통해 ‘동시성’ 시리즈의 진화를 꾸준히 선보여온 그는, 교육자로서도 홍익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한국 미술 발전에 헌신한 공로로 옥조근정훈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서승원의 화업은 가장 현대적인 조형 언어를 통해 한국적 정신의 정수를 구현해온 끊임없는 실천의 과정이며, 그의 화면은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명상적 울림과 함께 한국 현대미술의 독자적인 지평을 확인시켜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