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6일부터 앞으로 6월 16일까지 부산 미광화랑에서 황규응(黃圭應, 1928-2004)의 회고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미광화랑에서는 작가 생전에 두 번의 개인전(2000, 2001)을, 작고 후에도 두 번의 회고전(2016, 2026)을 여는 셈인데, 필자도 작가와는 개인적으로 2016년 회고전의 전시 평문을 쓴 인연이 있다.



<비바람 치는 부두(남포동)>, 1985, 종이에 수채, 24.8×35.4cm



그는 양달석(梁達錫), 김윤민(金潤珉), 김종식(金鍾植), 오영재(吳榮在) 등으로 대표되는 부산·경남의 초기 근대화단이 일궈낸 향토적 근대성의 화맥을 이은 마지막 작가이다. 수채화로 광주·전남에 배동신(裵東信)이 있고, 대구·경북에 이경희(李景熙)가 있다면, 부산·경남에는 황규응이 있다. 그는 선배 화가 김남배(金南培)의 ‘자기의 주제만을 밀고 나가고 나머지는 무시해야 한다’는 충고를 듣고 일평생 수채화에 전념하게 된다. 중동중학교와 춘천사범 강습과를 다녔을 뿐, 정규 미술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초등학교 교사(내성초·좌천초) 및 경찰직 형사로 근무하면서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범인을 잡기 위해 제주도에 출장을 가서도 화구를 챙겨 그림을 그렸다고 하니, 그의 그림에 대한 열정이 어떠했는지는 어렵잖게 짐작해볼 수 있다.



<광안대교>, 2003, 종이에 수채, 30×45cm



낭만적 정감과 사실적 정취를 동시에 추구하는 그의 회화에서는 부산이 가진 전통적 해양의 풍취와 생활의 자취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데, 마치 단원(檀園)의 풍속화가 조선 후기의 현실과 생활상을 핍진하게 보여주듯, 그의 수채화 역시 항도(港都) 부산의 20세기 하반(下半)의 면모를 후인(後人)에게 또렷이 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황규응 수채의 미적 핵심은 맑음과 담백함에 녹아있기보다는 걸쭉함과 구수함을 따라갔다는 데에 있다. 깔끔한 술집에서 잔으로 마시는 정종의 맛보다는 농사철 새참으로 사발에 들이켜는 막걸리의 맛이라고나 할까? 앞에서 환하게 웃음 짓는 계집의 곰살스런 애교가 아닌, 돌아서서 쓸쓸히 눈물을 닦는 사나이의 무뚝뚝한 속정 같은 미감을 품고 있다. 불국사 탑파, 석굴암 조각상, 비색청자, 사군자도에서 볼 수 있는 귀족적, 선비적 미감보다는 운주사 천불천탑, 고려 철불, 분청사기, 민화에서 볼 수 있는 호족적, 서민적 미감에 더 가깝다. 세련(洗練)이 아닌 조야(粗野)의 미감, 관(官)이 아닌 민(民)의 미감을 계승하는 그의 수채는 일견 엉성해 보이는 아마추어리즘(amateurism)에 기반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는 번쩍이는 기교를 뽐내듯 밖으로 드러내기보다는 담담한 순정을 다소곳이 안으로 감추는 모양새에 더 근사(近似)하다. 그러나 그것이 대상을 바라보는 본연의 시선과 대상을 향하는 간절한 사랑에 더욱 긴밀하게 맞닿아 있기에, 오히려 고도로 치밀한 프로페셔널리즘(professionalism)의 경지가 보여줄 수 있는 이상의 위대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상마마을>, 1999, 종이에 수채, 25.5×35cm


<비바람 치는 부두(남포동)>는 황규응 회화의 표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소위 트레이드마크(trademark)에 해당하는 ‘우중(雨中) 풍경’ 계열의 작업이다. 하단이나 을숙도, 남포동이나 자갈치 일대를 그린 쓸쓸한 엘레지(elegy) 풍의 그림에는 바람에 흩뿌리는 우적(雨滴)과 자욱하게 깔린 해무(海霧) 속에 펼쳐진 풍경이 흐릿한 영상으로 어른거리며, 그 속에서 거리를 걷는 사람의 일상이 하나의 공기로 아련히 담겨 있다. 긁고 닦는 기법으로 비바람 치는 탁조(濁調)의 대기감(大氣感)을 촉각적으로 묘파하면서, 엷고 섬세한 녹색조의 대비를 통해 흔들림의 감각은 물론 공기의 습윤성까지도 천연하게 묘출해내고 있다.